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충격이 가라앉자 구조견들부터 로프와 분리했다.
척, 척.
태건은 구조견들과 눈을 맞추며 진지하게 명령했다.
“사람 찾아. 빨리.”
정식 구조견으로서 첫 임무였다.
너무도 색다른 환경이라 구조견들도 실전이란 걸 인지한 듯했다.
-컹컹!
-킁킁킁!
늠름한 모습으로 코를 땅에 박은 채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풀썩.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동시에 울퉁불퉁한 돌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진짜 속이, 아…….”
“맨몸으로 받았으면, 어으으.”
아직도 가시지 않은 충격에 괴로움을 흘렸다.
플래시로 신호는 보내지 않았다.
아직 아이들이 이곳에 있단 확신이 없다.
여기서 단원들이 더 내려오면 올라갈 길이 막막해진다.
확신이 생기면 그때 내려와도 늦지 않았다.
잠깐이라도 충격 가득한 속을 좀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구조견들의 충격을 대신 흡수한 여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출렁출렁.
가만히 있어야할 로프들이 거칠게 출렁거렸다.
-끼야야아아!
-으어어어!
난데없는 비명소리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지상쪽으로 돌렸다.
휘휙!
아직 멀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감이란 게 있었다.
“설마 얘들?”
“개똘하고 엉뚱은 아니겠죠? 아니어야 할텐데, 아니, 이 자식들이 왜!”
“사인 안 보냈는데 왜 내려와. 대체 왜!”
오광휘 단장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태건은 순식간에 생각하고 이내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하시죠.”
“뭘 어떻게.”
“기왕 이렇게 된 거……. 로프 끊죠. 쟤들 그냥 보냅시다. 여기라면 흔적 없이 보낼 수 있습니다.”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태건은 정말 실행에 옮기려 했다.
그 모습에 놀란 오광휘 단장이 재빨리 일어나 태건을 붙들었다.
꽈악.
“야, 태건아. 참아. 진정해!”
“저 자식들 지시도 받지 않고 저렇게 제멋대로 굴다간 언젠가 사고 칩니다. 아시잖습니까.”
“그걸 네 입으로 말하면 안 되지!”
오광휘 단장이 참다못해 버럭 소리쳤다.
그 따끔한 외침에 태건이 멈칫했다.
“…….”
“세상에서 너보다 멋대로 한 새끼가 어딨어. 네가 말해봐. 있어?”
“아니요!”
태건이 당당하게 대답하자 오히려 오광휘 단장이 움찔했다.
“그게 당당할 거리가 되냐?”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그래. 아니까 다행이긴 하다만…….”
그의 당혹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컹, 컹컹!
구조견들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번뜩!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표정이 거짓말처럼 싹 돌변했다.
“가시죠.”
“가자!”
타다닥!
두 사람은 아픔조차 잊은 채 쏜살 같이 그쪽으로 플래시를 비추며 달려갔다.
그들이 사라진 직후.
노주민과 김지수가 플래시를 비추며 종착지에 다다랐다.
그런데 맞이해 줄 사람도 없고, 충격 흡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방금 매정히 떠나갔다.
“어어어어, 머머머, 멈춰어어어!”
“브브브, 브레이크, 아아아, 안돼에에에!”
우당탕탕!
커다란 바위 근처에서 요란한 도착소리가 들려왔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듣긴 들었지만 신경을 분산시킬 수가 없었다.
터덕, 척, 척.
빠르게 바위와 바위를 넘어 깊숙이 들어갔다.
저 멀리 구조견들이 보였다.
슥슥.
코로, 또 앞발로 밀어내고 긁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순아, 삼식아 뭐…….”
빠르게 도착한 태건이 물으려다 멈칫했다.
한 아이가 바위와 바위틈에 끼어 있었다.
그 시간이 상당히 오래 되었는지 입술이 하얗게 질리도록 탈진해 있었다.
“흐으으. 흐으으…….”
턱턱.
-끼잉, 끼잉.
-할짝, 할짝.
구조견들이 앞다리로 긁어도 바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계속 핥아 자극을 줬지만 아이는 힘겨운 호흡만 흘릴 따름이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예상은 했다.
그런데 눈으로 보는 건 또 달랐다.
“…….”
너무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저 상태로 더 방치하는 건 위험했다.
최대한 빨리 저 빌어먹을 바위틈에서 빼내는 게 급선무였다.
그때 뒤에서 부산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더덕.
“아니, 단장님, 부단장님, 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맞아요. 어여쁜 후배들이 천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데…….”
노주민과 김지수가 툴툴거리며 나타났다.
그런데 타이밍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오광휘 단장이 싸늘한 목소리로 섬뜩하게 한마디 했다.
“닥쳐.”
그 한 마디로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죄송합니다.”
“개똘, 깡패들이랑 주변 샅샅이 수색해서 애들 싹 다 찾아. 최대한 빨리.”
“헙. 알겠습니다. 이순아……. 삼식아?”
노주민이 불렀지만 구조견들은 아직 그를 따를 마음이 없는 듯했다.
태건은 이런 순간엔 가차 없었다.
구조견들의 뒷덜미를 차례로 낚아채 아이에게서 멀리 떨어뜨렸다.
휙휙.
“이순아, 삼식아.”
찌릿.
강렬한 눈빛까지 흘겼다.
-……낑.
-히잉.
터덕터덕.
구조견들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이내 노주민에게로 향했다.
오광휘 단장의 싸늘한 명령은 바로 다음 단원에게 이어졌다.
“엉뚱, 라텔 하나……. 기장들까지 전원 내려오라고 해. 무슨 수를 써서든.”
“네. 라텔 하나!”
파바바박!
김지수는 다가올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착지 지점으로 되돌아갔다.
오광휘 단장이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빌어먹을 ”
그 숨소리가 격하게 흔들렸다.
첫 번째로 발견된 아이가 이런 상태다.
다른 네 명의 아이 상태가 좋단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같은 시각.
태건은 바위틈에 끼어 있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척, 부욱!
출동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길게 열었다.
그 속엔 온갖 공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단장님, 우선 애부터 꺼내고 생각하시죠.”
“그래. 왔어!”
차작.
오광휘 단장은 번개 같이 옆으로 다가왔다.
태건은 유압공구 중 하나를 들어올렸다.
좌우로 벌여 틈을 만들어 주는 공구였다.
찌걱. 찌걱.
조금씩 작동시키자 공구가 움직이며 좌우로 벌어졌다.
그그, 그그극.
엄청난 힘이 가해지며 바위들에 간격이 생겼다.
그럴수록 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괴로워하다 이내 비명을 질렀다.
“흐으으. 으으, 으아아아!”
태건은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공구를 멈췄다.
번쩍!
재빨리 바위틈에 플래시를 비춰봤다.
“이런.”
“뭔데, 앗. 푸우!”
같이 들여다본 오광휘 단장 표정도 확 굳어졌다.
오른쪽 다리 중간에 뾰족한 부분이 다르게 맞물려 있었다.
이대로 틈을 벌리면 그 부분만 반대로 작용해 허벅지를 찌르게 되는 구조였다.
“더럽게 맞물렸네.”
“현재 상태는 조금 압박되는 정도입니다.”
“상체는 조금 여유로워졌으니까……. 나아졌다고 봐야지.”
“이 상태에서 아이 케어부터 하죠. 그나저나 성 선생을 데려오길 잘 한 거 같습니다.”
태건이 제안하자 오광휘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느낌이 그렇더라. 일단 내가 물 주고 바이탈 체크할게. 넌 먹을 거하고, 몸 데울 거 좀 챙겨.”
“알겠습니다.”
차작.
대답과 동시에 두 사람은 재빨리 흩어졌다.
아이의 의식이 흐릿한 상태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1시간이 훌쩍 넘었어.’
실종된 시간이다.
여기 언제부터 갇혔는지 몰라도 어림잡아 8시간 이상일 터였다.
다른 아이들은 주변에 있을 확률이 지배적으로 높다.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보자면.
‘다들 조금만 건강해라.’
처음엔 살아만 있어달라고 했었다.
이젠 조금 더 건강하길 빌었다.
이래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비난해도 상관없었다.
이런 욕심은 좀 부려도 되는 거 아닌가.
애들을 혼내든, 뭐하든, 일단 무사히 빠져나간 후에 생각할 일이었다.
태건은 또 다른 출동가방에 다가섰다.
부욱.
지퍼를 열자 두툼한 방한내피 일명 ‘깔깔이’라고 불리는 상의가 몇 벌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응급처치용품과 비상식량도 함께였다.
“이거랑, 이거.”
착, 착.
번개 같이 품에 안고 몸을 돌린 태건이 멈칫했다.
오광휘 단장이 바위틈에 낀 아이의 입에 조심스럽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옳지, 오옳지.”
줄줄.
어르고 달래며 먹이지만 버리는 게 반이 넘었다.
자잘하게 쓸리고 까진 상처가 많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어 보이진 않았다.
역시 너무 오래 바위틈에 끼어 있었다.
그만큼 지쳐 있는 아이라 당장 무언가 추가 조치를 더 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럼…….’
후두둑.
태건은 다 내려놓고 깔깔이와 간이혈압계만 챙겨 다가갔다.
“단장님, 여기.”
“어. 잠깐만……. 음? 혈압 낮고 맥박 높은 거야 당연하다고 치고, 체온이 생각보다 엄청 낮진 않은데?”
뭔가 이상하단 뉘앙스를 풍겼다.
반면 태건의 얼굴엔 별다른 놀라움이 담겨있지 않았다.
“다행히 내출혈 가능성은 적은 거 같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 엄동설한에 체온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아?”
“이 정도 깊이면 대략 10도 안팎. 초봄이나 늦가을 기온 정도 될 겁니다.”
스윽.
더불어 태건은 아이를 손짓했다.
아이의 옷차림은 두껍고 질긴 합성소재의 패딩차림이었다. 붕괴 공간이 축축한 편이지만 안쪽까지 젖지도 않았다.
그제야 오광휘 단장도 이해한 모양이다.
“이 정도 온도라면 이런 애들도 버틸 수 있지.”
그때 아이의 눈썹이 미미하게 떨리며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흐으, 으으으.”
쫑긋!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던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귀가 바로 캐치했다.
수분을 보충해준 반응이 나타나는 거였다.
오광휘 단장은 번개 같이 태건을 밀어내며 말했다.
턱.
“넌 다른 애들 수색부터 도와……. 얘야, 얘야, 내 목소리 들려? 아저씨 보여?”
오광휘 단장은 바위틈을 완전히 틀어막고 아이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스윽.
태건은 그의 옆에 깔깔이를 놓고 자리를 옮겼다.
누군가 자리를 잡고 임시 거점을 마련해 놓는 게 한데 모이기 좋았다.
그 역할로는 오광휘 단장이 적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