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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재님이시다
첫 번째 미션 - 솔로곡
첫 경연은 개인미션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이미 발표되어 있는 곡을 주제로 하되 편곡은 일체 금지였다. 하긴 비빌 언덕이라곤 쥐뿔도 없는 재이의 상황으로선 편곡이 허용된다고 해도 단지 다른 녀석들보다 불리해질 따름이었다. 오히려 기존 곡으로 승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떤 노래로 하지...'
늦은 밤.
처음부터 눈독들이고 있던 가장 큰 방 창문 쪽 침대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재이는 느긋하게 누워 첫 번째 미션을 떠올리며 자신의 낡은 노트북을 뒤적였다.
최근 3개월 간 연습하랴 몸 만들랴 바빴던 탓에 거의 켜 본 적도 없었던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뒤적이던 재이는 ★라고만 적혀있는 즐겨찾기를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이건?'
재이는 힐끔 주변을 살피곤 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클릭했다.
"....에?"
재이는 얼빠진 표정으로 노트북 스크린에 뜬 웹페이지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이 확 하고 눈 앞에 펼쳐졌다.
마치 또 한 번 차원 이동이라도 한 듯 아찔한 감각과 함께 하얗게 점멸하던 시야가 점차 밝아졌다.
'여긴... 어디...?'
여전히 조금 희뿌연 시야 속으로 들어온 광경은 어딘지 낯이 익었다.
어디지? 저게 어디더라?
기억이 날 듯 말 듯 간질거리는 느낌에 잠시 눈을 찌푸리던 재이의 눈에 대형 전광판이 들어왔다. 아 저건 분명 ....
'고시원 옥상이잖아?!'
놀란 재이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확히는 노랫소리가.
'이 이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눈을 돌리니 고시원 옥상 난간에 기댄 한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낯익은 그 등의 주인은 바로 자신, 한재이였다. 그리고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어지럽고 시끄러운 도심의 밤 속으로 조용히 울려퍼지는 목소리도 분명, 자신의 것이었다.
매력적인 미성이었다.
일명 소몰이 창법으로 유명한 가수의 대표적인 겨울 발라드가 한재이만의 감성을 싣고 도심의 밤소음 사이로 잔잔히 울려퍼졌다.
그렇지만 그 노랫소리는 얼마 가지 않아 뚝 끊기고 말았다.
“하아.....이게 아닌데.”
중얼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뒤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재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뭔가 부족해..’
목소리는 좋은데 그 뭐랄까.
- 흡인력이 부족해 흡인력이. 노래는 그냥 목에서 뽑아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듣는 사람을 휘어 잡을 수가 있어야지!!
자신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소리지르던 보컬쌤의 말이 떠올랐다. 말만 하면 되지 패긴 왜 패는거야.. 재이는 괜히 그 때 맞은 등이 아려오는 느낌에 눈썹을 찌푸렸다.
‘근데 맞는 말이긴 해. 전체적으로 좀 음 뭐랄까...’
.... 노매력이네.
“에이 대체 어쩌라는거야!!”
어지간히 갑갑했는지 과거의 자신도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보컬쌤이 인성은 망했어도 맥은 잘 짚었어. 문제는 그걸 어떻게 보완해 나가야 하는질 알려주질 않았다는 거지만.’
회사에서 붙는 보컬 트레이너도 눈치란 게 있었다. 학교도 아니고 안 될 주식에 투자하는 건 그로선 시간 낭비였다. 퇴출 후보 1호를 붙잡고 있을바엔 그 시간에 가능성 있어 보이는 다른 애들을 가르치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결국 재이는 스스로 그 뜻을 깨우쳐 보고자 밤마다 옥상에서 혼자 노래 연습을 했다.
‘근성은 높이 산다만...’
결국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처음 스카우트 될 때만 해도 노래도 춤도 마스크도 다른 아이들 보다 평균이상은 된다는 평가였는데 다른 아이들이 무섭게 치고 나가는 사이 자신은 어느새 멀찍이 뒤쳐져 있었다.
멍하니 화려하게 빛나는 대형 광고판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재이는 생각에 잠겼다.
리온이었던 시절, 노래는 신성력을 증폭시키는 가장 기초적이고도 강력한 수단이었다. 대마도사 영감탱이도 그 빨간 도마뱀 새끼도 신의 가호를 영창하는 자신 앞에선 제대로 힘을 못 쓰고 고전하곤 했었다.
‘내 식 대로 해 볼까?’
어차피 청자에게 영향을 주기 위한 수단이 노래라면 그게 감동을 주기 위한 것이건 황천길 프리패스를 주기 위한 것이건 똑같지 않을까.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샌가 현실로 돌아온 재이는 눈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헐.
몰라봤네 몰라봤어.
화면에 떠 있는 것은 만능 엔터테이너 차상혁의 팬카페 꿀단지의 대문이었다. 차상혁이 데뷔 초 자신의 팬들을 꿀님이라고 부른 것이 단초였는데 지금의 재이가 보기엔 아이돌이나 팬이나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무튼.
‘와. 한재이. 나름 덕업일치한 성덕이었잖아.’
그랬다.
한재이 a.k.a. 재재님이시다는 꿀단지 내에서도 나름 네임드로 분류되는 차상혁의 열성팬이었다.
어쩐지.
광고판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최애의 대형 광고판을 바라보며 노래 연습을 하다니 제딴엔 나름 명당자리를 찾아 비장한 각오로 임했던 모양이었다.
‘오글거리지만 뭐. 이해 못 할 건 아니지.’
결국은 그 최애 앞에서도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재이는 짠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중얼거렸다.
‘괜찮아. 내가 또 한 노래 하거든. 형만 믿어.’
- 재재님 오랫만이에요!!!
갑자기 활성화된 대화창에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니 누군가가 자신에게 1:1채팅을 걸어온 듯 했다.
- 내일 브로마이드 배포 하는데 가실 건가요?
'브로마이드?'
- ???
대충 답을 치니 곧장 답글이 올라온다.
- 요새 진짜 바쁘셨나봐요. 케이엠에서 팬카페 한정으로 만든 특대사이즈 블마 내일 아침에 배포한대요. 이번 사진 쩐다는 소문 돌아서 애들 어젯밤부터 벌써 줄서고 장난 아니라는데요.
기획사에서 직접 한정수량으로 배포하는 특대사이즈 브로마이드라니.
- 헉 저 갑니다.
저도 모르게 손이 자판을 치고 있었다. 원래 한재이의 조각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만은 분명했다.
...한재이녀석. 최애에게 진심이었구나.
그래 뭐. 본신의 염원이라는데.
부적이라 치면 되지. 엄청 잘생긴 부적.
다음 날
"근데 쟨 대체 저걸 어디서 구했대?"
언제 왔는지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 선 이환이 물었다.
인혁은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방 안에서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한재이의 잘 빠진 등짝을 바라보았다.
한재이는 지금 제 침대가 붙어있는 통유리창 쪽에 거대한 브로마이드를 붙이고 있었다. 속 없는 남궁찬이 반대편을 붙들고 재이를 돕고 있었고 덩달아 신이 난 엠케이는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 '왼 쪽 더 내려! 아니아니 오른 쪽 조금 더 올리고' 라고 되도않는 훈수를 두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결국 참다못하고 내뱉은 말은 의도했던 것 보다 조금 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인혁의 말투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던 엠케이도 반대편을 붙들고 도와주고 있던 남궁찬도 굳은 얼굴로 인혁을 돌아보았다. 오직 단 한사람, 한재이만은 그와중에도 여전히 반듯하고 깨끗하게 대형 브로마이드 - 차상혁의 브로마이드를 붙이는 데 골몰하고 있었다.
"남궁찬 거기 잡고 있는 거 내려.”
"어? 어...어....."
재이의 말에 엉거주춤 서 있던 남궁찬이 살짝 위치를 고쳐 잡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던 인혁은 자신의 말이 씹혔다는 것을 깨닫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 한재이!"
그의 부름에 최종적으로 브로마이드의 수평을 확인하고 있던 재이가 슬쩍 눈동자만 굴려 인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왜?"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묻는 인혁에 재이가 예의 그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보이는 대로. 브로마이드 붙이는데 왜?"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대꾸에 인혁은 오히려 점점 더 열이 뻗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리 네 쪽 창가라고 해도 그런 걸 붙일 땐 같이 방 쓰는 사람 의견부터 물어야 되는 거 아니야?"
인혁의 말에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던 재이가 대답했다.
"그러게. 엠케이랑 남궁찬은 괜찮다던데?"
인혁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그랬다.
안타깝지만 재이의 룸메이트는 자신이 아니라 엠케이와 남궁찬이었던 것이다.
"그..흠! 대체 왜 하필 차상혁인데?"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를 인혁에 재이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잘생겼잖아.”
“이잇!!!”
... 팩트는 팩트이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경연 녹화일
TVM 스튜디오.
TV에서나 봐 왔던 인물들이 평가단석에 앉아 있었다.
케이엠의 간판 걸그룹 크래쉬캣의 리드보컬인 에이미
케이엠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아이돌의 직업적 성공을 보여주고 있는 차상혁
강력한 팬덤을 자랑하는 남자아이돌 그룹 네버로스의 리더 비제이
이들을 발굴해 키운 연예계 마이더스의 손 케이엠엔터의 대표이사 문선일
그의 오른팔이자 일명 개코로 불리는 기획팀 장태우 이사
그리고 대중 인지도만큼은 연예인급인 데일리 엔터의 최보민기자
재이의 눈이 그 중 자연스레 무표정한 얼굴로 눈앞의 서류를 훑고 있는 차상혁에게로 향했다.
'아이고 내 안의 재재님이 미쳐날뛰는구나.’
기분 탓인지 심장 박동이 빨라진 느낌이었다.
"아주 뚫어지겠다 뚫어지겠어."
언제 가까이 온 건지 인혁이 옆으로 나란히 서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 근데 이 놈은 요새 왜 이렇게 나한테 사사건건 시비야? 짜증스럽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인혁을 돌아보자 두 손을 들어올리며 그가 말했다.
"워 워. 싸우자는 거 아니니까 눈 풀어. 카메라 돌아가는 거 안보이냐?"
조금 떨어진 곳에서 VJ가 자신들의 투샷을 담고 있었다. 턱 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친한 척을 해 오는 인혁에게 더 이상 참지 못한 재이가 물었다.
"아 뭔데.”
재이의 싸늘한 말투에 인혁이 무섭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저 놈이 내 생물학적 형인건 알고 있지?”
“짧게. 요점만.”
“아 진짜 거 참 성질 더럽네.
..... 후. 좋아.”
잘 들어.
인혁이 재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 했다.
“난 저 놈을 뛰어 넘을거야. 저 잘난 상판떼기가 구겨지는 꼴을 꼭 봐야겠거든.”
그러니까. 너는 딴 놈 알아 봐.
인혁의 말에 재이는 두 눈을 깜박였다.
“.... 그래. 참고하지.”
한 박자 늦게 들려 온 재이의 대답에 인혁이 그제서야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으며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 와. 씨. 나 자연스러웠나?’
재이는 참었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재님보다 더 최상혁에게 진심일 수 있다니. 저새끼도 꿀단지 소속인거 아니야 혹시?’
그래. 질투는 사랑의 다른 말이라고들 하지. 형이 최애라니. 차인혁. 고생이 많다. 재재님이 응원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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