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5. 휴대폰 개통 (2) (5/21)



〈 5화 〉5. 휴대폰 개통 (2)

“아저씨, 그냥 그렇게  끄고 있으면 안 돼요? 내일 오면 되잖아.”
“안 돼, 오늘은 중요한 날이야.”
“…쪽팔려.”

아무리 코인 하나가 대박이 나서 5년간은 먹고살 걱정이 없어졌다지만 돈은 벌 수 있을  더 벌어놓아야 한다. 음, 내가 이러는 도중에 벌써 조정이 끝나고 상승장으로 바뀌지는 않았겠지.

“그러고 보니 너는 가출했으니까 못 씻은 날도 많았을 것 아니야.”
“…아,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괜찮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하고 싶으신 거죠?”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뭐, 맞는 말이긴 해요. 근데 아까는 옆에 아저씨도 있었으니까. 뭔가  씻고 다니는 두 사람이 시식이나 하러 대낮부터 마트에 간 느낌이라 좀 그렇잖아요. 쪽팔리고.”
“확실히 그렇긴 하네.”

안 씻은 날이 많다라. 예상은 했지만 나름 오래 가출을 한 모양이군. 자세히 보니 입고 있는 옷도 보풀이 일어나 있고. 생각해보니 나도, 이 아이도 한 벌의 옷 밖에 없구나.

냉장고나 주방용품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우선  아이와 나의 모습부터 어찌하지 않으면 부끄러운 건 둘째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거나 신고를 당할 수도 있겠지. 내일 다시 나와서 생각해보자. 우선은 이 시끄러운 휴대폰과 전화번호를 바꾸는 것이 먼저다.

“근데 갑자기 휴대폰은 왜 사준다는 거에요. 고장난거면 아저씨 것만 사면 되잖아요.”
“...너 집에서 딱히 할 것도 없어 보여서. 나는  보호자도 신원증명자도 아니니 개통은 무리겠지만 공기계 정도는 사줄 수 있잖아.”
“그게 다예요?”

더 이상 말을 돌려 봤자 소용없을 것 같으니 그냥 솔직히 말하자.

“아까 마트에서 너와 잠시 떨어졌을 때 찾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알게 됐어. 그렇다고 너와 24시간 내내 붙어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공기계여도 와이파이나 핫스팟 정도만 연결하면 톡은 되니까 비상 연락망 같은 거다. 아직 너가 해줘야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으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어차피 수지타산이 안 맞으면 금방 끝날 관계에 비상 연락망 따위는 어불성설이 아닌가.

“…”
“사고 싶지 않으면 안 사도 돼.”
“…뭐 있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업무에 대한 보수기도 하고.”

그렇게 그 아이는 자신의 조그마한 손을 꼼지락거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게 득이 되는 것은 놓치지 마라. 우리는 그런 관계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약간의 거리를  채로 말없이 마트 근처의 휴대폰 대리점으로 이동했다.

딸랑딸랑

“어서 오세요. 무슨 사이트 보고 오셨나요?”
“음?”

사이트라.
요즘은 휴대폰 사는데 인터넷 사이트를 미리 보고 와야 하는 건가?

“콤뿌요.”
“아, 콤뿌. 거기 보고 오셨구나. 일단 앉으시죠.”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나는 마트에서 그랬듯 손가락으로 그 아이의 등을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어떻게 된 거야.
“됐으니까 앉기나 해요.”

콤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지 원.

“오늘은 제 단말기 및 번호변경…그리고 이 아이 공기계도 하나 사주려고 왔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정해두신 기종 같은게 따로 있나요?”

정해둔 기종이라. 그러고 보니 요즘 접었다   있는 폴더블 스마트폰이 나왔다는 걸 인터넷 광고에서  적이 있었다. 우선 그걸로 할까. 영화 감상하기에도 알맞을  같고. 펌웨어는 이제 조금 짜증 나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제건 그냥 제일 싼 걸로 사시고요. 아저씨는 뭐  건데요?”
“은하폰 폴더 2 사려고 하는데, 그건 왜.”

싼 거라. 역시 또 이런 곳에서 사양을 하는구나. 어차피 철저한 이해타산적 관계니까 너가 해준만큼 가져가면 될 텐데. 이런건 나만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마치 너에게 동정을 베푸는 것처럼. 그냥 사과폰 최신형을 하나 사주는  낫겠군.

“은하폰 폴더 2라...으음, 저희 통신사에서 또 고객님을 위해 좋은 혜택이 많이 나와 있거든요. 이러면 안 되는데 저희가 오늘은 서비스로 진짜 싸게 팔아 드릴게요. 어디 가서 소문내시면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대충 들어온 대리점인데 특별한 서비스까지 받고,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자, 우선 제휴카드를 보시면-.”
“됐고요. 지금 그  출고가 얼마인데요.”
“네, 네…? 어, 그게 저기 182만원…”

쿡쿡

“왜요?”
“…뭐하는 거야.”

저러다 대리점 직원이 기분이라도 상해 서비스가 물 건너가면 이쪽만 손해 보는  아닌가.

“아, 진짜 아저씨…예상은 했지마는, 하아.”
“왜.”
“그냥 가만히 계세요. 제가 다 알아서  테니까.”

그런 말을 하더니 대리점 직원과 알 수 없는 용어들을 꺼내가며 무언가 척척 이야기해 가는 여름이를 보고 있자니 새삼 휴대폰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려웠나 생각이 들었다. 으음, 이런 건 평소에 전자 제품을 잘 아는 가련이가 알아서 해줬으니까 몰랐단 말이지.

이제는 전부 내가 해야 할 텐데.
정말로 그 생활에 익숙해졌었구나.

“…총 120만원 되시겠습니다.”

여름이와 몇  이야기를 나눈 대리점 직원은 처음의  밝고 싹싹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계산기와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쩐지 그 분위기가 조금 불쌍하긴 했지만, 싸게만 살 수 있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저기요. 통신사 번호 변경도 한다니까요?  혜택은  빼는데요? 아저씨, TSK로 바꾸세요. 그게 제일 혜택이 많으니까.”
“그러자.”
“으윽…”

대충 그렇게 여름이의 도움을 받아 휴대폰도 새로 사고 번호 변경도 무사히 마칠 수 있겠다.

“…고객님, 이전 휴대폰에 남은 데이터들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사진이라던가, 연락처라던가. 원하신다면 이동해드릴 수도…”

음.
이미 몽땅 지워버리긴 했지만.

“필요 없습니다.”

번호 변경만 해도 될 것을 굳이 신규 단말기까지 사가며 바꾼 것은 그녀들의 흔적이 전혀 없는 새로운 휴대폰을 가지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 휴대폰은 내가 대학 시절부터  써온 것이어서…어딘가, 보고 있으면 자꾸만 그녀들의 얼굴이 생각나서 괴로웠으니까.

“아저씨, 제일 싼 거로 사달라니까 무슨 사과폰, 진짜…미안하게.”
“착각하지 마. 휴대폰을 싸게 사는 걸 도와줬으니까 그에 대한 성과금을 얹어서 지급했을 뿐이야. 처음부터 그런 조건이었잖아.”

그렇다고 믿고 싶다.

“성과, 요…제가.”

그 눈.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내 알바 아니다. 하지만 저 아이의 탁한 눈을 보고 있으면 회사에서 모든 것을 부정 당하고 언젠가는 인정받으리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커피 얼룩을 닦고 있던 내가 생각나서.

“응.”
“…”

나는 앞으로도 너에게  번이고, 몇 번이고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을 다시 찾을  있을까.

부우웅!
부웅!
부우우우우웅!

“…아저씨?”
“음…”

아마도 통신사에서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연락을 해준 것이겠지.
그럴 것이다.

[010-98XX-XXXX]
도진아
[010-98XX-XXXX]
번호 바꿨네?



[010-71XX-XXXX]
시발놈아! 차단도 모자라서 이젠 번호까지 바꿔?
[010-71XX-XXXX]
막 나가자 이거지, 지금?
[010-71XX-XXXX]
전화 받아. 뒤지기 싫으면

우우웅
[전화 - 010-71XX-XXXX]

이상하군.

“어…아저씨,  휴대폰 터지려고 하는 데요?”
“…”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번호를 바꿨다. 그러면 된  아닌가.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알아낸 거지.

“형, 형은 어느 사이트건 맨날 똑 같은 아이디 똑 같은 비밀번호를 쓰시네요. 이거 위험하다니까요. 진짜 이런 것도 모르는 건가.”
“귀찮아서. 다음에 바꿀게.”

확실히 이런 기억이 있었지.

“가련아, 여기 주민등록증.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 테니까 너가 좀 등록하고 있어.”
“네? 그런 것 필요 없는데요.  주민등록번호 9XXXXX-1XXXXXX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럼 됐어요. 제가 알아서  테니까 갔다 오세요. 3개월 맞죠? PT안하고 사물함 쓸 거고."

이런 기억도.

아.
번호 변경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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