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14. 접근금지 가처분 (1)
“이모, 여기 김치찌개 하나 주세요. 아저씨는요?”
“….”
“그냥 제가 알아서 시킬게요. 제육볶음도 하나 추가해주세요.”
이틀 전 회사에 갔다 온 이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누워만 있던 나는 여름이에게 강제로 끌려 나와 이렇게 집 근처의 김밥집에 앉아 있었다. 싸구려 가죽 재질의 바닥과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등 받침, 불친절하게 디자인된 업소용 의자가 이틀 내내 누워만 있었던 나의 허리를 강제로 곧추세우고 있었다.
“왜 안 먹어요?”
“…그럴 기분이 아니야.”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것보다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자고 싶었다.
“먹어요.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먹은 주제에.”
“신경 꺼.”
나는 분명 이 아이에게 말을 했을 것이다.
“너는 어디까지나 날 위해서 가구를 사주기만…”
“알았으니까 먹으라고요. 고용주가 아사(餓死)하면 월급도 못 받으니까 신경 쓰는 거지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거든요.”
“…”
이틀만의 밥, 그러니까 제육볶음은 짜고 매웠다. 정말로 맛이 없어서, 마음만 같아서는 어딘가에 뱉어낸 뒤 물로 입가를 헹구고 싶을 정도였다.
“….”
“….”
그러나 나를 보는 그 아이의 눈이 계속해서 숟가락을 뜨게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제육볶음은 짜고 매웠건만 어째서인지 지금까지 먹은 제육볶음 중 가장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저 내 착각에 불과한 것일까.
“언니, 나 퇴근할게. 다영이 오면 냉장고에서 무 좀 꺼내서 다져 두라고 좀 해줘.”
“알았어. 내 알아서 할 테니까 어여 들어가서 잠이나 자.”
“고마워 언니, 내일 보…어, 어…!”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식당 안 쪽 직원실에서 환복 후 퇴근을 준비하던 종업원 아주머니가 주저앉는 소리가 우리 둘밖에 없는 건물에 울려 퍼졌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무게중심이 뒤로 쏠려 둔부 쪽으로 낙법 아닌 낙법을 하셨기에 큰 부상은 없어 보였다.
“…저, 괜찮으십니까?”
“에고, 에고… 아휴, 고마워요 총각.”
가까이서 보니, 신고 있던 하이힐의 굽이 휜 것이 원인이었다.
“이 사람도 참, 그러니까 그런 거 신고 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야… 이리 와 봐. 신발 빌려줄 테니까.”
“아이고 아까워라, 우리 아들내미가 선물로 사준 거였는데….”
“크게는 안 다치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그래.”
그 모습, 그 꺾여버린 하이힐을 보고 있으니 이틀 전 나의 사장님, 채설하와의 마지막 순간이 생각났다. 두꺼운 유리 회전문을 낑낑 돌려가며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신고 있던 하이힐의 굽이 부러지는 바람에 보도블록 위에 성대하게 고꾸라지고만, 그 우윳빛의 고운 얼굴을 상처투성이로 만든 그녀의 모습이.
“왜 또 안 먹는 건데요?”
“…잠깐 생각할 게 좀 있었어.”
그렇게나 나를 욕하고 깎아내리며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하던, 잘 때조차 손발을 구속시킨 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던 그녀가 그토록이나 내 퇴사에 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떠나는 나를 향해 자신의 몸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울면서 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그녀의 모습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나도 그것이 평범한 직장 동료 사이에서 보여줄 수 있는 반응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대체 그녀는, 설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오랜 기간을 함께 보낸 친우여서?
…아니라면, 나를 이성으로서…
…
적어도 채설하, 너는 아니잖아.
이 세상이 무너져도 너만큼은.
너만큼은….
어쩌면 나는 아직까지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녀의마음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전부 끝난 이야기에 불과하다.
“가자.”
“네, 오늘은 뭐 하실 거예요?”
“…잘 거야.”
“…저기, 저는 2일 내내 집에만 있었거든요. 그나마 어제는 저번에 산 냉장고나 티비 같은 게 배송 와서 설치 후에 세팅을 도와드리긴 했지만.”
“그냥 연휴라고 생각해. 매일매일 일만 하면 능률이 안 좋아져.”
“하아, 저는 말씀드렸어요. 아저씨만 손해라고요.”
“그래.”
계산이나 하자.
“그나저나, 이게 다 뭐래? 온 동네에 이게 붙어있더라니까. 여기 옆에도 붙어 있길래 하나 뜯어왔어.”
“어디 어디… 무슨 광고 같은 건가? 영문을 모르겠구먼.”
“계산하겠습니다.”
“아휴, 미안해 총각. 그…못 보던 얼굴인데 새로 이사라도 왔나? 옆에 가시나는 동생이고?”
“아, 네.”
…역시 이렇게 노출된 장소에 반복적으로 오는 것은 자제했어야 했나.
천장에 달린 CCTV와 우리들의 얼굴 노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사이도 아닌 만큼 최대한 우리들을 아는 사람을 줄이는 것이 좋을 텐데.
아니, CCTV라고 한다면 그 날 그 찜질방에서 만났을 때부터 이미 늦었다.
이 녀석과 얽혔을 때부터 이미…
아니, 아니야.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관계를 끝낸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녀들과의 관계를 마무리 지은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래, 더 빨리, 빨리 이 아이와의 관계를.
조금, 계획을 바꾸는 것이 좋겠구나.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어. 가구거리로 가자. 조금만 더 사면 끝이 보일 것 같으니까.”
“네.”
…그나저나 이 녀석의 부모가 실종 신고를 했으면 경찰들이 모를 리가 없는데.
왜 아직까지도 아무도 나나 이 녀석을 찾으러 오지 않는 거지?
요즘 같이 CCTV가 널려 있는 시대에 납치나 유괴도 아닌 단순 가출을 이 정도로 찾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 아닌가.
그런 식으로 계속 생각을 하며 나는 김밥집의 딸랑거리는 문을 열고 나왔다.
이 아이에게도 뭔가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 이상은 그만.
“아니, 왜 저번부터 자꾸 그런 식으로 쳐다보냐고요.”
“…그랬나?”
“네.”
“네 착각이겠지.”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죠. 진짜…어? 뭐야 이게.”
“음…?”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우리들은 그제서야 그 위화감을 눈치챈 것이다.
“어….”
“….”
평소에는 회색 시멘트와 주황색 벽돌, 그리고 아스팔트 도로 정도만 있던 건조하고 칙칙했던 길거리에 오늘은 군데군데 나풀거리는 흰색 종이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그 종이는, 담벼락에도, 전선이 어지럽게 흐트러진 전봇대에도, 정류장에도, 전부 붙어 있어서.
“하아.”
“그, 역시 맞죠? 이거.”
“그래.”
그 내용은,
[사람을 찾습니다.]
검은색 머리카락에 조금 헝클어진 듯한 분위기의 헤어스타일을가지고 코가 오똑하며 눈가 주변에 다크 서클이 심한 178cm/72kg 정도의 남성을 찾습니다.
인상착의는 아마도 조금 헤진 듯한 검은색 양복에 흰색셔츠, 그리고 검은색 가죽 구두를 신고 있을 것입니다.
소중한 동료입니다. 주변에 비슷한 인물이 있다면 아래에 있는 번호로 꼭 연락 주십시오.
사례 비용을 챙겨드리겠습니다.
그럼,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010-78XX-XXXX
사진도, 이름도적혀 있지 않았지만 벽보에 써져 있는 것은 분명 나의 이야기.
그러한 내용을 담은 수십, 아니 수백개 정도의 벽보가 온 동네에 붙여져 있었다.
“미안한데 생각이 또 바뀌였어.”
“…네. 그래서 어디로 가실 건데요.”
“경찰서. 너는 집에 먼저 가 있어. 알아서 할 테니까.”
“….”
아니, 일단 이것부터 끝내 놓을까.
“…네, 네. 다름이 아니라 여기로 좀 와주시면…네, 네. 그렇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다시는 누르고 싶지 않았던 세 자리의 번호를 입력하고 상황을 설명한 뒤 20분정도 기다리자 파란색과 흰색으로 도색된 차량 하나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아, 또 이거구나.”
“…또라니, 저 말고 신고한 사람이 더 있는 겁니까?”
“네, 오늘 아침부터 난리도 아니네요. 어떤 사람이 한 짓인지 이런 이상한 벽보를 동네방네 도배를 해 놓아 가지고 아주 골치가 아픕니다. 아무튼, 선생님도 이거 떼달라고 전화주신 것 맞으시죠?”
“…네. 그것도 그건데 그, 여기 쓰여 있는 것이 제 이야기인 것 같아서.”
“네?”
“음, 그러니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요. 누군가 제 정보를 벽보에 써서 무단으로 유포를….”
“어, 그게…그, 정확하게 도움을 받고 싶으시면 서로 가셔서 여쭤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일단 벽보 도배 관련해서는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까 조만간 해결될 거예요. 제가 태워다 드리고 싶은데 다른 민원도 해결하러 가야 해서, 그…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류장이라고는 조그마한 버스 정류장 하나 밖에 없는 동네인 관계로 앱을 이용해 콜택시를 부르자 곧이어 한 대의 택시가 나를 태우러 왔다. 오늘은 어째 차만 잔뜩 부르는 것 같군….
“안녕 하세… 뭐 하는 거야?”
“저도 같이 갈래요.”
택시의 문을 열고 타려는 순간 전봇대 뒤에 숨어 있던 여름이가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하더니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안 돼.”
“뭐 걱정하시는 지는 아는데 어차피 그 사람은 저 따위는 안중에도 없거든요.”
“뭐?”
가출 청소년이 제 발로 경찰서에 찾아간다는, 호랑이굴에 제 발로찾아가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거부의 의사를 표했더니 여름이는 나지막하게 어떤 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몰라요. 아무튼 아저씨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안 일어나니까 걱정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기사님, 출발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응할 시간도 없이 택시는 이미 출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