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308)화 (308/320)

308화

그때 성지훈이 다급히 불렀다.

“잠시만요. 뭡니까, 뭔데요. 이 분위기 뭐냐고요.”

“네?”

“왜 END 분위기입니까. AND여야지. 누구 마음대로 끝내냐고요!”

성지훈의 울컥한 따짐에 태건이 갸웃거렸다.

“저희를 원망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그, 그게 아니라!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그럼요. 그러니까 내 말은. 라텔이 참 위험천만하고 목숨도 걸어야 하지만 역시 내가 꼭 들어가야 할 곳이다, 라는 겁니다!”

뭔가 억지로 말을 끼워 맞추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태건은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그걸 논하기 전에 어깨에 철심부터 빼야 되지 않을까요?”

“이거, 뭐, 내일 뺄까요? 내일 빼면 받아주나?”

“아니, 또 그렇게 밀어붙이지 마시고…….”

“부단장이야 말로 뭘 또 빼고 그래요. 내 실력 몰라? 아님 내가 뒤로 빼길 했어?”

성지훈은 정말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언제부터인가 태건이 방어하기 급급할 정도였다.

“어깨부터 좀 치료하고 나서 말씀하시자니까.”

“나 정도면 그냥 특채로 받아줘도 되잖아.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럽니까!”

“아, 거 참. 말 더럽게 못 알아먹네. 치료나 하라고!”

“알아서 한다고. 나 외상외과 전문의야, 합격했어!”

성지훈이 바락바락 소리치자 듣다 못한 태건도 마주 소리쳤다.

“어쩌라고. 난 라텔 부단장이야. 내가 노하면, 당신 절대 라텔 못 들어와!”

“뭐야. 유세 떠는 거야? 내가 당신 응급처치 해주나 봐!”

“누가 당신한테 응급처치 받는데? 아니, 그 전에 라텔에 합격 시켜 준데!”

존댓말이 점점 반말로 변하더니 급기야 막말로 번져갔다.

“뭐어? 어디서 갑질이야. 야, 너 이리 와. 너 당장 일로 튀어와!”

“니가 와. 어디서 오라가라야!”

와글와글.

두 사람의 설전이 쉬지 않고 오갔다.

그런 걸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잘 맞는 부분이 있는 거 같기도 했다.

잠시 후.

휴대폰을 내린 태건은 이마에 손을 짚고 있었다.

“성지훈, 이 인간 진짜 대책 없네.”

절레절레.

이 정도로 막무가내는 태건도 처음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쉬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다.

태건은 식탁에 앉아 있었고 부엌에는 정연미가 앞치마를 두른 채 조리 중이었다.

치이익.

식탁 위에는 정연미의 어머니가 보내온 밑반찬이 가득했다.

태건은 하나씩 집어 먹으며 감탄했다.

“음, 어머님 솜씨는 여전히 끝내주네.”

“다 됐다. 잠깐만.”

도도도.

정연미가 잰 걸음으로 다가와 쟁반을 내려놓았다.

거기엔 양념갈비와 고추장찌개가 각각 놓여 있었다.

“식탁 다리 무사하지? 윽.”

태건은 장난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다 고통을 자처했다.

정연미는 그런 태건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조심 좀 해.”

“으으. 알았어. 어머님들의 합작 식사부터 하자. 잘 먹겠습니다.”

첩첩.

태건은 인사와 동시에 젓가락을 놀렸다.

요즘 병원 식사가 아무리 잘 나온다고 해도 절대 어머니들의 손맛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음, 음음!”

태건의 입에서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먹을 게 산더미인데 많이 먹지를 못했다.

늑골골절은 너무 많이 먹어도 통증이 생기는 슬픈 병이었다.

어느 정도 식사를 한 태건은 가슴에서 뻐근함이 느껴지자 수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달그락.

“으으. 이게 고문이네, 고문이야.”

“더 못 먹어서 어떻게 해.”

“난 우리 연미가 먹는 거만 봐도 배불러.”

태건이 애써 웃으며 말했지만 정연미는 시큰둥했다.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 누가 믿어.”

“슬프긴 해.”

“나만 먹긴 좀 그런데…….”

“얼른 먹어. 내 몫까지. 어서 양념갈비 하나 더 먹어.”

턱.

태건은 아예 턱을 받친 채 대리만족을 하기에 이르렀다.

늦은 밤.

정연미가 반찬통을 챙겨들고 현관을 나섰다.

그러다 배웅하는 태건을 향해 물었다.

“내가 옆에서 간호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아니야. 너 피곤해. 내일 일찍 출근 해야 되잖아.”

“그래도…….”

“괜찮아. 내가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하지.”

태건이 미안해하자 정연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말고 몸조리나 잘 해.”

“그래. 그럼 조심해서 가.”

“응. 도착하면 전화할게.”

흔들흔들.

정연미는 손을 흔들며 옥상을 떠나갔다.

태건은 정연미가 완전히 떠나간 걸 확인한 후에야 현관문을 닫았다.

탁.

문을 닫은 태건이 비통한 침음성을 내뱉었다.

“크으으. 완전히 중환자네.”

늑골골절이 최악의 증상이란 게 조그마한 충격에도 고통이 수반되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당분간 병가로 출근도 하지 않는다.

혈기왕성한 태건에게 그보다 더 괴로운 일이 없었다.

*  *  *

시간은 늘 인간의 느낌과 다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빠르게 흘렀다. 

그 사이 태건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척, 척.

두 다리로 반듯하게 걸을 정도로 회복됐다.

“목발 안녕……. 윽.”

늑골골절은 아직 상당한 고통을 선사했다. 

그나마 행동이 많이 자연스러워졌지만 아직 격한 움직임은 무리였다.

이 정도만으로도 태건에겐 엄청난 회복이었다. 

순간 태건의 눈빛이 번뜩거렸다. 

얼마 전 뉴스에 나온 내용 때문이었다.

도무지 궁금증을 이기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출근해 볼까나.”

척, 척.

두 다리로 걷는 기쁨을 만끽했다.

특수소방단으로 향하는 길.

태건은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겨울이 언제 끝나나 했는데, 어느새 봄이 오고 있네.”

앙상한 가지에 작은 새싹들이 움트는 게 보였다.

칩거한 기간은 기껏 보름 정도였다. 

그 사이에도 이렇게 계절 변화가 조금씩 느껴질 정도였다.

태건은 곧장 행정실에 들어갔다.

웅성웅성.

행정대원들이 각자의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

태건은 조용히 이덕찬 반장에게로 향했다.

현장조사반은 행정실의 한 쪽에 꽤나 넓게 위치해 있었다.

이들의 조사 결과로 많은 희비가 갈리는 중요한 부서였다.

저벅저벅.

태건이 다가가도 10명에 가까운 조사반원들은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너무 바빠 시선이 마주쳐도 아는 척조차 못하고 있었다.

“풍암 건 법무법인 쪽에 넘길 자료…….”

“어제 출동한 화재 사고…….”

“그저께 현장답사 다녀온 거 어디…….”

도대체 동시에 몇 개의 일을 진행하는지 모를 상황이었다.

태건은 이덕찬 반장에게 다가갔다.

그도 결재서류에 푹 파묻혀 정신이 없었다.

똑똑.

태건이 가볍게 책상에 노크를 했다.

중얼중얼.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는지 반응이 없었다.

태건은 아예 소리를 내서 불렀다.

“반장님.”

“네. 뭐? 어? 부단장.”

퍼뜩 고개를 든 이덕찬 반장은 그제야 태건을 알아봤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그에게 태건은 사뭇 놀랍단 표정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시냐고 여쭙기가 겁나네요.”

“우리도 안녕하다고 말하기가 겁나.”

“이 정도는 아니지 않으셨습니까?”

“내 말이, 잠깐만 지금 시간이……. 아고고. 1조, 3조, 4조, 시간 됐나. 얼른 나가 봐라.”

이덕찬 반장이 시간을 확인하고 외쳤다.

그 소리에 다들 놀라 시계를 보더니 해당 반원들이 헐레벌떡 일어났다.

“아차차, 갑니다. 어라, 부단장. 하이, 바이!”

“나도 하이, 나중에 또!”

“몸은? 좋아? 난 별로!”

“또 봅시다!”

후다닥!

만남과 헤어짐의 인사를 연달아 내뱉으며 정신없이 떠나갔다.

태건은 그런 독특한 인사보다 더욱 의아한 부분에 귀를 쫑긋거리며 물었다.

“원래 반분해서 2조로 운영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아.”

텅.

이덕찬 반장은 한숨과 함께 결재서류 더미에 손을 올렸다.

정말 상당히 쌓여 있었다.

현장조사반은 앞서 설명했듯 라텔이 출동한 모든 현장을 조사하는 특별반이었다.

그 결재서류들은 다시 말해 라텔의 출동 건수란 의미였다.

월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 결재서류양이었다.

“정말 이게 다요?” 

“더 있어.”

이덕찬 반장 얼굴이 체념으로 물들었다. 

태건은 아무래도 결재서류들에 시선이 계속 향해 있었다.

“좀 봐도 됩니까?”

“부단장이 본다는데 누가 말려.”

사락, 사락. 

태건은 결재서류 중 하나를 들어 펼쳤다.

처억. 

다음 결재서류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태건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역시 이상해.’

물론 전국적으로 보면 하루에도 수십 건씩 화재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라텔이 출동한다는 건 엄청난 대형 화재, 혹은 같은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일 터였다. 

그게 이상했다.

태건은 아예 의자를 끌어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륵.

결재서류들도 몽땅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최대한 흩트리지 않고 가장 빠른 날짜부터 찾아 수첩에 기입했다.

“이 날, 이 날…….”

슥슥.

그 다음에는 날짜 옆에 지역을 기입했다.

그렇게 하나씩 정리해서 나름대로의 데이터를 만들어 갔다.

그런 태건이 뭘 하려는 지 눈치 챈 모양이었다.

이덕찬 반장이 불쑥 노란 서류철을 내밀었다.

“이게 필요해 보이네?”

“감사합니다.”

슥.

받아든 태건이 펼쳐봤다.

그 속엔 지금까지 화재 사건들이 각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전국 지도에 장소가 표시되어 있고 색깔 별로 선을 그어 연결시켜 놓았다.

태건이 하려고 했던 모든 게 그대로 정리된 모습이었다.

“흐음.”

태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때 이덕찬 반장이 이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우리도 이상해서 연결점을 좀 찾아보려 조사 중이었거든.”

“연쇄방화라고 추측하시는 겁니까?”

“그게 너무 모호해. 지역이 너무 포괄적이고, 범행 대상도 불특정하단 말이야.”

파일철에 같은 소견이 적혀 있었다.

태건은 우선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럼 연쇄 방화는 아니란 말씀이신 거네요.”

“그렇다고 하기에는 또 너무 갑자기 화재 사고가 급증했단 말이지.”

“그럼?”

태건이 묻자 이덕찬 반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서 우리끼리지만 이런 생각을 해 봤어.”

“어떤 생각이요?”

“사이코패스.”

“…….”

태건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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