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13. 파티 (2)
“시발, 뭔 개소리야. 자랑하는 거야, 지금?”
그게 내가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이야기했던 친구의 첫 마디였다.
“기만자네 시발, 누구는 여자 사람 친구 하나도 없는데 그딴 걸…말을 말자.”
이건 군대에서 전우에게 들었던 소리고.
“배가 불렀구나.”
아버지에게 그 소리를 들었을 때쯤, 나는 내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영화를 봐도, 소설을 읽어도, 티비에서 해주는 드라마를 봐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는 행위는언제나 미담으로 그려진다.
받는 사람에게 그것을 거절할 권리는 없다는 것처럼.
설령 그것이 원하지 않는 관심일지어도.
“자, 잠깐만. 이제 그만하자. 알겠다니까. 너 서운했던 거…”
“…”
“…시발! 사과도 하고 케이크도 만들어 줬잖아. 뭐가 불만인 건데!”
“…”
“말을 하라고!”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다.
“야…뭐라도, 뭐라도 말 좀 해보라고…왜 이러는 건데…”
“마, 맞아요.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건데요…대체 왜.”
그렇게 1년을 버티고 2년을 버티고정신을 차려봤을 때는 수년의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미, 미안해 도진아. 케이크가 맛없었어? 다시 만들어 줄 테니까 화 풀어…제발…”
그 시간동안 내 마음이 넝마짝처럼 되어 간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네가 언젠가는 그 공원의, 낡은 시계탑으로 와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힘들어.”
“어…?”
아니, 그냥 비겁했던 걸 수도…
“이 회사에 있으면, 너희들이랑 있으면 힘들다고.”
“자, 잠깐, 영문을 모르겠다고…시발, 진짜 뭔데…”
나에게는 저 표정을 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어.”
“이상하잖아요! 형은, 형에게는 딱히 힘든 일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냥 회사 나와서 청소정도만 하고… 월급까지 주는 이런 회사가 어디 있냐고요…!”
“마, 맞아! 유도진, 너 진짜 배가 불렀구나?”
그저 착한 사람으로만 쭉 기억되고 싶었다.
“널 위해서 우리들이 얼마나 신경 써줬는 지는 알고 있어?”
“알아.”
“알고 있으면서, 왜…!”
나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를 상처 입힐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한 마디도 한 적 없어.”
“어…?”
“게다가 신경이라니, 내 노력을 지금까지 무시해온 건 너희들이잖아.”
“트, 틀렷…!”
“맞아 도진아! 계약 따온 거 누나가 뭐라고 해서 그런거야? 오해야! 그냥, 네가 그런 식으로 노력하다가 또 힘들어 할까 봐…그래서.”
아프고 싶지 않다면 아플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된다.
난.
“난 그냥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야.”
“무, 무슨 소리야. 필요하다고. 너는...”
“내가 4일동안 없을 때도 이 회사는 잘만 돌아 갔잖아.”
“…그건.”
아니, 뜬구름 잡는 소리는 이제 그만.
“까놓고 말해보자. 출근해서 바닥 청소만 하다 커피 좀 타주고, 저녁에는 너희들의 집으로 가서 시중을 들어줘야 하고. 이게 너희들이 말하는 배려인가?”
“다, 다 널 위해서…”
정당화하기 위해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애당초 내가 왜 너희들의 집에서 자야 하는 거야. 왜 내가 가사도우미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시발! 우리가 감시 안하면 네가 밤에 뭘 하고 다닐지 누가 아는데? 이게 어떻게 키운 회사인데 네 추잡한…그딴 짓거리 때문에 망하게 둘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하냐고. 난 그런 생각 단 한 번도 한 적 없다고. 왜 날 못 믿는 건데? 왜 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데.”
“미리 말을 하던지! 지금까지 군말없이 잘만 하다가 뜬금없이 왜 갑자기 와서 혼자 화내고 혼자 지랄인 건데?”
“…뭐라고?”
그녀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를.
“시발, 알아. 안다고! 근데 그건 그냥 물어본 거였잖아. 네가 왜 집을 사면 안 되는지. 그래서 설명도 해줬고 너도 납득했잖아. 그러니까 그냥 넘어간 거잖아. 왜 지금 와서.”
“그건 그냥 너희들이랑 싸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뭐?”
이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내가 양보하기만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으니까, 참았던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쭉. 그냥 언젠가는 너희들이 알아주겠지 하면서…그게, 잘못됐던거야.”
“아니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넌.”
“너희들이 변했다는 걸 진작 인정했어야 했는데… 좀 더 빨리, 말을 했어야 했는데….”
“…어떤 년이야.”
“뭐?”
채설하가 그 내 팔을 꽉 움켜쥐고 무언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시발, 어떤 년이 시킨 거냐고. 어떤 개 같은 년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 하는 건데?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우리 좋았잖아.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잖아. 응? 너도 그냥 넘어갔던 거잖아. 그래서. 그날 이후로도… 시발…시발! 말이 안 되잖아! 이 개새끼야!”
“…왜 그러는 건데?”
“뭐?”
“왜 그렇게 욕을 못해서 안달인데? 다른 사람한테는, 싫은 소리조차 하지 않으면서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냐고. 어?”
“그, 그건, 네가….”
그러더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유가련이 일어서서 한 마디 거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형! 잠시만요. 진정 좀 하시고…”
“그 놈의 형, 형. 그만 좀…!"
“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둑에서 새어 나오는 물줄기는 멈출 수 없다.
“내가 너한테 뭘 잘못 했길래 그렇게 선을 긋는 건데. 너야 말로 문제가 있으면 말을 좀 해달라고. 왜 그렇게 자꾸 헷갈리게 하는 거야…가련아, 왜.”
“왜, 왜냐면 형이, 그걸 원하셨으니까…”
“나는 그러라고 한 적 없어!
“…말도 안 돼. 나는, 나는…”
편한 선후배 관계였던 가련이가 언젠가부터 형이라고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것이 섭섭했다. 설하가 나에게만 욕을 하고 거칠게 대하는 것이 괴로웠다.
“도진아!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안 돼! 조금 차분하게…”
“난 당신의 동생이 아니야…."
“어…?”
“당신이 날 가르쳐야 할 이유도, 내가 당신에게행동을 교정당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그, 그런…곁에 있어준다고 했잖아. 도진아...응?”
“당신의 노예가 된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도진아. 이해가 안 돼. 도진아, 왜 그러는 거야…”
다솜이 누나가 저런 식의 자신의 감정을 인질 삼아 나를 조종하려 하는 것도 싫었다.
“유, 유도진. 말을, 내 말을 좀 들어봐. 그러니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뭘, 나는 그냥 오빠가…”
“도진아, 도진아. 가지마. 누나가 다 잘못했어. 누나가 이제 잘할게. 제발, 누나 울 것 같아…제발.”
“시발, 이쪽을 좀 보라고 하잖아!”
방금 전까지 즐겁게 폭죽을 터뜨리고 케이크를 자르며 파티를 하고 있던 사무실은 이제 고함소리와 울음소리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가련이는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어서 망가진 기계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다솜이 누나는 그저 울면서 내게 애원하고 있을 뿐이었다. 설하는, 나를 다그치면서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그 안에서 오직 오민서만이 조용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눈을 보고 있으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떠올라서, 그것이 싫었던 것인데.
“…오민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을 해.”
“….”
너는 나에게 뭘 원하는 거야?
왜 항상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것이지?
언제까지고, 쭉.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것처럼.
“이럴 거면 왜 회사에 와서 지랄인 건데! 그냥, 그냥 따로 말하면 되잖아…”
“들어줄 생각조차 없었던 주제에… 웃으며 넘기기만 했잖아. 그 날, 내가 퇴사했던 날 조차도 장난치지 말라고 했잖아.”
“시발! 시발! 그래서 지금 나간다고? 진짜 퇴사한다고? 웃기지 마, 절대 수리 안 해! 회사가 우습게 보여?”
“그걸 정하는 건 네가 아니야.”
고용기간에 약정이 없을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고 사직서를 제출한 순간부터 한 달, 또는 월급날이 지난 시점부터 사직서가 수리된 것으로 간주한다.
“너도 알고 있잖아. 일단은 사장이니까.”
“읏, 그, 그럼. 그래, 이, 인수인계! 인수인계가 끝날 때까지는 회사에 나와야 하잖아. 그래, 일단 오늘은 돌아가서 머리를 식히고 30일동안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응? 저기….”
“인수인계? 내가?”
“그, 그래! 회사가 손해라도 입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내가 이 회사에서 한 일이라곤.
“대걸레를 어떻게 빠는 지 문서화라도 시켜야 할까? 대리석 바닥은 쉽게 깨지니까 잡고 있는 대걸레를 실수로 떨어뜨리지 말라고, 그렇게 후임을 위해 조언이라도 해줘야 할까? 커피포트 사용법이라도 쭉 적어줘야 할까? 너희들이 좋아하는 마사지 부위나 요리도 전부 써놓고 가야 하는 건가?”
“어, 어…?”
“이 회사에서 내가 인수인계 해야 할 것이 어디 있는데?”
“아, 아니야. 아니야…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시발, 기다려 봐! 그러니까, 계약…”
“너희들이 알아서 끝내버렸잖아.”
그렇게 만든 건 너희들이잖아.
“자, 잠깐만. 알았어. 알았어. 퇴사해도 되니까. 퇴사해. 일단 쉬면서 다시 이야기하면….”
그러면서 그녀, 채설하는 억지로 만들어낸 웃음을 지으며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여기 온 이유는 퇴사를 통보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이제 끝내자, 좀.”
“어, 어…? 아, 그, 그러니까. 어, 회사 동료 관계로 남아있자는 걸 끝내자는 거지? 그치?”
“이 지긋지긋한 관계 좀 끝내자고, 제발.”
너무 늦어버린 그 한 마디.
“뭐…?”
“네?”
“도, 도진아. 거짓말이지…?”
“…”
아니, 애초에 성립되어서는 안 됐을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회사가 문제가 아니야. 그냥 이 이상 너희들이랑 있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아, 아니야…”
“그러니까 더 이상 얼굴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연락도, 하지 말아줘.”
설하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 닿는다.
이제는 충분했다.
“안녕.”
“아, 안 돼!”
문을 열고 나가려는 나의 등을 채설하가 온 힘을 다해 잡는다.
“도, 도진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욕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지금까지 다 잘 못했으니까 그 말만은 하지 말아줘. 제발. 도진아…”
그 가녀린 손을, 힘을 줘서 밀어낸다.
“싫어!”
고꾸라진 그녀는 거미와 같이 기어나와 내 오른쪽 발목을 잡고 울면서 그리 소리 지르고 있었다.
“가지마, 가지마 도진아. 제발. 미안하다고…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청소도, 커피도, 마사지도 안 시킬게. 네 방도 내가 구해줄게. 그러니까 가지마….”
너는,
왜 지금 와서…
게다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고 있구나.
…
조금 더, 내가 빨리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적어도 지금은 아닐 것이다.
“아,안돼…!”
그녀가 잡고 있는 다리를 억지로 끌어낸다.
“다들 뭐하고 있어! 잠가, 저거 빨리 잠구라고. 얘 좀 어떻게 해봐! 진짜 간다니까. 빨리, 빨리…!”
그 말을 듣고 오직 이다솜만이 정신을 차렸다는 듯 뛰쳐나와 지난 번 그랬듯 나를 힘으로 저지하려고 했다. 유가련은 여전히 망가진 기계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오민서는 계속해서 내 얼굴만을 볼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만지지마.”
“어, 어…?”
“그 손으로 내 몸에 손 대지 말라고.”
“누, 누나잖아…우리는 가족이나 다름 없는 사이잖아…응? 그치, 도진아. 아니잖아….”
“난 당신의 동생도 아니고, 같은 직장 동료도 아닐뿐더러, 이제는 아는 사이조차 아니야.”
“아, 아니야…우리는. 아니야, 아니야.”
“집어치워.”
“아니야… 아읏, 아아아…읏…흐윽….”
다가오는 이다솜의 손을 쳐내자 그녀는 채설하처럼 망연자실하게 고꾸라져서 그리 되뇔 뿐이었다.
“뭐하는 거예요 언니, 빨리, 빨리 잡아. 막으라고! 아무나 나와서 제발. 시발 뭐하는 거야 다들!”
이 이상여기에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마쳤으니까.
“다시는, 보지 말자….”
중얼거리듯 그렇게 말을 하고, 그 철제문의 손잡이를 돌려 사무실을 나갔다. 방금 전 이 층으로 누군가 온 것일까, 엘리베이터는 내가 있는 6층에 멈춰 있었다. 버튼을 열어 문을 열고, 패널을 조작해 1층으로 내려갔다. 그렇게나 높았던 바깥의 풍경이, 눈높이가 점점 지면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자.
그 생각을 하며 빌딩 근처에 마련된 택시 정거장으로 발을 옮겨 문을 열려는 순간,
“기다려, 기다려…!”
유리 회전문을 낑낑거리면서 밀고 달려 나온 채설하가 나를 불러 세운다.
“아읏!”
너무나도 급하게 나온 탓일까, 그녀의 하이힐 굽이 한 순간 꺾여 채설하는 그대로 보도블럭 위에 고꾸라지고 만 것이다.
“…”
“읏, 아읏…도, 도진아. 기다려. 흑, 가지마… 도진아…!”
그 고운 얼굴이 보도 블럭에 쓸려 조금 피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한 순간 굳게 먹었던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아니.
늦었다.
너도, 나도.
나는 이제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다. 오직 나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고 싶었다.
그렇기 위해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욕을 먹건, 질타를 당하건…
“소,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
목적지를 말하자마자 택시는 그 곳을 순식간에 벗어났다. 오직 그녀만이,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도진, 읏…도진아! 도진아! 가지마…제발, 돌아와! 아윽, 도진….”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이다.
“아, 빨리 오셨네요.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럴 줄 알았으면 아저씨 것도 시키는 거였는데.”
“…”
돌아온 집 안에서 그 아이, 여름이는 우물거리며 치킨을 먹고 있었다. 확실히 아침도 먹지 않았고 점심도, 아까먹은 케이크 한 조각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지.
그러나 공복 따위 지금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응? 벌써 자시게요?”
“…”
지금은 잠을 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