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316)화 (316/320)

316화

그렇게 각자 조사한 걸 공유하고 난 후였다.

…….

사각, 사각.

조용한 가운데 뭔가 각자 끄적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서로 가급적 시선을 마주치려하지 않았다.

모두 똑같이 씁쓸함이란 감정이 크게 자리한 모양이었다.

이 이상 회의를 이어가는 건 어려워 보였다.

태건이 나서서 마무리 짓기 시작했다.

“정황과 증거가 모두 확실해졌으니 이제 남은 건 잡는 거 같습니다.”

“네.”

“죄송하게도 저희 라텔이 뭔가 더 도움을 드릴 게 없어 보입니다.”

태건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건 이덕찬 반장과 오재현 실장도 인정하는 바였다.

“트릭을 밝혀준 게 어디야.”

“더 없다니요. 이런 말 좀 속 보이지만 엄청난 손해를 막아주셨는데요.”

끄덕끄덕.

양측 모두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태건은 겸손을 담아 정중하게 말했다.

“전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서효준 씨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게 힘 써 주십시오.”

“흐음.”

“그리고 외람되지만 오 실장님.”

태건이 부르자 오재현 실장이 얼른 대답했다.

“네, 부단장님.”

“판결이 나면 서효준 씨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사망보험금이나 위로금이 따로 지급될 수 있을까요?”

“원칙적으로는 저희 보험사에 보험을…….”

오재현 실장이 무겁게 운을 뗀 순간 이덕찬 반장이 급발진했다.

텅텅.

“지금 원칙을 말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방법을 좀 강구해 보시라고!”

“그거 말하려고 하잖습니까.”

“거 답답하게. 뭔지 빨리 줄줄 좀 털어 봐요!”

“윗선에 얘기해 보겠다고요.”

오재현 실장은 명확한 답을 내어주지는 않았다.

이덕찬 팀장은 그게 불만인 모양이었다.

“저거 봐. 또 저렇게 얼렁뚱땅.”

“그쪽도 사회생활 하시잖아.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니까!”

“그래도 우리는 도의적, 사회적 책임은 진다고!”

텅텅!

이덕찬 팀장은 다시금 테이블을 두드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 따가운 목소리에 태건이 바로 중재에 나섰다.

“또 이러십니까. 또?”

“…….”

“…….”

둘 다 조용해지자 태건은 빠르게 정리했다.

“다 입장이란 게 있는 거 아닙니까. 일단 결론부터 내고 다시 얘기해도 늦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래. 잡아 처넣는 게 우선이지.”

“그러니까 회의는 여기서 끝. 됐죠. 고생하셨습니다.”

꾸벅.

태건은 재빨리 인사를 하며 회의를 마무리 지어버렸다.

더 이상 왈가왈부하며 시간을 허비할 때가 아니었다.

잠시 후.

태건은 박규영 본부장에게 중간보고를 했다.

보고서를 확인한 박규영 본부장이 눈을 감고 신음을 깊게 내뱉었다.

“흐으음.”

“…….”

태건은 쓴 얼굴로 잠시 기다렸다.

이내 박규영 본부장이 눈을 뜨며 말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어떤 생각 말씀이십니까?”

“돈이 사람을 악하게 하는 걸까. 사람이 돈을 악용하는 걸까?”

심오한 질문이었다.

태건은 그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저도 답을 알고 싶습니다.”

“누군가 정답을 말해줬으면 좋겠군. 그보다 화재조사에도 일가견이 있는 줄 몰랐어.”

“단원들 바디캠 영상이 없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태건이 겸손을 보이자 박규영 본부장이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그걸 건의한 부단장의 선견지명이 돋보인 사건이군, 그래.”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그런 걸로 하겠습니다.”

“후후. 이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고……. 몸은 어떤가?”

박규영 본부장의 질문에 태건이 가볍게 팔을 움직였다.

슥슥.

“많이 나아져서 곧 복귀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다행이군……. 아차차.”

데구루루. 툭.

박규영 본부장이 실수로 놓친 펜이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힌 태건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토해냈다.

“엇, 조심……. 크윽!”

“그래. 많이 나아진 모양이야.”

“…….”

멈칫한 태건은 뻐근한 옆구리의 통증에 할 말이 없었다.

박규영 본부장은 그런 태건을 뚱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언제 복귀 예정이지?”

“크흠. 그러니까……. 집에 가는 길에 병원에 들를 예정이었습니다.”

“병원으로 복귀를 말하는 거였나. 나는 설마 그 몸으로 현장으로 복귀한다는 줄 착각했지 뭔가.”

“……잘못했습니다.”

태건는 더 버티지 못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제야 박규영 본부장이 쓰게 말했다.

“조사반장이 이번 일로 행정팀장한테 엄청 깨진 모양이야. 부단장까지 끌고 다녀야 했냐고 말이야.”

“그건…….”

“행정팀장 입장도 이해해줘. 특수소방단은 라텔의 지원을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태건은 묵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박규영 본부장이 뒷말을 덧붙였다.

“나가는 길에 얼굴 좀 비추고 가. 내가 말하는 거보다 부단장이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물론입니다.”

“그래. 병원에 꼭 들려. 그래야 자네 몸 상태가 어떤지 내 귀에도 들려오니까.”

역시 병원과 다이렉트로 연락하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찍소리 않고 꼭 들리겠습니다.”

그렇게 박규영 본부장에게 중간보고를 마무리 했다.

야외휴게소.

태건과 이혜지 행정팀장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헥헥.

-끼잉, 끼잉.

이순이와 삼식이가 발치에서 엎치락뒤치락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태건은 무리해서 몸을 숙이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지켜봤다.

그러자 이혜지 행정팀장이 한 마디 했다.

“오랜만에 아빠 왔다고 아양 떠는 거 봐.”

“덤비지 않는 거 보니까 제 몸 상태가 아직 안 좋긴 한가 봅니다.”

“정말 그러네. 어떻게 알지? 신통방통해라.”

이혜지 행정팀장은 놀랍고 신기해했다.

그런 두 사람의 분위기는 터울 많은 누나와 남동생 같았다.

이내 태건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반장님을 엄청 구박하셨단 소문이 들리던데요?”

“이 반장이 그랬지. 하여간 이 능구렁이를 그냥 확 비틀어 버릴까?”

“반장님은 입도 벙긋 안하셨습니다.”

태건이 얼른 만류했다.

그 반응에 이혜지 행정팀장이 미간을 모으더니 바로 유추해냈다.

“본부장님?”

“와우. 바로 집어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요즘 본부장님 앞에서 이 반장을 잘근잘근 씹었으니까.”

이혜지 행정팀장이 순순히 인정하자 태건이 넌지시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요즘 현장조사에 매일 치이시던데.”

“그럼 반원들 굴리지 왜 부단장까지 써 먹어? 안 그래도 아픈 사람을.”

“이번 건은 제가…….”

태건이 말하려 했지만 이혜지 행정팀장이 한 박자 빨랐다.

“알아. 부단장이 케이스 컨택 한 거. 그게 돌아가신 분 때문이란 것도 알고.”

“다 아시네요.”

“그런데 왜 그러냐고? ……애들이 불안해하니까.”

이혜지 행정팀장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소리에 놀란 태건은 귀를 활짝 열었다.

“행정팀원들 말입니까?”

“다들 아파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고, 곧 돌아올 거란 걸 당연히 믿고 있어.”

“그런데 왜요.”

“중심이 없잖아. 요즘 출동하면 우리도 긴장감이 엄청 높아졌어. 지원팀도 마찬가지야.”

슥슥.

이혜지 팀장이 발끝으로 땅을 쓸며 어렵게 말했다.

태건은 무슨 소린지 대번에 알아들었다.

이번에 영상을 분석하면서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다.

지휘통제 역량의 문제였다.

고수현은 라텔 단원들을 통제할 능력이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본부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또 지역소방관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건물 화재 진압에 시간이 많이 걸렸어.’

이지성이나 방기찬은 아예 컨트롤할 역량이 되지 않았다.

송강우와 최성철은 이 부분에 있어 아직 논외였다.

“흐음.”

태건은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 진지해졌다.

그때 이혜지 행정팀장이 얼른 손을 저으며 말했다.

“부단장에게 부담주려고 하는 말 아니야. 그렇게 오해하면 안 돼.”

“압니다. 하지만 라텔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모두가 흔들리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당장 나와서 출동하란 거 아니야. 그러기만 해. 진짜 그러면 내가 꽁꽁 묶어 놓을 거야.”

이혜지 행정팀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태건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현장에 방해될 몸을 이끌고 출동하겠다고 우기진 않을 겁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복귀하란 거 아니야.”

“…….”

“다른 일로 회복에 지장 받지 않았으면 좋겠단 거야. 이번 현장조사는 물론 예외고.”

이혜지 행정팀장은 오해가 되지 않도록 계속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태건도 확실하게 답했다.

“절대 오해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그보다 무척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건의 뜻밖의 인사에 이혜지 행정팀장이 오히려 갸웃거렸다.

“난 우리 애들이 불안해한다는 말밖에 안 했는데?”

“그러니까요. 감사합니다.”

태건이 재차 인사하자 이혜지 행정팀장 표정은 더욱 아리송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내가 뭘.”

“정말 뜻깊은 티타임이었습니다. 그럼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태건은 고갯짓으로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멍, 헥헥.

-캉캉.

구조견들이 얼른 일어나 태건의 배웅 길을 자처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태건을 바라보는 이혜지 행정팀장의 표정이 복잡했다.

“좀 알아듣게 말하고 가면 안 되니?”

말은 그랬지만 굳이 쫓아가 묻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결과를 보여줄 거란 믿음이 있던 탓이다.

태건은 그 길로 병원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잠시 후.

-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

진료실 문이 들썩거릴 정도로 담당 전문의의 야단소리가 들려왔다.

진료실 안.

담당 전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럴만 했다.

드러난 태건의 상체 곳곳에 울긋불긋 멍이 들어 있었다.

태건은 두 손으로 살포시 상체를 가리며 말했다.

“그렇게 보시면 부끄럽습니다.”

그 순간 담당 전문의가 싸늘한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말했다.

“당장 병실 준비하세요.”

“늘 준비되어 있습니다.”

“처 넣……. 크흠. 그럼 입원시키고 밖에서 문 걸어 잠가 버리세요.”

담당 전문의가 울컥함을 억지로 끌어내리며 차분하게 오더했다.

그 말에 태건이 얼른 담당 전문의에게 반발했다.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 드렸잖습니까.”

“그 전에 제가 퇴원할 때 분명히 집에서 안정을 취하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을, 그것도 방화로 살해당한 분을 그냥 모른 척해야 했단 말씀이십니까!”

태건이 절절하게 목소리를 높여 성토했다.

그 말엔 담당 전문의가 멈칫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 부단장님 상태가…….”

“제가 좀 더 아픈 게 뭐 그렇게 대수입니까. 사람이 죽었다고요. 그것도……. 크흠.”

“아니, 저도 안타까운데…….”

담당 전문의가 살짝 동요하기 시작했다.

순간 태건은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저는 제 몸부터 챙겼어야 됐습니까?”

“저는 간호사입니다.”

“압니다. 그래도 의견을 좀 말씀해 주세요.”

“저는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는 멀리 시선을 두며 기계처럼 반복해 말했다.

이 상황에 휩쓸리고 싶지 않단 의지를 확고하게 표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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