소설리스트

콜사인 (293)화 (293/320)

293화

-유 대원, 두 가지만요. 부단장님, 거기 광산개발로 만들어진 마을인 거 같습니다.

“유미라 대원, 첫 번째 질문 정정하겠습니다. 광산이 몇 개 있는지, 관리 사항과 수색했는지도 포함이요.”

-네, 부단장님. 정정 내용 확인했어요.

유미라 대원의 대답이 들려왔다.

투다다다.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도 헬기는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그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곧 유미라 대원의 목소리가 다급히 헬멧에 울렸다.

-부단장님, 1번 페광은 7개고, 모두 광업소에서 관리 중이래요. 출입금지 표시해 놓고 갱도 입구에 쇠사슬 쳐 놨고요.

“애들은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라고 해주세요.”

-그렇게 전해놨고, 그쪽으로 이동 중이에요. 다들 당연히 안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 말에 오광휘 단장이 발끈했다.

-그게 말이랍니까. 애들이 그렇게 순순하면 애들이야? 혼나더라도 일단 들어가고 보는 게 애들인데!

-그냥 지나친 건 아닌가 봐요. 겉으로 보기엔 침입흔적이 없었다고 해요.

-그럼 누가 ‘나 들어갔소,’ 하고 티 내겠냐고요. 그 인간들 생각이…….

오광휘 단장의 비난 수위가 높아지려하자 태건이 중재했다.

“단장님, 아직 확실한 거 아닙니다.”

-끄응. 확실해지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아무리 그래도 애들이 거기 몰래 들어가자고 새벽에 모인 건 이상하잖아.

“그건 그 이유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유 대원. 2번, 3번 대답은요?”

태건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유미라 대원은 곧장 대답해 왔다.

-부단장님 말씀대로 한 가구가 여름에 귀촌했어요. 실종된 12세 1명, 10세 1명이 그 집 아이들이에요.

“부모 혹은 조부모가 그 마을 출신이라 돌아온 거죠?”

-어, 어, 네. 귀촌 가구 어머니가 그 마을 토박이래요.

“후. 어쩐지…….”

태건의 뉘앙스가 의미심장하자 오광휘 단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불쑥 끼어들었다.

-잠시, 모두 쉿……. 라면. 뭐야. 아는 애들이야?

“같은 강원도라고 횡성하고 인제가 옆집인 줄 아십니까?”

-어라. 그러네. 너도 강원도네. 그럼 애들이 왜 이른 아침에 산으로 갔는지도 알아?

“여물 베러요.”

태건은 덤덤하게 답했다.

그러나 같은 헬기에 탑승 중인 노주민과 성지훈은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여물이요?”

“그거 소 먹이 말하는, 그 여물?”

그건 저쪽에서도 마찬가진지 오광휘 단장의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짜샤. 갑자기 뭔 뜬금없는 여물 타령이야?

“뭐가요. 집에 소 한두 마리씩은 다 키우잖습니까.”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집에 소를 키워?

“우리 본가요. 그리고 본가 아랫집, 그 옆집, 옆옆 집, 그 뒷집……. 많이 키웁니다만.”

태건은 갸웃거렸다.

오광휘 단장의 혈압 솟구친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나도 강원도에서 근무해 봤지만 그런데 많이 못 봤거든. 아파트도 있고 다 있어!

“그건 도시화가 많이 됐으니까요. 산골 마을에선 소 키우는 집 꽤 있습니다.

-그래도 볏단이나 사료나 많잖아. 그런데 왜 여물을 베러 가는데?

오광휘 단장이 따졌지만 태건은 넉살 좋게 받아쳤다.

“쇠죽 끊여봤어요? 안 끓여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야, 너 나 놀리는 거지. 너 내려.

“여물 베야지, 나무 해와야지. 아침부터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아오, 진짜 저게!

오광휘 단장의 울화 터진 모습이 목소리로도 가득 그려졌다.

그런데 그때 태건의 표정이 싹 가라앉았다.

“문제는 애들이 폐광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단 겁니다.”

-끄으응. 도대체 왜.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어떤 굴이었는지에 따라 다르죠.”

태건이 여지를 흘리자 이번엔 황대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태건이, 남자답게 화끈하게 쫙 읊어봐.

“폐광엔 임산물이 의외로 많습니다. 식용 버섯 같은 거 말입니다. 아니면 석탄일 수도 있고요.”

-기왕 나선 길이라 그 녀석들도 뭔가 더 칭찬 받을 거리가 필요했을 거다, 이건가?

“문제는 뭔가 일이 일어났을 거란 추측입니다.”

태건은 말을 아꼈다.

여지를 두는 게 아니라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단 느낌이 더 강했다.

그에 대해선 다시 침착해진 오광휘 단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5명 중에서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가 있겠지.

-한 명이 아닌 다수에게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황대산이 덧붙여 말했지만 아무래도 빈약한 추론이었다.

그에 대한 걸 성지훈이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그래도 누군가 한 명은 멀쩡할 거 아닙니까. 그럼 그 누군가는 발견이 되었어야 합니다.”

“자자자, 잠시만요. 제가 진짜 엉뚱해서 이런 생각이 떠오른 거 같은데, 저도 정말 생각하기 싫거든요. 그런데…….”

노주민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엉뚱한 김지수가 그 어려운 말을 감정 없는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폐광 일부가 무너져서 입구가 막혔다면, 혹은 애들이 전부 깔렸다면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야, 엉뚱. 너 말조심해!”

-개똘, 뭘 조심해. 그리고 조심한다고 달라져? 일어난 일이라면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책을 강구할 생각을 해야지!

노주민과 김지수의 목소리가 따갑게 맞붙었다.

태건이 바로 중재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야. 그런데 모두가 듣는 데서 오가기에 적절한 대화도 아니야.”

…….

“모두 들으셨겠지만 두 대원의 추측이 억지가 아니란 게 문제입니다.”

…….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최악이냐, 차악이냐. 아니면 또 다른 경우냐. 어쨌든 아이들이 좋은 상황은 아닐 겁니다.”

태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광휘 단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말했다.

-어떤 경우든 아이들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을 확률이 높을 거란 건 확실해졌습니다.

-네.

-곧 밤이 됩니다. 행정팀과 지원팀은 인제군과 협조해 장비 동원과 조명 확보에 힘써 주십시오.

-최대한 지원할게요.

이혜지 행정팀장이 대표로 약속했다.

오광휘 단장이 이어서 부탁했다.

-느낌이 썩 좋지 않습니다. 날카롭고 예민한 밤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단장님.”

-크흠. 물론 라텔은 당연히 그렇지 않게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러니까 본부에서도 도와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본부 대원들의 씩씩한 대답으로 잠시 통신이 멈췄다.

태건은 앞서 날아가는 라텔 1호기를 바라봤다.

슥슥.

두 손으로는 구조견들을 쓸었다.

마지막 오광휘 단장의 말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날카롭고 예민한 밤.

괜히 그런 말을 할 오광휘 단장이 아니다.

막연한 느낌이라고는 하지만 늘 힘을 주던 그였기에 더더욱 무겁게 마음에 남았다.

사실 태건도 비슷한 심정이긴 했다.

날아가는 내내 아이들의 발견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거의 40분이 지나고 있는데…….’

아이들이 실종된 지 11시간에 다다르고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을 발견한다고 쳐도 구조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있을까.

그건 미지수였다.

겨울이라 벌써 세상이 빨갛게 물들고 있다.

곧 밤이 찾아올 거다.

모든 게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헬기는 거침없이 동쪽으로 날아갔다.

투다다다.

어느새 고요해진 헬기 속엔 단원들이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

헬멧 속은 오로지 적막만 가득했다.

활발하게 오가던 통신은 끊긴지 오래였다.

어떤 말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아직 희망을 놓지 않았다.

수색팀들이 7개의 폐광 수색을 마치고 아이들을 발견했단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구조의 난항 따윈 관심사도 아니었다.

듣고 싶은 소식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 하나면 된다.

‘제발.’

“……제발.”

텅!

곱씹던 속마음이 거친 주먹질과 함께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

움찔.

단원들이 미미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태건과 같은 심정이다.

성지훈은 이런 분위기를 조금 낯설어했다.

“나 하나 물읍시다. 솔직히 너무 좀 그런 거 같아서요. 애초에 애들이 산에 올라간 게 잘못 아닙니까?”

“성 선생님은 환자가 오면 잘잘못부터 따지시는군요.”

“……내 질문이 잘못됐네요. 실례했습니다.”

성지훈은 순순히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눈빛을 굳혔다.

이 순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무의미했다.

거기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가는 거다.

‘마치 응급실에 들어온 중증외상 환자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달려가 치료하는 게 자신의 직업이다.

그렇게 대입하니 이 순간이 너무 당연하게 이해됐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미안합니다.”

한 번 더 고개 숙여 사과했다. 

태건은 의외로 성지훈의 질문에 민감하게 굴지 않았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아직 라텔로 치면 인턴이니까.’

단원 중에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 헬기 밖으로 걷어차 버렸을 터였다.

투두두.

헬기가 날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속만 답답해져 왔다.

“흐음.”

현장 소식에 대한 기다림도 점점 지쳐갔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할짝.

구조견들도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태건의 손을 핥아 줬다.

바로 그때였다.

헬멧에서 다급한 김여훈 지원팀장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원팀장이야. 확실하진 않은데 아이들을 찾은 거 같다고 해.

그 말에 모두가 번뜩인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화아악!

풀죽은 눈빛이 거짓말처럼 생생하게 번뜩거리며 살아났다.

동시에 오광휘 단장의 속사포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팀장님, 찾은 거면 찾은 거고, 아닌 거면 아닌 거지, 그런 애매모호하고 멜랑꼬리한 대답이 어딨습니까!

-우선 위치부터 확인해……. 전송!

띠링.

동시에 휴대폰이 울렸다.

바로 확인한 태건이 목소리를 냈다.

“2번 폐광 아닙니까? 뭔가 흔적이 발견된 겁니까?”

-안쪽에서 지반 붕괴 흔적이 발견됐어. 그것도 아주 최근으로 추정돼!

“그럼 내려가 봐야 될 거 아닙니까!”

-안 그래도 준비 중인 모양이야. 그런데 추가붕괴 위험이 있어 안전 확보에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급발진하는 황대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전? 시간? 이런 삐삐삐……. 읍읍!

-가만있어 새꺄. 어이, 교수라텔!

-2번 폐광 입구 앞까지 무조건 2분 컷!

-라텔, 급속강하 준비.

오광휘 단장의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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