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12. 파티 (1) (12/21)



〈 12화 〉12. 파티 (1)

아침, 이제는 익숙해진 천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

이불을 깔아 둔 현관의 오른편에 위치해 있는 화장실의 자그마한 샤워부스로 들어가 밤사이 조금 자라나 삐져나온 수염들을 잘라내고 중요한 의식전에 몸을 정갈히 하고 가다듬는 수도승처럼 한참동안을 샤워기의 따뜻한 물에 몸을 맡겼다.

중요한 의식, 그래, 오늘은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이다.
회사에 출근해서 그녀들과의 오랜 악연을 끊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일어났었어?”
“네? 아 그냥. 어제 좀 일찍 자서 그런가 눈이 빨리 떠지더라고요. 아무튼 오늘 출근하시는 거죠?”
“그래. 늦어도 저녁까지는 돌아올 거야.”
“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나의 이득을 위해 집에 들인 소녀, 여름이가 벽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사무적이고 무미건조한 대화가 이어진다.

“야.”
“네?”
“…휴대폰 두고 갈까?”
“왜요?”
“…아니야.”
“어차피 관리실이나 편의점에 와이파이잡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멍하니 시간 때우는 건 질리도록 해봤고, 별로 신경 안 써요.”

걱정?
나는 그저 네게 시킬 일이 많이 남았으니까 그것을 신경 쓰는 것뿐이야.

…나에게는 너를 걱정할 권리도 자격도 없으니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위선에 불과한 행위다.
내가 그  이후로 다시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아까부터 왜 자꾸 쳐다보세요?”
“다녀올게.”
“네.”

옵션으로 제공된 작은 스타일러에서 사흘 내내 입고 다녀 조금 닳은듯한 양복과 셔츠를 꺼내 입고 오피스텔 근처에 위치한 작은 버스 정류장에서 도심 중심부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어제와는 달리, 회사원으로서,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무리 안에 섞인다. 그것 자체로도 내 안에 따스한 요람에 들어온 것 같은 안정감이 샘솟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제는그 요람에서 나가야 했다.

4일만이구나.

유수의 IT기업들과 유니콘 기업들이 모여 있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 단지,  안에서 뮤지엄은 벤처기업들이 모여 있는 10층 정도 높이의 빌딩에 입주해 있었다. 오직 미적 가치만을 위한 기능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이 몰리면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통과할  있는 유리 회전문과 형편없는 알고리즘으로 짜여 있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

언택트 시대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회사가 이런 형편없는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니면  화려한 껍데기에 불과한 건물에 입주했을 때부터 알아차려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들과의 관계, 그 방향성을.

“……”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사무실의 섬뜩할 정도로 무기질적인 철제문. 사장인 채설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리모델링을 고려 중이었으나 일이 한창 바빠진 지금, 한가하게 사무실을 비우고 리모델링을 할 여력 따위는 없는 관계로  바람은 요원했다. 문고리를, 조금 힘을 줘서 비틀었다.

“도진이의 복직을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사고가 따라갈 시간도 없이 사무실의 문을 열자마자 펑, 하는 폭죽 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하더니 얇은 종이 가닥  개가 내 머리와 팔 쪽에 내려앉았다.

“…?”
“왜 그래 도진아, 멍하니 서 있기만 하고.”

눈 앞에 있는 것은천장에 실로 매달려 있는, 나의 복직을 축하하는 거대한 플랜카드와 딸기 케이크.

“유, 유도진! 사람 무안하게 말도 안하고…그,  정도로 기뻤던 거야?”
“진짜 형…다음부터는 빨리빨리 말해달라고요. 말 안 해주시면 모른다니까요.”

평소의 검은색 테이블이 아닌, 순백색 천과 화려한 장식들이 수놓아진…마치 어린아이의 생일파티에서 주인공을 축하해주기 위해 꾸며진 듯한 나의 자리. 업무용 컴퓨터 대신 케이크만이 그 자리에 올라가 있었다.

그것보다도.

“복직…?”
“그래ㅡ…도진아, 가련이한테 다 들었어…복직ㅡ…한다구.”
“누나는 그것도 모르고 잔뜩 흥분해서 도진이 앞에서 그런… 아으, 진짜 창피하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제멋대로군.

“아무리 서프라이즈라도 그렇지 누나를 놔두고 그냥 가버리면 못 쓰지. 가련이가 전화 안 해줬으면 저녁때까지 거기 서있을 뻔했다구?”
“허.”

너무나도 안하무인 한 그녀들의태도에 나조차도 착각할 뻔했지만 내가 회사에 온 이유는 4일  따 놓은, 파투가 났다고 생각된 계약을 마무리하는 것과 그녀들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으러  것. 결코 복직 따위의 이유를 가지고  것은 아니었다.

“도진아ㅡ…케이크, 자르자…”
“미, 민서야 잠시만. 그…그 전에.”

 손을 잡고 케이크 칼을 쥐어 주는 오민서의 행동을 저지하는 채설하.

“우리 모두 도진이한테 해야 할 말이 있지 않아?”
“그, 그렇죠…”
“그랬지.”
“응ㅡ…”

그러더니 그녀들은 내 앞에 병정들처럼 일렬로 서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도진아, 미안해!”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그녀들의 입에서,


늦었어.
늦었다고 했잖아.
늦었는데…

 또, 왜 이렇게.

“요즘 우리랑 못 놀아서 서운했던거지?”
“형도 진짜… 요즘 바빴던  아시잖아요. 뭐, 저한테는 그닥 관심 없으셨겠지만. 착각하게 만드시지 말라구요.”
“앞으로는 누나가 옆에 꼭 붙어 있을게. 그러니까 걱정 안해도 돼.”
“도진아ㅡ…미안…”

그래, 이런 결말일 것임을 알면서도.
어제 채설하를 만났던 것처럼 그녀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자그마한 희망을 바라는 내가 있었다.

“워, 월급도 올려줄 테니까 이제는 불만 없지?”
“맞아 도진아, 그러니까 이제는 화 풀자?”
“맞아요. 세상에 이런 직장이  어디 있겠냐고요.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러면서 돈까지 주고. 적당히 만족하시라구요.”

가련이의 그 말은 타당했다.
확실히 세상에 이런 직장은 없을 것이다.

출근하면 별다른  없이 바닥정도를 청소하다가 다른 직원들의 커피를 타주고, 때때로 마사지를 해준다. 그러면서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온다. 아마 직장인이나 취업 준비생에게 설문을 돌린다면 삼분의 이 정도는 당장이라도 취업시켜달라고 수준의 천국이겠지.

그저 나의 집을 잃은  높디 높은 성벽 안에 갇혀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평생을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성벽 앞에서 멍멍 짓기만 하면서 보내야 하는, 그정도의 사소한 단점만 있을 뿐이다.

아마 그 누구도 내가 왜 퇴사를 하려는 지, 그녀들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단지.

“내 컴퓨터는?”
“으, 응? 컴퓨터라니, 일단 케이크부터…”

내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남이 뭐라고 하든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으니까 거절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여기 있네.”
“도, 도진아…?”

이제 성벽에 대고 짖어 대는 것은 지쳤으니까.
내가 힘들다.

“우, 우리 도진이 컴퓨터 연결하는 것도 잘 하네~. 그, 그래도 오늘은 그런 거  해도…”
“그래ㅡ…어차피 출근은 내일  하잖아ㅡ…”
“야, 야! 그딴  하지 말고 케이크 자르라니까! 모, 모처럼 우리들이 만든 건데….”

사무실 구석에 처박혀 있는 먼지 쌓인 컴퓨터를 들고 와 케이크를 치운 뒤 연결했다. 식탁보 같은 것이 미끈거려서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일을 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뭐야?”

컴퓨터를 부팅해서 비즈니스용으로 쓰는 이메일을 확인해 봤더니 내가 지난번 계약을 체결했었던 마케팅 회사에서 이다솜에게 보낸 메일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착오가 없도록 참조(CC) 기능을 이용해 나에게도 보낸 것이겠지. 그 메일의 내용은,

“도진아, 너 없을 동안 누나가 다 끝내놨어. 잘했지? 그, 그러니까 이제 누나랑 수다나 떨자?”

내가 무언가를  틈도 없이 시안부터 시작해 업로드 할 플랫폼까지 모두 결재가 완료됐다는 내용.

“유가련,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네? 뭐가요?”
“내가 필요한 거 아니였어?”
“아…뭐, 어때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어요. 다  편하시라고 그랬던 건데. 됐으니까 빨리 케이크나 먹자고요.”

뭔가 화가 난  상기된 목소리와 태도로 콧김을 킁킁거리며 유가련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여간 유도진, 뭔가 했더니 그거 확인하려고 그랬던 거였구나? 너가 해봤자  한다고…내, 아,아니,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써도 된다구.”
“자, 도진아 아~.”

이다솜이 먹여준 케이크의 맛은 달았다.
너무 달아서 혀가 아팠다.

“어, 어때? 너 딸기 좋아하잖아…그래서 신경 좀 썼지. 이제 화 좀 풀어! 언제까지 꽁해있을 거야.”
“딸기만 넣으면 너무 심플할  같아서 설탕 코팅도 해봤어요.”
“저번에 네가 키위도 맛있게 먹길래 군데군데 키위도 넣어봤어. 누나 잘했지?”

나는 딸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이 설탕으로 코팅 되고 부분부분 키위가 박혀서 딸기 케이크가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그저 딸기 하나만 있으면 충분했는데.
 하나면 있으면 충분했는데.
어쩌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상으로 우리들의 관계가 커진 것이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야! 표정 풀라니까…아, 너 설마 사직서 냈던  때문에 그래? 푸흡, 지금 와서 우리가 널 해고라도 시킬까 봐? 나 참,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수리 안 했다구. 그날 바로 파쇄기에 갈아버렸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래ㅡ…우리는 항상 도진이 곁에ㅡ…있을 거니까.”
“형만  하면 앞으로도 문제없을 거라고요.”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라는 말을 외국 작가가 쓴 한 시집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소중한 사람과의 것일 수도 있고 한 물체나 장소와 깃든 것일 수도 있다. 요는 사람은 과거의 추억이 있기에 한치 앞도 모르는 깜깜한 미래를 향해  발을 내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특정한 사건을 남기려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추억을 상기시키려는 걸지도 모른다.

괴로움을 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를 얻기 위해.

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이 추억을 먹는 것이 아니라 추억이 사람을 먹는 다는 것이 적합한 비유일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해가고 시간이 지났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내가 과거에 좋아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안에 깃든 추억이, 행복했던 기억들이 저주처럼 들러붙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도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들을 좋아했다.
우리들이 만든 영화 동아리를, 함께 영화를 보고 도란도란 둘러 앉아 소소한 일로 수다를 떠는 것도, 학교 근처의 미술관에 가서 다솜이 누나의 해설을 들으며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설하의 손에 이끌려 주변에 맛집을 탐방했던 것도, 민서와 함께 학교 도서관에 가서 조용히 책을 읽었던 것도, 가련이와 중간고사가 끝나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했던 것도…

회사를 나갈  있었던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그 날 이후 그녀들이 변해버린 것도 알고 있었다.

단지 그 추억들에 파묻혀 언젠가 그 공간이, 동아리 방이, 내가 좋아했던 그녀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매달렸던 것뿐이다. 그저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프린트 좀 쓸게.”
“으, 응? 어. 그래… 아무튼간 말이야…”

“도진아, 일 안 해도 된다니까. 자, 하나  먹자.”
“그래서 설하 언니, 오늘 오빠는 어디서 자는건데요?”
“그거야 물론 우리집…잠깐, 그러고 보니 유도진 너 4일동안 어디서 잔거야? 설마 모텔이나 찜질방 같은 곳에 간 건 아니겠지?”
“…확실히 도진이를 만났을 때 안 씻은 모습이긴 했는데. 아니지?”

그렇다면 그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날 좋아하고 있는 건가?
날 좋아하니까, 회사로 돌아오라고 했던 것이고 지금 이렇게 파티까지 열어주고 있는 건가?

“야, 빨리 오라니까 프린터 앞에서 뭘 그리 끄적끄적 쓰고 있는거야?”
“맞아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있지 마시고 빨리 이리로 오셔서 질문에나 대답하시라고요.”

아니,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눈 오는 날,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부터 아주  알고 있었다. 이 여자들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도, 전부.

“야! 뭘 그렇게 쓰고 있, 어…?”

지금도  눈은 그치지 않는다. 아마도 계속 내릴 것이다.
처음에는 눈을 피할 동굴을 찾으려고 했고 집을 만들려고 했으며 아예 눈이 내리지 않는 다른 나라로 떠나버릴 생각도 했었다.

“뭐, 뭐야 이거. 자, 장난이지…? 미, 미안하다니까.”
“설하야,  그래? 무슨…어?”

그러나 그 발상 자체가 잘못됐던 것이다.
눈이 싫으면, 눈을 치워버리면 된다. 그것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가 그 장소에 사는 것이 좋은 이상 눈 따위에 굴복해야 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그래.

“사직, 서…? 어째서…?”
“보, 복직하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좀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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