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311)화 (311/320)

311화

이덕찬 반장의 차가 도로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부우웅.

조수석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던 태건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문득 도로 표지판을 본 태건은 이상함을 느꼈다.

“반장님, 잘못 들어왔습니다. 고속도로입니다.”

“제대로 탔네.”

“네?”

휙.

태건이 바라보자 이덕찬 반장이 운전하며 말했다.

“복귀하는 거야.”

“복귀라니요. 지금…….”

“부단장 안색부터 확인하고 말해.”

이덕찬 반장이 말을 딱 잘랐다.

태건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아직 제 몸이 정상이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사람 진짜.”

휙. 덜컥.

이덕찬 반장이 손을 뻗어 조수석 햇빛가리개를 거칠게 내렸다.

거기 부착된 거울이 태건의 얼굴을 그대로 반사해 보여줬다.

방금 배부르게 간식을 먹은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멈칫한 태건이었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뭐, 잘 생겼네요.”

대답은 그래놓고 손으로 뺨을 쓸었다.

육안으로 봐도 확실히 좋지 않은 티가 팍팍 났다.

그런 태건의 반응에 이덕찬 반장이 쓰게 한 소리 했다.

“부단장은 복귀하면 적당한 선까지만 개입해.”

“무슨 소리십니까. 반장님!”

“회복이 우선이야.”

이덕찬 반장은 단호했다.

그 말에 태건은 혈기가 솟구쳐 울컥했다.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필요한 자료는 전부 보내줄게. 구해달라면 밤을 새서라도 구해줄게.”

“…….”

“정말 우리 추측대로 방화라면 부단장이 계속 오픈되는 건 좋지 않아. 상대한테 경각심만 줄 뿐이야.”

이덕찬 반장이 낮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스윽.

태건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통닭집에서 배부르게 먹고 남은 서비스를 포장한 비닐봉투가 한 보따리다.

그 하나만 봐도 이덕찬 반장의 지적이 와 닿았다.

“흐음.”

“부단장의 열정을 밀어내겠다는 게 아니야. 오늘만 해도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데, 진짜 고마워.”

“…….”

“그런데 뭐가 먼저인지 스스로가 더 잘 알잖아.”

이덕찬 반장이 큰형과 같은 듬직함으로 타일렀다.

태건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냉정하게 정리해보면 그의 말이 너무도 옳았다.

자신은 지금 병가 중이다.

회복에 중점을 두고 일선에 빨리 복귀하는 걸 최우선으로 두는 게 옳았다.

……. 

생각을 하면 할수록 태건의 훅훅 치솟는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내 한층 차분해진 분위기로 변한 태건이 입을 열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제가 움직이지 않는 대신 제 눈과 귀, 그리고 손발이 되어 주실 거라 강력히 믿는 바입니다.”

찌잉.

태건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진하게 내보였다.

그 시선이 다이렉트로 이덕찬 반장에게 닿았다.

이덕찬 반장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 *

본부로 돌아온 태건은 포장해온 음식을 들고 옥상으로 직행했다.

라텔 1호기가 떡하니 대기 중이었다.

그럼 라텔은 출동대기 중이다.

‘깜짝 방문 납시오.’

태건은 곧장 라텔 대기소로 직행했다.

그리고 힘차게 문을 열어 젖혔다.

벌컥.

“모두 동작 그만, 현 시간 부로 라텔 불시점검을 실시한다!”

버럭버럭 소리치며 들어섰다.

대기소 안에는 현재 출동대기 인원들이 자유롭게 휴식 중이었다.

유중헌, 고수현, 이지성, 방기찬, 송강우, 최성철.

그 중 유중헌과 고수현은 하얀 마스크팩을 붙이고 누워 있다 반쯤 몸을 일으켰다.

“어, 어어. 태, 태건아.”

“이야, 간만……. 인데, 얼굴 보니까 아직 멀었네.”

그 옆에서 삐딱하게 누워 TV를 보던 이지성이 눈만 올려 뜨며 어이없어 했다.

“저게 미쳤나. 야, 찬바람 들어와. 빨리 문 닫아!”

방기찬은 휴대폰을 하다 고개를 들더니 빙긋 미소 지었다.

“부단장, 잘 지냈어?”

송강우와 최성철은 장기를 두다 두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선배님!”

“놀러 오셨습니까!”

너무도 자유분방하고 제멋대로의 모습들이었다.

현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그들이기에 평소엔 이런 풀어진 모습이 당연했다.

그러나 태건은 인상을 굳히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다들 빠져가지고, 부단장이 왔는데, 제대로 인사 안 합니까!”

그 타박에 이지성이 귀를 후비며 퉁명하게 받아쳤다.

“갑자기 나타나서 왜 저래.”

“누가 가서 냉수 한 사발 퍼다 줘라. 보낼 때 보내더라도 정신은 차려서 보내도 괜찮잖아.”

고수현이 삐딱하게 한 마디 거들었다.

역시나 씨알도 안 먹힐 이들이다.

하지만 태건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스윽.

포장해온 간식을 내보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지금 부단장 지시에 불응하는 겁니까?”

포장지 겉면에 떡하니 인쇄된 걸 본 모두가 크게 놀랐다.

“저건 그 유명한 수원 왕갈비통닭!”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던!”

“뭐, 뭐하냐. 부단장님 행차시다!”

벌떡!

모두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반듯하게 섰다.

그리고 최선임인 유중헌이 힘차게 거수경례를 올려붙였다.

“라, 텔, 개인 정비 중!”

“라텔, 쉬어.”

“쉬어!”

척.

다들 한 동작으로 열중쉬어 자세를 취했다.

태건은 간식을 당당히 앞세워 그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고생들이 많습니다.”

“어이쿠, 뭘 이런 걸 다.”

쌩!

고수현이 순식간에 간식을 낚아채갔다.

그와 동시에 태건을 향한 모든 관심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먹자!”

“와아!”

우르르.

바로 간식파티가 벌어졌다.

태건은 이럴 줄 뻔히 짐작했지만 조금 씁쓸했다.

“누가 사탕 사준다면 바로 쫓아갈 분들이네.”

지금 어떤 말을 해도 돌아오는 건 귀찮단 뉘앙스뿐이었다.

“말 시키지 말고 저기 가서 놀고 있어. 음료수는? 없냐? 얘가 센스가 없어.”

“그런데 이거 뭐냐. 통닭이 있긴 있는데, 사이드가 왜 이렇게 많아?”

“알맹이는 다 빼먹고 찌끄레기 가져왔냐?”

우걱우걱, 쩝쩝.

잔소리는 잔소리대로 하면서 먹기 급급했다.

태건은 지금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이 번뜩 떠올랐다.

‘이런 걸 줘도 지X이라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속으로 삼켰다.

태건이 속으로 툴툴거릴 때였다.

방기찬이 다가와 통닭 한 조각을 내밀며 말했다.

“부단장 여기, 그래도 맛은 봐야지.”

“방 선배. 크으. 선배 밖에 없습니다. 전 많이 먹고 왔습니다. 얼른 드세요.”

“난 집이 근처라 가끔 먹어서 괜찮아.”

그 말에 이력서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댁이 의왕시라고 하셨죠.”

“응. 학교 다닐 때는 수원으로 많이 놀러 갔었지. 그보다 수원은 누구 만나러 갔다 왔었어?”

“최근에 출동 다녀오셨잖습니까. 현장조사 따라갔다 왔습니다.”

태건이 말함과 동시였다.

걸신들이 거짓말처럼 손을 멈췄다.

우뚝!

“…….”

이내 다시 손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 속도는 현저히 느려졌다.

방기찬의 표정도 쓰게 변했다.

“아, 그 3층 건물 화재 건.”

“드시는데 좀 이따가 말할 걸 그랬습니다.”

태건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간파하고 쓰게 말했다.

그때 고수현이 닭가슴살 조각을 껌처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안타까운 현장이 한두 군데냐. 우리 멘탈 잡고 있으려면 죄송하지만 빨리 잊어야지.”

“그거 다 담고 살면 우리가 미쳐.”

이지성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다른 단원들은 말을 아꼈지만 같은 입장들이었다.

태건이 왜 모를까.

특히나 최악의 현장에 급파되는 라텔은 정신적인 아픔이 없을 수가 없었다.

더 깊은 아픔을 품고 있기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는 법을 터득한 거뿐이었다.

태건은 시기상 썩 좋진 않았지만 일단 말은 이어갔다.

“우선 서효준 씨는 오늘 패혈증 합병으로 떠났답니다.”

“……그러냐. 결국, 그렇게 됐냐.”

턱, 턱.

감자튀김을 짚는 손길들이 무겁게 흔들렸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태건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뭘 어떻게 돼. 나랑 강우가 수색하다 발견, 바로 구조해서 이송했지.”

고수현이 최대한 짤막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태건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가며 좀 더 자세히 물었다.

“거기 건물주가 이상한 혼잣말을 했단 건 누가 들은 겁니까?”

“너 질문이 이상하다?”

이지성은 눈치 빠르게 파고들었다.  

태건은 그의 의구심을 순식간에 풀어줬다.

“그 화재, 수상한 점들이 좀 있습니다.”

“혹시 방화?”

“아직 확신은 못하겠습니다만, 가능성이 충분히 보입니다.”

태건은 눈에 힘을 주며 답했다.

그때 유중헌이 통닭 다리를 움켜쥐며 급발진했다.

“뭐야, 그럼 서효준 씨는 억울하게.......”  

“선배, 그거 닭다리.”

“뭐, 너 닭다리 부러질 때까지 맞아 볼래!”

유중헌이 격하게 몰아붙이자 아차하면 닭에게 맞을 뻔한 최성철이 얼른 움츠렸다.

“아닙니다.”

“넌 왜 괜히 선배 자극하고 그러냐.”

송강우가 흘겨보며 타박했다.

그때 이지성이 유중헌의 닭다리를 낚아챘다.

턱!

“선배, 좀 진정해요.”

“어? 아, 어. 알았어. 미안.”

유중헌이 바로 쪼그라들었다.

이지성은 그 모습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태건에게 말했다.

“봤지.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욱하신다.”

“좋은 변화라면 좋은 거네요.”

“우리끼리 있을 때만 저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보다 그 건물주 혼잣말은 내가 들었어.”

이지성이 대화를 제자리로 돌렸다.

태건도 다시 집중하며 좀 더 자세히 물었다.

“구조 때는 아닐 테고, 응급처치?”

“응. CPR로 호흡 되돌리고 구급대에 인계 직후였어. 귀에 거슬리는 말이 딱 들리더라.”

“보고서는 저도 봤습니다. 그게 정확히 어떤 뉘앙스였습니까?”

“일이 커지네.”

뭔가 감이 온 듯, 씹어뱉는 이지성의 눈빛에 살벌한 독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 감정은 ‘분노’였다.

그리고 다른 단원들도 똑같이 분개했다.

“난 처음에 지성이 말 안 믿었어. 혼잡한 상황이라 잘못 들은 거라고 말이야.”

“우리는 거기 없어서 못 들었으니까.”

“들었어도 불길이 너무 거센 상황이라 진압이 우선이긴 했을 겁니다.”

“실제로 나도 바로 다시 들어갔어. 그대로 두면 다른 건물로 번질 상황이었으니까.”

한 명씩 돌아가며 그때 화재 상황을 설명해줬다.

태건은 머릿속에 그림을 하나씩 그려봤지만 역시나 부족했다.

“흐음. 아무래도 설명으로 듣는 건 한계가 있네요.”

“그럼 직접 봐.”

스윽.

대뜸 고수현이 엉뚱한 말을 꺼냈다.

“보다니요?”

태건이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송강우가 노트북을 펼치며 말했다.

벌컥.

“백업 영상……. 이거 용량이 상당한데요. 메일로 보내기는 어렵겠습니다.”

“쟤 클라우드에 초대 안 했냐?”

“아차. 맞다. 그러고 보니까 단장님하고 황 선배도 빼 먹었네요. 아이쿠, 실수.”

타다닥.

송강우가 서둘러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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