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7화 (7/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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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에서 편집이란

'되게 배고팠나보네.’

재이는 뒤늦게 나와 딱 한 국자 남은 만두전골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진 듯 그자리에 서 있던 이환을 떠올린곤 짠한 마음에 혀를 찼다.

이환이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워가는 것을 바라보며 재이는 오늘 있었던 경연을 떠올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역시 기분 좋은 일이었다.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곡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부적맨... 아니 차상혁과 눈이 마주쳤을땐 전신에 소름이 돋는 듯 정수리가 쩌릿할 정도였다.

"한재이씨 무대는 아이돌 데뷔조 서바이벌보다는 주말 노래경연 프로그램에 더 맞는 듯한 느낌이던데요. 첫 경연에 이런 정통발라드를 굳이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문선일 대표의 칭찬에 이어 계속되던 호평의 흐름을 끊은 것은 차분한 목소리의 차상혁이었다. 그의 물음에 재이가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네. 제가 차상혁 선배님 완전 팬이거든요. 꼭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당돌한 재이의 대답에 스튜디오가 일순 술렁였다.

그 대답은 예상치 못했던 듯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차상혁을 비롯, 재미있다는 듯 빙글 웃는 문 대표와 장 이사, 뭐 저런 또라이가 다 있냐는 표정의 비제이와 에이미, 그리고 폭소하기 일보직전인 최보민 기자까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이는 평가단들 뒤로 브로마이드 건으로 재이의 덕밍아웃을 지켜봤던 연습생들마저도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쳇. 악수라도 좀 해 줄 것이지. 까탈스럽게 굴기는.'

재이는 촬영이 끝나고 90도각도로 인사하는 자신을 비롯한 연습생들을 그야말로 거들떠보지도 않고 쌩하니 자리를 뜬 차상혁을 떠올리며 내심 투덜거렸다. 덕담이라기보다는 자기 자랑으로 20분여를 혼자 떠들던 비제이와는 대조적이었다.

"첫 방송은 역시 모두 모여서 볼거지?"

천진난만한 엠케이의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빈 그릇들을 치우고 있다.

그랬다.

어느새 대망의 첫 방송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난 패스. 우리 사이가 언제부터 그렇게 끈끈했다고. 카메라 돌아간다고 친한 척 하는 거 별로야"

저 배배꼬인 주둥이는 역시 이환. 드물게 인혁이 거들었다.

"시커먼 남자들이 우르르 모여서 보는 거 별로 좋은 그림은 아니지 않나. 식상해. 나도 패스."

기대에 부풀어 있던 엠케이의 눈이 축 쳐지는 게 보였다. 남궁찬이 말했다.

"어 난 그날 집에 갈 것 같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보기로 했거든.”

남궁찬을 바라보는 엠케이의 눈이 '브루터스 너마저!!'라고 외치는 듯 했다.

항상 발랄하게 흔들리던 엠케이의 -있을 리 없는 - 꼬리가 실망으로 축 처진 게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딱히 남자들과 우글우글 모여 본방사수를 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였다.

재이의 마음이 움직였다.

저쪽 동네에선 노인과 약한 자, 아이와 귀여운것은 사랑으로 보듬고 감싸라고 배웠다. 어딜 어떻게 봐도 키 170이 겨우 될까말까한 아담사이즈에 고양이상을 한 저 엠케이라는 녀석은 세 번째와 네 번째 그 사이 어딘가에 속하는 생물이 틀림없었다.

길게 늘어놨지만 정리하자면 그래, 그거였다.

만두전골의 마지막 국자를 퍼 주고 싶은 녀석.

"나랑 보면 되지 뭐.”

녀석의 풀죽은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말하자 엠케이의 - 그럴리 없는 - 귀가 반가움에 쫑긋 섰다.

"진짜? 정말? 역시 한재이. 너밖에 없다!

그럼 그날 야식은 떡볶이 해줘. 음 오뎅도 같이 먹는게 좋겠지? 너무 매우면 배탈나니까. 아 나 김말이도 먹고싶어. 꼬마김밥 떡볶이 양념에 찍어먹으면 진짜 죽일텐데 그치.

와 침 넘어가!!"

엠케이는 언제 시무룩 했나는 듯 우다다 떠들며 혼자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고 있었다.

‘...한 대 칠까?’

동그란 엠케이의 뒤통수가 유난히 탐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기대에 부풀어 초롱초롱 빛나는 엠케이의 고양이눈을 본 순간 손에 주었던 힘을 풀 수 밖에 없었다.

"김말이랑 꼬마 김밥 중 하나만 해.”

재이의 말에 심각한 얼굴로 고민에 빠진 엠케이 옆으로 인혁이 끼어들었다.

"꼬마김밥! 당근은 빼고."

그의 말에 재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한 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남자들 득시글은 싫다며?"

그의 말에 인혁이 잠시 머뭇대자 시종일관 뭐 씹은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환이 대신 입을 열었다.

"씨ㅂ....당근 뺀 꼬마김밥 받고 오뎅은 꼭 멸치 다시마 육수로. 나 MSG 알러지 있단 말이야.”

이것들이 진짜.

도끼눈이 된 재이가 이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자 다급한 목소리로 남궁찬이 거들었다.

"나 용돈만 받고 본방맞춰 올테니까 먼저 먹기 없기다!!! 대신 아이스크림 사올게!!"

"아니 이것들이 보자보자하니ㄲ..!!"

"와 역시 한재이 니가 최고야!!!"

시선을 돌려 남궁찬을 노려보던 재이는 어깨를 훅 걸어 어깨동무를 해 오는 엠케이의 기습에 휘청였다.

‘어이쿠야 너 보기보다 꽤 나가는구나.’

고양이 요정 쯤으로 여기고 있던 엠케이의 인간적인 무게에 재이가 휘청이는 사이 인혁은 이제 볼 일 끝난다는 듯 운동하고 오겠다고 휙하니 나가버렸다. 이환은 그새 이어폰을 꽂고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고 방금 전까지 저한테 매달리며 환호하던 엠케이는 이미 저 쪽에서 남궁찬에게 꼭 메로나를 사오라고 신신당부 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단체로 날 멕이는 건가.’

재이는 저의 의지와는 1도 상관없이 끝나버린 상황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

늦은 밤 TVM 편집실

격무에 지쳐 반쯤 졸고 있는 조연출 옆에서 조민선 PD는 오늘 열 두병째 박카스를 따 입에 털어넣었다.

트렌드를 읽는 동물적인 감각과 귀신같은 편집실력으로 남자밭인 예능국에서도 함부로 못할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 인물이자 서바이벌 오디션 포맷을 처음 도입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목구멍을 타고 확 퍼지는 카페인을 음미하던 조민선은 눈 앞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케이엠 엔터의 연습생 아홉.

프로그램을 끌고 갈 구도를 잡기 위해 조연출이 편집해 둔 멤버별 파트를 보고 있던 조피디는 밀려오는 지루함에 하품을 했다.

그저그런 멤버 소개만으론 까다로운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수 없었다.

서바이벌도 그랬다.

그냥 잘난 애가 좀 덜 잘난 애를 제치고 데뷔를 하는 그림이어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특출난 스토리가 필요했다.

시청자들을 확 잡아 끌 반전매력을 가진 인물의 기발한 스토오리가.

조피디는 차례차례 멤버들의 화면을 훑었다.

차상혁의 동생 차인혁

흠.

출신은 흥미롭긴 한데 스탯도 출중해서 별로 재미가 없다.

‘반전이 없잖아 반전이.

오히려 형에 비해 좀 모자란 구석이 있는게 프로그램 입장에선 살릴 건덕지가 있을텐데 말이지.’

노래 잘하는 이환

입이 좀 걸긴 하지만 얘도 밍숭맹숭.

미국에서 왔다는 엠케이

아이돌에서 애교담당으로 딱 일 것 같은 동글동글한 귀염상인것과 달리 현지 비보이 경연에서 우승했을 정도로 댄스에 진심인 녀석이었다. 얘는 편집에 따라선 좀 재미가 날 만도 해 보였다.

‘그치만 뭐랄까 프로그램 전체를 뒤흔들 임팩트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이거야...’

나머지는 다들 도낀개낀.

건성으로 화면을 훑던 조피디의 손이 마지막, 한재이의 파트로 넘어갔다.

오늘 첫 경연에서 연습생들 중 혼자 정색하고 정통 발라드를 부른 그 멤버.

심장을 움켜쥐고 흔들어 대는 듯 하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곤 조피디는 자세를 바로했다.

컨트롤 휠을 휙휙 돌리자 그를 따라 눈 앞에 영상이 휘리릭 휘리릭 넘어간다.

- 걔요? 연습생들 사이에서 유명하긴 하죠. 별명이 퇴출1혼데..

- 존재감 제로죠. 가끔 있는거 보고 화들짝 놀란다니까요.

.

.

.

- 헉헉 맨날 이렇게 뛰어요?"

- 먹을거면 숟가락 놓고 앉던가.

- 나보다 먼저 씻는 놈은 밥 없다.

휘리릭 넘어가던 영상이 1차 경연 심사위원 중 하나인 차상혁의 얼굴에 가 멎었다.

- 솔직히. 숨이 멎는 듯 했습니다.

차가운 무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로서는 드물게도 약간 상기된 표정의 차상혁을 바라보던 조민선피디의 눈이 반짝였다.

휘리릭 스크롤을 뒤로 감았다.

- 왜 하필이면 차상혁이야?!

- 잘생겼잖아.

차상혁과 꼭 닮은 그의 동생을 앞에 두고 단칼에 대답하는 하얀 얼굴의 주인공을 바라보던 조민선피디가 웃었다.

“....으흐흐흐.”

어두운 편집실 안에 음산하게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에 선잠에 빠져있던 조연출이 퍼뜩 놀라 일어나 조피디의 눈치를 살폈다.

"조..조선배?"

"가만있어봐. 지금 삘이 딱 왔으니까. "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조피디가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이제 한 물 갔다는 평을 듣는 서바이벌 오디션이었지만 조피디의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팔팔한 대어를 두고 포맷이 망이라 망이라는 소릴 듣는 건 예능피디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었다.

‘예능 편집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조피디의 손이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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