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16. 구름을 품은 달
“으, 도대체 부대찌개에 맥 앤 치즈는 왜 넣은 거래… 아직도 느글거리네.”
“…그러게.”
법원 근처의 한 대형 프렌차이즈 부대찌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여름이는 집에 와서도 계속해서 아까 먹은 메뉴의 불평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 진짜. 재료만 잔뜩 박아 넣는다고 맛있어지는 게 아닌데… 왜 그걸 모르는 거지.”
“…”
우리가 시켰던 메뉴는 프렌차이즈에서 개발한 신메뉴로, 평소 고객들이 원했던 재료들을 한곳에 몰아넣어 궁극의 부대찌개를 재현하겠다는 포부에서 기획된 야심 찬 메뉴였다. 다양한 종류의 햄, 스테이크, 맥 앤 치즈, 콰트로 치즈, 햄, 함박 스테이크… 우습게도 따로따로 먹으면 맛있을 법한 메뉴들도 그렇게 뭉쳐 놓으니 평범한 부대찌개보다도 훨씬 맛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국물은 너무 짜고 매웠고, 온갖 치즈의 향이 버무려져 코를 찔렀으며, 국물을 뜰 때마다 국물로 범벅이 된 햄과 함박 스테이크가 줄줄 흘러내렸다.
단지 냄비라는 곳에 들어가 있어 부대찌개라는 음식으로 정의될 뿐, 재료들은 전혀 조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었다.
…
뮤지엄.
나는, 그저 그곳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곳의 사람들이 문제였기 때문에 내가 힘들어졌고, 그래서 퇴사를 결정했었다.
“…잠시만요, 그 여자 하나입니까?”
“…몹시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혹시 다른 여성분에게 당한 피해가 더 있으신지요. 그,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문제였던 것은 내가 아닐까.
섞이지 못했던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그녀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었는데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래, 누군가 그랬던 것처럼 배가 불러서.
멀쩡한 그녀들을 공격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
그래서 지금까지 다들 날 그런 눈빛으로 쳐다본 것이었을까.
이번에도, 나는 틀린 것이었을까.
나는 또 어디서 틀린 것일까, 무엇을 했어야 했던 것일까….
“미리 말을 하던지! 지금까지 군말없이 잘만 하다가 뜬금없이 왜 갑자기 와서 혼자 화내고 혼자 지랄인 건데?”
나는, 그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감정을 드러내면 또 모든 게 망가질까 봐, 그래서 참았던 건데.
그 공간만은, 그 작고 낡은 동아리 방만큼은 잃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읏, 아읏…도, 도진아. 기다려. 흑, 가지 마… 도진아…!”
결국은 또, 내가 감정을 드러내는 바람에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멀쩡한 것을 망가뜨리고 만 것일까.
그냥 내가 참기만 했다면 모든 게 멀쩡하지는 않았을까.
“도진아, 미안….”
나만 없었다면….
어쩌면 너도.
“…아저씨.”
“어, 어. 왜.”
벽에 기대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던 와중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무언가를 하고 싶은 듯한 여름이의 모습이 있었다.
“…아, 어, 그게, 그 혹시, 음, 아니에요.”
“왜?”
그 아이답지 않게 어딘가 주저하는 모습에 신경이 쓰여 그리 물었더니,
“…아니, 그냥. 내일 뭐 하시나 싶어서요.”
“모르겠어.”
뭔가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이렇게 깨어 있는 것만으로도 지쳐서….
“그, 그럼 가구 거리나 가요. 그 왜, 오늘 가려고 했는데 못 갔잖아요?”
“…”
어딘가, 보채는 듯한.
“어, 그, 그게요.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왜, 일거리가 없어서 월급을 못 받으면 곤란하잖아요. 밥은 먹어야죠. 비즈니스, 비즈니스 관계.”
…그래, 지금은 이 집에 가구를 채우는 게 먼저인가.
복잡한 생각을 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아니, 오히려 확실하게 망치게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알았어.”
“….”
그렇게 그 아이와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벽에 기대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던 내 발끝에 뭔가 툭 하고 닿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건….
“…뭐야 이거, 지폐?”
“아!”
멀찍이서 그것을 보더니 화들짝 놀래 내 앞으로 후다닥 달려오는 여름이.
“그, 제꺼라서요.”
“이게?”
나는 바닥에서 주운, 조금 낡고 테이프로 구석을감싼 지폐를 여름이에게 돌려주며 그리 물어봤다.
“…비상금이에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아껴 둘….”
“그러면 지갑이라도 사는 게….”
“괜찮아요. 5분 단위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확인하고 있으니까. 하아, 이럴 거면 그냥 주머니를 잠글 수 있는 추리닝을 사는 거였는데. 너무 잘 샌다니까.”
어쩐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경우가 많더니, 그런 거였나.
저 돈으로 지하철이나, 버스, 아니면 그때처럼…찜질방이라도 가려는 걸까.
“…됐으니까 내일 사. 성과금으로.”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성과금이라니….”
“….”
여전히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꼼지락거리는 여름이였지만 나는 더 이상 할 말도 없는 관계로 오피스텔 뒤편으로 걸어가 창문을 열고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바라봤다.
별 하나 없는 깜깜한 하늘에 오직 보름달만이 환하게 떠 있었다.
구름이 조금 껴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보름달의 빛을 가리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그 광경은 마치 달이 구름을 품은 것만 같아서….
“아저씨, 티비 한 번 틀어봐도 돼요?”
“음?”
“그냥, 세팅하고 한 번도 안 틀어본 것 같아서요.”
“그래.”
한참을 달구경을 하던 도중 여름이가 그리 말하며 티비를 틀기에 창문을 닫고 티비로 시선을 옮겼다. 한 쪽 벽을 꽉 채울 듯한 70인치 크기의 대형 티비, 조금 큰 감은 없지 않아 있었지만 영화를 다시 재밌게만 볼 수 있다면 돈 따위는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영화를 보기 위해 이 티비를 구매했었구나.
이번에는 분명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음, 역시 좀 큰 것 같은데요… 근데 화질은 진짜 좋네.”
여름이는 그리 말하면서 리모컨을 조작해 채널을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했다. 티비 안에는 양복을 입은 뉴스앵커, 거대한 인파가 모인 야구장의 모습, 상품을 소개하는 홈쇼핑의 쇼 호스트, 혈액 질환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타리 영상등이 쉴 세없이 등장하고 전환되고 있었다.
“어, 여기 케이블 티비도 나오네.”
“이 집의 옵션 중 하나니까.”
그날, 계약을 위해 여름이와 이 집의 주인을 보러 갔을 때 아무래도 좋은 옵션 상품들을 거대한 호의와 행운인 것마냥 소개하던 어르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영화 채널도 나오….”
“잠깐.”
“네?”
“멈춰보라고.”
들어본 적 없는 영화 채널에서는 익숙한 모습의, 비오는 날의 벽돌길을 탑 뷰(Top-View)시점으로 올려다보며 형형색색의 우산을 들고 가는 사람들을 담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현악기를 이용한 애잔한 멜로디가, 영화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아는 영화에요?”
“응.”
“…좋아하시는 건가 보네요.”
“그래.”
곧 이어 장면이 전환되고 애잔했던 음악 또한 경쾌한 재즈음악으로 변화되어 상점가 구석의 한 낡은 자동차 정비소와 그곳에서 자동차를거침없이, 그리고 즐겁게 수리해가는 정비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아, 내가 대학 시절 가장 좋아했던 영화의 오프닝 장면이다. 동아리 방의 그 프로젝터로 수십 번은 돌려봤던….
“푸흡.”
“…?”
“아, 죄, 죄송. 그, 특이하네요. 영화가.”
“…그래.”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지만 일반적인 씬 중간중간에 뮤지컬적인 연출만을 삽입하는 다른 것들과 달리 모든 대사가 노래로, 그러니까 영화 전체가 하나의 뮤지컬 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물들의 담담한 연기와 대조되는 듯한 그, 높은 톤의 대사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 어느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전위적인 것이어서, 내가 이 영화에 빠져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 이 영화에서는 그 누구도 감정을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노래해나간다.
인물이 슬프다면 슬픈톤으로, 격해지면 격해진 톤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속삭인다.
그것은 헷갈릴 일도, 착각할 일도 결코 없는… 그런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좋았다.
영화는 사랑하는 남녀 커플이 전쟁으로 인한 남자쪽의 입대로 갈라지고, 몇 년동안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결국은 엇갈리고 후회하게 되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담히 그려 나간다. 그래, 너무나도 아름답게…
“푸흡, 풉. 읍…푸…...흡…으읍, 읍.”
“…저기.”
“죄, 읍…죄송. 아니, 근데 이상하잖…푸흡, 푸하하!”
전쟁에 나가게 된 남자쪽의 사정으로 두 커플이 본의 아니게 헤어지게 되는 비극적인 장면이건만, 한 꼬맹이 때문에 그 분위기는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서…
“조금, 조용히 좀.”
“네, 읍…으읍, 아니, 저건…저건, 푸흡.”
하아.
“뭐가 문제인데?”
“아니, 이상하잖, 풉, 무슨 헤어지는데 저렇게 쿨…읍, 하냐, 고요. 대사랑 음악만…열심히…흐읍.”
“…”
확실히 영화의 감정묘사는 다소 과장된 톤의 대사와 음악에 비해 담담하기는 했다. 전쟁 때문에 강제 입대를 하게 됐건만, 바로 내일이라도 볼 것처럼 굴고 있었고 나중에 재회했을 때도 여타 로맨스 영화와는 달리 서로 감정을 폭발시키며 질척거리는 묘사 없이 담담히 이별의 말을 나누고 헤어지고 제 갈 길을 가는, 로맨스 영화 답지 않은 시원시원한 전개가 가득한 영화긴 했다.
여름이의 산통을 깨는 웃음소리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갑자기 우스운 것이었다.
그래, 우스웠다.
“…푸흡.”
“아니, 풉. 아저씨도 웃기잖아요… 아니 다들 왜 이렇게…서로한테 관심이, 없냐고…으으읍….전 남친 애 임신했으니까 갈등이라도 터질 줄 알았는데… 그 놈의 노래는 또 왜, 푸흡, 푸하하하!”
절절한 분위기의 음악이 흐르고 있건만.
이미 방 안은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음. 네가 이 영화가…으읍. 가진 의미를, 잘 이해 흡, 못해서.”
“아하핫, 하하하하, 읍,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자기도, 웃고 있으면서…풉.”
아아…
어째서인지, 한 번 터지기 시작한 웃음은 멈출 수가 없어서.
“…풉.”
“누가 웃었어….”
“오, 오빠, 저는 아니에요.”
“나, 나도.”
“하핫, 하하하하하…!”
“읏, 으읍…저 보고는 참으라고 했으면서 아저씨가 더...아하하하!”
“그치만ㅡ…웃긴 걸ㅡ…”
“미안…푸흡.”
잊고 싶었던 그 기억들이,
구름들이 스멀스멀 하늘 위로 올라와 달을 가리기 시작해서.
“하하하, 아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웃지 말라고. 이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 장면이냐면.”
“푸흡. 음, 미안. 뭐랬지?”
“…”
내가 돌아가고 싶었던, 그 시절이 자꾸만 떠올라서.
“하하…하하하하…하…아하하…아아…”
“…아저씨?”
아, 모처럼 거금을 들여 이토록이나 거대한 티비를 샀건만.
영화를, 봐야 하는데.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부, 내가 못나서,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러니까 그녀에게 선택받지 못했고 모두에게 버림받아서.
모든 것을 망친 것은 나라고 생각했다.
나만 없었다면….
그래, 나만 참았다면 그 누구도 얼굴을 찌푸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행복했을 것인데.
집도, 돈도, 밥도. 걱정할 필요없이 살 수 있었을텐데.
왜 화를 냈고 왜 퇴사를 한 것일까.
법적으로도 그녀들을 처벌할 근거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데.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데.
“…아저씨.”
“아하하, 아아…아아…흐윽, 아하하하하….”
나는, 그녀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던 것일까.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
“…”
휴지를 들고 아까처럼 무언가 꼼지락대던 그 아이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망설이면서 내 얼굴에 닿았다.
“…뭐, 하는 거야.”
“…몰라요.”
그, 나의 눈물을 천천히 닦아주는 손길은, 너무나도 따스해서.
언젠가 누군가에게 느꼈던, 그 손길과 비슷해서…
“손, 대지마…”
“…”
아무리 밀어내도 그 손길은, 망설이면서도 자꾸만 내 얼굴을 어루만져 간다.
“너와, 나는…어디까지나…”
“죄송해요.”
“뭐…?”
만지지마.
내 얼굴을 그런 식으로 만지지마.
아무것도 모르면서.
“…죄송해요, 저랑 다르다고 해서.”
“무슨….”
왜 그렇게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어차피 너도….
그래서 우리는.
“미안, 미안해요… 아저씨에게 그런 말을, 해버려서. 알고 있으면서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뭐가….”
우리는, 그저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면 서로의 마음에 간섭하지 않는,
“자기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거, 말이에요. 나는 그런거 하나도 원하지 않았는데….”
“…”
상처받을 일 따위는 조금도 없는.
그런 관계일텐데….
“똑같네요. 우리.”
…괴로웠다.
그녀들과 있으면 괴로웠다.
고장난 축음기처럼 언젠가부터 나의 말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는 그녀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괴로웠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속에서 매스꺼움이 밀려왔다.
식은 땀이 흘러나왔다.
나의 말이 닿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그 경멸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 괴로워서...
또 내 감정을 드러냈다가 모든 걸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숨기고 감추고 참았다.
나만 가만히 있으면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아니, 그만 생각하자.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만, 그만.
그만.
“너가, 뭘…읏…으윽…아아아….”
“…몰라요.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어떤 사건을 겪었는 지도, 하나도 몰라요.”
그렇지만 아파.
이렇게나 아파….
그만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생각할 수 없을 리가 없잖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근데 그냥, 아저씨 눈을 보고 있으면…알 것 같아서.”
“…”
집도, 돈도, 먹을 것도, 애정도, 호의도…
너희에게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었어.
그저,
“어제 거울에서 본, 내 눈이랑 비슷하구나…싶어서.”
그저 나는…
다시 너희들과 영화를 보고 싶었어.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그리고….
“왜냐면…”
“우리가 잘못한 것 따위는 조금도 없는 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다시 한번, 너희들과 얼굴을 맞대고….
그저 그것 뿐이었는데.
“그러니까, 울지 마세요.”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 손은,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흐르고 흘러서 모두 마를 때까지….
마치, 구름을 품은 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