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9. 둑
그 여자, 이다솜을 뒤로하고돌아온 나의 집은 계약을 마쳤을 때 옵션으로 딸려 들어와 벽에 고정되어 있는 일체형 세탁기와 작은 스타일러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하얗고 텅 빈 네모난 상자 그대로였다. 조금 넓은 집을 구매하고 만 것일까. 혼자 사는 오피스텔인 만큼 그렇게 넓은 평수가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이야기였지만 그 아이, 여름이와 함께 매물들을 선별하고 보니 남은 것은 이 집 하나밖에 없었다.
“후우.”
바로 오늘 아침까지는 변변찮은 샴푸하나조차 없었던 집. 지금 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쓸모라곤 조금도 없는 옵션 상품들이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우스웠다. 그렇다고 저것들을 내일 동이 트자마자 벽에서 뜯어내 근처 고물상에 팔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그녀들과의 관계도 분명 이 집과 같았으리라. 내가 원하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음에도 어느새 집 안 한 구석을 채워버리고 이것은 우리들의 순수한 호의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받아들여라. 하는 식으로, 그러다가 이내 매각해버릴 수도 없게 되어버린…
“아저씨, 화장실 급하세요?”
“아니, 왜.”
“저 먼저 씻으려구요.”
“상관없어.”
그런 의미에서 저 아이를 이 집 안에 들인 것은 순수한 나의 의지였다. 무료로 제공된 옵션 상품이 아닌 순수히 내가, 나의 이득을 위해 데리고 온 것. 그것이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조금도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필요 없는 마음들을 호의라는 명목하에 억지로 강매당해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편안했다.
오늘 저녁은 간단하게 죽으로 할까. 아침 외에는 이렇다 할 식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내 속은 그 둘과 잠시 마주한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구토감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저녁은 죽이다.”
“알았어요.”
그 아이의 나지막한 대답과 동시에 화장실 문이 닫히며 그 사이로 쏴아아 하며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 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음.”
마땅히 할 것도 없어 오피스텔의 창문으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야경을 보며 멍을 때리고 있던 때 문득 여름이가 가져온 햄버거의 포장용 종이봉투가 내 발에 툭 하고 부딪쳤다. 그러고 그 안에는 먹던 도중 대충 감싼, 종이로 포장된 조그마한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들어 있었다.
내 것은 사지 않았군.
나는 그때 여름이에게 햄버거를 주문하라고는 했지만 내 것까지 사 달라고는 하지 않았었지. 나는 그것이, 햄버거가 하나만 든 종이봉투가 마음에 들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자신이 멋대로 헤아려 배려라는 명목으로 필요 없는 것을 얹어주는 것보다는 부탁받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하지 않는, 철저히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행동하는 그 아이의 사고방식은 이 기묘한 관계가 사흘 간 삐걱거리면서도 이어져오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후우, 저 다 썼으니까 화장실 쓸 거면 쓰세요.”
“그래.”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사흘동안 입고 자 조금 퀴퀴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양복의 와이셔츠를 풀고 오늘 일어난 그 모든 것들을 흘려내려 하는 듯 샤워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맡겼다. 지금은 이걸로 충분했다.
“…”
샤워 후, 마땅히 갈아입을 옷도 없어 그 퀴퀴한 와이셔츠를 다시 입은 뒤 여름이와 함께 배달되어 온 죽을 먹었다. 그런 일이 있어서였을까, 이사 온 첫날, 이 아이가 나를 도와줬을 때 그 대가로 중국 음식을 배달시켜 줬을 때도, 아니 심지어 오늘 아침, 그리고 마트에서 냉장고를 고를 때만 해도 이것보단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지금은 서로가 말도 없이 그저 음식을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말을 안 하는 탓도 있긴 했다. 오늘은 더 이상 사람과 이야기한다는 행위 자체가 신물이 났기에.
아니,
어쩌면 여름이가 사온 그 햄버거를 보고 우리들의 관계성을 더 확실히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거 톡이라는 건 어디서 깔아야 되는 거예요.”
“뭐?”
죽을 먹으며 낮에 내가 성과금으로 지급한 스마트폰을 세팅하듯 만지작거리던 그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며 나에게 그렇게 질문했다.
“개통 안 해도 톡만 있으면 연락할 수 있다면서요.”
“그래. 그게 왜.”
지금은 내가 스마트폰의 핫스팟 기능을 이용해 그 아이가 와이파이를 쓸 수 있도록 세팅해놨으니 앱 한두 개 정도 다운로드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 질문 자체가 이해되지를 않았다. 마치 스마트폰을 처음 만져보는 아이인 것 같아서.
“그러니까 그거 어디서 다운로드 해야하냐고요. 메뉴에 들어가 봐도 어떤 걸 실행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스토어에 들어가서 다운로드하면 되잖아.”
나는 대학시절부터 몇 년간 은하라는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제품을 쓰고 있어서 다른 운영체제를 쓰는 스마트폰이 어디서 앱을 다운로드 하는 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으나 기본으로 제공되는 스토어 앱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것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니, 스마트폰을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들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스토어요? 그럼 돈 주고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갔다. 이 아이, 여름이는 낮에 나와 스마트폰을 구매하기 위해 대리점에 갔을 때도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와 커뮤니티 사이트, 용어를 척척 해가며 마치 전문가처럼 가격을 깎았을 것이다. 내가 마트에서 비트코인 거래소 앱을 켰을 때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었고.
그 정도로 휴대폰 전반에 대해 잘 아는 아이가 정작 스마트폰 이용에 관한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을 모른 다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아닌가.
“스마트폰 처음 써 봐?”
“…네.”
내 말에 응답하여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름이. 정말로 어떻게 된 것인지를 모르겠군. 4차 산업혁명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요즘 시대에, 그것도 여고생이 스마트폰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뮤지엄의 이용고객 60%가 10, 20대일 정도로 요즘의 젊은 이들과 스마트폰은 빼놓을 수 없는 관계일 텐데. 그러면서 구매나 브랜드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고.
아니, 가만보면 낮에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으라고 했을 때도 포장지도 뜯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인터넷 연결은 지금 현재 그 아이 주변에 있는 신호가 내 핫스팟 밖에 없었으니 굳이 켜는 법을 몰라도 기동 세팅 중 자동으로 연결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 나한테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건가.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아서, 그래서…아니면 불쌍한 척 연기를 하며 나에게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이 아이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 우리들의 관계에서는 알 필요 없을 것이다.
“거기 있어 봐.”
“…”
죽을 먹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그 아이의 옆자리로 발을 옮겨 앱을 어떻게 다운 받아야 하는지 하나씩 설명해줬다. 다운 받은 것은 가상 전화번호로 가입할 수 있는 외국의 한 메신저 어플. 어차피 국내 메신저 어플은 전화 번호를 인증해야 하고, 이 아이에게 계정이 있을 리도 만무하니 이것이 최선이리라.
“자, 내 계정을 등록했어. 이걸로 와이파이…그러니까 무선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나에게 문자나 전화를 보낼 수 있을 거야. 와이파이는 이걸로 키면 돼.”
“그 정도는 아까 대충 만져보면서 눈치챘거든요.”
“그래.”
다행히 눈치가 빠른 아이라 이 이상 따로 설명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요즘 스마트폰은 예전과 달리 어르신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UI/UX 디자인이 직관적으로 뽑혀 나오고 있기도 하고. 어색한 듯 다 마르지도 않은 머리카락을 꼼지락 대며 만지고 있는 그 아이를 뒤로 하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죽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오피스텔의 밝은 조명 아래에서 다시 본, 정돈된 모습의 그 아이는 어깨 정도로만 내려온, 살짝 물에 젖어 촉촉한 가느다란 머릿결과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작은 얼굴, 그와 대조되든 폐사한 진주알처럼 탁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어딘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눈썹을 조금 가리면서 자신이 대충 자른 듯 군데군데 삐죽삐죽한 부분이 살짝 남아 있는 앞머리만이 그 눈을 간신히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죽을 포장했던 플라스틱그릇을 씻어 현관 앞 신발장 쪽으로 밀어 둔 뒤 나와 그 아이는 각각 방의 구석에 기대 말없이 스마트폰만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밤 조용히 보고 싶었던 영화를 감상할 계획이었던 나에게 있어서 그 상황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불 끈다.”
“네.”
불을 끈 뒤 이불을 꺼내 현관 쪽에 누워 영상 앱을 실행한 뒤 어떤 영화를 볼 지 고르기로 했다. 결제하기로 정한 것은 정체불명의 사고를 당한 뒤 한 가정집에서 깨어난 여자가 자신이 누워있던 동안 세상이 멸망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집에서 살아가며 집주인과 교류를 해나간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로맨스물로도 볼 수 있겠으나 태그로 달린 미스터리와 공포, 그리고 기이한 느낌을 주는 시놉시스의 첫 말이 나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였다.
“…아저씨.”
“왜.”
결제를 마치고 이어폰을 꺼내 영화 감상을 시작하려는 찰나 여름이가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밤은 조금 깊어져 집 주변에서는 귀뚜라미 소리와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까 그 사람 회사에서 온 거 맞죠? 전화처럼.”
“…”
그 아이 입에서 잊고 싶었던 오늘의 끔찍한 경험이 나온 순간 내 머리 속은 그녀들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며 간신히 잠재운 구토감이 다시 시작되었고 가련이의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나의 손을 부러져라 잡고 있던 그 여자의 손 감촉이 생각나 심장도 조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왜.”
“아니, 그냥 뭐. 퇴사하셨다길래 처음에는 뭔가 했는데 아저씨는 결국 돌아갈 곳이 있구나 싶어서요.”
"저랑, 다르게."
돌아갈 곳.
나의 회사.
그녀들이 있는.
...결국.
여름이의 그 한 마디가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도 잊은 채 내가 마음 한 쪽에 밀어둔 영토에 멋대로 침입하려는 것 같아서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졌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지?”
“…”
그동안 간신히 막아내고 있던 마음의 둑이 그녀들과 대화를 하며 차례차례 금이 가다가 그 한마디로 결국 부숴진 걸지도, 모른다.
“너는 그냥 가구 사는 것을 도와주기만 하면 돼.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해 대가를 지불할 거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관계라는 것을 알아 둬. 내가 너의 가출에 대해 더 이상 추궁하지 않듯이.”
“…알고 있어요. 그냥 궁금해서, 질문도 못 하냐고요.”
“…”
그냥 불편한 이야기니까 말해주고 싶지 않다고 완곡하게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까 택시를 탔을 때와 같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받아넘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 아이 입장에서는 궁금해서 가볍게 던져본 말일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왜 그랬던 것일까.
어쩌면,
어쩌면 그 날, 군 복무 시절 내가 이다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전우가 보여 준 그 표정과 말이,
지금까지 내가 도움을 구했던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그 한 마디의 말을 듣자마자 저 아이의 주변에서 아른거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고통을 그저 편식을 하는 어린 아이를 달래 듯 혼내며.
가벼운 가십거리로 취급하는, 한 때 친구였던 수 많은 이들의.
그 날 본 영화는 그토록 기대했었던, 내 스스로 고른 영화였을 텐데.
끔찍하게 재미없고 지루했으며,
밤은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