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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화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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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급 PT 강사

툭.

일부러 부딛쳐 온 어깨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휘청였다. 저급한 도발에 전직 용사의 촉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참자.’

리온이었으면 가만 안 뒀겠지만 한재이라 봐 줬다. 일반인 한재이는 직업 용사 리온보다 관대하니까. 응.

"야 빈대. 또 김 선생한테 대 줬냐?"

아니 근데 이건 또 어디서 배운 참신한 개소리야.

무시하고 지나가려던 재이는 귓가에 거슬리게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 가까이 오지 마! 땀 냄새 나, 썩을 것들.’

얼굴을 그런대로 낯이 익은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쭈. 눈깔 안 깔아? 건방지게.”

아, 생각났다.

이 놈들 한재이에 대한 견제를 폭력과 협박이라는 진부한 방식으로 수행 중인 머저리들이었다. 그래 봐야 꼴찌다툼인 것을.

“니 눈깔부터 챙겨 새꺄.”

한 대 치려는 듯 팔을 들어올리는 녀석의 아래쪽으로 먼저 파고 들어 머리로 냅다 들이받았다.

“!!!!!!!”

조금 전까지 으스대던 녀석이 피가 낭자한 코를 움켜쥐고 뒤로 두세걸음 물러났다.

"아악 내, 내 코. 내 코!!!"

"너 그 코에 박은 실리콘 터졌겠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누가 두들겨도 반항 한 번 한 적 없는 샌드백 한재이가 맞나 싶은 싸늘한 말투에 녀석들이 움찔 놀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서 있던 다른 한 놈이 외쳤다.

"이 이 새끼가!!! 주 죽고싶어 너?!”

"그러던가. 근데 죽기전에 네 코도 터뜨려 줄까? 너도 봤지? 몇 초 안 걸려.”

성큼

앞으로 크게 내딛자 상대가 주춤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그대로 시선을 맞춘 채 씨익 웃어주자 여전히 코를 움켜쥐고 있는 다른 녀석을 추슬러 도망간다. 두고보자는 식상한 멘트조차 잊은 채.

"쯧. 근성없는 것들.”

박치기는 다섯 형제의 틈바구니에서 체력적으로 가장 열등한 자신이 단련한 단 하나의 기술이었다. 형제들 중 가장 왜소한 체격에 성격도 소심했지만 재이의 박치기 앞에서는 맨손으로 곰도 때려잡을 위인인 큰 형 다이조차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썩히기엔 아까운 재능이야. 응.”

제법 마음에 드는 자신의 단단한 머리통을 슥슥 쓰다듬었다. 적당한 자극에 활성화된 뇌가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아 맞다! 알바!!”

잊고 있었다. 돈 벌러 가야지!!

체력도 기를 겸 오늘부턴 뛰어 가 볼까.

의욕이 솟구쳤다, 고맙다 머저리들아!!!

.....헥헥. 헥.

'와 씨발, 진짜 저질 체력.'

재이는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도보 30분의 거리를 뛰어서 20분에 온 것도 어이가 없는데 눈 앞에 보이는 이것은 별? 별인가? 아머세트 풀장착 하고 하루종일 뛰어도 지쳐본 적 없던 용사님은 정녕 저 나라 별 이야기가 되었구나.

저 혼자만 알아들을 푸념을 중얼거리며 바의 뒷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부산스러운 주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야 꼬맹이. 지각이야. 자꾸 지각하면 잘라버릴거라고 했지, 앙?"

인상 더러운 얼굴로 윽박지르는 눈앞의 저 인간은 부주방장이었다. 정작 인사권자인 주방장은 별 말 없는데 얘가 사사건건 시비다.

‘게다가 이제야 정각이잖아 쓰벌롬아.’

"에이 부주방장님. 이제 정신데 뭔소리 하십니까. 너무 바쁘셔서 시계를 잘못보셨나."

차분하게, 그렇지만 주방장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크게 대꾸하자 부주방장의 못생긴 얼굴이 팍 구겨지는 것이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찍소리 못하고 굽신거리며 얼른 제 자리로 뛰어갔을 녀석이 제 말에 토를 달았으니 이게 뭘 잘못먹었나 싶은 표정이었다.

"아 그리고 저 고무장갑 새 거 좀 쓰겠습니다. 며칠 전에 구멍났다고 말씀 드렸는데 또 까먹으셨나봐요."

이 쪼잔한 새끼가 고무장갑 좀 바꿔달라는걸 계속 무시하는 통에 안 그래도 푸석한 손에 습진 생기기 일보직전이었다.

‘안 되지 안 돼. 아이돌은 몸이 재산인데.’

"...어, 어. 그래."

어정쩡한 대답을 하며 주방장의 눈치를 보는 부주방장을 슬쩍 흘기며 내 자리에 섰다.

오늘도 즐거운 노동타임의 시작이다.

털푸덕

어떻게 집까지 돌아 왔는지 기억도 안 났다.

세 평 남짓한 고시원 공간의 딱딱한 바닥에 드러누운 재이는 정녕 영혼까지 탈탈 다 털린 기분이었다. 왜 한재이가 걸어다니는 빗자루형 인간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빡센 연습에,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접시만 닦아대는 극한 노동의 심야알바, 거기에 학교까지. 이러니 몸이 남아 날 리가.

'... 쨀까말까.'

재이는 고민했다.

'미련한 놈들의 첫 번째 특성이 뭔지 알아? 바로 맹목적인 성실함이야. 학교=매일 가야함 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나 나 신의 기사 리온 드 세리엘... 이 깃든 인간 한재이. 학교 그게 대순가. 여차하면 그냥 때려치우면 되지.'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재이는 구겨진 교복을 입고 등교길에 오르고 있었다. 맹목적 성실함 때문이 아니었다.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역시 고시원에 있기보단 학교에 가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유? 물론 있지.

"밥이 나오잖아. 밥"

재이는 중얼거렸다. 아니 투덜거렸나. 시원한 에어컨에 밥까지 준다는데 안 가는 게 이상하지. 재이는 스스로가 그렇게까지 미련한 놈은 아니었다는 점을 위안삼아 부지런히 학교를 향해 발을 옮겼다.

산소같은 남자

살아있는 생명체는 물론, 신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던 불세출의 영웅 리온 드 세리엘과는 전혀 무관한 타이틀이었으나 한재이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잘 맞는 수식어였다.

'와 이거 신의 가호보다 더 좋을지도.'

살짝 불경한 생각을 하던 재이는 이내 고개를 털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한재이가 갖는 존재감은 공기에 수렴. 선생이건 학생이건 살아숨쉬는 모든 것이 재이에게 노관심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가 뭘 하건 다들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 무슨 지상낙원이란 말인가.

밀린 잠 보충 하다보니 점심시간. 반찬이 맛이 없네 어쩌네 투덜대는 애들 사이에서 두 번이나 줄을 다시 서 가며 배식을 받아 먹어도 아무도 눈치를 챈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배를 두들기며 시원한 에어컨 속에 잠시 꾸벅대니 바로 하교할 시간. 남아서 야자하는 애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학교가 천국이라니 이런 반전이.

이 미련한 놈이 다른 건 몰라도 학교는 꼬박꼬박 나가고 있던 이유가 이거였군. 재이는 피식 웃으며 별로 든 것도 없는 가방을 고쳐 메고 교문으로 향했다.

“우선 이것부터.”

재이는 하루종일 학교에서 잠자며 고민한 결과를 종이에 써서 고시원 벽에 붙이곤 히죽 웃었다. 이제 미련한 찐따로서의 생활은 쎄굿바 할 때가 온 것이다. 산소같은 남자도 편하고 좋지만 역시 자신에겐 만물에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호칭이 더 어울렸다. 암 그렇고말고.

오늘 보니 학교 급식도 완전 맛나더만 주제에 입도 짧고 편식도 심했던 모양인지 학교 급식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빠져가지곤. 지금 상황에선 편식도 사치야.'

재이는 가방안에서 묵직한 플라스틱 용기를 꺼냈다. 두 번 먹은 것도 모자라 세 번째 배식을 쓸어담았음에도 학교에 있던 그 누구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완벽한 공기.

'...산소같은 남자는 울지 않아. 울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체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균형잡힌 식단. 학교급식은 질과 맛은 보장하기 힘들었지만 일단 영양학적 균형은 문제 없었다. 저녁을 급식으로 때울 수 있다면 돈도 굳고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윈윈.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잡고. 님도보고 뽕도따고. 전투적으로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걱정마라 한재이. 앞으로 용사급 PT강사가 전담관리 해 줄 테니.'

세계도 구했는데 너 하나 못 구하겠니. 형만 믿어.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

재이는 고시원에 붙여 놓은 거울 앞에 섰다. 어느새 눈 아래로 치렁치렁하게 자란 머리가 불편했다.

3개월 간 정말 마지막 죽을 힘까지 짜내어 버텨낸 게 아주 시간낭비는 아니었던 듯 비쩍 곯아 언제 부러질 지 모를 부지깽이 같던 몸매는 그럭저럭 인간다운 골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부실한 몸 탓에 키보다 작아보이던 체구도 182라는 숫자에 걸맞게 늘씬하게 빠져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악착같이 트레이닝을 한 덕에 몸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잔근육으로 꽉 들어 차 있었다.

"이제 좀 인간같네."

씨익 웃으니 거울 속에서 잘 생긴 청년 하나가 따라 웃는다. 만족한 듯 잠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재이는 입고 있는 티셔츠의 목덜미가 헐렁하게 늘어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보니 마지막으로 쇼핑이란 걸 해 본게 언제였더라. 재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지갑을 꺼내 들고 밖으로 나섰다.

"어서오세.....요."

수많은 탑 연예인들의 헤어스타일을 맡고 있는 카렌 장의 아로더뷰티샵. 그 곳의 문을 밀고 들어온 얼굴에 리셉션 심 팀장은 부서지려는 영업용 스마일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말을 이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눈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치렁치렁한 머리를 한 채 안으로 들어선 청년은 이 곳의 화려한 인테리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지면 없어보이는 - 행색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질문에 청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헤어모델 구한다는 광고 보고 왔는데요."

듣기 좋은 톤의 목소리가 울렸다. 길게 자란 머리 탓에 잘 보이진 않지만 부드럽게 미소짓는 입매가 선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아 그러셨구나. 이쪽으로 오세요."

헤어 모델.

말이 좋아 모델이지 실상은 어린 스탭들의 실습용으로 헤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대부분 돈은 없지만 카렌 장이라는 명성에 혹한 젊은이들이 응모하곤 했다. 그러나 기업 대표이사의 명성과 일개 신입사원의 실력은 비례할 수 없는 법. 헤어디자이너들과는 달리 아직 손이 여물지 않은 어시스턴트들의 작품은 성공일때도 있지만 폭망일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샵의 유명세만 믿고 헤어 모델에 지원했던 사람들 중엔 돈은 달라는 대로 줄테니 이 꼴로 가게 밖으로 나가라고 하지만 말아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헤어 모델은 떡 먹을 생각만 하고 덤비기엔 체할 위험이 큰 아르바이트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안내를 하던 심 팀장은 자신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청년을 힐끔 바라봤다. 그럭저럭 큰 키에 실루엣이 날렵한 걸 보니 모델 지망생이라도 되나? 저 치렁한 머리만 좀 치면 견주어 볼 프로포션은 되어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연락을 받고 대기중이던 포니테일의 젊은 어시스턴트가 보였다.

"다은씨. 여기 알바하실 분 오셨으니까 부탁할게요."

"예, 심 팀장님."

주근깨가 소복한 얼굴이 어쩔줄 몰라 하는 것이 보인다. 심 팀장은 빙긋 웃어보였다.

"잘 해 봐요."

자신의 말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연신 감사하다고 고개를 꾸벅이는 다은에게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돌아나왔다. 착한 아이였다. 여길 들어올 수 있었던 걸 보면 나름 실력은 있어 보이는데 소심하고 어수룩한 성격 탓인지 어시스턴트들 사이에서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이 딱해 보이던 참이었다. 헤어 모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어쩌다 가끔 대박도 나니까.'

심 팀장은 어깨를 으쓱 하곤 다시 리셉션 부스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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