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97)화 (297/320)

297화

태건은 바로 수색으로 임무를 전환했다.

동시에 이 공간을 플래시로 넓게 비춰봤다.

스윽.

빛이 닿은 면적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때 김지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공동 가득 울렸다.

-라아아, 테에엘, 하나나, 나아아, 오오올!

얇고 뾰족한 톤이 마치 공기를 찌르듯 퍼져나갔다.

이런 제한되고 울리는 공간에선 확실히 김지수의 목소리 톤이 의사전달에 효과적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앗!

김지수의 목소리에 반응한 듯 지상 쪽에서 밝은 빛이 터지며 비춰주기 시작했다.

어디서 커다란 조명을 구해온 모양이었다.

비탈길의 각도와 거리, 부서진 암석들로 인해 빛이 온전히 비춰지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을 둘러볼 정도는 충분했다.

“꽤 넓어.”

태건은 드러난 공동의 구조를 빠르게 머릿속에 입력했다.

카우보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죽물통이 딱 떠오르는 구조였다.

진짜 물통처럼 물기가 있단 점도 특징이었다.

‘암반수?’

약한 지반의 원인일 가능성이 없잖아 있었다.

그보다 시야가 확보됐음에도 가장 중요한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게 더 중요하기에 태건은 서둘러 움직였다.

구조견들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수색 중이었다.

아이들 냄새가 거의 지워졌는지 아예 돌 틈에 코를 박고 이동 중이었다.

-킁킁킁.

그 주변에 노주민이 함께였다.

“어디니, 어딨어. 얘들아.”

번쩍, 번쩍.

플래시를 비춰가며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살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

공동이 넓은 편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휙휙!

태건은 다시금 바르게 공동을 빠르게 둘러봤다.

온통 바윗덩어리와 쪼개진 돌덩어리들 천지였다.

돌덩어리?

띵!

태건의 눈빛이 일순간 빛났다.

동시에 손가락을 입에 넣어 낮게 휘파람을 불고 다른 손은 크게 휘저었다.

-휘이이익!

휙휙.

구조견들이 매서운 눈매로 태건에게 집중하더니 날렵하게 반응했다.

파바박!

-컹, 컹컹!

태건은 어느새 내달리며 노주민에게 지시했다.

차자작!

“개똘, 큰 바위 뒤쪽이나 벽을 집중적으로, 빨리!”

“이 아래 묻혀 있는 게 아니라 그쪽이라고요? 왜요……. 아! 빛이 안 닿아서 거길 먼저, 오케이!”

달려가며 인지한 노주민도 재빨리 이해하고 속도를 높였다.

사방으로 퍼져 수색 범위를 순식간에 넓혔다.

태건과 노주민은 플래시를 앞세워 더 선명하게 앞을 비추며 각자 수색했다.

휙.

‘아니야.’

휙휙.

‘여기도 없어.’

그렇게 몸집보다 커다란 바위 뒤쪽을 집중적으로 살펴갈 때였다.

-컹아우멍!

-아우우우!

구조견들의 짖는 소리가 이상하게 변했다.

“부단장님, 애들이(?) 애들을 찾은 모양입니다!”

노주민이 눈을 크게 뜨며 반응했다.

바로 그때 태건이 2미터에 다다르는 거대한 바위 뒤를 비췄다.

팟!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 해괴한 비명을 질렀다.

“후흐에에엑!”

“부단장님, 왜요. 벌레라도 보셨……. 으에에으데헤에엑!”

철푸덕!

부리나케 달려온 노주민은 두 배로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한 아이의 엎드린 자세로 상체만 발견됐다.

이게 사실이라면?

덜커덕!

정말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질 일이었다.

아니, 그런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후읍, 후으읍.”

번쩍!

태건이 억지로 진정하고 다시 비춰보고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씨, 놀래라.”

다행히 아이에게 기괴한 변고가 일어난 건 아니었다.

거대한 바위 아래에 틈이 있고, 다른 바위들이 맞물려 있었다.

아이의 하체는 그 틈에 끼어 있는 것일 뿐이지 그 이상의 끔찍한 상황이 발생한 건 결코 아니었다.

그 상태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확실히 최악은 아니었다.

“후우우.”

태건은 숨을 내쉬며 냉정함을 되찾으려 했다.

그런데 옆에선 난리가 났다.

노주민은 고개 돌린 채 눈물까지 찔끔거리고 있었다.

“전, 전 진짜 못 보겠습니다. 저는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부단장님. 이럴 순 없습니다. 크흐흑.”

“…….”

뚱.

태건이 어이없다 못해 한심하게 바라봤다.

어떤 심정인지 이해는 되지만 현장을 외면하다니.

라텔로서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노주민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손찌검 뿐이었다.

태건이 휘두른 손바닥이 노주민의 방화헬멧을 향해 화끈하게 날아갔다.

후웅, 빡!

“까윽.”

“애 상태부터 확인해. 난 저쪽 가 볼 테니까.”

타다닥.

태건은 단숨에 멀어졌다.

혼자가 된 노주민은 뭔가 울컥하고 치솟는지 고래고래 소리쳤다.

“당신이 인간이야, 감정이 없어! 어떻게 이 가슴 찢어지는 모습……. 그렇게까지 가슴 찢어지질 상황은 아니네.”

“넌 상황 종료 되고 보자.”

“……얘야, 숨 쉬지. 혹시 의식은 있니? 네가 무사해야 내가 살 거 같아. 그러니까 무사해 주라. 응?”

노주민은 상체만 드러난 아이와 같은 운명(?)이 됐음을 직감하고 지극정성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노주민에게서 멀어진 태건은 구조견들에게 쏜살같이 달려갔다.

파바박!

“이순아, 삼식아!”

태건이 외치자 구조견들이 위치를 더 확실히 알렸다.

-아우아우어!

-끼이잉낑낑!

계속 짖는데다 울림이 겹쳐 방향이 확실히 잡히지 않았다.

번쩍,

플래시로 비춰 봐도 대번에 보이지 않았다.

‘벽 쪽, 그리고 저기!’

태건은 공동의 벽 중에서도 커다란 바위가 가까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휘휙.

커다란 바위를 돌아서자 구조견들이 보였다.

벽 쪽에는 조금 패인 곳이 있고, 그 안에 세 명의 아이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세 명?

그럼…….

도합 다섯 명이다.

다 찾았다.

‘아!’

태건은 그간 졸였던 마음이 한순간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안심하고 안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제 발견했을 뿐이다.

폐광 밖으로 완전히 구조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때였다.

우렁찬 목소리가 공동을 가득 울렸다.

-우어어어어어!

-꾸에에에에!

뒤따라 귀가 따가운 시끄러운 소리도 들려왔다.

황대산과 성지훈이 내려오는 모양이다.

태건은 귀로만 듣고 시야는 아이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덜덜덜.

두꺼운 패딩차림인데 떨림이 보였다.

“…….”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세 명은 바짝 끌어안은 채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반응이 없었다.

“얘들아. 소방관 아저씨야.”

태건이 일부러 소리 내어 자신이 왔음을 알렸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구조견들은 코끝으로 가볍게 쿡쿡 찌르고, 앞발로 툭툭 건드리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끼잉, 끼잉.

-헥헥, 멍, 헥헥.

툭툭. 턱턱.

점점 그 애교가 심해져갔다.

이제 거리를 나가면 웬만한 셀럽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는 구조견들이다.

모두가 구조견을 알아보고 예뻐한다.

이렇게 무시당하는 순간을 믿을 수 없단 듯이 자신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덜덜덜.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 채 몸을 떨기만 했다.

지켜보던 태건은 뭔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이순아, 삼식아.”

스윽.

나지막이 부르며 구조견들을 밀어냈다.

-끼잉.

이런 개무시는 처음이란 표정으로 풀이 죽어 뒤로 물러났다.

터덕터덕.

나라 잃은 듯한 뒷모습이 불쌍해 보였지만 지금은 위로해줄 때가 아니었다.

태건은 덜덜 떨고 있는 아이들과 거리를 좁혔다.

스윽.

가까이 다가간 태건이 물었다.

“얘들아, 괜찮니?”

“…….”

움찔, 움찔.

“많이 다쳤어? 많이 아파?”

“…….”

움찔.

건네는 질문에 몸이 들썩이는 반응은 있었다.

그게 전부일 뿐, 대답은 일절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너무 웅크리고 있어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이런 모습이라면 어떤 건강 상태 확인도 어려울 거 같았다.

‘……우선은.’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확인, 그리고 안전하지 못한 장소로부터 탈출이 우선이다.

그걸 위해선 조금 강압적인 방법도 불사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태건은 그 점부터 말했다.

“지금 엄청 무섭고, 여기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고, 불안할 거야.”

“…….”

“그런데 나가야지. 집에서 엄마, 아빠가 기다려. 그러니까 아저씨랑 가자.”

턱.

태건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어떤 아이의 팔을 붙들었다.

그때였다.

“아아앙, 아아앙!”

버둥버둥.

떨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발작에 가까울 정도로 격하게 반응하며 몸부림쳤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같이 공격적으로 변했다.

“으하아앙!”

“아아앙!”

마치 야수 같은 반응이었다.

터덕!

태건은 심각해진 얼굴로 일단 뒤로 물러났다.

“패닉이 너무 심한데…….”

그저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으면 폐소공포증이 생긴다.

그러나 그 단계를 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패닉에 빠지게 된다.

그 패닉이 반복되면 공황장애로 발전하게 된다.

지금 이 세 아이들은 패닉 상태였다.

단순히 이 상황을 벗어나게 되어 좋단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

아이들은 다시 똘똘 뭉쳐 웅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태건의 표정은 너무도 무거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