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그런데 성지훈은 홀로 멀뚱하니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난, 나는…….”
“숙여, 짜샤!”
“헙!”
휙!
성지훈은 괜히 욕 한마디 먹고 얼른 납작 엎드렸다.
그 뒤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더니 오광휘 단장의 쓴소리가 이어졌다.
“눈치 안 챙겨!”
“난 처음…….”
“시끄러 새꺄. 몽땅 뒤지게 생겼는데 뭐!”
“…….”
성지훈은 죄송하단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터터더덕!
바로 옆에 내리꽂히는 비수 같은 돌덩이 모습에 눈이 찢어져라 떠졌다.
라텔의 일이 할 만하다고 했던 자신의 입을 정말 찢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그들의 위를 태건과 황대산이 마지막으로 아니, 최후의 방어막이 되어 온몸으로 뒤덮었다.
두렵다.
그 마음 그래도 태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선배!”
“왜?”
“안 무서워요.”
“닥쳐.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어.”
황대산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하자 태건은 외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나 말과 달리, 태건과 황대산은 꿋꿋했다.
“선배!”
“으쌰!”
터덕!
최대한 몸을 넓게 펼쳐 모두를 품속에 가뒀다.
그런 그들은 어느 틈에 방화복 상의를 입은 모습이었다.
지금 자신들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렇게 모든 방어막이 형성된 바로 그때였다.
쿠과과과.
쏟아지고 밀려온 돌덩이들에 태건과 황대산이 삼켜져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지반붕괴가 끝났다.
축축한 동굴 안이라 먼지가 심하게 피어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먼지는 있었다.
째앵!
커다란 라이트가 먼지를 뚫고 무너진 경사면 아래쪽을 비췄다.
스스슥.
먼지로 가득한 그 내부가 쉽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안 돼에에에!
-뭐해. 서둘러!
-배연기 어딨어!
-뒤로. 통제 인원 제외하고 폐광 밖으로 빨리!
여러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갱도가 터질 듯 울렸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쿠우우웅!
배연기가 작동하며 먼지가 밖으로 배출됐다.
점점 먼지구름이 옅어지며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 아래까지 빛이 닿아도 사람의 흔적은 쉽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라텔의 일원인 왕지호는 무전기를 땀이 흐르도록 쥔 채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된 거야, 다들!”
띠릭, 띠릭.
계속 무전기로 신호를 주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어 내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붕괴된 직후라 상황이 어떤지 몰라 내려갈 수가 없었다.
섣부르게 내딛는 한 걸음이 다른 단원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어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지나가던 중이었다.
띠릭.
왕지호의 무전기가 먼저 울렸다.
그 소리에 왕지호가 얼른 무전기를 들었다.
“진짜? 그렇지? 맞지?”
기대감 아니, 당연하단 아니, 정말 꼭 그래야 한단 절박함이 표정에 가득 떠올랐다.
그때 무전기 신호와 함께 더없이 스산한 태건의 목소리가 울렸다.
-띠릭. 마스터라텔 송신.
“나야, 부단장, 괜찮아? 무사해? 다들 괜찮은 거야? 정말 괜찮은 거지. 그렇지?”
-띠릭. 현장책임자, 듣고 있습니까? 대답만요.
태건의 질문이 조금 이상했다.
그러나 왕지호는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빨리 둘러보더니 무전기에 대답했다.
“응, 근처에 있어. 듣고 있어.”
-띠릭. 나 단장이다. 무너질 걸 몰랐단 소리를 할 거면 대가리 부숴버린다고 해.
“네, 네, 단장님.”
대답한 왕지호가 슬쩍 돌아보자 현장관리자는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의 무전이 이어서 들려왔다.
-띠릭. 현 상황 보고. 요구조자 5명 전원 무사.
“다행입니다. 단원들도 무사하죠?”
-띠릭. 빅, 박사, 의사, 캡까지. 총 네 명 다운이다.
“네? ……헙!”
4명의 단원이 중상을 입었단 의미다.
아래쪽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인지한 왕지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때 다시 태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저 뚜껑 열렸습니다. 이대로 제가 올라가면 피바람 붑니다.
“저, 저기 부단장은 괜찮아?”
-띠릭. 피바람 불던지, 절 여기에 묻던지, 알아서 결정하세요. 이상.
“부단장, 부단장? 부단장!”
왕지호가 몇 번이나 반복해 불렀지만 끝까지 태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이에 왕지호는 파리한 안색으로 무전기를 내렸다.
그리고 현장책임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살짝 질린 얼굴이었지만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단장님이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네요. 차차 말씀드리면 오해도 풀고 이해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요.”
“네?”
“도망가세요. 우리 부단장 살인자 만들지 말고 빨리 도망가라고요.”
왕지호가 진심으로 부탁했지만 현장책임자는 그래도 와닿지 않은 듯 했다.
“하하. 라텔 분들이 농담이 심하시네요.”
그가 흘려 넘긴 바로 그때였다.
왕지호의 눈빛이 돌변하며 멱살을 움켜쥐었다.
꽈악.
“이 새끼야. 난 성질 없는 줄 아냐? 지금 죽을래?”
“큭, 어, 어어. 큭, 이 사람이…….”
“내가 말할 때 뭐 들었어. 내가 당장 물리라고 했잖아. 이 새끼야!”
“…….”
현장책임자는 순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왕지호는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요구조자들하고 우리 단원들부터 구하고 보자. 그 다음에 너하고 니네 회사, 그리고 관련된 새끼들 다 뒤질 줄 알아.”
휙.
현장책임자를 뿌리친 왕지호는 재빨리 뒤돌아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기이잉, 기이이잉!
소형포클레인이 갱도로 들어왔다.
그걸 운전하는 건 놀랍게도 유중헌이었다.
“이런 미친 새끼들, 누가 나 없이 현장 뛰어들어서 파묻히라고 했어!”
그 좌우에 고수현, 이지성, 송강우, 최성철, 방기찬이 우르르 등장했다.
고수현이 곡괭이를 떡하니 어깨에 두른 채 입을 열었다.
“복귀 첫 출동이 단원들 구하는 거라니, 이래서 에이스는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니까.”
“하여간 단장하고 부단장만 붙여놓으면 사고야, 사고.”
옆에서 송강우가 목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두둑두둑.
“복귀하자마자 삽질이라 좋네!”
“다들 안녕하신지 직접 뵙고 인사하려니까 설레기도 하고 말이야.”
“야야, 시간 없다. 떠들지 말고 요구자들부터 모셔. 선배님들은 나중에 모시면 되잖아.”
한가한 소리는 거기까지였다.
말만 그렇지 다들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다.
기이잉!
유중헌이 거침없는 소형포클레인 운전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조금 전 무너진 지반이란 사실을 알긴 하는 건지 망설임과 조심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꽈직, 꽈지직.
“여기선 이렇게 파주고, 여긴 이렇게 돌려서 긁어주고!”
과감함 속에 섬세함이 담긴 그 운전솜씨는 언제 봐도 예술이었다.
그런 유중헌이 길을 열며 내려가니 접근 속도도 엄청 빨랐다.
한편.
무너진 잔해 속은 신음소리로 가득했다.
“끄으응. 으응.”
플래시가 무사해 다들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떨어진 돌에 찍히고 찢겨 다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다들 무사……. 끄응, 할 리가 있나.”
“단장님, 팔부터 좀 챙기십시오. 덜렁덜렁 합니다.”
태건의 지적에 오광휘 단장이 울컥해 어깨를 비틀다 멈칫했다.
덜렁.
“너, 이씨……. 끄응. 내가 이렇게 모르핀과 첫 만남을 가지게 될 줄이야. 하하.”
“아픈 건 확실히 덜 하시죠?”
“어이고, 우리 의사 슨상님. 그대가 있어 이 순간도 어찌 기쁘지 아니 하겠소이까.”
오광휘 단장의 말투가 너무도 이상했다.
순간 태건이 성지훈에게 물었다.
“모르핀이 신경분열증세도 일으킵니까?”
“의학용은 학회에 보고된 게 없는 거, 쓰읍. 같은데요.”
“어깨 괜찮으십니까?”
“끙. 저도 이제 효과가 퍼져서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물이……. 아, 단장님 머리에 피 나는 거네요.”
성지훈의 말에 태건은 그제야 이해했다.
“아, 머리에서 피나면 이상한 말이 막 나올 수도 있죠.”
“라면아. 내가 지금 못 움직인다고 막말 하냐?”
“크흠. 애들은 정말 모두 괜찮은 거 맞죠?”
태건은 대놓고 말을 돌렸다.
각자 전담 중인 단원들이 알아서 대답했다.
“교수 보고, 1번 요구조자 이상 무.”
“박사 다운으로 엉뚱 보고, 2번 요구조자 이상 무.”
“개똘 보고……. 어?”
노주민이 말하려다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러더니 음침한 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흑흑, 저희 흐앙, 괜찮, 고맙……. 흐앙!”
세 명의 어린 요구자들 중 그래도 형인 이학순의 대답이었다.
뒤따라 다른 동생들도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앙!”
“하아아앙!
다들 아이들의 툭 터진 울음소리에 가느다랗게 미소 지었다.
지금의 울음소리는 특별했다.
패닉에 빠져 감정조차 닫혀 있던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똑같은 극한의 상황을 다시 맞게 됐다. 그런데 이번엔 어른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전하게 지켜줬다.
그 자극이 아이들의 망가진 마음을 추스르는데 좋은 영향을 끼친 거였다.
씁쓸했다.
‘이런 식의 극단적인 치료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모든 라텔이 속으로 같은 심정을 읊조렸다.
물론 이로 인해 부상당한 단원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올라만 가면!’
불안요소를 알고도 방치한 이들에 대한 문책은 절대 가볍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이후 나머지 보고가 이어졌다.
“개똘 보고, 빅라텔 다운, 깡패들 이상 무.”
-컹컹.
-캉, 캉캉.
이순이와 삼식이는 눈치껏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다들 구조견들에 이어 황대산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장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으로 상태 확인은 가능했다.
추우욱.
커다란 덩치가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등엔 널찍한 돌덩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걸 맨몸으로 받아낸 충격으로 저렇게 기절한 거였다.
‘늑골 몇 개는 나갔을 텐데…….’
성지훈은 멀쩡한 팔을 억지로 움직여 간단하게나마 청진해줬다.
“다행히 장기 손상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래도 정밀검사는 받아봐야겠지만요.”
“대산 선배니까 그 정도일 겁니다.”
태건의 말에 노주민이 얼른 덧붙여 말했다.
“그럼요. 저였으면 다 터져서 짜부러졌을 겁니다.”
“그랬어야 했는데.”
“단장님 아쉽단 표정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짓지 마시고요. 저도 부상 당했습니다. 진짜로요.”
노주민은 억울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그건 그의 말이 옳긴 했다.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안색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걸로 봐선 내부에 문제가 있는 걸로 추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