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3. 이사 (3/21)



〈 3화 〉3. 이사

“아저씨, 여기 타일에 조금 금이 가 있어요. 구석에 곰팡이까지 나 있고.”
“…”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하고 그 아이, 여름이와 나는 부동산이 소개해 준 집들을 하나씩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 인테리어, 조금 괜찮은 것 같네요. 그렇지 않나요 아저…응…?”

킁킁
부스럭
뿌득

“이상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바닥 아래가 전부 쓰레기로 채워져 있잖아… 가격이 싼 이유가 있었구나.”
“…”

내부만 멀쩡하면 바로 입주할 계획이었건만, 여름이가 너무나도 철저하게 집안을 검사해준 덕에 반나절이 지나도록 아직까지도  집을 정하지 못했다. 성실하구나, 어쩌면 가출 소녀라는 타이틀만으로 이 아이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가진 건지도 모른다.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판단하고, 그리고 멋대로 실망하고.
스스로가 가장 혐오하는 사고방식이었을 텐데.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냥. 꼼꼼하게 보는 구나 싶어서.”
“도움…되고 있는 건가요.”

도움이라. 왜 나에게 그런 말을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구나.
아니, 알고 있나…

“그래, 네가 없었으면 사기 매물에 속을 뻔했다.”
“…”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이고 손만 꼼지락 대는 소녀, 여름이. 이게 네가 원하던 대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 너의 마음이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간절히 원했는데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으니까.

“다음 집으로 가자.”

쓸데없는 생각으로 지체할 시간은 없다.
아직도 봐야 할 매물이 산더미고, 적어도 오늘까지는 집을 찾고 싶었다.

그래. 오늘까지는.
집만 구하면 이 아이와도 오늘까지만, 이다.

“아, 네. 네.  집으로 하려구요. 네. 이미 집주인이랑도  이야기 끝내놨고, 네. 옮길 짐도 없어서 현시간부로 바로 살게 됐습니다. 네, 네. 그럼수고하세요.”

고생 끝에 찾아낸 집을 집주인과 계약을 완료하고 그것을 부동산에도 보고한다.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조그마한 언덕을 올라가야 나오는 작은 오피스텔. 입지는 조금 안 좋다고 할 수 있었지만 가격도 합리적이고 신식 건물이 아님에도 내, 외부 가릴 것없이 관리가 잘 되어 있었으며 주변에 편의점이나 식자재 마트등이 존재해 생활에는  불편이 없으리라 판단했다. 무엇보다도 조용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저녁은 중국집으로 하려고 하는데, 먹고 싶은 메뉴 있어?”
“…제가 먹어도 되는 거에요?”
“그래. 그게 대가였잖아.”
“그럼 짬뽕으로 할게요.”

스마트폰을 조작해 배달앱을 실행시키고 주문을 해나간다.

“짜장면 하나, 짬뽕 하나. 그리고 탕수육 하나. 이렇게 한다.”
“…네.”

이제부터 여기서 사는 건가. 나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며 오피스텔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와중 그 아이가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에요?”
“…”
“왜 이삿짐이 하나도 없어요?”
“…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걸까.

“평일인데 출근도 안하시고, 대학생 같지도 않아 보이고, 그런데도 돈이 없으신 같지도 않고.”

사실 내가 저 아이의 입장이여도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찜질방에서 구해준 것은 그렇다쳐도, 초면인 여자아이에게 이상한 조건을 붙여 방을 구해주고 밥을 사주고 지금 이렇게  방에 있는 것이 결코 평범한 상황은 아닐 테니까. 저 아이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알 수 있을리 없으니까.

어차피 곧 끝날관계, 의미 없는 질문이다.
…그래도 저 정도의 질문에 답을 해준다고 해서 무언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

“백수야. 어제 퇴사했거든.”
“네? 그럼 돈 아끼셔야죠. 다시 전화하셔서 탕수육은 주문 취소하시는 게 어떨까요.”
“…”

…돈이라. 당분간은 걱정 없겠지만 확실히 지출을 아끼긴 해야겠지.
그런데 기껏 생각해낸 방안이.

“왜 그렇게 보는 건데요…”
“됐어. 그럴 여유는 있으니까. 게다가 기껏 생각해낸 게 탕수육 주문 취소라니. 짬뽕은 먹고 싶은가 보지?”
“…배, 고프다고요.”

꼬르륵

“아침만 먹고 계속 집 보러 다니느라 밥도 제대로  먹었으니까 당연하겠지. 지금은 그런 거 신경쓰지마.”
“그치만.”
“네가 꼼꼼히 봐주지 않았으면 사기 매물에 당했겠지.”
“네?”
“탕수육은 그 성과금 같은 거야. 그냥 먹어.”


동정심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나.
나는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으니까.
다시는.

“배달 왔습니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어제도 말했지만 천천히 먹어도 돼. 그러다 체한다.”
“알았어요…그, 맛 있어서요. 탕수육. 튀김 옷도 바삭바삭하고 소스도 맛이 괜찮아서.”
“…탕수육은 주문 취소하라며?”
“그러니까 그건 이제 그만 하시라고요…

저 조그마한 입으로 뭐가 그리 맛있다고…
사준 입장에서 보람 정도는 있는 걸까.

…너 미쳤구나, 유도진.

“아저씨, 오늘부터 바로 여기서 주무시는 거예요? 이불이나 침대 같은 것도 없는데.”
“어. 그냥 편의점 가서 신문지나 대충 깔고 잘려고.”
“…이상한 고집 부리지 마시고 이불이나 사러 가세요. 감기 걸린다고요.”
“너는.”
“네?”

 하는 거야.
집도 구했고, 이제 쫓아내면 그만이잖아.
 이상 저 아이로 내가 이득 볼 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잖아.

“내가 이불을 사러 가면 너는 찜질방으로 돌아 가는 건가?”
“…아마도요.”
“내일 식사는 어떻게 해결할 건데?”
“몰라요.”
“언제까지  생활을 계속  건데?”
“…”

저런 아이, 내  바도 아니고 그럴 권리도 없을뿐더러…
설령 내가 신경 써준들 해결될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도 아니야.
정신 차려.

…머리가 아프다.

너도 알잖아. 골치 아파지는 건 너야. 이 아이의 보호자도 아니고, 미성년자에, 가출 청소년. 부모가 신고하기라도 하면 청소년을 유괴한 혐의로 경찰에 넘겨지겠지. 그렇게 되면  인생은 완전히 끝장날 것이다.모처럼 퇴사를  것도, 그녀들과 관계를 잘라낸 것들도... 모두, 물거품으로.

디메리트 밖에 없다. 그러니까   아니야. 저런 아이.

“싫엇…싫다고…! 이제는 싫어! 누군가, 제발.”

뭐가 싫다는 걸까. 저 아이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미안해…도진아.”
 외침을 듣고 머리 속에 조금, 잊고 싶었던 따스한 그녀의목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분명 미쳐버린 거겠지.

“야.”
“…왜요.
“나는 뭐가 좋은 이불인지 몰라.”
“…?”
“가구 같은 것도 볼  몰라. 식기도, 냉장고도. 하나도  줄 몰라. 이 집을 가득 채워야 하는데 하나도 볼 줄 모른다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동정심이 아니다.
이건 결코 동정심이 아니다.
어제와 같은 비즈니스 관계의 연장이다.
계약을 아주 잠시동안 연장할 뿐이다.

“도와줘. 오늘처럼.”
“…제가 왜요.”
“대가로 밥이랑 잘 곳을 제공해줄 테니까. 어제 같은 모텔방이면 괜찮겠지?”

위선이 아니야.

“…”
“…미안하다.”

이불을 사러 나가자.
싫은 일에서 눈을 감고 꿈 속으로 도망쳐서 전부 잊자.
지금까지 잔뜩 해왔던 것처럼.

“싫어요.”
“그래, 알고 있어. 이제 나가자. 나도, 너도 바쁘니까.”
“그게 아니라 모텔방에서 혼자 있는  싫다고요. 너무 조용해, 거기는.”
“뭐?”

…넌.

“무료로…선의로 도와준다는 사람은 잔뜩 있었어요.”
“…”
“밤이 되자마자 돌변한 사람도, 잔뜩.”
“뭐가 말하고 싶은 건데.”
“아저씨가 처음이라는 거예요.”

대체 뭐가 처음이라는 걸까.

“공짜로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해준 사람.”
“…”
“저는 아저씨 안 믿어요. 아저씨도 저를  믿겠죠. 하지만 저는 아저씨의 일을 도와줄  있고 그 대가로 밥과 잘 곳을 얻을 수 있어요.”
“너…”
“저는 저에게 득이 되니까 아저씨를 이용할 뿐인 거예요.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바로 도망갈 거고요.”

아아,
이건 그런 관계다.
지극히 이해타산 적이고 그것이성립되지 않았을 때 손쉽게 깨져버리고 마는…

“그래.”
“…네.”
“결정했으면 나가자. 좀 있으면 백화점 닫을  같고. 택시도 불러야 하니까.”

가뜩이나 도심에서 떨어진 곳인데 버스를 기다리다간 상당히 늦어버리고  것이다.

“…버스 타면 되잖아요. 돈을 조금 아끼시는 게 어때요.”
“돈은 많아. 얼마 전에 비트 코인도 대박이 났고, 택시 정도로 호들갑  수준은 아니라고.”
“…퇴사하셨다더니, 점점 실패한 아저씨의 전형 같은 말씀을 하시는 같은데요.”


“가자.”
“네.”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당분간은, 이 아이를 이용해서  빈집을 채워 나가는 것에 집중하자.
그런 생각이 조금 드는 저녁이었다.




*
머리가 아프다.
아파, 아파.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가련아, 그 새끼한테 연락 온 것 있어? 다솜이 언니, 민서 너희 둘은?”
“어, 없어요. 어제부터  숨도 안자고 계속 톡을 보내는데 1이 전혀 사라지지를 않아요. 전화도…”

어제까지… 아니,  새끼가  눈앞에서 하얀 봉투를 꺼낼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가서, 그래.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그 하얀 봉투가 사직서가 아니라 내가 줄곧 바래온 그것이었다면 더욱 행복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시발, 시발!

“우리집에도…어제- 안 왔구.”
“도진이 지금 어디서 추위에 떨고 있는 것 아니야? 짐도-  아이 짐도 전부 우리들 집에 있잖아. 어쩌면 찾으러 올 수도 있어. 그러니까 대문도 열고 왔는데… 아아, 도진이 밥은? 목욕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텐데. 흑, 도진아…도진아....”
“아윽, 진짜…”

도진이  새끼, 갑자기 회사는 왜 나간다는 거야! 사업도 본궤도에 접어들어 들었으니까 그때처럼 돈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이고,  배려해서 업무강도도 줄여줬는데. 애초에 너한테 많은 걸 바라지 않았잖아. 그냥, 회사에서 엉덩이만 붙이고 있으라고 했잖아. 집, 집도 우리가 다 준비해줬는데. 왜…

왜 또 나를…

“저기, 도진이 형 말인데요. 저희 연락처를 차단한 것 아닐까요? 그래서…”
“뭐? 가련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차단? 그 녀석이? 우리를?
말도 안 돼. 그토록 오래 지내 온 우리를 아무런 이유 없이 차단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게다가 짜증 나긴 하지만 그간 여동생처럼 여겨오던 가련이를 차단한다는  더욱 믿을 수가 없는 일이야.

그래, 영화 동아리때, 그 날 도진이가 동아리를 홍보하다 망신을 당했을 때부터…그 아이가 군대에 갔을 때도, 이 회사를 처음 만들었을 때도 잔뜩 잔뜩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낸 그 아이가 우리를, 나를 차단했을 리가 없어! 분명 바쁜 일이 생긴 걸꺼야. 응, 그냥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아이의 머리가 조금 냉정해진다면 다시…

다시?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이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인데… 오지 않는 걸까? 어제 밤, 민서의 집에 가지 않았던 것처럼. 그 아이가 없는 식탁, 그 아이가 없는 방, 그 아이가 없는 침대…그 날처럼… 그 아이가 곁에 있지 않은, 밤.

“…”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면 그 새끼, 분명히 모텔방에서 자던지, 그 망할 찌,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겠지. 호텔 데스크의 사람이 여자라면? 마스터키를 가지고 도진이의 방을 따고 들어가 몰래 유혹 한다면? 거, 겁탈한다면? 그렇다고 찜질방에 가기라도 했다면 다른 여자들이 그 아이를 가만히 두지 않을 텐데….

그 자식이,
다른 여자들을 덮친다면?

어딘가에서, 그 아이를 노리고 있을  된 여자, 아니 시발 년들…
…그년들과 어울리고 있을 그 새끼를 생각하니까,
반대로 뜨거워졌던 머리가 차분해져서.

“…차단했다면 번호를 바꾸면 돼.”
“네?”
“번호는 잔뜩 만들면 된다고. 뭣하면 휴대폰도 잔뜩, 잔뜩 사면 되니까. 내일 아침에 대리점이 열자마자 바로 가서…”
“좋아ㅡ.”
“알았어, 좋은 생각인 것 같아 설하야. 그 아이, 요즘 비트코인인지 뭔지 못된 거에 잔뜩 빠져서 휴대폰을  수밖에 없으니까. 계속 전화를 걸면 언젠가는 받아 줄거야. 실수로라도. 그, 그러니까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제처럼 밖에 나가서 도진이를 찾아보자. 경찰에도 신고하고. 나, 그 아이가 걱정되어서 정말, 다른 여자들이 그 아이에게 못 된 짓이라도 하면 어떡해.”
“마, 맞아요. 됐으니까 일단 나가자고요. 혀, 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짓이라도 하면 어떡해요.”

시발놈아.
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뭔가 위험한 일이라도 당한  아니겠지?
아니면 네가 무슨 일을 꾸미고라도 있는 거니?
 다른 여자 곁에 있는 거니?
퇴사한 것도 뭔가 사정이있는 거지?
또…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네 사표 따위 절대로 수리 안 할 거야.
너는 다시여기 와서 일하는 거야. 평소처럼…대학 시절처럼. 즐겁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우리가 찾아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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