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망토를 입은 남자 (2) (14/38)


13화. 망토를 입은 남자 (2)
2023.02.1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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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가빠지려는 호흡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크게 숨을 쉬었다간 소리가 날 테고, 남자가 이쪽을 돌아볼 것 같았다. 그래서 눈이 마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상상하기 싫었다.

그사이, 남자는 기괴한 뒷모습으로 흥얼대며 테이블 가득 놓인 물건을 매만지고 있었다. 커다란 칼과 톱이 보였다. 그 옆으로는 뭔가를 긁어내기에 알맞은 꼬챙이도 놓여 있었다.

요리 도구?

아니다.

저건, 수술 도구다. 사람의 몸을 찢고, 자르고, 떼어내고, 꿰매는 용도로 쓰이는 물건들이다. 그러니까 저 남자의 등에 매달린 기괴한 팔다리들이 전부…….

‘우읍.’

서슴없이 도착한 끔찍한 상상의 영역 끝에서, 나는 치미는 욕지기를 느껴야 했다. 비로소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속은 거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물에 걸린 거다.

남자는 처음부터 섬뜩한 목적을 품고서 우리에게 접근했고, 유혹한 거였다. 그 끝에 우리는 순진하게도 남자가 건네주는 음식을 먹고 잠들어 버린 거였겠지. 덕분에 이제는…….

‘여길 빠져나가야 해.’

혼자 흥얼거리며 알 수 없는 물약을 마시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숨을 골랐다. 이곳에 계속 있다간 저 수술 도구에 온몸이 찢길 거다. 남자의 등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깃덩이 중의 일부가 되겠지.

그건 싫다.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나는 행여나 남자가 눈치챌까 신경쓰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나처럼 테이블에 엎어져 잠든 세나와 다비, 요재, 루이샤가 보였다.

테이블 위에는 먹다가 남긴 스프와 빵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우린 저걸 의심 없이 먹다가 잠이 든 거구나.

그때였다.

다른 아이들처럼 엎드려 있던 루이샤가 꿈틀, 움직였다. 슬며시 고개를 들며 나를 쳐다보았다. 잠에서 깬 걸까. 아니었다. 자다가 깬 멍한 눈빛과 달랐다. 루이샤는 오히려 내게 눈치를 보내기까지 했다.

‘……조용히 해. 들키면 끝장이야.’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뻥긋뻥긋. 나도 눈짓과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떻게? 넌 잠들지 않았던 거야?’
‘당연하지.’

루이샤가 오드아이를 빛내며 콧잔등을 찡그려 보였다.

‘난 멍청한 너희완 달리 처음부터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음식을 먹는 척만 했고.’
‘그럼 이제 어떡하지?’

저 남자를 습격해야 할까. 뭔가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머리를 때리면 어떨까. 잠깐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한데 그때였다.

쾅쾅쾅!

돌연 누군가가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도, 루이샤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 서슬에 남자의 흥얼거림도 멎었다.

“누구야?”

남자가 물었다.

오두막 밖에서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저요.”
“흐음. 이 목소리는, 조조바?”
“네. 좀 나와볼래요? 할 말이 있으니까.”
“하! 감히 네가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꺼져, 난 바쁘니까. 아직 수술도 한번 해보지 못한 애송이 주제에.”
“네. 애송이라서 죄송하네요. 그래서 당신을 찾아온 거예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당신한테 배우고 싶다고요.”
“뭐?”
“당신이 우리 일족 중에서 가장 수술을 많이 치러낸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하, 전에는 죽어도 싫다더니? 나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고, 내 모습이 혐오스럽다고 하지 않았나?”
“그땐 제가 어렸으니까요.”
“이젠 철이 드셨다?”
“그렇게 봐주시면 고맙고요.”
“……쯧. 알았다.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 서슬에 남자와 눈이 마주칠 뻔했다. 나는 황급히 테이블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척을 했다. 가늘게 뜬 실눈 사이로 망토를 챙겨입는 남자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걷는 모습도, 오두막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도 모두.

“그래, 시종일관 고고하게 콧대만 드높이던 조조바 양이 나한테 가르침을 받고 싶으시다? 어디 그 말이 진짜인지 확인부터 해봐야겠는데.”
“달리 확인할 게 있나요? 제가 여기에 왔고, 당신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걸로 말 다했지요.”
“하지만 말이야. 세상에는 거짓말이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혼자서 온갖 깨끗한 척은 다 하던 네가 갑자기 이렇게 날 찾아오면 말이야, 내 입장에선 의심부터 드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믿을 수 있게 하라는 건가요?”
“바로 그거지.”
“제 오두막에 실험체를 잡아서 재워뒀어요. 운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그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당신처럼 수술을 해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처음이라서.”
“……진짜인가?”
“궁금하면 같이 가서 보실래요? 도움과 가르침도 주실 겸.”
“그렇다면…… 그래. 확인부터 해보도록 하지.”
“좋아요. 이쪽으로.”

남자와, 조조바라 불리는 여자아이.

둘의 목소리가 차츰 멀어져 갔다.

동시에 나는 직감했다.

……이건 기회다!

나도, 루이샤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거의 동시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는 재빨리 오두막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마침 문이 살짝 열린 채였다. 문틈으로 밖을 살폈다. 깜깜한 어둠 속에 따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발소리나 말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서. 서두르자.”
“응!”

나는 요재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요재와 세나, 다비 모두가 팔다리가 묶여 있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도 밧줄로 묶었다가 피부가 쓸리거나 상하는 걸 염려한 거겠지. 그리고 자신의 약물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그 기괴한 남자는.

나는 요재의 어깨를 흔들었다.

“요재야? 일어나. 얼른. 눈 좀 떠봐.”

그런데 어쩐 일일까. 요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깊게 잠든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혹시나 싶어서 더 강하게 흔들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약에 너무 취해 있어.’

아까 남자가 준 음식을 급히 먹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들 너무나 배가 고프고 지쳐 있던 터라,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다들 약에 잔뜩 취해 버린 거겠지. 그나마 속이 불편해서 음식을 깨작깨작 먹은 내가 일찍 깨어난 것일 테고.

“어떡하지?”

나는 당황해서 물었다.

루이샤도 당황한 건 마찬가지였다.

“깨물어도 일어날 기미가 안 보여. 큰일이네, 이거.”

막막해졌다. 한편으로는 무력감이 느껴졌다. 만일 내가 요재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 잠든 아이들을 하나씩 업고서 오두막 멀리 도망칠 수 있을 텐데.

그때였다.

벌컥!

오두막 문이 열렸다.
아무런 기척이나 예고도 없었다. 당연히 숨을 겨를도 없었다.

“……!”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게 문쪽을 휙 돌아보았다. 덕분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와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오두막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창백한 피부와 검정색 눈동자, 짧은 머리칼을 지닌 아이였다.

“아…….”

들켰다.
이럴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나는 반사적으로 테이블 위를 쓸어보았다. 남자가 남기고 간 갖가지 수술 도구가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 무기로 쓸만한 거라면…….

“잠깐만.”

짧은 머리칼의 나긋한 말투가 날 멈춰 세운 것은, 내가 수술용 칼을 집어 들기 위해 손을 뻗으려던 때의 일이었다.

“싸우려는 게 아니야. 널 해치려는 것도 아니고.”
“…….”

하지만 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꽉 쥔 수술용 칼을 챙기고서 재빨리 테이블 뒤로 몸을 옮겼다.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둔 짧은 머리칼의 아이가 이쪽을 향해 서글픈 눈빛을 보내어 왔다.

“날 못 믿는구나.”
“당연하지.”

나도 모르게 대꾸했다.

“아까 네 목소리 들었어. 조금 전에 여길 찾아왔었잖아, 너. 그 남자를 데리고 나갔잖아. 맞지?”
“…….”

확실하다. 목소리가 똑같으니까. 그러니까 저 아이가, 조금 전에 오두막을 찾아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아이인 거다. 이름이, 조조바라고 그랬던가.

“그런데 널 어떻게 믿지? 난 다 들었다고. 실험체를 잡아서 오두막에 재워뒀다며. 아까 그 남자처럼 수술을 능숙하게 하고 싶은데, 처음이라서 수술을 배우고 싶다고 그랬잖아. 그 끔찍한 괴물한테.”

나는 짧은 머리의 아이, 조조바를 몰아세우듯 따졌다. 한편으로는 오두막 문과 창문을 연신 곁눈질로 살폈다. 이러다가 기괴한 남자가 돌아오면 어떡할까. 싸워야 할까. 그럼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보호하지.

고막에까지 들릴 정도로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속에서 나는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고 애를 썼다. 루이샤도 그런 내 곁에 나란히 서서 송곳니를 드러내며 하악질 소리를 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조조바는 우리의 태도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내가 내밀고 있는 수술용 칼과 루이샤의 송곳니가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것일까.

돌아오는 조조바의 대답은 태연했다.

“아까 그 남자와 나눈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어. 그래야 꾀어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
“…….”

꾀어낸다니, 그 남자를?

“어쨌건 덕분에 그 끔찍한 작자는 지금 내 오두막에 갇혀 있어. 밖에서 문을 잠갔거든. 하지만 시간이 많은 건 아냐. 우선 이것부터.”

조조바가 걸치고 있던 풍성한 망토 안쪽을 뒤적였다. 이내 그 안에서 꺼내는 것은…….

“잠든 사람은 깨우고, 깬 사람은 재우는 물약이야. 네 친구들에게 이걸 먹여. 1분 이내로 정신을 차릴 테니까.”
“…….”
“그리고 도망쳐. 그 남자가 돌아오기 전에.”
“…….”

나는 조조바와, 그녀가 내미는 약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째서? 왜? 우리를 도와주려는 걸까.

‘저걸 받아야 할까.’

나는 순간 번민했다.

마음 한쪽에서는 얼른 저 물약을 받으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생각 같아선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반대편에서는 저 아이를 믿지 말라는 외침이 울려댔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널 어떻게 믿지?”

나는 수술용 칼을 더욱 단호하게 내밀며 물었다. 저 아이를 믿을 수 없다. 오늘 처음 본 사이다. 게다가 저 아이는 아까 그 남자와 다정하게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냥 우연히 너 먼저 오두막에 돌아왔다가 깨어 있는 우리와 마주친 거겠지. 그런데 우리가 둘이라서, 숫자가 더 많아서, 우리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면서 술수를 쓰는 거 아닌가?”
“……정말 그렇게 생각해?”
“지금은 의심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루이샤를 힐끗 돌아보았다. 루이샤도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생각인 거다. 아무래도 확인을 해봐야겠다.

“그러니까, 우리가 널 믿을 수 있도록 증거부터 보여줘.”
“어떻게?”

조조바가 물었다.

나는 한결 단호해진 목소리로 조조바에게 말했다.

“그 물약을 너부터 마셔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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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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