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화
태건은 그런 노주민의 앞접시에 또 고기를 얹어주며 이어서 말했다.
“원래 막내는 좀 개기고 삐딱하게 구는 맛이 있어야 되는 거야.”
“아, 전통 같은 거군요. 어쩐지 선배님들이 저한테 ‘넌 하는 짓이 꼭 부단장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뭐?”
태건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봤다.
그러나 노주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저도 처음엔 좀 듣기 그랬습니다. 그런데 단장님께 들어보니까 부단장님에 비하면 아직 멀었더라고요.”
“……야, 먹지 마.”
“싫은데요. 제가 다 먹을 건데요.”
쇽, 쇽!
노주민은 재빨리 젓가락으로 익은 고기만 쏙쏙 골라 앞접시로 가져갔다.
태건은 그 반항적인 행동에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너 다 먹어라.”
“많이 먹고 더 건강하게 버티겠습니다.”
“그래도 네가 사이코란 걸 안다니 다행이다.”
“부단장님의 뒤를 이어......”
그 뒷말에 태건이 발끈했다.
“야, 그건 아니지. 난 너 같이는 안 했거든!”
“에이.”
“에이? 이게 정말. 이거 다 먹으면 네가 뒷정리 해.”
“어차피 제가 할 거였는데, 그렇게 선심 쓰듯이 말씀하신다고 뭐 달라집니까?”
노주민이 바로 기어오르자 태건은 뒷목이 뻐근해졌다.
“너무 빨리 풀어줬어. 아으!”
“고기가 참 맛나네요.”
“너, 그냥 숙소로 가라. 그냥 가.”
휙휙.
태건이 손짓으로 밀어냈지만 노주민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제가 왜요? 청소하고 빨래만 하면 이렇게 비싼 고기가 나오는데 왜 혼자 라면 끓여 먹습니까.”
“……아, 내가 쟤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태건은 이런 예상 밖의 전개에 살짝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다고 진짜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노주민은 그냥 쥐어박기 얄미운 남동생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일도 일이지만 그래서 이렇게 데려와 챙겨주는 거였다.
파란만장한 식사가 끝난 후였다.
태건과 노주민은 소파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이젠 일을 할 시간이다.
노트북과 TV, 그리고 서류뭉치 등 관련 서류들을 모두 갖춰두고 진한 커피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태건이 전체적으로 브리핑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내 집으로 데려온 거야.”
“그러니까 절 그냥 가정부가 아니라 사무보조 가정부로 데려오신 거군요.”
역시 노주민은 뭐 하나도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건도 익숙한 부분이라 그냥 넘어갔다.
“그래. 프로페셔널한 가정부가 필요했다, 됐냐?”
“어쩐지 절 병원까지 데리러 오실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습니다.”
“됐고, 영상 분석의 중점은…….”
“선배들의 화재진압 영상 속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으란 말씀이시죠.”
노주민은 성격이 독특해도 눈치가 좋았다.
태건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쉽진 않을 거야. 불이 어떻게 번지고 흘러가는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눈 빠지게 보다보면 뭐라도 보이지 않겠습니까. 일단 지르고 보겠습니다.”
“넌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시작해.”
태건이 사인을 주자 노주민은 바로 손부터 풀었다.
두둑.
“그럼 어디 눈 빠지게 파고들어 볼까나.”
장난처럼 흘리는 말과 달리 무섭게 노트북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게 노주민의 최고 장점이다.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높은 집중력으로 몰입한다.
그리고 시선도 매우 자유로워 고정관념이 없었다.
너무 자유로운 생각 탓에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말해 ‘사이코’ 취급을 받는 거였다.
이내 태건은 시선을 TV로 돌렸다.
요즘 나오는 TV는 전부 스마트TV다.
TV로 인터넷에 접속하거나 동영상 시청은 기본 옵션이었다.
띡, 띡.
리모컨으로 모드를 전환해 클라우드에 접속했다.
그리고 단원들의 출동 동영상 중 ‘고수현’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의 시작은 헬기 속이었다.
-투다다다.
로터 소리가 가득 들려왔고 긴장한 이지성과 송강우의 모습이 보였다.
이어서 고수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들 준비 됐어?
-하강 준비 완료!
-문 따!
고수현이 외침과 동시에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스릉!
거친 바람이 몰아치고 검은 하늘이 비친다 싶은 그때 검은 유독연기가 기체 내부로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헬멧 무전기로 추정되는 유중헌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하 포인트 도착, 호버링 완료. 뭐하냐 라텔 새끼들아. 얼른 가서 죄다 물어뜯어!
-라텔 에이스 출격. 나를 따르라!
고수현이 비장하게 외치며 헬기 밖으로 몸을 날렸다.
태건은 솔직히 조금 흥미진진했다.
단원들의 출동을 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특히 커다란 TV로 이렇게 보니 마치 영화를 보는 거 같았다.
약속된 구도로 촬영하는 게 아니라 리얼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라 더 실감이 났다.
띡.
잠시 멈춘 태건이 노주민에게 물었다.
“주민아, 팝콘 없냐?”
“저도 팝콘에 콜라 땡기는데, 편의점 가서 사올까요?”
노주민이 한술 더 떠 물었다.
그런 그의 노트북 화면을 보아하니 최성철 영상을 시청 중인 모양이었다.
태건은 어이가 없어 발로 어깨를 밀며 한 소리 했다.
꾸욱.
“너까지 그럼 되냐?”
“우씨. 세상에 제일 나쁜 게 나는 되고, 넌 안 된다는 겁니다.”
“됐으니까 보기나 해.”
괜한 말을 꺼냈단 후회를 하며 태건은 다시 출동영상에 집중했다.
고수현이 불타는 건물 옥상에 안착한 장면부터 이어졌다.
“다들 합이 딱딱 맞네.”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감상을 읊조렸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출동 모습만으로도 뚜렷한 발전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원들 업무능력평가 시간이 아니었다.
모든 출동 과정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꾹, 꾹.
리모컨으로 시간을 앞으로 돌려 일부 과정을 넘겼다.
화면이 빠르게 넘어갔다.
화면 속 인력사무실은 이미 불길이 상당히 번진 상황이었다.
-화르륵, 화르륵.
태건은 화면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유심히 관찰했다.
내부는 꺼먼 유독연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그 곳곳에 빨간 불꽃이 여기저기 피어나 번져가고 있었다.
그런 불길이 사무실의 일부를 밝혀주고 있었다.
태건은 그 불꽃을 조명삼아 화재의 흐름을 가늠했다.
‘1층에서 일어난 불이 벽을 타고 올라왔어. 그게 창문 유리를 녹여 안으로 침투했고…….’
그때 TV에서 고수현의 따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뭐야! 여기 사람. 바보, 아니, 까칠. 여기 사람!
핑!
태건의 눈빛이 대번에 날카로워지며 반사적으로 TV를 바라봤다.
고수현의 바디캠 앵글이 두꺼운 상의를 가깝게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워도 너무 가까웠다.
태건은 그 상의의 주인이 서효준임을 알고 있다.
태건은 다시 고수현의 영상에 집중했다.
덜렁덜렁.
다급한 발걸음만큼 앵글이 심하게 흔들렸다.
-저기 뭐야, 누가 있었어?
-꺄악!
-어머머, 어떡해!
여기저기서 비명과 걱정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와중에도 이쪽 관할 소방차들과 소방관들이 설핏 보였다.
-이쪽입니다. 이쪽!
어떤 소방관이 손을 거칠게 흔들며 시선을 잡아끌었다.
소방차들이 시야를 가려주는 공간이었다.
고수현의 앵글이 빠르게 움직이더니 주변을 비추기 시작했다.
건물 화재에 맞서는 소방관들이 보였다.
현장통제하는 경찰관들과 그 주변엔 잠옷에 두꺼운 옷을 걸쳐 입고 나온 주민들도 있었다.
앵글과 무관하게 고수현과 현장 소방관의 대화가 들려왔다.
-구급대는 왜 안 보이…….
-지금 오고 있…….
태건은 그들의 대화보다 화면에 더 집중했다.
‘어딨지?’
영상 속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를 눈 빠지게 찾았다.
최만수 사장이다.
그가 보이지 않았다.
앵글이 고정되어 있어 현장이 전체적으로 비춰지지 않는 상황이다.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지금 그의 표정을 봐야 하는데 고수현이 몸을 움직이지 않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니, 좀 옆으로 이렇게, 좀 이렇게 주변도 좀 봐야될 거 아닙니까!”
답답한 태건이 소리쳤지만 영상 속 고수현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태건의 바람이 닿았는지 고수현의 앵글이 움직였다.
스윽.
“그래요. 그렇게……. 에잉.”
기대하던 태건의 표정이 실망으로 푹 가라앉았다.
-바보, 따라 붙어. 집착, 멍청, 화재진압 개시!
-집착, 멍청 출입구 확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밀어붙여!
고수현의 앵글은 다시 불타는 건물을 비추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띡.
태건은 거기서 고수현의 영상을 멈췄다.
“일단 보류.”
이후로는 화재진압이 주를 이룰 터였다.
태건은 계속 지켜볼 때가 아니었다.
이내 이지성의 출동영상으로 바꿔 재생했다.
띡, 띡.
빨리 감기로 같은 장면을 넘기고 건물 밖 응급처치 순간을 빠르게 찾았다.
“여기.”
CPR로 서효준을 응급처치하는 장면이다.
이지성의 앵글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후우우. 후우우. 이 동네 오늘 뭐 불파티 해?
쫑긋.
그 소리에 태건의 귀가 크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펼쳐둔 노트에 재빨리 기입했다.
“불파티? 신고가 많았다.”
슥슥.
그렇게 기입할 때였다.
TV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왜 거기서 잠을 자. 사무실이 자는 데야? 그나저나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이런 육시럴.
스슥, 틱.
메모하던 태건의 손이 딱 멈췄다.
요즘 사람들은 사용하지 않는 예전 어휘,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
휙!
태건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마침 이지성도 그 소리가 거슬렸는지 그쪽으로 몸을 돌린 상태였다.
앵글이 통제라인 한쪽에 서 있는 최만수 사장을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이 태건의 신경을 딱 건드렸다.
띡.
태건은 잠시 멈추고 최만수 사장을 세세히 관찰했다.
그러다 발로 노주민을 툭툭 건드렸다.
“야, 주민아.”
“왜요. 그냥 부르지 왜 발로 건드리셔!”
“좀 봐봐.”
꾸욱, 꾸욱.
태건이 발끝으로 밀면서 부르자 노주민이 뚱한 얼굴로 TV를 봤다.
“봤어요. 대체 뭔데 그러십니까!”
“저 할아버지가 건물주야. 뭔가 이상하지 않냐? 잘 봐봐.”
띡, 띡.
태건은 되감기해서 몇 초 정도 플레이 시킨 후 다시 일시정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