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99)화 (299/320)

299화

태건이 정유빈에게로 다가갔다.

응급처치 중인 성지훈이 바라보며 먼저 말했다.

“듣자하니 좋은 소식만 있던데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긴장 놓으면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인턴십으로 따라왔다지만 눈치란 게 있는데요.”

“네?”

테건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그 순간 성지훈의 눈이 가늘어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라텔, 뭐 할만……. 읍읍. 이 사람이. 왜 갑자기 입을 막아요!”

“현장에서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뭘 함부로 해요. 내려올 때 좀 아찔한 거 말고 뭐. 썩 위험하지도 않던데!”

결국 성지훈이 내뱉자 태건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말이 씨가 된다니까!”

“뭐가 씨가 돼. 여기서 뭐가 위험해지는데, 뭐 여기서 동굴이 더 무너질 거라도 있어!”

“제발 그 입 좀 다물고 손만 좀 놀립시다.”

찌릿.

태건은 강력하게 경고하고 패닉에 빠진 아이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지훈은 기분 상한 얼굴로 보조 중인 노주민에게 기울여 툴툴거렸다.

“부단장 말입니다. 평소에도 성격 안 좋단 소리 많이 듣죠?”

“그게……”

“에이, 딱 봐도 ‘내 말이 법이다.’ 스타일인데 뭐. 저런 성격 피곤해. 어으, 피곤해.”

슥슥.

성지훈은 대놓고 호박씨를 까며 응급처치를 이어갔다.

노주민은 괜히 널찍한 공동을 둘러봤다.

‘설마, 아니겠지.’

그 사이 태건은 아이들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김지수에게 다가갔다.

구조견들은 그 주변에 몸을 말고 잠시 휴식 중이었다.

슥슥.

다가선 태건이 구조견들을 가볍게 쓸어주며 김지수에게 물었다.

“애들은 어때?”

“사실 몰래 슬쩍 말 걸어 봤는데, 아예 반응이 없어요.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요.”

스윽.

김지수는 애들 옆에 놓은 물과 비상식량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어떻게 봐도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몰래 말을 걸었음을 실토한 부분에 대해선 별말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솔직함으로 받아들였다.

김지수의 장점이다. 

엉뚱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흠이지만 절대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부풀리지 않고 사실만을 말한다.

“…….”

태건의 시선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파르르.

여전히 부둥켜안고 바들바들 떨고 있기만 했다.

‘예상보다 훨씬 심각할지도 모르겠어.’

생각하는 사이 김지수가 조심스럽게 속삭여 물어왔다.

“이쯤 되면 좀 진정이 되고, 주변도 인지하고 그러지 않나요?”

“PTSD는 그것도 집단PTSD는 극복하기 정말 어려워.”

“그럼 얘들은 계속 이렇게……. 그럼 안 되잖아요.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거예요?”

“점진적인 치료, 아니면 극단적인 치료. 그 전에 무사히 나가야겠지.”

태건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실 여기서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그리 없었다.

무사히 구조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심리적인 안정을 빨리 되찾아주는 방법이 최상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해머 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아니, 점점 더 크고 바쁘게 들려왔다.

-터더덩!

터더덩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라면 김천성과 정유빈의 응급처치가 완료되었단 부분이었다.

“한데 모입시다!”

“여기 얘들이 모여 있는 데가 지금으로썬 안전합니다!”

“이쪽으로 모이세요, 이쪽으로!”

척척.

들것에 실린 아이들과 라텔들이 하나둘 모였다.

“…….”

“…….”

김천성과 정유빈은 의식이 없었다.

각자 팔다리에 부목을 해 부상부위를 단단히 고정해 놓았다.

그 외에 고인 피를 빼는 등 추가 응급처치를 해서 병원으로 이송할 시간을 벌어놓은 상태였다.

그 부분에 있어선 성지훈의 역할이 확실히 컸다.

태건은 지금도 숨죽여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형들의 도착에 대해 말했다.

“얘들아, 천성이 형하고 유빈이 형 왔어.”

“……형……아?”

힐끔.

미동도 없던 아이들이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형들이 고통스런 와중에도 자신들을 대피시켰던 그 순간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태건은 그 이상 자극을 주진 않았다.

대신 김천성의 들것을 붙들며 노주민에게 눈짓했다.

‘들어.’

‘넵.’

스윽.

둘은 가볍게 들어 아이들 쪽으로 좀 더 가깝게 거리를 좁혔다.

이럴 땐 눈치 빠른 오광휘 단장과 황대산도 얼른 정유빈과 아이들의 거리를 좁혔다.

움푹 팬 공간에 다섯 아이만 빼곡하게 모였다.

스윽.

라텔 대원들은 일부러 밖으로 몸을 돌리고 앉았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 황대산은 자리가 비좁아 아예 밖으로 나와 있었다.

“…….”

잠시 아이들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다.

구조가 된 후엔 당분간 갖지 못할 시간이기에 꼭 필요했다.

침묵이 조금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자그마한, 정말 모깃소리만 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아, 일어나. 집에 가자.”

“나 여기 싫어.”

“엄마한테 혼나. 흑흑. 형, 형.”

아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축축해지고 격해져갔다.

아직 머릿속이 혼란에 빠져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알고 있다.

형들이 아프고, 자신들도 무언가 잘못됐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게 정상적으로 표현이 되지 않을 따름이었다.

지금은 어른의 시선과 논리로 끼어들면 안 된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그건 알았다.

“흐으음.”

쓴 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다들 마음이 무거워질 때였다.

-웅성웅성웅성.

웅성웅성.

위쪽에서 해머소리가 멈추더니 엄청 부산해졌다.

스윽.

다들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뭐야?”

“이거 말소리야?”

“무전기는 국 끓여? 비상식량 다 떨어졌대?”

척.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를 들며 어이없어했다.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무전기에서 목청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띠릭. 천성아! 지성아! 엄마야, 얘들아아아아!

화들짝 놀란 오광휘 단장이 크게 움찔했다.

“어우, 깜짝이야.”

놀란 건 그만이 아니었다.

“허업, 어어어, 엄마!”

“아아악!”

터덕, 덜덜덜!

아이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재빨리 부둥켜안고 덜덜 떨었다.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간 그 모습에 태건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지금 안 그래도 불안한 애들한테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가 울리면 어쩌잔 거야!”

침착하게 어르고 달래도 모자랄 판국이다.

태건의 짜증이 하늘까지 닿은 걸까?

- 우르릉!

갑자기 저 멀리 떨어진 하늘의 우렛소리가 동굴 안에서 울렸다.

그 소리에 태건이 오히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건 또 뭔 소리야?”

“넌 왜 소리쳐서 하늘이 노하게 만드는 거냐, 짜샤!”

“여기서 제가 소리친다고 하늘에 닿겠습니까!”

“안 닿지! 그럼 내가 그랬나?”

오광휘 단장이 따지다 말이 안 되자 자신을 탓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그 우렛소리는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우르릉, 우르르릉!

또 한 번, 게다가 더 크고 강렬하게 울렸다.

그뿐이 아니라 땅도 진동했다.

쿠르르릉!

지진과 같이 흔들리는 느낌에 모두 적잖이 당황했다.

“이게 왜, 갑자기 왜!”

“뭔데, 왜 흔들리는데!”

다들 당혹감을 금치 못한 그때 아이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아아아아악!”

“엄마, 싫어. 안 돼에에에!”

“무서워. 또, 싫어어어어!”

히스테릭 아니, 패닉을 넘어 공황에 빠진 반응이었다.

그 모습에 모두의 눈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지반붕괴.

한 번 겪어 봤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다.

그런데 내내 조용하다가 갑자기 왜?

그 순간 태건의 머릿속에 방금 김천성과 김지성의 어머니 목소리가 확 스쳐지나갔다.

“단장님!”

“여기!”

휙.

무전기를 건네받은 태건은 재빨리 왕지호를 호출했다.

띠릭.

“마스터라텔, 송신!”

곧 왕지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마스터……. 아, 가만히 좀 계세요. 부단장, 말해!

“지금 거기 몇 명이나 몰려 있는 겁니까?”

-띠릭. 수색 전 인원, 그리고 보호자하고 마을 사람들, 기타등등.

그 말에 태건의 눈이 뒤집혀 버렸다.

띠릭.

“야이 미친 인간들아. 현장 통제 안 해. 지반이 약해서 붕괴된 현장인데 그렇게 몰려…….”

태건은 항의를 끝까지 이어갈 수가 없었다.

투둑, 투두둑.

비탈길 어딘가에서부터 자그마한 돌멩이들이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이어질 대재앙의 티끌에 불과했다.

쿠르르릉. 꽈지지직!

말뚝을 박은 지점부터 가뭄처럼 바닥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서진 돌덩이들이 비탈길을 따라 굴러떨어졌다.

수십, 수백. 아니,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고 크기도 제각각인 돌덩이들이 마구잡이로 헤일처럼 밀려왔다.

- 쿠과과과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붕괴된 지반은 벽면에도 영향을 줬다.

쩌적, 쿠궁, 쿵쿵!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한 벽면에서 돌덩이들이 쪼개져 떨어져 나왔다.

그 악재는 천장까지 이어졌다.

쩌저적, 휘휘휙, 꾸지직!

사방에서 크고 작은 돌들이 떨어지고 굴러왔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였다.

라텔이 위치한 이 장소는 공동의 끝자락이다.

비탈길에서 가장 먼 장소라지만 쏟아지는 돌덩이의 비에서 절대 안전할 수가 없는 위치였다.

모든 라텔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특히 성지훈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헛소리를 했어요.”

자신의 입방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늦어도 너무 늦은 후회였다.

그때 태건과 오광휘 단장, 황대산이 모두를 향해 뛰어들며 외쳤다.

“라텔, 다섯!”

이 순간 새로운 강령이 발동됐다.

라텔 다섯.

요구조자의 절대 보호.

일명 프로텍터.

본능보다 아니, 목숨보다 우선시 되는 라텔의 법이다.

그 강령이 발동됨과 동시였다.

노주민과 김지수는 똑같이 손을 뻗어 이순이와 삼식이를 낚아채 움푹 팬 공간으로 던졌다.

“이순아!”

“삼식아아!”

-깨앵!

-깽!

풀썩!

이어서 양팔을 넓게 펼쳐 아이들과 구조견을 같이 끌어안았다.

바로 옆에선 기장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정교현이 김천성의 위에 깔깔이를 잔뜩 쏟고 그 위에 다이빙했다.

“천성아, 일단 살고 보자!”

푸욱!

박서진은 정유빈에게 똑같이 하고 있었다.

“숨 막혀도 참아!”

푸악!

그 모든 게 단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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