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태건은 당최 이해하지 못할 내용에 어리둥절했다.
“뭔데 그러십니까?”
“네가 건의하고 네가 모른척하면 어쩌자는 거야?”
“……전 단원 바디캠 장착 말입니까?”
태건이 병원에서 박규영 본부장에게 직접 건의했던 안건이었다.
고수현이 바로 캐비닛에서 바로 바디캠 상자를 꺼내 보여줬다.
“여기. 네 거야.”
“벌써 지급됐다고요?”
“그날 긴급예산 요청하고 차장님이 결재 똭! 그리고 정민 씨가 눈에 불을 켜고 쇼핑 똭! 다음날 아침에 배송 똭! 끝!”
끽.
고수현이 목을 긋는 액션까지 곁들여 신속함을 표현했다.
태건은 그런 표현이 오버스럽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정말 놀랐다.
“이건 신속이 아니라 광속 결재네요.”
“주민이 바디캠 영상 아니었으면 저번에 광산에서 꼼짝없이 말려들 뻔했잖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강우가 노트북을 보여줬다.
“여기요. 부단장님, 링크 타고 들어가시면 이렇게 보이는데, 이게 다 저희가 출동한 현장 영상들입니다.”
아예 동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콰르륵.
-야, 거기 옆으로 비켜!
-위에 봐. 위에!
불길이 사방에서 들이치고, 고함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격정적인 움직임에 영상이 엄청 흔들리기도 했다.
순간 태건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이거야.’
이 동영상을 제대로 분석하면 화재의 발화부터 흐름, 그리고 소거까지 낱낱이 파헤칠 확률이 높았다.
문제는 영상의 흔들림이었다.
잠깐 봤는데도 눈이 살짝 아파왔다.
태건은 일단 동영상부터 껐다.
“후우.”
숨을 길게 내쉬자 송강우가 힐끗 눈치를 봤다.
“좀 엉망이죠?”
“아니.”
“네?”
“딱 내가 찾던 거야. 이게 진짜 필요했어.”
태건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목소리에서 기쁨이 별로 느껴지지 않자 송강우가 갸웃거렸다.
“하나도 안 기뻐 보이시는데요.”
“일단 넘어가. 그건 그렇고. 현장 별로 폴더를 만들어서 백업해 놨네.”
“그럼요. 현장 폴더를 들어가면 단원 이름으로 풀영상이 하나씩 있습니다.”
탈칵, 탈칵.
송강우는 다시 노트북을 조작해가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태건은 그걸 보며 가만히 생각했다.
‘쉽지 않아 보이는데.’
단원들 영상을 분석하는 데에 시간이 꽤 필요할 거 같았다.
서정민은 마이튜브 채널 관리도 해야 하는 터라 도움을 청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적격인 인물이 딱 떠올랐다.
“아, 맞다. 노주민, 걔 퇴원 했나?”
“조만간 퇴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쪽 병원에 전화해 볼까요?”
“한 번 해봐.”
“잠시만요.”
스윽.
송강우는 휴대폰을 꺼내며 몸을 돌렸다.
다른 단원들은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강 건너 불구경 중이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고수현이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뭐 어떻게?”
“얼추 흐름은 잡았습니다.”
“잘했네. 머리 굴리느라 힘들 텐데, 잠깐 쉬어.”
톡톡.
고수현은 방바닥을 짚으며 쉬기를 권했다.
“그럼 사양 않고…….”
스르륵. 턱.
태건이 누우려는 찰나 번개 같이 다가온 손이 머리를 받쳤다.
“누구 마음대로.”
“지성 선배는 또 왜요.”
“잠깐 나 좀 보자.”
휙.
이지성이 흘겨보더니 먼저 움직였다.
태건은 어깨가 축 내려갔다.
“저 아직 환자입니다. 환자.”
투덜투덜.
몸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쉬지도 못하고 억지로 뒤따라 나섰다.
이내 태건과 이지성이 옥상 난간에 나란히 섰다.
“그래서 왜요.”
“……뭐라고 해야 되냐?”
뜬금없는 질문에 태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저한테요? 건강 잘 챙기라고 하시면 됩니다.”
“너 지금 여기서 떨어지면 전치 3개월 추가야. 그건 알아?”
“그럼 뭘 뭐라고 하는 곳인데요?”
“…….”
스윽.
이지성은 말없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액정에는 작성하다가 멈춘 문자가 가득 떠올라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저장된 이름이 ‘김민지’였다.
태건은 순간 어이가 없어 이지성을 뚱하니 바라봤다.
“헐, 보름이 훨씬 지났는데……. 지금까지 문자 하나 못 보냈단 말입니까?”
“내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스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늘 시크하던 이지성의 목소리가 혼란으로 가득했다.
태건은 한숨이 푹 쉬어졌다.
“하아. 민지 씨한테 선배 전화번호 줬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갑자기 연락하면 당황할 수도 있고…….”
“푸우우. 오케이. 알았어요. 일단 줘 봐요. 처음이니까 이건 제가 도와드릴게요.”
태건이 호의를 보이자 이지성이 얼른 휴대폰을 건넸다.
“크흠. 그래. 네가 소개하는 거니까 끝까지 책임져야지.”
“그럼요. 제가 확실히 책임져야죠……. 자. 됐죠. 갑니다.”
툭.
휴대폰을 돌려준 태건은 쿨하게 돌아섰다.
받아든 이지성은 액정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서 뭐라고 적었……. 뭐야? 야, 야, 강태건! 전화를 걸면 어떻게 해!”
뚜루루. 탈칵.
-여……. 여보세요?
“네? 어? 아니, 그게, 여, 여보. 아니, 여보가 아니라…….”
허둥지둥.
이지성은 휴대폰을 붙들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대기소로 향하던 태건은 그런 이지성을 어이없단 시선으로 흘겨봤다.
“얼씨구.”
정말 기가 막혔다.
한편으로는 저렇게 절절매는 모습이 신선하기도 했다.
그때 대기소 문이 열리며 송강우가 나왔다.
“선배, 주민이 원래 내일 퇴원이라는데, 물어보니까 오늘 퇴원해도 된답니다.”
“걔 퇴원하면 지금 숙소에 혼자 있는 거지?”
“그렇습니다.”
“아직 다 낫지도 않았을 텐데, 부단장으로서 그건 용납할 수 없지. 오케이.”
태건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감돌았다.
한 시간 후.
옥탑방 현관문이 열렸다.
태건이 들어오며 뒤에 대고 손짓했다.
“들어와, 어려워하며 들어와.”
“저는 정말 숙소에서 혼자 쉬어도 괜찮습니다만.”
그 손짓을 따라 노주민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억울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아니야. 내가 용납할 수 없어. 그러니까 부담 갖고 들어와.”
“저 그냥 쉬게 해주세요. 제발요.”
“안 돼.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태건은 노주민을 그대로 방치하고 거실로 향했다.
턱턱.
이어서 자연스럽게 소파에 길게 누웠다.
“허으으. 이제 좀 살겠다. 주민아. 짐은 나중에 풀고 커피부터 한 잔 타와.”
“여기 부단장님 집인데요.”
“아. 그렇지. 컵은 찬장에 있고, 커피는 머신인데 원터치야. 그리고 얼음은 냉동고에 있어.”
태건은 아주 친절하게 일일이 설명해줬다.
노주민은 그런 태건에게 억울함을 가득 담아 항의했다.
“뭔가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현장에서 막내 단원이 부단장한테 네가 인간이냐고 소리치는 거보다 정상적이야.”
“엇, 그……. 그걸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어떻게 잊어. 절대 못 잊지.”
스스스.
태건의 눈빛이 바로 가늘어졌다.
그 시선을 재빨리 피한 노주민은 슬금슬금 움직였다.
“컵이 찬장에…….”
어디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알아서 길수밖에 없었다.
이내 노주민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령했다.
“부단장님 여기요.”
“잘 해왔네.”
“찾기 쉽더라고요.”
“뭐해. 너도 앉아서 한잔해.”
벌컥.
태건이 대충 권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노주민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띠우며 옆에 앉았다.
“잘 마시겠습니다.”
“음. 커피 잘 타네.”
“가아암사합니다.”
꽈아악.
노주민은 머그컵을 으스러뜨릴 듯 움켜쥐며 대답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빨랫감 있다고 했지. 세탁기는 저쪽 다용도실에 있어.”
“아, 네”
“내 것도 몇 개 있는데, 그냥 옆으로 치워둬. 꼭 같이 안 해도 돼. 그렇다고.”
“네? 아, 아닙니다. 제가 하는 김에 같이 하겠습니다.”
노주민은 멍하니 있다가 얼른 정신 차리고 대답했다.
태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어서 말했다.
“방은 작은 방 쓰면 되고, 청소는 뭐……. 놔둬. 나중에 하면 되지.”
“제가 방 정리할 때 그냥 같이…….”
“그럴래? 네가 좋다면야. 그리고 맞다. 난 설거지는 그때그때 하는 타입인데, 뭐 알아서 해.”
태건은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듣고 보면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애매한 상황으로 말을 이끌어갔다.
덕분에 노주민은 이마에 이어 목까지 힘줄이 튀어나왔다.
빠지빠직.
그러나 한 마디 반발도 할 수가 없었다.
“…….”
자신이 폐광에서 저지른 만행이 있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태건이 소파 테이블에 머그컵을 올려놓고 다시 누웠다.
“끄으응. 야, 좀 나와. 쉬게.”
툭툭.
태건이 발을 뻗어 노주민을 밀어냈다.
그렇게 떠밀린 노주민은 식탁으로 옮겨가 처량하게 자리했다.
“이건 군대 때 그 개스끼보다 더 하잖아. 흑흑.”
노주민이 찔끔거린 그때였다.
소파에 누워 있던 태건의 짜증 가득한 타박이 들려왔다.
“야, 시끄러!”
“헙, 죄송합니다.”
“짜식, 좀만 쉬자는데 겁나 시끄럽네.”
부스럭.
태건이 한껏 째려본 후 몸을 돌렸다.
노주민은 식탁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그맣게 읊조렸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자신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너무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해가 질 무렵.
우울해 있어야할 노주민의 표정이 너무도 환하게 피어나 있었다.
“히히, 히히히.”
실없는 웃음까지 가득 흘렸다.
그런 노주민은 지금 옥상 평상에 자리해 있었다.
바로 앞 화로에 숯이 이글이글 타올랐고 마블링 가득한 쇠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치이익.
직접 고기를 굽던 태건이 큼지막한 덩어리를 노주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야, 침 떨어뜨리지 말고, 먹어.”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부단장님!”
“아까는 어머니 보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녀석이 갑자기?”
태건이 흘겨보며 핀잔했다.
노주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입 안 가득 고기를 씹기 바빴다.
“음? 음음음, 역시 고기는 한우. 끝내줘요!”
“헛소리 말고 이거나 더 먹어. 짜샤.”
“부단장님도 드셔야죠. 제가 쌈 싸드리겠습니다!”
“난 알아서 먹으니까 너나 많이 드세요.”
턱.
태건은 뚱한 말투로 큼지막한 고기 한 덩이를 더 건넸다.
노주민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한 입에 쏙 집어넣었다.
“흐으으, 으흐흐흐. 죽인다.”
“많이 먹고 얼른 나아서 또 현장에서 개겨.”
“네?”
멈칫.
노주민이 고기를 씹다가 대번에 얼굴색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