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누워서 가만히 듣고 있던 태건의 눈에 정맥 주사가 보였다.
식염수에 주삿바늘까지 다 연결해 놓은 모습이었다.
‘다들 바쁘신데, 내가 놀면 쓰나.’
소방관으로서 한 손 거들고픈 순수한 마음이 샘솟았다.
태건은 바로 손을 뻗어 정맥 주사의 바늘을 붙들었다.
척.
“어?”
“지금 뭐하시는…….”
구급대원들이 돌발행동에 놀란 그때였다.
쑤욱.
태건은 자신의 혈관을 찾아 바늘을 능숙하게 밀어 넣고 미소 지었다.
“됐습니다. 이제 테이프로 고정하고 셀라인 여셔도 됩니다.”
“……네에.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도착할 때까지 잠깐 쉬어도 되죠?”
“펴, 편하신대로요.”
“다들 좀 쉬세요.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스르륵.
태건은 양해를 구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
구급대원들은 그런 태건은 황당하게 바라봤다.
잠시 후.
북적북적하던 현장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런 현장 속 어느 외진 장소.
현장책임자가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있었다.
“네네, 거의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네, 적당히, 네네……. 그럼.”
스윽.
휴대폰을 내린 현장책임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우리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유유자적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뒤에 라텔 단원들이 주르륵 둘러서 있었다.
꿈에 볼까 무서울 정도로 싸늘한 표정들이었다.
비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축을 받고 선 노주민이 강하게 으르렁거렸다.
“잘못이 없어? 쿨럭!”
울컥, 주르륵.
끓어오르는 화에 영향을 받았는지 피를 한 움큼 쏟아냈다.
“야, 개똘!”
터덕!
재빨리 선배들이 노주민을 부축해 뒤로 물렸다.
그 빈 자리를 왕지호가 매우며 소리쳤다.
“이 상태를 보고도 그딴 말이 나와!”
“허어억!”
미끄덩, 우당탕!
현장책임자는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하필이면 비탈길이라 그대로 아래로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그 모습에 다들 김이 팍 샌 얼굴로 변했다.
“칫, 혼자 쌩쇼하고 자빠졌네.”
“저걸, 그냥 어후!”
“저거 진짜 쇼하는 겁니다. 저걸 확!”
송강우와 최성철이 달려들려 했다.
그들을 방기찬이 재빨리 붙들어 막았다.
“됐어. 충분해.”
“기찬이형, 놔요. 곤죽을 내자고 달려와 놓고 이건 아니지!”
혈기왕성한 송강우가 몸을 비틀며 반발했다.
그런 그의 앞에 이지성이 다가섰다.
“우리가 왜 몰려왔다고?”
“……사과 받으러요. 그런데!”
“주민이 상태 못 봤어? 일단 주민이부터 옮겨야 돼. 지금 저거 치는 거 보다 주민이하고 지수부터 챙겨야 된다고!”
“…….”
스윽.
송강우도 결과를 아는지 고개를 돌렸다.
“흐으으. 흐으으.”
유중헌은 화가 나는데 소심함이 막아서고 있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대신 고수현을 툭 건드렸다.
그렇게 나선 고수현이 모두를 돌아 세웠다.
“갑시다. 요구조자들 다 구했고, 이제 우린 단원들만 챙기면 됩니다.”
“흐음.”
“그럼 된 거예요. 자자……. 좋게 말할 때 돌아섭니다. 어서.”
피잉!
고수현의 눈매와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그도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단 의미였다.
“…….”
스윽.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돌아섰다.
터덜터덜.
헬기로 향하는 발걸음에 허탈함이 가득했다.
열화와 같은 성원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꽃가루 뿌려가며 팡파르 울려주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현장에서 순간적인 판단미스로 실수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이 끝난 후, 그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면 된다.
그럼 화가 나도 어쩔 수 없단 핑계로 넘어갈 수 있다.
정말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저렇게 뒤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저 태도만큼은 너무도 허탈하게 했다.
잠시 후.
라텔 1호, 2호기가 떠올랐다.
투다다다.
커다란 로터음을 흩뿌리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밤새 라텔 헬기들은 서울시와 인제군을 여러 번 왕복했다.
* * *
다음날 아침.
터미널정형외과병원.
서울남부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정형외과 전문병원이다.
최근 타이어 전문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업무협약의 중점은 라텔의 전담 수술 및 회복 관리였다.
그리고 어젯밤 그 첫 업무가 시작되었다.
7층 일부에 따로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빨간색 글씨가 선명히 새겨져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었다.
그 내부는 놀랍게도 라텔의 전용 입원구역이었다.
전부 1인실이었고, 병원장과 중요 전문의들이 각 병실을 돌며 회진 중이었다.
-부단장 강태건.
드륵.
병실 문을 열자 태건이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 있었다.
이내 머리가 허연 의사가 다가섰다.
가운에 새겨진 ‘병원장’이란 직위를 본 태건이 배에 힘을 줘 일어나려 했다.
“끄응. 병원장님께서…….”
병원장은 사람 좋은 미소로 얼른 태건을 진정시켰다.
“일어나실 거 없습니다. 어이고, 어제 큰일 치르셨다고, 밤에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요.”
“저희 때문에 병원에, 끙, 실례가 많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늘 준비되어 있으니까 그런 걱정은 마십시오. 그나저나 이렇게, 이거 이거. 쯧쯧.”
병원장이 태건의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때 담당 전문의가 얼른 나서서 태건의 상태를 브리핑했다.
“부단장님은 contusion과…….”
“어허. 김 박사, 쉽게 설명해 드려야 다 같이 알아들을 거 아닌가.”
“크흠. 네. 타박상과 찢어진 상처들이 상당하고, 갈비뼈와 오른쪽 상박과 허벅지에 금이 가는 충격을 입은 상태입니다.”
담당 전문의가 정정해 말했다.
병원장은 다른 전문의들을 돌아보며 조언했다.
“다른 단원들을 회진 할 때도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 외에 특별한 건 없습니까?”
병원장이 재차 묻자 담당 전문의가 태블릿PC를 손짓하며 말했다.
“타 병원 협진의뢰 결과 신장과 간에 충격을 좀 받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당분간 안정이 필요하단 소견입니다.”
“그렇군요. 부단장님, 혹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병원장은 천사가 따로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친절하게 물어왔다.
‘썩 친절한 분은 아닌 거 같은데.’
솔직한 병원장의 인상이었다.
그래도 자신들에게 좋게 대해주는 걸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태건은 그보다 꼭 묻고 싶은 게 있어 물었다.
“단장님과 다른 단원들은 어떻습니까? 특히 황대산 단원이요.”
“그분들은…….”
스윽.
병원장이 운을 떼며 눈짓했다.
그러자 각각 담당 전문의들이 나서서 상태를 브리핑했다.
“단장님은 오른팔보다 견갑골 골절이 더 문제였습니다.”
“날개뼈요?”
“네. 그게 혈관을 좀 잘못 건드려서…….”
말끝을 흐리자 태건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왜요. 무슨 일입니까!”
“수술은 잘 됐습니다. 그런데 내출혈이 심해서 의식이 돌아오려면 오늘 저녁이나 되어야 할 겁니다.”
“문제없는 겁니까? 문제없어야 됩니다.”
태건이 당장 병상을 박차고 일어날 기세로 말했다.
그러자 담당 전문의가 얼른 두 손으로 진정시키며 답했다.
“바이탈이 안정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경과가 매우 좋은 상황이니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
“이런 말씀 경박하지만 저희도 병원의 사활이 걸린 일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담당 전문의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그들에게 라텔은 사실 양날의 검이다.
잘 치료하면 엄청난 홍보효과를 불어올 일이고, 잘못 치료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터였다.
태건도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한 박자 서로 숨을 돌리고야 다음 단원들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졌다.
“황대산 단원은 천만다행으로 척추는 무사합니다만 갈비뼈 다중 골절이…….”
“정교현 단원은 방화헬멧이 완충장치가 되어 충격을 받는 걸로 그쳐…….”
모든 단원들에 대한 부상정도와 어떤 수술을 진행했는지를 꼼꼼하게 알려줬다.
눈으로 상처가 보였던 단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단원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노주민과 김지수였다.
“노주민 단원은 장기 손상이 조금 심합니다. 타 병원 집중치료실에서 치료 받는 중입니다.”
“그 녀석……. 괜찮습니까?”
“생명에 큰 지장을 줄 상황은 아니랍니다. 곧 깨어날 거랍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렇군요.”
태건은 씁쓸하게 답했다.
까불까불해도 장난꾸러기 동생 같은 단원이다.
아프다니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보다 김지수는 조금 의외였다.
“김지수 단원은 긁히고 찢어진 상처보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단 소견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저, 정신적이요?”
“식사를 거부하고,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만 계속 내쉬는 게 아무래도 PTSD를 의심해 봐야할 거 같습니다.”
담당 전문의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했다.
반면 태건은 머릿속에 감이 오는 장면이 팍 떠올랐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며칠만 시간을 좀 주시면 어떨까요. 멘탈이 강한 친구라 곧 회복할 겁니다.”
“부단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번 주까지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단원은…….”
다른 단원들 소식으로 다시 이어져갔다.
태건은 때로는 미간을 좁혀 걱정하고, 때론 한숨을 쉬며 안도 했다.
확실한 건 모두 생명에 지장이 없단 부분이었다.
‘적게는 2주일, 많게는 석 달까지.’
회복기간이 제각각인 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게 회진이 끝나고 태건은 혼자가 됐다.
“끄으응.”
움직여 보려 용을 써 봤다.
그러나 머리에 압력만 높아질 뿐 붕대로 꽁꽁 쌓인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태건은 몸에 힘을 뺐다.
털썩.
“미라가 괜히 저주를 퍼부은 게 아니었어.”
이런 답답함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 같았다.
그만큼 심심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라 휴대폰도 볼 수 없어 환장할 거 같았다.
그러던 중이었다.
그릉.
병실 문이 열렸다.
‘주사 맞을 시간인가?’
태건은 생애 이렇게 주사 맞는 시간이 기다려진 건 처음이었다.
“들어오세요!”
있는 힘껏 활기차게 외쳤다.
그 활기 넘치던 얼굴은 들어선 상대를 본 순간 경악으로 물들었다.
또각, 또각.
“그래. 들어왔다.”
“어, 어머니!”
“반갑지 않은 모양이구나.”
한기가 풀풀 풍기는 목소리에 태건은 시선을 둘 데가 없었다.
“아니요. 설마요. 어머니야 언제나 두 팔 활짝 버버, 벌려 환영이지요.”
“얼마나 환영하는지 지금도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있구나.”
“그으으럼요. 하, 하.”
두 팔을 접을 수 없는 상황이라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병실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뭘 어려워해요. 그냥 들어와요.”
“누가……. 헙!”
태건은 갸웃거리다 이내 헛숨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