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317)화 (317/320)

317화

이내 담당 전문의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알겠으니까 보호구 다시 착용하시고……. 한 번만 더 이러시면.”

“이제 이럴 일 없습니다. 절대로요.”

“뱉은 말은 지키시는 분이니까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슥슥.

태건은 인사하고는 보호구를 하나씩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뻣뻣하던 간호사가 다가와 도와줬다.

“팔 드시고요…….”

그때 담당 전문의가 한 마디 했다.

“부단장님, 대신 일주일간 집에서 절대안정, 외출금지.”

“……뭐라고요? 3일이나요?”

태건이 슬쩍 일수를 줄이자 담당 전문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병실…….”

“아차차. 일주일이 7일이죠. 맞다. 깜빡했네.”

“……끄응.”

“일주일 간 절대안정, 외출금지.”

태건은 뻔뻔한 얼굴로 곱씹어 말했다.

잠시 후.

태건은 오광휘 단장의 병실을 찾았다.

병원의 소문은 빛보다 빨랐다.

오광휘 단장은 태건이 들어서자마자 웃기부터 했다.

“푸헤헤헤. 내가 너 의사쌤한테 혼날 줄 알았다. 그냥 넘어가면 강태건이가 아니지!”

“약국 잠깐 다녀왔는데, 그새 소문났습니까?”

“이 병원은 내가 이미 싹 접수했지. 그보다 넌 이제 화재조사도 하고 다니냐?”

오광휘 단장은 병상에 기대어 앉아 물었다.

감긴 붕대가 많이 줄어있는 걸 보아 전보다 많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태건은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으며 답했다.

“저야 원래 멀티 플레이어잖습니까.”

“얼씨구. 그런데 왜 표정이 엄청 반갑지 않은 표정이냐?”

“그게 말입니다…….”

태건은 현재 라텔 단원들에 대한 문제점을 빠르게 말했다.

이내 오광휘 단장의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역시 그러냐.”

“단장님도 얼추 예상하셨나 보네요.”

“우리 애들이 타인과 소통에 있어서 얼마나 유별나신지.”

오광휘 단장이 콕 짚어 말하자 태건이 아차했다.

“아, 저희가 평범하진 않죠.”

“나랑 네가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잖아. 너도 3기 충원에 대해 고민하던 부분이지 않냐?”

“그러네요. 제가 계속 병원 신세지느라 깜빡했습니다.”

태건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동안 오광휘 단장과 따로 만나 고민을 나눴다.

3기를 충원하면 몇 개 조로 나누고 그 조장을 누구로 앉힐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매번 조장 선출에 막혀 대화가 흐지부지 끝났었다.

오광휘 단장은 계속 고민 중이었는지 술술 말했다.

“대산이는 닥치고 돌격이라 패스, 중헌이는 기장인데다 소심해서 패스.”

“수현 선배는 단원들 외에는 시야가 좁은 편이죠.”

“지성이는 아예 남에게 관심이 없어. 1기가 그런데 2기 애들은 오죽하겠냐.”

한 명씩 꺼내 언급하니 문제가 심각했다.

태건이 오는 길에 생각한 타개책을 슬쩍 말해 봤다.

“기장들은 어떻습니까?”

“나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닌데, 그 자식들이 현장 경험이 적어, 체력도 안 받쳐줘.”

“흐음.”

“무엇보다 당장 출동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란 게 문제야.”

오광휘 단장은 확실히 요점을 잘 파악했다.

태건도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눈빛을 굳히며 물었다.

“제가 부기장 자리에 탑승해서 현장지휘를 하는 건 어떨까요?”

“그 몸 상태로? 그걸 누가 허락할까.”

“답답하네요.”

태건이 쓰게 말하자 오광휘 단장도 같은 마음인지 푸념을 내뱉었다.

“후우. 원격조종이라도 할 수 있으면 여기서 알려주기라도 할 텐데.”

“그런 방법이 있네요.”

“진짜 원격조종이 돼?”

오광휘 단장이 묻자 태건이 풀어서 설명했다.

“헬리캠으로 현장화면 공유하고, 지휘는 광역무전기로 하면 될 것도 같은데요?”

“요즘 헬리캠도 실시간 영상 공유가 돼?”

“안 되면 휴대폰 매달고 영상통화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거 이상하게 땡기네.”

오광휘 단장이 턱을 쓸며 호기심을 보였다.

태건은 아이디어에서 멈출 생각이 없는지 바로 서정민에게 전화했다.

뚜루루.

“부단장님. 조금 전에 가셨다고.”

“본부 들어오셨습니까. 그보다 하나 여쭙고 싶은 게…….”

태건이 줄줄 풀어서 설명하자 서정민이 이내 대답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일단 저도 테스트를 좀 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세팅을 좀 해야 되니까……. 삼일 아니, 이틀만 주십시오.”

뚝.

서정민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태건은 휴대폰을 내리며 오광휘 단장을 바라봤다.

“가능할 거 같답니다.”

“난 처음에 정민 씨가 문제아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보물 같다. 라텔의 맥가이버야.”

“저도요. 역시 이과가 최곱니다.”

척.

태건은 엄지를 내밀며 격하게 동의했다.

오광휘 단장 병실에서 나온 태건은 황대산 병실로 향했다.

입원한지 거의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메시지는 주고받고 있지만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내가 딱히 피할 필요도 없잖아.’

그런 생각으로 병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십시오!”

황대산 특유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스륵.

태건은 문을 열고 들어가며 너스레부터 떨었다.

“목소리는 다 나으셨는데요?”

“이게 누구야. 강태건이. 뭐가 그렇게 바쁜데 이제 얼굴 내미냐, 이 망할 놈아!”

황대산의 따스한 구박부터 귀를 강타했다.

그리고 병상에 상체엔 튼튼하고 복잡한 교정기를 부착한 채 누워 있었다.

그 하나만 봐도 그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었다.

황대산은 현재 오른쪽 갈비뼈들이 부서져 철심으로 고정해 놓은 상태였다.

그 동안 키워놓은 엄청난 근육이 버텨줘서 장기손상이란 최악의 사태를 면할 수 있었다.

담당 전문의가 같았기에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심지어 이런 말도 들었다.

-척추가 부러지지 않은 건 천운입니다. 그래서 황 단원이 살아있는 겁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리 끝까지 오싹했다.

그런데 이렇게 눈으로 보니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갈비뼈 여기저기 금이 간 나와는 차원이 달라.’

아직 황대산의 복귀가 미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였다.

천천히 다가간 태건은 속마음을 숨겼다.

평소와 같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툴툴거렸다.

“이 상태로 어떻게 목소리가 그렇게 크게 나오십니까?”

“목청 좋은 게 우리 집안 내력이다, 인마.”

“좋으시겠습니다. 그보다 몸은 어떠십니까.”

태건이 묻자 황대산이 눈을 흘겼다.

“거울보고 묻는 거냐. 너야말로 퇴원한지 한참 됐는데 얼굴이 왜 그래?”

“이거 또 말해야 되네. 녹음해 놓고 틀어놔야 되나.”

“사내자식이 중얼중얼. 넌 내가 일어날 수만 있었으면 그냥 방뎅이 킥 감이야.”

황대산 목소리가 병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목소리와 표정이 상당히 밝았다.

전에는 대책 없이 씩씩했다면 지금은 활기찬 분위기였다.

가만히 관찰하던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야, 러브 파워가 무섭긴 무섭네요.”

“뭐? 어? 아? 어어? 갑자기 뭔 소리야.”

“얼굴은 왜 빨개지십니까? 흐흐.”

태건이 놀리자 황대산이 고개를 반대로 돌리며 툴툴거렸다.

“너 가라. 너 보니까 갈비 쑤신다.”

“그 동안 왜 안 왔냐더니, 이젠 또 가라고요?”

“얼굴 봤잖아. 가! 가란 말이다. 너 만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아윽.”

황대산은 급격히 배에 힘을 줬는지 고통스러워했다.

태건은 그런 그를 보면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게 왜 깻잎 때주고, 지퍼 올려주고 그랬습니까.”

“어? 어어…….”

스스슥.

황대산이 놀란 얼굴로 다시 돌아봤다.

태건은 얄미운 미소를 진하게 지으며 말했다.

“저 그냥 가도 되죠? 가는 길에 단장님께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입이 간질간질한데…….”

사악.

정말 몸을 돌리자 황대산이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야야, 너 멈춰. 거기 서. 으! 어! 나 못 움직여 새꺄. 멈추라고.”

턱.

바로 멈춰선 태건이 다시 그를 돌아보며 얄궂게 말했다.

“왜 부르심?”

“강태건이, 일단 앉아. 좀 앉아 봐. 끄응.”

“소원이시라면.”

그릉.

태건은 높은 의자를 끌어와 자리했다.

황대산은 보기가 편한지 끙끙거리던 힘을 풀고는 넌지시 물었다.

“너 그때 밖에 있었냐?”

“네. 간호사분들이 긴급 호출하셔서 절뚝거리며 달려왔었죠.”

“그, 그랬구나.”

“문고리를 딱 잡았는데 선배님이 항복하셔서……. 제가 소리부터 쳤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꾸욱.

태건은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무도 숙연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태건의 귀에 들려오는 황대산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너 그렇게 사악하게 웃으니까 진짜 주미 같다.”

번뜩.

순간 몰래 미소 짓고 있던 태건이 멈칫했다.

‘설마?’

슬쩍 눈을 올려 떠보자 황대산과 시선이 딱 마주친 탓이다.

태건은 자신이 높이 앉아 있단 사실을 그제야 다시금 인지했다.

“아, 하하. 이거 의자가 생각보다 높네요.”

“……잘 했어.”

뜬금없이 들려온 황대산의 말에 태건이 갸웃거렸다.

“그때 방해하지 않은 걸 잘했다고요?”

“처음엔 좀 그랬는데……. 그 녀석, 겪어 볼수록 괜찮아. 매력이 있어.”

“지금 누구 말씀하시는 건지, 설마 저요?”

스윽.

태건은 자신을 가리키기까지 하며 부정했다.

그러나 황대산은 꿋꿋하게 말했다.

“단원으로 보니까 지수의 매력이 니들 눈에 안 보이는 거야.”

“그럼 단원으로 봐야죠. 아니면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렇지. 그게 그렇게 되네……. 하여간 지수 눈독 들이는 새끼는 그냥 내가 척추를 반대로 접어, 으윽!”

황대산이 흥분해 신음을 흘렸다.

태건은 뚱한 얼굴로 손을 휘휘 흔들었다.

“그 부분만큼은 절대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에, 어…….”

둘러보던 태건의 말이 갑자기 막히자 황대산이 눈치 채고 먼저 말했다.

“지수는 그냥 지수야. 이 형 여자친구 됐다고 호칭이 달라지면 되냐.”

“크흠. 그러시다면……. 지수는 어디 갔습니까?”

“물리치료 받으러. 발목하고 무릎 틀어진 거 교정해야지.”

“그거 상당히 고통스러운데.”

태건이 쓰게 말하자 황대산의 눈꼬리가 축 내려갔다.

“어쩌냐. 아파도 제자리로 돌려놔야지.”

“……정말 지수한테 마음이 많이 열린 모양입니다.”

태건이 지켜본 소감을 넌지시 말했다.

황대산의 표정이 쓰게 변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 날까지 날 저렇게 순수하게 좋아해준 사람이 두 번째야.”

“누가 또 있었다고요? 모솔이라면서요.”

“남녀니 뭐니 그런 거 말고, 인마.”

스윽.

대답한 황대산이 먼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 분위기와 말투.

뭔지 모르게 무겁고도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태건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직감했다.

떠나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 생각이 들자 예전 현대스포츠센터 화재 출동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사망한 김일우 일병의 아버지를 부여잡고 절규하던 그 이름.

“현궁…….”

입술을 비집고 툭 흘러나왔다.

흠칫.

그 이름이 울린 순간 황대산이 크게 동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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