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7. 상륙 (1) (7/21)



〈 7화 〉7. 상륙 (1)

“도진아, 도진아…!”
“누나.”

멀리서 내 얼굴을 인식하자마자 달려온 그녀, 다솜이 누나는 그대로 나를 포옹하더니 이곳이 도심 한복판이라는 것도 잊은 듯이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한국 남성의 평균 키를 상회하는 180cm의 큰 키와 규격 외의 풍만한 몸이 내 몸을 압박하는 게 느껴져 조금 숨이 막혔다.

“어디에 있었던 거야…어디에, 도진아…보고 싶었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야, 누나.”
“아까 들은  목소리가 주변 물체에 반사되어서, 그 파장이, 네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서…그래서.”

항상 들어오던  말. 다솜이 누나는 그냥 아까 내가 가련이와 전화했을 때, 주변의 환경음, 특히 휴대폰 대리점 특유의 홍보 멘트를 듣고 내가 있으리라 추측되는 곳들을 일일히 다 뒤져봤던 것이리라. 파장 이야기는 그저 누나의 착각에 가깝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는 언제봐도 경이롭긴 했다.

“도진아, 꼴이 이게  뭐야. 씻지도 않고 이렇게나 잔뜩 더러워져서…옷도…”
“조금 일이 있어서.”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제 집에 가자. 도진아. 내일 출근도 해야지.”

더럽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씻지도 않은 내 머리를 그 자애로운 손길로 만져가며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최근 내 스스로 해결해야하는 머리 아픈 일들을 잔뜩 겪은 내 상황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아 약간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래, 도진아. 서 있지만 말고 얼른 가자니까…”
“나 퇴사 했잖아.”

대학 시절부터 주변을 챙기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개개인의 개성이 강해 자칫하면 무너질 수도 있었던 우리의 영화 동아리를 하나로 뭉치고 지금의 뮤지엄까지 이끌어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당초 내가 동아리를 홍보하려다 망신을 당한  날도 다솜이 누나가 먼저 손을 내밀어 줬기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니. 그야말로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 그 자체였다.

“무슨 소리야,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자.”

그 가느다란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힘이 내 팔을 잡아당긴다. 자애로웠던 그녀의 손길은 이제 폭군과 같이 변해 결정을 재촉하고 있었다.

“누나, 아파.”
“그건 도진이가 누나 말을 안 듣고 계속 서 있어서 그런 거잖아. 빨리 가자. 그러면 다 해결될 테니까.”

그녀는 언제나 타인을 신경 써준다. 피 한 방울 섞인 나를 대할 때 조차도 마치 친동생을 대하듯.  모든 것을 부정당했던 뮤지엄에서도 누나만큼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욕설을 퍼붓거나 무능하다고 매도하지는 않았었다. 단지,

“손 놔줘. 다 끝난 이야기야. 나는 누나가, 그 사람들이 싫어서 그 곳을 나온 거니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누나는 이해가 안 돼. 우리 그렇게나행복했잖아. 재밌었잖아. 그런데 왜 그런 나쁜 말을 하는 거야…”

누나와의 생활을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그 생활이 행복했다고?”
“응, 매일은 아니지만 일어나면 옆에 귀여운 도진이의 얼굴이 있고, 회사에 가서도 하루종일 너의 얼굴을  수 있고 네가 그 조그마한 손으로 나의 어깨를 정성스럽게 두드려 주고…밥도, 영화도. 그리고 가끔 쇼핑도 같이 나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꿈만 같은 생활이었어. 너도 좋아했잖아, 도진아.”

저런 그녀의 모습이, 내가 회사를 떠난 이유기도 했다.

“누나는 날 좋아하는 거야?”
“으, 응? 어…조, 좋아해. 좋아하지. 가족으로서, 사랑스러운 동생으로서. 너는 누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모르니까…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자.”

그녀와 말을 하고 있으면 분명히 둘이서 말하는 것일 텐데도 고독했다. 침입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거대한 성벽 앞에서 나 혼자 이야기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그것이 답답했다. 저 눈은, 날 보고 있다고 말했지만 날 보고 있지 않았다.

“…”
“도진아,  요즘  이상해. 누나가 못 본 사이에 못  친구를 만나거나 이상한 놀이라도 한 건 아니지…?”

팔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아귀 힘이 한층 더 강해진다.
이제는 정말로 아프다.

그 눈은 날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내면 속에 만들어진 이상적인 나를 보고 있어서,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다솜이 누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무한한 애정을 나에게 쏟아주지만 그게 날 위한 애정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누나 자신을 위한, 본인의 이상적인 동생을 만들기 위한 그런 정성.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녀의 혈육이 아닐뿐더러 남동생 역할은 더욱더 사절이었다.

“아파.”
“도, 도진아.”

팔이 부러져라 잡고 있던 그녀의 손아귀를 약간의 힘을 줘서 밀어낸다. 그것을 인지하자마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누나. 저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 동안은 누나가  하든 그냥 넘어갔다. 어찌됐건 그 모든 것은 날 위한 애정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당신 가족도 아니고 남동생도 아니야.”
“왜, 왜 그래 도진아. 왜…왜 그런 심한 말을…”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의 도전 욕구를 거세시키고 판단에 의문을 품게 만들며 그녀들의 지시에 복종하도록 만든 것은 평소 그녀가 나에게 해주던 말들과 조언의 영향이 컸다.  날도, 내가 계약을 따왔을 때도 쓸모없는 짓이라고 치부한 건 그녀다. 욕설과 비꼼은 일체 없지만 그녀 앞에서 나는 언제나 지켜줘야 할 무능한 애완견으로 전락하고 말아서.

“프라모델? 이런 애기들 취미는 다 큰 어른이 하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버릴게?”
“도진아, 그런 옷 입지말고 이거 입어. 이게 너한테  어울리니까…아으, 보기 좋다.”
“도진아,  영화는 네가 해로운 영향만 미칠 것 같아. 이런 것 보지 말고 누나랑 다른 영화보자?”

“….잘 됐네, 도진아.”

그게 화가 났다.

“자, 장난은 그만 치고 이제 집에 가서 영화 보자. 자, 오늘 누나가 설하한테 말해서 우리집에 올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너가 좋아하는 음식도 판타지 영화도 잔뜩 준비해 놓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어?”

다 알고 있으면서.

“무, 무슨 소리야. 너 판타지 영화 좋아하잖아. 그래서 항상 우리 집에 왔을 때도 그런 것만…”

왜냐면 다른 영화를 보고 싶어도 당신이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판단한 뒤 결정했으니까.

“오늘은 호러 영화가 보고 싶어. 몇 년간 보고 싶었는데 당신 때문에  본 영화가 잔뜩 있거든.”
“도, 도진아!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마. 그런 쾌락과 자극을 위한 유혈이 낭자하는 영화가 보고 싶다니… 요즘 이상해졌다싶더니 누나 몰래 못된 짓을 하고 다녔던 모양이구나?”

특유의 발랄하고 하이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 앉아서 나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지치는 구나.

“뭐가 됐던 간에 지금 당신이 나에게 간섭할 일은 아니겠지.”
“아니야! 동생이 엇나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누나의 역할이잖아. 그, 그러니까…”
“미안, 오늘은 바빠서 이만 가볼게. 모레에 잠시 출근할 테니까 그때 이야기하자.”
“아, 안 돼!”

순간 팔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손목을 덮치더니 눈 앞에 서있는 그 여자는 나를 억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마치 산책 도중 키우던 강아지가 예정된 코스와는 다른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줄을 잡아당기듯.

“놔.”

그러나 회사라는 마지막 연결고리조차 끊어진 지금,
그녀가 내게 간섭할 수 있는 권리는 조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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