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319)화 (319/320)

319화

태건이 뒤늦게 알아채고는 이덕찬 반장에게 말했다.

“저 때문에 안 드시는 겁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아니야. 우리 또 들어가서 영상 분석해야 돼.”

“회식이잖습니까.”

태건이 의아하게 물었다.

이덕찬 반장은 달달한 음료수를 채워주며 말했다.

콸콸.

“요즘 라텔의 화재출동이 늘었다고 했잖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화재가 늘어난 게…….”

그가 거기까지 말하자 태건이 눈치 빠르게 캐치했다.

“혹시 그때 말씀하셨던 사이코패스요?”

“그건 내가 오버한 거고.”

“그렇죠?”

“그런데 확실히 이상하긴 하잖아.”

이덕찬 반장이 쓰게 말했다.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린 태건이 빠르게 말했다.

“그래서 저희 단원들 출동 영상을 분석해서 조사 자료로 참고하신단 거네요.”

“그거보다 확실한 게 어디 있어.”

“그거 분석하는데 눈 빠지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태건이 그때의 아찔함을 말하자 이덕찬 반장이 격하게 동감했다.

“내 말이. 그런데 확실히 우리가 현장 분석하는데 도움이 돼.”

“그렇긴 하죠.”

“일거리가 늘어나긴 했는데, 그만큼 우리도 신뢰를 높일 수 있으니까 다들 열심히 해.”

이덕찬 반장이 즐겁게 식사하는 반원들을 둘러보며 흐뭇해했다.

“저도 좋네요.”

태건도 자신의 옥상이 일에 지친 대원들에게 잠시나마 쉴 수 있는 휴식처가 될 수 있어 좋았다.

다음날.

TV 뉴스에 건물 방화 사건이 보도됐다.

-다음 뉴스입니다. 특수소방단의 현장조사반이 집념의 조사로 방화를 밝혀내 화제입니다.

이내 화면이 바뀌며 수원 건물 화재 현장이 비춰졌다.

그 화면 속에서 내레이션이 들려왔다.

-수원의 어느 화재 현장. 이곳의 화재는 자칫 기계과열로 인한 사고로 결론 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수소방단의 현장조사반, 날카로운 시선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내레이션 후 이덕찬 반장이 화면에 떡하니 잡혔다.

-이번 조사 결과는 조사반원들의 끝없는 의심과 끈질긴 탐구열이 더해진 결과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 전에 그런 의구심을 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라텔 단원들의 출동영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부상 중임에도 현장 조사에 적극 협조해준 강태건 부단장의 도움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덕찬 반장의 인터뷰가 끝난 후였다.

이번엔 고수현이 TV에 얼굴이 꽉 차게 떠올랐다.

흠칫.

놀란 태건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읊조렸다.

“선배가 거기서 왜 나옵니까?”

그 궁금증을 들은 듯이 고수현이 입을 열었다.

이젠 카메라에 좀 익숙해졌는지 나름 화면발 잘 받는 각도까지 계산된 모습이었다.

-지난 인제 폐광 출동 이후 저희 라텔은 모든 단원이 바디캠을 출동필수품으로 포함시켰습니다.

-모든 출동을 촬영하며 그 영상은 대외비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박규영 본부장이 얼굴을 내보였다.

“어라? 본부장님까지?”

태건이 놀라는 거와 별개로 인터뷰는 진행됐다.

-일선의 안전센터에서는 이미 적용 중에 있습니다. 그 영상들은 교육자료 및 다각도로 활용할 수 있으며…….

박규영 본부장은 좋은 의미만 말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 혹은 억울한 일을 방지할 목적도 담겨 있음을 은연중 시사했다.

다음 뉴스는 방화범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번 방화 사건은 건물주 최 모 씨의 소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단독 범죄가 아니라 공범이자 공모자인 김 모 씨가 뒤에 있었습니다.

-현재 조사 중인 두 사람은 서로를 이 범죄에 끌어들이고 사주했다며 팽팽하게 대립 중으로 알려져…….

쭉 들어본 태건은 미간을 좁히며 짜증을 뿌렸다.

“그러니까 둘이 공모한 건 맞는데, 서로 남 탓 중이다? 웃기고 있네.” 

며칠 후.

태건은 한적한 전원카페에 자리했다.

앞에는 이덕찬 반장과 오재현 실장이 함께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태건의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했다.

“이 자리가 어떻게 마련된 겁니까?”

그 질문에 대해 이덕찬 반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방화사건 이후로 가끔 만났어.”

“두 분이요?”

“아무래도 업무협조할 일이 좀 있다 보니까 말이야.”

오랜 시간 반목한 사이다 보니 계면쩍어했다.

그건 오재현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엄청 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은 합니다.”

“뭐 서로 돕고 사는 게 좋기는 하지요.”

“그러니까요.”

쭈욱.

오재현 실장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음료수를 들이켰다.

그런 그들의 어색함보다 태건은 자신의 궁금증을 더 풀고팠다.

“그래서 저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겁니까. 뭐 중재해 드려야할 게 있습니까?”

“그건 아니고, 중간보고 비슷한 거랄까.”

“저한테요? 굳이?”

태건은 갸웃거렸다.

그런데 꼭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닌 모양이다.

텁.

오재현 실장이 음료수 잔을 내려놓았다.

동시에 어색함을 날리고 진지한 분위기로 돌변했다.

“크흠.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서효준 씨 유가족에 대해서는 저희 회사측에서 소정의 보상금을 지급했습니다.”

“그쪽 보험과는 무관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건물 화재 보상금은 지급무효가 됐습니다. 그 금액의 일부를 위로금으로 전달했습니다. 솔직히 이미지 메이킹적인 부분이 좀 있지요.”

오재현 실장은 껄끄러운 말까지 시원하게 내뱉었다.

“그, 그렇습니까.”

태건이 놀라워할 정도였다.

그에 대해 이덕찬 반장이 한 마디 했다.

“내가 푸시 좀 했어. 뉴스에서 그렇게 떠들었잖아.”

“네, 저도 봤죠.”

“부단장까지 나서고, 본부장님까지 인터뷰한 게 다 알려졌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쪽은 뭐냐고 말이야. 내 말이 맞잖아. 안 그래요?”

이덕찬 반장의 말에 오재현 실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반장님 말씀대로 저희가 가만히 있어서 좋을 게 없을 거 같아 한 숟가락 얹었습니다.”

“그거야 그러실 수 있지요. 그런데…….”

태건은 아직도 이런 대화 속에 자신이 껴야하는 이유에 대해 감을 잡지 못했다.

그걸 이덕찬 반장이 말했다.

“그러면서 몇 번 더 만나고, 더불어 조사 내역도 공유하게 됐어.”

“저희도 기초조사 자료에 필요한 부분을 제공해 드렸고요.”

현장조사와 보험사간의 연계가 이뤄지고 있단 소리였다.

이건 단순히 보상의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다.

사건사고의 진실을 밝히는데 크게 도움이 될 일이다.

태건도 그런 그들의 협력에는 반색했다.

“그건 참 좋은 일이네요.”

그런데 이덕찬 반장의 반응이 조금 무겁게 변했다.

“그러면서 이상한 사건들을 좀 찾았어.”

“이상한 사건이요?”

“회식 때 내가 말했잖아. 요즘 계속 현장 영상 분석한다고 말이야.”

이덕찬 반장이 언급하자 태건은 바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럼 방화 건이 더 있단 말씀이십니까?”

“몇 건은 잡았고, 몇 건은 조사 중이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건은 눈을 굴리더니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그럼 그 모든 방화들이 연관점이 있을 수도 있단 겁니까?”

“그럴 수도 있단 게 나랑 오 실장 생각이야.”

“그 기소된 공모자를 파보면 되잖습니까.”

태건이 방법을 제시했지만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나오는 게 없어.”

“자신은 그저 돈이 필요했단 진술만 반복하고 있답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온 모양이었다.

오히려 태건은 그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럼 그 공모자가 그런 트릭을 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었답니까?”

“그건 확실하지 않아. 어디 영화에서 본 걸 따라했단 식으로 진술했다고 해. 너무 틀에 박힌 핑계야.”

“최 사장은 동네 유지라 범행 타깃으로 택했답니다. 솔직히 너무 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번갈아 말했다.

태건도 그들의 분석에 한 표를 더 했다.

“진짜 어디서 시나리오라도 받은 거 같이 진술하네요.”

“그래서 너무 이상해.”

“……잠시만요.”

척.

태건은 손을 뻗어 두 사람을 막은 뒤 홀로 생각에 잠겼다.

‘이런 비슷한 케이스가…….’

데구루루.

스모크점퍼 때 경험인지, 아니면 교육 과정이었는지 아무튼 있었던 거 같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미간을 잔뜩 모으며 생각하던 중이었다.

번뜩.

이내 태건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반장님, 최근에 저희들 출동이 좀 줄었습니까?”

“약간.”

“실장님 쪽 화재접수 건은 어떻습니까?”

“저희도 미미하지만 소폭 줄은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대답에 태건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쓰읍.”

“뭔데?”

“확실하지는 않은데 예상이 맞는다면 꼬리를 자른 거 같습니다.”

모호한 태건의 말에 둘 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꼬리를 잘라?”

“공모자 말고 누가 더 있단 말씀이십니까?”

연속적으로 질문이 들어왔지만 태건은 차분하게 정리해 답했다.

“미국에 SNS로 활동하는 방화조직이 있었습니다.”

“엥?”

“점조직으로 활동해 보스가 누군지 모르고, 조금만 노출되고 꼬리 자르고 잠수를 타버립니다.”

태건이 거기까지 말하자 이덕찬 반장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놈들이 한국에 왔다고?”

“글쎄요. 제가 그놈들이라면 굳이 한국에 올까 싶습니다만.”

태건은 그 부분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이덕찬 반장도 수긍하는 쪽으로 바로 노선을 변경했다.

“하긴 큰물에서 놀다가 굳이 도망갈 데 없는 한국으로 올 이유가 없지.”

“시간을 좀 주십시오. 제가 좀 조사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그 얘기를 들으니까 더 찝찝해지네.”

이덕찬 반장이 씁쓸해 했다.

그에 대해 태건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 공모자가 웬만한 아이큐가 아니라면 그런 트릭을 생각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날 밤 허위신고가 부쩍 늘어난 연관점만 봐도 그렇지.”

“이러나저러나 이쪽에서 화재에 주시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조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태건이 조심스레 예측했다.

집으로 돌아온 태건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깊숙이 밀어둔 캐리어를 오랜만에 끄집어내 열었다.

덜컥.

그 속엔 독특한 소방제복이 담겨 있었다.

스모크점퍼.

공수 소방대의 제복이었다.

“오랜만이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열어보는 거였다.

그러나 그때를 추억하기 위해 꺼낸 건 아니었다.

필요한 건 낡은 수첩이었다.

턱.

수첩을 챙긴 태건은 미련 없이 캐리어를 다시 닫고 깊이 밀어 넣었다.

이내 거실 소파에 자리한 태건은 수첩을 펼쳤다.

그 속엔 미국에서 맺은 인연들의 연락처가 모두 적혀 있었다.

사락사락.

몇 장을 넘긴 태건은 누군가를 발견하고 쓴 얼굴로 변했다.

-와튼 국장.

플로리다 주립소방센터의 대외협력국장이다.

상당한 요직이지만 태건에겐 다르게 기억되는 인물이었다.

“입이 좀 가벼운데. 할 수 없지.”

중요한 일이라 씁쓸함을 머금고 휴대폰을 들었다.

뚜루루.

신호가 가더니 이내 착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헬로우?”

상당한 중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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