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9. 네가 없는 거리 (1)
“얼마나 더 가야 돼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어둠 속을 질주하는 열차 안, 여름이는 나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이따금 바깥에서 들려오는 쇳소리 때문에 그 아이의 말이 평소보다 작게 느껴졌다.
“다섯 정거장 정도 남았어.”
“하암, 도착하면 깨워주세요.”
내 말을 들은 여름이는 앉고 있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다시 눈을 감았다. 문득 우리가 앉아 있는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락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의자라는 최소한의 기능만을 남겨둔 딱딱하고 차갑기만 한 은색의 쇳덩어리.
이런 곳에서 잠이 들 정도면 어지간히 피곤했던 거겠지.
어제, 여름이가 차려준 음식을 먹고 난 뒤 우리는 근처에 있는 가구거리에 방문해 집 안에 비치할 의자나 침대, 식탁 따위를 둘러봤지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게 문제였다. 여름이도 비슷한 마음이었는지 결국 집을 향해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마감은 엉성한 주제에 비싸기만 하고…이 동네 사람들 진짜 장사 대충 하네요.”
“그러게.”
그것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유수의 가구거리들이 몰락한 이유기도 했다. 온라인이나 해외의 값싸고 실용적인 가구들을 판매하는 전문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오늘날, 굳이 비싼 돈을 주고 가구 거리에 가서 저품질의 가구들을 구매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차라리 조금 멀더라도 유케아를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음.”
그러나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가구들은 합리적 가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딘가 한기가서려 있는 느낌이 들어 싫었다. 그런 실용성만을 위해 대량 생산된 나무, 혹은 플라스틱 덩어리들을 이 집에 놓고 싶지는 않았다.
실용적인 부분만을 챙기고 싶었다면 차라리 지금 앉아 있는 지하철의 의자를 떼어와서 비치해 놓는 것이 나을 수도 있으리라.
“…가보고 싶은 곳이 한 군데 더 있어. 거기서도 못 찾으면 유케아로 가자.”
“으음, 별일이네요. 아저씨가 먼저 가보고 싶다고 하시고.”
그렇기에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지하철에 몸을 맡긴 것이다.
조금, 보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까.
“역 한 번 더럽게 크네, 어, 보자. 그러니까 6번 출구로 나가야….”
“이쪽으로 나가는 게 더 가까워.”
“많이 와 보셨나 보네요.”
“그랬었지.”
서로 다른 두 개의 노선이 합쳐져 있는 거대한 역, 환승장으로 향하는 기다란 복도와 군데군데 입점해 있는 지하 상점, 그리고 수많은출구가 복잡한 인상을 더 하고 있었다. 나도 그녀가 지름길을 알려주기 전까지는 상당히 헤맸었는데.
몇 개의 계단을 올라가니 익숙한 거리의 풍경이,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 서울 맞아요?”
조금 낡고 군데군데 지워진 부분이 보이는 상가 건물과 세월이 느껴지는 폰트, 그리고 촌스러운 색의 간판이 우후죽순으로 자라 있는 골목. 세련된 느낌의 건물들이 한 대로를 중심으로 늘어서 있긴했지만 수도권, 그것도 서울의 도심이라고 하기에 그 거리는 고층 아파트는 거녕 5층 높이의 상가 하나조차 찾기 힘든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꽤 오랜만에 방문한 것일 텐데, 거리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남아 있었다.
“아저씨.”
“응?”
“그래서 여기는 왜 오자고 하신 거에요?”
“꿈이었거든.”
빌딩이 없어 탁 트인 하늘, 그리고 어디까지고 이어진 듯한 저 골목의 모습.
모든 것이 내 기억대로다.
“돈을 벌면 여기서 가구 하나를 사보고 싶었어.”
“네….”
“가보자.”
조금 들뜬 발걸음으로, 여름이와 함께 이곳이 가구 거리임을 알리는 선간판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고풍스러운 벽돌의 실외장식(Exterior)이 돋보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구경 좀 해도 될까요?”
“그러세요.”
조금 무심한 듯한 주인장에게 허락을 구하고 가게 안의 가구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총 2층으로 이루어진 그 가게 안에는, 수많은 의자와 테이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와, 진짜 다르긴 하네. 저기, 이런 건 어떠세요?”
여름이가 고른 것은 고혹적인 선홍색의 쿠션과 은은한 광택을 내비치는 하얀색 보디가 돋보이는 회전 의자였다. 이제는 흔해진 에로 사리넨의 튤립체어에서 영감을 얻은… 아니 거의 모방한 듯한, 작은 의자.
“집에 의자 하나만 둥둥 떠다닐걸.”
“그, 그런가?”
예쁘긴 했지만,여전히 한기가 서려 있었다.
“저기도 가보자.”
조금 더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가구가 없었기에 근처의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까의 가게보다는 컨셉 카페나 미술관 등에 어울릴 만한 전위적인 디자인의 가구들이 많은 곳이었다.
“아저씨, 이거 보세요. 이게 어떻게 안 쓰러지는 거지? 와, 와….”
그 안에서 여름이는 팽이처럼 아래쪽 부분이 튀어나온 의자에 앉아 퍽이나 재밌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다. 불안해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의자를 꼬옥 잡고 있는 그 모습을 어쩐지 조금 우스워서….
“푸흡.”
“아니, 아저씨도 앉아보세요. 진짜 신기하다니까요…그래요, 차라리 이런 걸 사시는 건 어떠세요.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안 질릴 것 같은데.”
조금 전 가게에서 본 의자와 마찬가지로 해외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의자를 카피한 제품.
언젠가 이다솜과 함께 갔던 전시회에서 앉아봤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 저 아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지.
그리고 그 여자가….
“뭐, 뭐에요?”
“아니, 좋아하는 것 같아서.”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여름이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스마트폰 액정 안에 표기된다.
“자, 잠깐만요. 뭘 찍는 거에요…. 앗, 으앗!”
“아니, 그냥 네가 앉아 있는 모습을….야, 야!”
의자에서 급하게 일어나던 여름이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지려는 것을 손을 뻗어 가까스로 받아냈다. 우리들이 바닥에 성대하게 누워있는 와중 오직 팽이 의자만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아야야….아저씨, 괜찮으세요? 그, 죄송….”
“아니야, 내 잘못이지뭐.”
“…내 표정 왜 이래.”
내 곁에 누워 스마트폰에 표시된 자신의 사진을 확인하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여름이.
“미안해. 장난 좀 쳐본다는 게…바로 지울 테니까. 자, 일어나.”
“…..”
손을 내밀자 그 아이는 그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로 몸에 묻은 먼지를 꼼지락거리며 털기 시작했다. 장난이 조금 심했던 걸까. 확실히 동의도 구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촬영을 당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알고 있었을 텐데, 나는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조금, 분위기에 휩쓸린 걸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다시는 그런 장난 안 칠 테니까. 자, 여기. 삭제했어.”
“…아.”
액정을 여름이 쪽으로 돌려 사진을 삭제한 것을 보여줬는데도 그 아이는 여전히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고 싶은 건 발견하셨어요?”
“아니.”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게의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찬찬히 거리의 모습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4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구점들이 잔뜩 들어서 있었다. 가난했던 학생시절 때는 꿈도 꾸지 못하고 멀찍이서 구경만 했던 이곳의 값비싸고 세련된 가구들도, 지금의 나라면 몇십 개도 거뜬히 살 수 있겠지.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럼 다음에는 저기로….”
“아니, 저기로 가보자.”
발걸음을 옮긴 곳은 대로변의 고급 가구점이 아닌, 그사이에 난 작은 골목길. 그 안으로 들어가자 지하철역에서 처음 내렸을 때 보였던 가게들처럼 낡고 촌스러운 간판을 내건 가구점들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었다.
어딘가에서는 나무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상점 한구석에는 가구를 만드는 데 쓸것만 같은 자재들이 기대어져 있는 거리의 그 모습.
언젠가 그녀와 함께 이 거리를 발견했을 때의 그 모습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그래, 여느 때처럼 과제를 위해 인쇄소에 들려 의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초여름의 어느 날. 너는 조금 걷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나에게 넌지시 건넸지. 그날은 나도 너와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기에 흔쾌히 수락했었다. 나눈 이야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면 너도, 나도 사진을 찍는데 한 눈이 팔렸었으니까.
그 왜, 인쇄소가 있는 곳에서 조금 걸어가니까 나왔던 그 거대한 상가 건물을 말하는 거야. 칙칙한 회색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대한민국 국토의 절반을 덮어버린 근래에 이런, 과거의 홍콩 영화에서나 봐오던 전선과 간판들이 잔뜩 늘어서 있는그 상가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지.
잘 알지 못하는 전자 부품, 신기한 동물들이 전시된 펫 숍, 다 쓰러져가는 작은 극장. 그리고 이, 가구를 파는 낡은 거리. 그 상가를 시작으로 정신없이 골목길을 걷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와 나는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아저씨, 왜 그래요?”
“아니, 조금 옛날 생각이 나서.”
나무판자가 세워져 있는 전봇대를 하나 지나 초록색 간판이 인상적인 조그마한 가구점의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문은, 여전히 녹이 슬어 잘 열리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시게.”
가게의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주인장은 뚝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의자를 조립하고 있었다. 조금 전 구경하고 온 현대적인 분위기의 의자와는 정반대인 투박한 디자인을 가진, 목제 의자.
“콜록, 무슨 먼지가….”
가게 안에 전시된 다른 가구들도 그 의자처럼 모두 목재로 만든 것들이었다. 만들고 난 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그 위에는 먼지가 조금 쌓여 있었다.
“뭐 찾는 것이라도 있나?”
“어르신, 저 기억 안 나세요?”
“응…?”
“몇 년 전에 자주 구경 왔었는데. 그 왜, 멀쩡한 의자 부숴 먹은 망나니 놈들이라고 하셨잖아요.”
“…미안하네. 요즘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녀, 설하와 이 거리에 처음으로 발을 들였을 때 발견했던 가구점.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장인처럼 목재를 쓱쓱 깎아내며 의자를 만들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 홀린 듯이 이곳으로 들어온 우리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나무 조각에 발을 헛디뎌 멀쩡한의자 하나를 성대하게 박살 내고 만 것이다.
“…그렇군요. 조금 둘러봐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게나.”
아, 이거다.
그때 의자에서 튕겨 나온 나무 조각이 벽에 스쳐 만들어진 작은 흠집.
…정말이지 그때는 간담이 서늘해졌었는데.
어르신이 너그럽게 넘어가 주시지 않았다면 큰돈을 물어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 있는 것들.”
“응?”
“전부 저 할아버지 혼자서 만든 건가요.”
손으로 먼지를 가볍게 쓸어내며 의자를 만지던 여름이가 그렇게 물어본다.
“맞아. 지금도 저기서 만드시고 있잖아.”
“…대단하시네요. 혼자서 이렇게나, 정교하게.”
해외나 국내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들어 낸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들보다는 조금 촌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가게의 가구에는 만든 이의 혼이,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야야…도진아, 괜찮, 헉.”
“나는 괜찮, 어....”
“…이 망나니 놈들이 멀쩡한 의자 하나를 부수는구나.”
“죄, 죄송합니다. 그, 변상할 테니까. 어, 얼마죠? 정말 죄송합니다.”
“저, 저도 같이 물어낼게요.”
그리고,
“…됐어. 필요 없네, 그런 것.”
“네, 네? 그래도….”
“원래부터 그렇게 될 물건이었겠지.”
“그게 무슨….”
시간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