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4화
동시에 태건이 눈빛을 빛내며 답했다.
핑!
“라텔 2호기, 접수 완료.”
그 후 태건과 노주민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반적인 급속강하는 방화복을 입은 상태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오늘은 화재가 아닌 구조라 방화복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변칙 상황에 대한 훈련도 당연히 되어 있었다.
완충장치 대용으로 커다란 가방을 뒤로, 앞으로, 옆으로 멨다.
구조견들은 특별제작한 전용 방화복이 있었다.
철컥, 철컥.
태건이 구조견들에게 신경 쓰는 사이 노주민이 물어왔다.
“성 선생님은 어떻게 합니까?”
“방화복 입히고 레펠 장비 달아 놔. 내가 데리고 내려갈게.”
“그럼 구조견들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자, 이거 입으시고, 어서요. 빨리, 시간 없습니다.”
훌렁, 휙휙.
노주민이 거칠게 다루자 성지훈이 당황했다.
“저기, 아니, 이건 왜 나만 입혀요.”
“빨리 입으라니까. 거의 도착해 가잖아요!”
“말이라도 좀 해주고…….”
“곧 알게 될 건데 뭔 말. 라텔은 일단 몸으로 부딪치는 게 룰입니다. 어서, 아, 빨리!”
노주민은 우격다짐으로 아니, 막무가내로 성지훈을 다뤘다.
태건은 그런 노주민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이런 건 역시 개똘이 적임자야.’
앞뒤 없이 몰아붙이는 데는 태건도 인정하는 귄위자(?)였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태건이 로프를 헬기 동체에 걸었다.
철컹!
그에 질세라 노주민이 반대편에 로프를 걸었다.
바로 그때였다.
1호기 기장인 정교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호기 호버링 포인트 도착!
-2호기 도착 2초 전……. 호버링 시작!
-라텔, 각 헬기 도어 오픈!
왕지호 기장에 이어 오광휘 단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촤라락!
태건과 노주민이 타이밍 맞춰 슬라이딩 도어를 열었다.
그와 동시에 반쯤 어둠이 찾아온 산기슭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퓌이잉!
거센 겨울산 바람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좌우에 침엽수들이 상당히 높게 자라있었다.
뾰족뾰족한 그 모습은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태건의 입가엔 미소가 그려졌다.
“거 뛰기 딱 좋은 사이즈네.”
불쑥.
옆에서 고개를 내밀어 확인한 성지훈이 어이없어 했다.
“이 높이에서 아무 구조물도 없이 바로 뛴다고요?”
“라텔 모르십니까?”
“나도 물불 안 가린단 소문이야 들었죠.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신인류병이 있습니다. [분노조절 잘 해 신드롬] 이라고 들어보셨나 몰라.”
성지훈이 주절주절했다.
-1호기 고도 맞추는 중!
-2호기 상동!
아래만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가끔 응급실에 출몰하는데, 온갖 난동을 다 부립니다. 그러다가 덩치 좋은 경비원들 나타나면 온순해지는 그런 부류인데…….”
그 말이 끝나기 전 헬기가 우뚝 멈췄다.
동시에 기장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텅!
-1호기 고도 고정!
-2호기 준비 완료!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오광휘 단장의 결연한 외침이 울렸다.
-준비 됐음, 뛰어!
-남자답게, 가즈아!
-끼야야아아아!
휘릭, 휘릭.
저 앞에 1호 헬기에서 오광휘 단장, 황대산, 김지수가 로프 하나 매달고 침엽수 가지를 향해 거침없이 몸을 날렸다.
그걸 목격한 성지훈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저저저……. 부, 분노조절 자, 잘하는 시, 신드롬인데…….”
“라텔이란 동물에 대해 아십니까?”
“몰라요!”
“사자 무리에도 홀로 뛰어들어 휘젓고 다니는 녀석입니다. 이렇게, 뛰어!”
터업!
태건은 그대로 성지훈을 태클하듯 떠밀며 같이 헬기에서 떨어졌다.
낙하산도 없이 자유의 몸이 된 성지훈은 온갖 비명을 질렀다.
“우에에에에, 그건 분노조절 잘 못 해……. 으어어어, 아아아아악!”
우지직, 쩌적, 꽈지직(?).
부서지고, 부러지고, 찢어지는 소리가 난무했다.
태건은 진짜 죽을 맛이었다.
안전(?)하게 급속하강 중인데 귀가 너무 따가웠다.
꽈직, 우지직!
턱, 턱!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가며 지상과 거리를 좁히던 태건이 순간 생각했다.
‘실수로 놓칠까?’
기절시키는 정도라면 그러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솟구쳤다.
그 정도로 성지훈의 비명은 역대 최강이었다.
고막이 터질 거 같았다.
하지만 끝내 시도하지 않고 참았다.
현재 실종자들의 부상여부가 어떤지 파악되지 않은 탓이다.
“빨리, 더 빨리!”
터덕, 차자작!
태건은 고막의 안전을 위해 더욱 내려가는 속도를 높였다.
“으억, 아악, 아으다어아어아!”
그럴수록 성지훈의 비명은 더욱 높아져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갔다.
눈 깜박할 사이.
태건의 두 다리가 지상에 닿았다.
터덩, 후두둑!
처참하게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뒤따라 떨어졌지만 상관없었다.
태건은 재빨리 성지훈부터 떨궜다.
“에잇!”
텅!
“까윽, 좀 살살…….”
성지훈은 등에 이는 충격에 온몸을 비비 꼬았다.
태건은 재빨리 로프를 푼 후. 폐광으로 내달리며 헬멧에 외쳤다.
파바박!
“의사, 분리 완료. 개똘, 지상 도착했어?”
“끄아아아. 아잣! 지금 도착, 깡패들……. 오케이, 무사 착지!”
터덩!
바로 옆에 노주민이 이순이와 삼식이를 각각 한 손씩 끌어안고 두 다리로 착지했다.
태건은 그런 그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그대로 지나치며 말했다.
퉁.
“의사, 깡패들 컨디션 체크, 깡패들은 큰 문제 없으면 바로 내 뒤로 따라붙게 해!”
“접수!”
노주민의 우렁찬 대답이 뒤에서 그리고 헬멧에서 서라운드로 들려왔다.
그 사이 태건은 폐광 입구로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파바박!
그런 태건의 옆에 오광휘 단장이 나타나 나란히 내달렸다.
“엉뚱이 착지 미스로 나뭇가지에 걸렸어. 빅이 구조 중 로프만 끊으면 되니까 10초. 이 자식을 그냥!”
“문책은 나중에.”
“그래. 일단 치고 달려!”
우다다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나란히 폐광 속으로 들어갔다.
폐광 내부는 엄청나게 넓었다.
초입이라 그런지 상당히 커다란 산업기계들이 드나들었던 걸로 추측됐다.
그런데 받침목들이 너무 낡았다.
오래 방치되어 낡고 삭은 흔적이 가득했고 온갖 버섯들이 자라고 있었다.
“최소 몇 십 년은 놔둔 사이즈야.”
파바박!
달리면서 살핀 오광휘 단장이 짤막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다.
최소한의 정보를 수집하는 거였다.
다행이라면 앞서 도착한 수색조들이 밝힌 조명으로 환했다.
그 빛을 따라가면 되기에 두 사람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파바박.
달리고 달려가던 중 저 앞에 갈림길이 보였다.
좌우에 모두 조명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내용은 김여훈 지원팀장의 현장설명에 없었다.
“오른쪽?”
“왼쪽?”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번갈아 물었다.
그런데.
-…….
헬멧에서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갈림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툭툭.
재빨리 헬멧을 두드린 태건이 얼른 김여훈 지원팀장을 찾았다.
“팀장님, 지원팀장님!”
-치직. 치지직…….
대답이 아닌 노이즈 가득한 소리만 들려왔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마주했다.
“전파제한!”
“전파가 닿지 않아!”
달려온 거리를 대략 유추해보니 최소 200미터 이상이었다. 너무 옛날에 만들어진 시설이라 중계기가 있을리 없었다.
이젠 전파까지 말썽이었다.
마치 눈과 귀가 반쯤 막힌 거 같았다.
그렇다고 헬멧을 벗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데나 찔러보자니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낭비고,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아무도 없어요?”
공허하게 소리치며 고민하던 그때였다.
오른쪽 저 멀리에서 경찰관이 스르륵 나타났다.
“거기 누구십니까!”
“라텔입니다, 요구조자 어딥니까!”
“오, 라텔! 저기, 저기!”
슥.
경찰이 가리킨 방향은 왼쪽이었다.
“땡큐, 뒤따라오는 우리 애들한테도 좀 알려주세요!”
파바박!
바로 내달리며 부탁도 겸했다.
그렇게 방향을 잡고 다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젠 폐광이 아닌 갱도라고 불러야할 정도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만큼 갱도의 넓이도 반으로 줄어들었다.
터더덕.
많은 가방을 짊어지고 달리는 중이지만 그간 끌어올린 체력이 상당하기에 아직 숨도 차지 않았다.
동시에 주변을 살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태건은 다른 특징도 간파했다.
“여긴 철로를 놓은 흔적이 없습니다.”
“뭐야. 저쪽은 쭉 철로를 깔았다가 거둔 거 같던데?”
“그럼 이쪽은 모종의 이유로 개발이 중지됐었단 거겠죠.”
“지반이 약해서 일지도 모르……. 저기, 저기 사람들 보인다. 여기요!”
저 앞에 여러 복장을 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광휘 단장이 힘껏 소리쳤다.
-여어기이요오.
울리고 울린 소리를 들었는지 하나둘 돌아봤다.
그런 그들의 옷차림이 각양각색이었다.
경찰, 소방관, 두툼한 단체복을 입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급히 다가오는 태건과 오광휘 단장을 향해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으어어. 그만, 살살 와요. 살살!”
“멈춰요. 당장!”
그들의 허둥지둥한 모습에 두 사람은 일단 속도를 줄였다.
터, 더덕.
오광휘 단장이 거수경례를 하며 말했다.
“라텔, 단장 오광휘입니다.”
“오옷, 여러분이……. 정말 오셨군요!”
“그건 나중에 말씀하시고, 책임자 계십니까?”
오광휘 단장은 짧고 굵게 핵심만 간추려 물었다.
그러자 단체복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와 말했다.
“저는 여기 풍암광업소 3갱도 관리자 박…….”
“네, 자세한 인사는 나중에 다시 하고, 여기 아이들이 휩쓸린 겁니까?”
“그게 저희도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
“뭔 소립니까. 지반이 붕괴됐다면서요! 그럼…….”
오광휘 단장이 거칠게 몰아붙이려 했다.
스윽.
태건이 나서 중재시키고 핵심만 간략히 물었다.
“부단장입니다. 붕괴지점이 어딥니까?”
“저기 뒤쪽입니다.”
“…….”
휙.
태건은 어깨 너머로 바라봤다.
뒤쪽 어느 지점부터 아래로 급경사가 시작됐다.
그 아래쪽은 조명이 닿지 않아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