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301)화 (301/320)

301화

그렇게 이 좁은 공간에서도 그 새를 못 참고 아웅다웅 하던 중이었다.

기이잉.

기계 소리가 들려오자 다들 긴장했다.

“뭐야, 이 와중에 여기까지 뭐가 내려왔다고?”

“어떤 정신 나간 유중헌 같은 새끼야!”

“여기까지 기계를 다룰 실력이면 정말 유 선배 정도 실력자여야 할 텐데요.”

갸웃갸웃거릴 때였다.

그그극.

위쪽에 쌓인 돌덩이를 조금씩 치우는 느낌이 들며 무게가 가벼워졌다.

이어서 돌덩이 헤일을 막아준 거대한 바위를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들썩들썩. 꾸지직.

정말 바위가 뒤로 밀려났다.

동시에 높은 곳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던 태건과 황대산이 벌어진 틈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게 엄청난 사건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주르륵.

의식이 있던 태건은 조금씩 자세를 바꿔 무사히 바닥에 안착했다.

“어윽, 으쌰.”

문제는 황대산이었다.

의식이 없어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

주륵. 툭!

그대로 떨어져 내린 그곳엔 하필이면 김지수가 있었다.

아이들을 보호하던 그녀는 별안간 가까워지는 검은 그림자를 바라봤다.

“뭐가……. 어?”

쿠웅!

황대산이 그대로 김지수 위에 떨어졌다.

그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사고였다.

문제는 떨어진 위치였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을 비롯한 모두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저저저, 저저저!”

“허업, 저저저, 저건!”

“이이이, 입술 박치기!”

다들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려왔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김지수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마치 석고상처럼 꼿꼿하게 굳어진 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이내 벌어진 바위틈으로 유중헌을 비롯한 단원들이 등장했다.

놀래어주려 나타난 그들이 처음 본 모습은 황대산과 김지수의 입술박치기였다.

“다다다, 다들 괘괘괘, 괜찮으십……. 허거덕!”

“할로. 아아뉘! 저게……. 아니, 어두운 동굴이니까……. 그래도 되긴 하는데, 아무튼 뭐하는 짓이야!”

“가족끼리 왜 저래?”

뒤따라 나타난 송강우와 최성철, 방기찬은 그대로 뒤집어졌다.

“야, 김지수, 너 죽어도 황 선배랑은 아니라며!”

“너 얼굴은 왜 빨개지냐?”

“아니, 둘이, 언제……. 왜? 도대체 왜?”

그렇게 다들 어버버할 때였다.

황당하게 지켜보던 오광휘 단장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빽 소리쳤다.

“이 자식들아. 나타났으면 일단 사람부터 좀 구해라. 아파 죽겠어!”

“아차차. 요구조자부터 모셔!”

고수현이 장내를 정리하려하자 이지성이 물었다.

“여기 못 움직이는 폐기물들은 어쩝니까?”

“옆으로 던져놔.”

“아하. 그럽시다.”

그 대화에 오광휘 단장의 얼굴이 대번에 화로 달아올랐다.

“폐, 폐기물? 내 오늘 이 수모를 잊지 않을 테다!”

“팔도 덜렁덜렁하고 다 썼네, 이번 기회에 단장 바꾸자고 할까?”

“야아. 그러지 마아.”

웅성웅성.

오랜만에 라텔 전원이 한 자리에 모이자 벌써부터 떠들썩했다.

신기한 건 그런 와중에도 요구조자들 구조는 아주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단 사실이다.

누가 부상인지, 몇 명이 열외인지는 관계없었다.

함께 한단 그 자체가 중요했다.

이 불안정한 공간이 안전하게 느껴지는 마법.

그건 모두가 함께 하는 지금에야 발현되는 신기한 현상이었다.

태건은 찌뿌듯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또 시끌벅적해지겠네.”

읊조리는 태건은 어느새 미소 짓고 있었다.

한편.

폐광 앞 커다란 공터는 온갖 조명기구로 대낮처럼 밝혀져 있었다.

공터엔 펌프차, 사다리차, 구급차, 경찰차 등등 각종 차량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폐광 입구를 경찰관들이 인간 바리케이드가 되어 철통 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구조자들의 보호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폐광으로 진입하기 위해 온몸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들어가야 한다니까요!”

“위험합니다. 붕괴위험이 남아 있습니다!”

“으아아. 가야 돼!”

“진정하세요. 지금 구조 중입니다!”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더 그 모습이 처절했다.

그 치열한 대치상황이 계속 되던 중이었다.

번쩍!

폐광 안에서 밝은 빛이 번쩍였다.

더불어 육중한 기계소리와 다급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그그그, 차자작.

바로 그때, 플래시를 앞세운 왕지호가 폐광 속에서 헐레벌떡 뛰어나오며 사납게 소리쳤다.

“비켜, 다 꺼져, 꺼지라고!”

그 과격한 외침을 경찰관들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번뜩!

“옆으로 모셔!”

“실례하겠습니다!”

터더덕, 우르르.

방어에만 치중하던 그들이 태세를 전환해 보호자들과 마을사람들을 옆으로 밀쳐냈다.

“어어어!”

그렇게 폐광 입구가 열림과 동시였다.

차자자작!

소방관들이 들것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뛰어나왔다.

“저쪽부터 실어. 빨리!”

“천성이 보호자분, 이쪽으로!”

“천성아!”

허둥지둥.

요구조자가 한 명씩 세상으로 나오고 보호자들이 그 뒤를 부리나케 뒤따랐다.

- 삐용, 삐용.

부아아앙!

요구조자들을 태운 구급차는 쏜살 같이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내달렸다.

그러는 사이 미니포클레인과 라텔도 한 명씩 모습을 보였다.

들것에 실려 나온 오광휘 단장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늘게 미소 지었다.

“후후. 저게 하늘이란 건가. 아직 저렇게…….”

“개폼은.”

“그래. 개폼……. 야, 까칠. 주글래?”

오광휘 단장이 으르렁거리자 이지성이 소방관들에게 손짓했다.

휙휙.

“얼른 좀 실어 보내주세요. 시끄러워서 원.”

“야, 너, 우와, 저걸, 확, 아아아악! 아파, 쓰읍. 아아.”

오광휘 단장은 울컥해 몸을 비틀다 상처가 도졌는지 괴로워하며 떠나갔다.

이지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이를 도대체 어디로 먹어.”

“저도 미스터리입니다.”

절뚝, 절뚝.

태건이 다리를 절며 나타났다.

얼굴 곳곳이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했다.

기동복 또한 속살이 훤히 보일 정도로 넝마가 되어 있었다.  

제대로 응급처치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중상인 라텔 단원들에 비해 나은 정도였지 결코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런 태건을 향해 이지성이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실려서 올라와서 그대로 병원 가나 했더니 왜 내렸어?”

“해결할 게 하나 있어서요.”

스윽.

태건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 끝엔 조금 외진 곳에서 누군가와 바쁘게 통화 중인 현장책임자가 보였다.

같이 본 순간 이지성도 바로 알아챘다.

“저 새끼야?”

“덕분에 저승사자 도포자락 구경까지 했는데 보답은 해야죠. 으득.”

태건은 이까지 갈았다.

뚜껑 열렸단 소리는 괜한 경고가 아니었다.

지금도 들썩거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였다.

“실례합니다.”

스윽.

양해를 구한 소방관들이 태건과 이지성 사이를 지나갔다.

그들이 든 들것에 황대산이 기절한 채 실려 있었다.

“…….”

쓔육, 쓔육.

엠부백으로 호흡을 보조하기까지 했다.

부상 아니, 최소 중상이다.

라텔의 든든한 기둥이 저렇게 무너져 실려 가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앞서 출발한 오광휘 단장도, 뒤따라 다른 구급차에 실리는 단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고수현이 눈에 불을 켜고 부상당한 단원들을 챙기고 있었다.

“교수하고 박사는 이송 확인했고, 캡, 빅은 저쪽에서 가고 있고…….”

“운전, 마스터, 둘이 헬기 잡아요!”

“바보, 멍청. 너네 둘이 잔류인원 챙겨. 깡패들도 다쳤으니까 너희가 직접 데려가!”

휙휙.

고수현은 중심을 확실히 잡고 사방을 둘러보며 진두지휘했다.

말로만 에이스가 아니었다.

그 덕분에 라텔의 철수가 혼선을 빚지 않고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어느새 적재적소에 나타나 모두에게 좋은 영향력을 선사하는 감초 같은 단원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 고수현의 성장은 모두가 반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쁨보다 무거움이 더욱 어깨를 짓눌렀다.

출동한 모두 적잖은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게 누군가의 안일한 대처로 발생한 거였다.

꾸드득.

현장책임자를 노려보던 태건의 주먹이 으스러지게 쥐어졌다.

‘이대로는 못 가.’

이렇게 분노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핑!

살기 가득한 눈빛을 뿌리며 그쪽으로 향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턱.

이지성이 태건을 붙들었다.

“넌 그쪽 아냐.”

“놓으십시오.”

“네가 직접 뿌리치면 되잖아.”

이지성이 얄밉게 이죽거렸다.

그 말에 태건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얄미웠지만 지금 태건의 몸 상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찌릿.

“선배.”

태건이 이지성을 매섭게 노려봤다.

이지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변 소방관들에게 손짓했다.

“여기 스트레쳐카 좀 부탁합시다.”

드륵.

“찾으셨습니까.”

“이거 짐이 좀 무거워서요.”

툭.

이지성은 태건의 어깨를 가볍게 스트레쳐카로 떠밀었다.

태건은 버티려 했다.

그러나 그조차 온몸이 삐걱거리고 욱신거려 그럴 수가 없었다.

“으으윽, 크윽!”

털썩.

태건은 반항했지만 결국 스트레쳐카에 걸터앉았다.

이지성이 태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 밀어 눕히며 얄밉게 말했다.

“어이, 짐짝. 잘 실려 가.”

“어으씨.”

“생물이라 펄떡거리는 게 싱싱하네……. 이거 병원까지 퀵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후후.”

휙.

끝까지 얄밉게 이죽거린 이지성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태건은 머리끝까지 화딱지가 치솟았다.

“진짜 선배만 아니면, 아윽!”

“저저, 저기. 부단장님.”

“왜요!”

“상처가 터져서 피가……. 좀 진정을…….”

소방대원들은 어쩌지도 못하고 절절매며 걱정했다.

“뭐가 어쨌다고 난립니까! 대체 뭐, 어라라.”

슥.

대충 욱신거리는 데를 쓸어본 태건이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손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온 탓이다.

“…….”

그제야 성지훈이 놓아준 진통제 덕분에 아픔을 덜 느끼고 있음을 자각한 거였다. 

태건은 조용히 스트레쳐카에 누웠다.

그릉그릉.

스트레쳐카가 움직이는 사이 태건의 두 눈은 이지성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 밉상, 언젠가는 내가 정말…….’

제대로 한 방 먹일 걸 다짐하고 다짐하며 구급차에 올랐다.

텅. 부웅.

이내 구급차가 출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두 명의 구조대원들이 바이탈을 재는 등 기본적인 처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맥박, 혈압…….”

“탑승자 강태건, 라텔 부단장…….”

몇 가지 절차에 따라 처치가 진행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