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그때 김지수가 나타났다.
차자작!
“부단장님, 나머지 애들 찾았어요?”
“어. 여기.”
“얘들아, 누나가……. 켁!”
턱!
그대로 다이빙하려는 김지수를 막은 태건이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패닉이 심해. 자극을 주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몰라.”
“저, 정말이요? 어떻게 해…….”
“일단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 물하고 비상식량을 옆에 두고 절대 건드리거나 말 걸지 말고. 알았지.”
스윽.
태건이 자리를 뜨려하자 김지수가 붙들었다.
착.
“아무것도 묻지 마요?”
“스스로 말할 때까지는 절대.”
“구조 준비되면 어떻게 데리고 가요?”
“정 안되면 재워서라도 데려가야지.”
태건은 다소 차갑게 말하고 이어 움직였다.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엔 그런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할 심각한 상황이었다.
태건은 공동을 전체적으로 둘러봤다.
첫 번째 아이는 오광휘 단장과 성지훈이 손을 모아 응급처치 중이었다.
“여기 잡으라고?”
“거기 말고, 그 아래. 조금 더 아래 말입니다. 말 더럽게 못 알아먹네!”
“아씨. 여기라며. 여기!”
“아, 거기 맞네. 그래도 잡고 있어요.”
신경질이 가득 오가는 대화였지만 그래도 응급처치는 순탄하게 진행되는 거 같았다.
그 근처에선 황대산과 노주민이 두 번째 아이를 구조 중이었다.
“끄으으응. 개똘, 아, 아래. 아래, 돌 받쳐! 돌!”
“아직 안 들렸습니다!”
“이, 이 자식, 그럼 너도 좀, 으자자자!”
황대산이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힘을 쓰지만 바위가 너무 컸다.
“힘내라, 힘.”
노주민은 열심히 응원만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손이 더 필요해 보였다.
태건은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가 한 손 거들었다.
터업.
“선배, 둘, 셋. 츠아압!”
“크어업!”
그그극.
바위가 미동하는 느낌과 동시에 노주민의 감탄이 이어졌다.
“와, 빅라텔하고 라면라텔하고 합체하니까 빅라면이네.”
“너 죽을……. 래!”
“받쳤습니다. 받쳤다니까요!”
노주민이 다급히 답하자 태건과 황대산이 천천히 힘을 뺐다.
“후우우.”
“푸우.”
차자작!
“아자자자!”
그 사이 노주민은 한 마디 들을까봐 바위 아래에 양손을 넣어 잽싸게 돌멩이를 걷어냈다.
태건과 황대산은 흘겨보다 자세를 낮춰 같이 돌들을 걷어냈다.
척척, 슥슥.
동시에 상황을 확인한 태건이 짤막하게 말했다.
“다행히 하체가 눌려 있는 건 아니었네요.”
“천만다행이었어. 아래 이거 큰 바위의 모서리가 받쳐주고 있었거든.”
툭툭.
황대산이 아래쪽 바위의 모서리를 건드리며 답했다.
거기에 노주민이 한 마디 끼어들었다.
“그래도 완전히 무사한 건 아니었습니다.”
“왼발이 부러져서 꺾여 있었어. 저기 보이지?”
황대산이 말하자 태건은 우선순위를 바꿨다.
“빼내고 자세히 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 거의 다 걷어내긴 했으니까.”
“이쯤이면 될 거 같은데요. 선배랑 제가 위, 개똘이 아래. 준비……. 자, 천천히. 시작.”
스르릉.
태건과 황대산이 아이의 패딩을 깊숙하게 붙들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아이가 조금씩 딸려 나오자 노주민이 급해졌다.
“잠깐, 스톱, 신발, 신발!”
휙!
신발이 걸렸는지 재빨리 구덩이 속으로 상체를 밀어 넣고 크고 작은 돌멩이들을 걷어냈다.
그 사이 태건은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
이 아이는 의식이 없었다.
입술이 약간 푸른빛을 띠는 걸 보니 체온이 낮은 듯 했다.
얼굴부터 패딩 곳곳에 찢어진 상처들은 여기까지 자의로 내려온 게 아니란 증거로 차고 넘쳤다.
‘흐음.’
그때 노주민이 구덩이 위로 손을 흔들며 외쳤다.
“오케이, 당기세요. 당겨보세요.”
“천천히, 천천히.”
“조금씩. 좋습니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렇게 계속.”
노주민은 반항심이 투철했지만 진지할 때는 또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잠시 후.
두 번째 아이를 거대한 바위에서 구출했다.
그대로 소중하게 안아들어 성지훈에게 인계했다.
“여기 두 번째 아이요.”
“나머지는 아직 발견 못한 겁니까? 여기가 커 봐야 얼마나 크다고.”
“발견했는데 패닉이 심합니다.”
“엇, 이런……. 일단 이 아이부터 응급처치 할게요. 거기 개똘, 나 좀 도와줘요.”
성지훈은 크게 당황하더니 노주민을 불러 같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
태건은 시선을 돌려 저 위를 바라봤다.
-티이잉!
-티잉!
해머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까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커다란 정을 박는 소리였다.
그때 파란 로프가 출렁거렸다.
-크어어어!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황대산이 로프 쪽으로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파바박!
“우리 기장님들 참 등장도 요란하셔!”
“같이 갑니까?”
태건이 달려갈 자세를 잡는 바로 그때였다.
턱.
오광휘 단장이 다가와 태건을 붙들었다.
“넌 거기 아니야.”
“무슨 일이십니까?”
“전체적으로다가 정리할 타이밍이잖아. 에, 어디보자.”
사락.
오광휘 단장은 수첩을 앞으로 넘기며 시작점을 찾았다.
그걸 바라본 태건은 조금 놀랐다.
“그 와중에도 그걸 정리하셨습니까?”
“단장은 고달파, 그런 의미에서 완장 받을 생각 없냐?”
“네. 얼른 브리핑 시작하시죠.”
태건은 단칼에 자르고 얼른 등까지 떠밀었다.
찌릿.
흘겨본 오광휘 단장이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장에…….”
태건은 길게 이어지는 그의 말을 시간대별로 정리해 들었다.
라텔 현장 일지
-00:00
캡, 라면 붕괴현장 투입.
-01:00
깡패라텔들 붕괴현장 투입.
-01:30
깡패라텔 1번 요구조자 발견.
-02:00
개똘, 엉뚱, 붕괴현장 투입.
…….
출동 일지 내용은 초 단위로 기록됐을 만큼 세세했다.
폐광 내부로 들어온 후로 본부와 무전이 되지 않아 더 신경 써서 기록한 모양이다.
‘이러니 단장님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고 하지.’
태건도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다.
오광휘 단장은 건들건들해 보여도 세심한 부분까지 모두를 챙기고 있었다.
진짜 중요한 부분은 그 다음이었다.
바로 요구조자들의 간략한 인적사항과 주요증상들이 적혀 있었다.
-1번 요구조자.
이름 : 김천성. 남.
나이 : 12세.
특이사항 : 어제 먹은 버섯이 맛있어 친구들과 캐러 옴. 부모님이 여기서 캤단 소리 엿들음.
조금 캐고 놀다가 호기심에 구경 중 지반이 무너져 휩쓸림. 시간은 확인불가.
주요증상 : 바위 틈 끼여 있었음.
오른쪽 어깨 탈골, 팔 골절, 늑골골절. 응급처치 완료.
- 2번 요구조자.
이름 : 정유빈. 남.
나이 : 12세.
특이사항 : 상동. 천성이와 함께 운신이 불가한 상태로도 동생들에게 구석에 도망가 있으라고 소리쳐 대피시킴.
주요증상 : 바위 아래 하체가 깔려 있었음…….
-3번 요구조자.
이름 : 이학순. 남.
나이 : 11세.
특이사항 :
주요증상 :
-4번 요구조자.
이름 : 김지성, 남.
나이 : 10세.
-5번 요구조자.
이름 : 정주빈, 남.
나이 : 10세,
그걸 본 태건이 눈을 끔뻑이며 오광휘 단장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여기까지 들어오게 된 히스토리가 자세히 적혀 있던 탓이다.
“이걸 어떻게…….”
“천성이가 정신이 좀 들었었어. 지금은 약 맞고 긴장 풀려서 뻗었지만 말이야.”
“흐음.”
태건은 의문이 풀렸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심정인지 오광휘 단장도 공감하며 쓰게 말했다.
“그래. 애들이 잘못했어. 그런데 애들만 탓할 순 없는 일이란 말이지.”
“폐광에 몰래 다녀가는 분들이 없진 않죠.”
“아무튼 이건 일단 대외비고. 나중에 상황 봐서 말하기로 하고, 남은 건 네가 채우면 돼.”
스윽.
오광휘 단장이 수첩을 내밀었다.
그런데 태건은 선뜻 받아들지 못했다.
“동생들이 지금 엄청난 패닉 상태입니다.”
“……그러냐. 쯧. 그 어린 녀석들이 감당할 공포치고는 너무 가혹한 환경이긴 하지.”
“채우는 건 올라가서 하고, 애들 부모랑 만나서 얘기도 좀 진지하게 하긴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이건 어디 뿌릴 거 아니니까 일단 접자, 접어.”
탁.
오광휘 단장은 깔끔하게 수첩을 접었다.
자신들의 현장 속 상황을 기록하기 위함이지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그 사이 황대산과 기장들이 다가왔다.
얼마나 아찔한 경험이었는지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그런데 정교현과 박서진만 있었고 왕지호는 없었다.
한 걸음 앞서 다가온 정교현이 오광휘 단장에게 단방향 무전기를 건네며 말했다.
“돌아가면 우리도 훈련참여율을 높여야할 거 같습니다.”
“그건 부단장에게 문의하시고, 무전기?”
“위에 마스터라텔이 대기 중입니다.”
정교현이 말하자 오광휘 단장이 바로 알아들었다.
“오호, 그럼 내가 말하기가 편하지. 그럼 어디, 마스터라텔, 라텔캡 송신.”
띠릭.
오랜만에 예전 스타일로 무전했다.
바로 무전기에서 왕지호의 대답이 들려왔다.
-띠릭, 마스터라텔, 수신양호.
-띠릭. 이쪽도 양호, 현 지점 요구조자 전원 발견 및 생존 확인. 사육.
-띠릭. 전원 생존, 사칠.
왕지호의 확인 무전과 동시였다.
-우와아아아!
우와아아…….
그르릉.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려 갱도가 들썩거렸다.
이어서 해머소리가 경쾌하면서도 빠르게 들려왔다.
-까강, 까강.
까강, 깡깡.
뒤따라 왕지호의 무전이 다시 들려왔다.
-띠릭, 구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통보.
-띠릭. 여기서도 들린다고 알림, 소요시간 얼마나 예상되는지?
-띠릭. 전 수색인력 집결 중으로 모두 투입하면 1시간 이내 구조 시작 가능하다고 통보.
-띠릭. 1시간 확인, 그전까지 모든 사전 작업 마쳐놓겠다고 알림, 이상.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를 내리며 어깨를 들썩였다.
“윗동네 난리 났나봐.”
“저쪽도 기쁘겠죠. 수색 시작한 지 거의 8시간만일 텐데요.”
“저쪽도 고생 많았지. 아무튼 마지막까지 웃으려면 우리도 애들 관리 잘하고 옮길 준비도 단단히 해놓읍시다!”
“예압!”
힘차게 외친 라텔 모두는 빠르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