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21. 우수/雨水 (1)
약간의 열기가 느껴지는 초여름의 저녁,그녀는 골목길과 주택단지 사이를 잇는 시멘트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헝클어진 흑색의 머리카락, 먼지투성이가 된 옷, 얼굴 군데군데 나 있는 상처들, 굽이 부러진 하이힐.
묘사하는 것이 꺼려질 정도의 처참한 몰골이었다.
허나 그녀는 자신의 상태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계단에 덩그러니 앉아 칙칙 소리를 내는, 불이 잘 나오지 않는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눌러 대며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어떻게 찾아온 걸까.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안 것일까.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을 때처럼, 뭔가 수작을 부린 것일까.
온 동네에 벽보를 붙인 것은 이것 때문이었을까.
온갖 가능성이 내머릿속을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또다시 복직하라는 말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일 지도 모른다.
갑자기 회사를 떠난 나를 힐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일 지도 모른다.
며칠 전, 회사에서 열렸던 파티에서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을 모독하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의한 것이다.
나를 다시 한 번 사랑해보겠다고.
설령 그것 때문에 누군가를 상처 입히더라도….
나는, 나의 마음은 조금도 잘못되지 않은 것이다.
상관없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을 리가 없어.
그런 식으로 자기 위안을 하며 도망쳐 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나의 말이 그녀들에게 닿을지 닿지 않을지는, 모른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녀들이 이런 식으로 날 찾아올 지도 모른다.
그래도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해서 맞서 싸울 것이다.
떨리던 손이 멈췄다.어딘가에서 느껴지던 울렁거림이 멎었다.
마음 안에 일렁이던 파도는, 이제 잠잠해졌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네가 있는 거리로….
“담배, 끊은 것 아니었어?”
“…?”
주변의 언덕에서 구르기라도 한 것일까, 곁으로 가니 멀리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자잘한 상처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러진 하이힐 대신 맨발로 걸은 탓인지 발바닥을 감싼스타킹은 선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청조한 분위기를 은은하게 풍기던 흑발도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거기다 눈물이라도 흘린 것인지 눈가의 화장은 조금 번져 있었다.
몇 주 전 예쁘지 않으냐며 자랑을 하던 네일은, 이제 산산조각이 나 음습함을 더하고 있었다.
…나를 찾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아팠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두 번째로 사직의 의사를 표했을 때부터 그녀가 내게 보여준 행동은 나를 이토록이나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추억이 많았다고 한들, 일반적인 친구 사이에서 보여줄 만한 행동은아니지 아니한가. 아니, 이전부터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행동 전부가….
대체 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데?
왜 자꾸 나를 헷갈리게 하는 거야?
너는, 너만은 아니잖아.
…몇 년 동안 나를 고통스럽게 한 그 저주.
그것도 오늘부로 끝이다.
“채설하.”
“…?”
그렇기에 말을 걸었건만, 그녀는 여전히 헛것을 보고 있다는 듯한 태도로 멍하니 내 쪽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뚝, 뚝. 발바닥에서 떨어져 나오는 핏방울 소리만이 시멘트 바닥에 울려 퍼졌다.
“…하아.”
담뱃불을 붙이는 것도 잊은 채 얼음처럼 굳어 있는 설하를 잠시 뒤로 하고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가 상비약 판매대에 있는 반창고, 소독약, 연고 그리고 삼선 슬리퍼와 담배를 구매해 돌아왔다.
“이것 좀 벗어봐.”
“…도, 진이?”
손짓으로 입고 있는 스타킹을 벗으라고 지시했지만 설하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만 할 뿐 여전히 멍한 상태 그대로였다.
“곪기 전에 소독해야 해. 빨리.”
“…아파.”
그녀를 배려해 뒤 돌아 서 있던 내게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파….”
상처투성이가 된 손과 깨져서 피가 흘러내리는 손톱, 저 상태로 힘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가만히 있어.”
편의점에서 사 온 소독약의 뚜껑을 따고 그 안에 달린 스틱을 이용해 상처 부위 주변에 약을 조심스럽게 발라 나간다.
“읏, 으읏….”
“조금만 참아.”
고통스럽다는 듯이 신음을 내는 설하, 어느 정도 소독을 마치고 연고를 바른 뒤 그곳을 반창고로 감쌌다. 수 장의 반창고가 그 조그마한 손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아서….
“자, 다음은 발바닥 쪽 할 거니까, 빨리.”
“힘이, 안 들어가….”
스타킹을 내리다 말고 아프다는 듯 표정을 찡그리며 설하는 그리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움직이지 마.”
무릎의 살짝 위에 걸쳐 있는 스타킹을 잡고 천천히, 그녀가 아픔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내려간다.
“아프면 말해.”
“….”
대답은 없다.
그저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드는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읏, 으으읏….”
“참아.”
손바닥을 소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선홍빛을 띠고 있는 그녀의 발바닥에 소독약과 연고, 그리고 반창고를 차례대로 붙여 나간다.
반창고를 붙일 때마다 그녀의 온기가 손을 타고 전해진다.
그 발은, 몸은, 떨고 있었다.
“다 됐어.”
필요한 조치를 모두 끝낸 나는 그대로 그녀의 옆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자.”
그녀가 들고 있던, 이미 피범벅이 되어 바닥에 떨어지고 만 담배 대신 조금 전 구매해 온 담배를 넌지시 건넨다.
“어차피 이거밖에 안 피잖아. 너나 나나.”
“….”
설하는 내가 건넨 담배를 받아 입안에 머금었다. 반창고 투성이가 된 손만이 아슬아슬하게 그 얇은 종이 쪼가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나는, 들고 있는 라이터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설하가 문 담배 끝쪽에 불을 붙였다. 칙, 하는 짧은소리와 함께 불이 붙고 이어서 연기가 초여름의 저녁놀을 향해 퍼져 나간다.
“….”
“….”
얼마 만일까, 이렇게 설하와 나란히 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은.
설하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마음에 따라 시작했던 담배.
언젠가 가련이가 건강에 해로우니까 금연할 것을 권유해 그녀와 같이 끊었던 담배.
살랑살랑 움직이는 머리카락 사이로 이따금 보이는 설하의 강옥과도 같은 눈동자를 보는 것은.
“왜 왔어.”
조금 더 그 시간 안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지만 이제 우리 사이에 남겨져 있는 시간은, 감정은 얼마 남지 않았기에.
“….”
“갑자기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나서 놀랐잖아.”
그러니까 말을 꺼냈다.
“굳이 이런 식으로 찾지 않아도, 전화나 문자로 연락했으면….”
“지랄하지 마.”
그녀의 말이, 침묵을 깬다.
“지랄하지 말라고, 유도진. 뭐? 전화? 문자? 연락하지 마라며? 다시는 보지 말자며? 걸면, 또 차단할 거잖아.”
“설하야, 나는….”
“아팠어, 아팠다고. 네가 여기 있다는 소식만 듣고 왔는데, 너무 넓어서, 그래서 닥치는 대로 뛰어다니고 물어보고 언덕 위에 있는 공원에 올라가서 네 모습이 보일까 찾아보고, 그렇게 내려오다가 구두 굽이 부러져서 이 좆같은 언덕에서 굴러서…그런데도 너를 찾고 싶어서, 네가 보고 싶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모양이고…!”
“설하야.”
“시발, 손톱이 박살 나서 아파. 입안에서는 비릿한 맛밖에 안 느껴져. 걸을 때마다 칼날 위를 걷는 것만 같아. 왜 내가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거야? 왜 말을 안 해주는 거야. 왜 도망가는 거야? 왜 항상 꾹꾹 참기만 하다가 그딴식으로 도망가기만 하는 거냐고. 나는 너를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네가 없는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마음이 아픈데, 보고 싶은데. 너에게 있어서 나는 뭔데? 그냥 쓰다 질리면 버리는 놀잇거리에 불과한 거야? 시발, 왜, 왜!”
“채설하.”
“지랄하지 마, 지랄하지 말라고, 이 시발 새끼야…!”
“채설하!”
작은 골목길에 내 외침에 울려 퍼진다.
“네가 진짜 나와 이야기하기를 원했다면, 내가 그걸 거절할 리가 없잖아.”
“….”
“…나는 그날도 너희와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 그걸 무시했던 건 너희이잖아.”
“…그건, 그건…!
“네가 지금 나와 이야기를 하러 온 건지, 그냥 억지를 부리려고 온 건지는 몰라, 모르겠어. 너를 못 본 척 하고 도망갈 수도 있었어. 그런데 굳이 지금 내가 왜 네 옆에 앉았다고 생각해? 왜 너에게 말을 걸었다고 생각해?”
“….”
“나도 널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끝내고 싶은 거야.”
“…어떻게 알아….”
“뭐?”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이 좆같은 새끼야!”
설하의 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사장으로서 월급을 지급했어. 네가 따뜻하게 잘 수 있는 곳을 제공했어. 네가 좋아하는 요리를 대접했어. 너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줬어.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살펴줬어. SNS에서 재미있다고 소문난 곳도 데리고 가줬어. 일반인들은 가보지도 못할 고급 레스토랑도 데려가 줬어. 시발, 나는 친구로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줬다고. 그런데…이제 와서 싫었다고? 말이 안 되잖아. 응? 고작욕 좀 한 것 가지고 그런 거야?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는데? 나 같은 친구가 어디 있는데? 여기 같은 직장이 어디 있는데? 이렇게 행복한 인생이 또 어디에 있는데?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자. 당장 자기랑 바꾸자고 할걸?”
“….”
“그런데 뭐, 힘들어? 나랑 있으면 힘들다고? 네가 힘들 게 뭐가 있는데. 네가 부족한 게 뭐가 있는데. 내가, 너에게 뭘 더 해줘야 하는 건데!”
그래.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내가 틀린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고통을 외면하고, 참고, 너희에게 순응하고….
하지만.
“…설하야.”
“뭐?”
“가구거리, 기억나? 강의 끝나고 곧잘 갔었던….”
나지막하게, 그러면서도 기도하는 심정으로 너에게 말을 건넨다.
“시발,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묻는 말에나 대답해 보라….”
“…오늘 오랜만에 거기 갔다 왔는데 어르신 아직도 장사하시더라. 그 왜, 우리가 넘어지는 바람에 의자 하나 박살 냈던 그 가구점 말이야.”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거긴 돈이 없을 때나 갔던 곳이잖아. 그 구질구질한 동네 이야기를 지금 왜 꺼내는 거야?”
구질구질한, 동네라….
“우리 이제 성공했잖아. 어딜 가서 우리 회사 이야기 꺼내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웬만한 회사들은 꿈도 못 꿀 강연 대에 올라가 이야기도, 잔뜩 했어. 천 원 한 장 아끼겠다고 빌빌거리던 그때와는 이제 다르잖아. 이제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전부 갈 수 있다고. 영상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직접. 그딴 개 같은 골목 따위….”
“…눈이 아팠어.”
“뭐?”
“저번에 너와 함께 갔던 월드타워 말이야, 조명이 너무 세서 눈이 아팠어.”
“그게 무슨….”
“유명한 셰프가 하고 있다며 네가 데려가 줬던 그 레스토랑의 음식도 잘 모르겠더라.”
“…뭔데.”
“가는 곳마다 어찌나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네 얼굴도 제대로 못 보겠더라.”
대학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호화로운 고층 빌딩의 전망대와 방문 몇 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
그곳에서 너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도시의 야경이 어떤지, 음식의 맛이 어떤지 만을 신경을 쓰고 있었지.
너와 함께갔건만 너는 내 옆에 없었다.
“설하야.”
“….”
“강의가 끝나고 지하철에 타 너와 수다를 떨면서 오늘은 어떤 곳을 찾아볼까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어.”
“…..”
“골목길의 작은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차양(遮陽) 아래에 나란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어.”
“….”
“작은 언덕 몇 개를 내려오면서 머리카락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네 얼굴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어.”
“…뭐야.”
“설하야, 나는 그저 너와 다시 한 번 그 거리를 걷고 싶었을 뿐이야.”
“뭐야, 그게 뭔데. 대체….”
네가 말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배부른 얼간이로 보일지도 몰라.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빠르겠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돈도, 집도, 그런 건 필요 없어. 남들이 뭐라고 하던, 어떻게 생각하건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야.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이야. 나는 그저 너와 같이 걸을 수 있는 작은 골목 하나만 있으면 됐는데. 그게 잘못됐던 걸까.”
“….”
“언젠가 너에게 오랜만에 그 골목길로 가자고 했던 적이 있었지. 기억나? 너는 다른 곳에 가자고 했어. 회사가 끝나고 조금 걷지 않겠냐고 했을 때도 너는 그럴 시간 따위는 없다고 했잖아. 그럴 때마다 네 표정을 보고 느낀 거야, 더 이상 그 거리를 너와 같이 걷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구나, 하고….”
누군가 나에게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해줬으니까.
그러니까 한번 더 나를 사랑해보기로 한 거야.
남들이 뭐라 하건….
그런 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웃기지 마.”
“….”
“혼자 고귀한 척, 깨끗한 척 하지 마! 그럴 거면 왜 회사를 만들자고 한 건데? 너도 결국은, 돈 때문에, 그런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그랬던 거잖아! 그때처럼,창문 밖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그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까…!”
“…나는 그저, 누군가와 영화를 함께 보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경험을,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회사를 세우자고 했던 거야.”
“…어?”
“그걸 알려준 건 너잖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무것도 없던 나에게 그걸 알려준 건 너였으면서….”
“아니야, 우리가 회사를 세운 건….”
“왜, 잊어버린 거야….”
그 시간을, 순간을 소중하게 여긴 건 어쩌면 나 혼자만일지도 모르겠다.
내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얼굴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뭐냐고, 대체 뭔데. 시발, 뭐냐고! 이 개새끼야!”
그녀의 손에 붙여진 반창고가, 피로 조금씩 물들어 간다.
“시발, 네가 원하는 게 아니야? 그딴 촌구석에나 가는 게 네 꿈이었다고? …그렇다고 쳐. 그렇다고 치자고. 그렇다면 왜 말해주지 않은 건데? 넌지시 던지는 게 아니라 그냥 좆같다고,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면 됐잖아. 우리랑 있는 게 그렇게나 괴로웠다면 왜 퇴사하지 않은 건데. 응? 힘들었다면서. 왜 1년 동안이나 그딴 어처구니없는 연기를 하며 보냈던 건데? 장난이라도 치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경력 때문에? 너에게 있어서 우리는, 나는 뭐였던 건데? 왜, 왜……! 말이 안 되잖아! 이 시발 새끼야!”
설하의 비통한 외침이, 귓가에 맴돈다.
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
나의 감정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
설하의 말처럼 나는 선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위축되어서, 그 한마디를 꺼내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전부 핑계다.
내가 그 한마디를 말하지 못한 이유.
그 단 하나의 이유는 결국,
“…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너를…
너를.
“너를 쭉, 좋아했었으니까.”
좋아하는 너에게 미움받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
그날, 눈이 오는 날.
우리가 공원의 작은 시계 앞에서 만나기로 했을 때부터….
“…뭐?”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