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8화 (8/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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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1호의 역습

[퇴출1호 한재이]

굵은 자막과 함께 단체 안무 속 버벅대는 한 연습생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트레이너의 지적에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

눈가를 뒤덮는 땀에 젖은 긴 머리카락이 축 쳐진 어깨와 함께 그의 옆모습을 한층 더 우울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 답답해 보이는 소년이 케이엠 엔터의 차기 데뷔조를 가리는 서바이벌 예능에 전격 발탁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주변의 반응을 묻는 장면은 짠소리의 온 퍼레이드 였다.

연습생 A - 밑바닥 깔아주라고 뽑은 거 아니예요? 그래봤자 1라운드 광탈이겠죠.

같은 반 학생 B - 누구라고요? 한재이요? 걔 진짜 케이엠 다녔던 거예요? 헛소문인줄 알았는데. 대박!

댄스 트레이너 C - 놀랠 노자긴 하네요. 직접 가르친 적은 없지만 걔 완전 유명하거든요. 몸치에 박치로. 걔가 노래를 잘했던가?

보컬 트레이너 D - 제대로 노래 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울렁증이라도 있는지 마이크 앞에만 서면 벌벌 떨거든요. 근데 진짜 걔가 뽑혔다고요?

화면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위로 올라오는 한재이의 모습을 담았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훑는 심사위원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그가 무대 정 중앙에 놓인 간이 의자에 걸터 앉았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 찰나의 정적.

그 순간 평범하게 흐르던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길고 곧게 뻗은 새하얀 손가락이 짙은 고동색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단순한 동작이었음에도 순식간에 확 변한 그의 분위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하얀 피부, 단정한 이마, 곧은 콧날. 날카로운 눈매가 살짝 흔들리자 우수에 젖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흐르는 선율에 맞춰 그가 입을 열자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대표 문선일이 기대 앉아 있던 의자에서 등을 떼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카메라는 놀라움에 가득 찬 심사위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었다.

언제나 무표정에 가까운 포커페이스 차상혁의 감탄 어린 표정을 놓치지 않고 클로즈업하는 카메라.

그 위로 살짝 눈을 감은 채 무대를 이어가는 한재이의 얼굴이 겹쳐졌다.

수년간의 훈련과 지도 속에 만들어지는 연습생들의 트렌디한 보컬과는 다른 느낌의 독특한 음색이었다.

귓가에 속삭이듯 듣기좋게 깔리는 저음과 달리 폐부를 찌르듯 가슴을 헤집는 고음이었다.

그 고저의 격차가 듣는 사람의 심장을 옭죄듯 조여와 단 한순간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들었다. 무대가 지나가고, 담담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그의 새하얀 얼굴 위로 심사위원들의 인터뷰가 오버랩 되었다.

- 숨이 멎는 듯 했죠. 나름 음악 좀 듣는다고 생각 해 왔는데 처음 듣는 스타일의 보컬이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노래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 매력적인 보컬이더군요.

차상혁이었다.

음악 연기 예능,

무엇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이 나라 대표적 만능 엔터테이너가 부러움에 가까운 눈빛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그가 차상혁씨 완전 팬인 듯 하던데.]

자막이 지나가자 눈썹을 찡그리며 쓴웃음을 짓는 차상혁.

- 이 친구가 저보다 빨리 데뷔 했다면 상황은 정 반대였겠네요.

차상혁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한재이의 노래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훈훈하게 끝날 듯 하던 장면이 암전하며 멤버들의 단독 인터뷰가 이어졌다.

엠케이 - 음. 뭐랄까. 좀 교활하죠. 이렇게 될 거 다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이환 - 한마디로 악마의 자식이죠. 아니 악마 그 자체인가.

남궁찬 - 독재자요 독재자. 완전 지 맘대로거든요.

진지하거나 화가 났거나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의 멤버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 화면이 지나갔다.

차인혁 - 아무튼 무서운 놈이예요.

정말로두렵기라도 한 것인지 미간을 팍 구긴 채 얼굴을 굳힌 차인혁의 코멘트와 함께 한재이의 모습이 또다시 클로즈업 되었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처연하기까지 했던 경연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서늘한 눈매에 새하얀 얼굴을 한 그가 함께 현관으로 들어오던 멤버들에게 한마디 하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씻는 놈은 밥 없다.”

보이지 않는 무라도 자르듯 감정의 고저조차 느껴지지 않는 서늘한 음성에 울 듯한 표정의 얼굴로 그를 돌아보는 다른 멤버들의 모습이 클로즈업 되었다.

[카리스마 셰프돌의 등장?!]

그리고 이어지는 각종 음식을 둘러싼 멤버들의 먹방.

그 중심에 무심한 얼굴로 어디서 구한 것인지 제주 흑돼지 마크가 선명한 앞치마까지 두르고 주방을 종횡무진하는 한재이의 모습이 있었다. 클래식한 BGM과 함께 모양 좋게 긴 손가락이 도마 위의 생선을 현란한 솜씨로 다듬어 대구탕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지금 이것이 아이돌 경연 프로가 아니라 요리 경연 프로인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정도였다.

칼놀림이 능숙한 것이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이돌이 아니라 요리경연 프로에 나갔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가 있던데요.]

자막으로 묻는 질문에 인터뷰룸에 앉은 한재이가 씨익 한 쪽 입술만 말아 올리며 웃었다. 카메라 인터뷰라고는 기획사 연말평가에서 정도 밖에 해 본 적이 없을 터인데 생짜 신인 치곤 여유로움이 온 몸에 배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그러기엔 너무 잘생겼죠. 제가.

능글맞은 대답을 하는데도 얄밉지 않은 것은 역시 그것을 납득시키는 외모 탓인가.

[요리는 어디서 배웠나요?]

이어지는 자막에 긴 손가락으로 하얀 턱을 쓸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 여기저기서요. 딱히 배웠다기 보단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달까...

겸손 치곤 도가 지나친 코멘트에 침묵으로 끝난 자막 대신 다른 멤버들의 영상이 지나갔다.

이환 - 그놈의 밥만 아니었어도....

엠케이 - 분명 처음부터 요리로 우릴 낚을 생각이었을거예요.

남궁찬 - 어쩌겠어요. 이미 걔가 제 위를 꽉 잡고 있는데.

차인혁 - ...... 패배죠. 패배. 알고도 질 수 밖에 없는 완벽한 패배.

절망하거나 해탈하거나 단념하거나 득도한 얼굴들.

그들의 코멘트 위로 한재이의 모습이 화면 가득 오버랩했다.

- ... 애들이 그래요?

입끝만 말아올려 웃는 모습과 함께 던진 그의 짧은 한 마디에 일순 주변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들 좀 보라는 표정으로 웃는 한재이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거실에 불편한 적막이 흘렀다.

엔딩크레딧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열심히 앞에 놓인 떡볶이며 김밥을 먹고 있던 네 명의 시선이 나머지 한 사람에게로 가 꽂혔다.

"야... 혹시 너... 여기 뭐 타거나 한 거 아니지?"

겨우 용기를 쥐어 짠 이환이 물은 말에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어 앉아 남궁찬이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재이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 수준 하고는. 먹는 거에 장난 치는 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그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는 찰나.

"대신 내일부터 각자 해 먹어. 이게 마지막 만찬이려니 생각하고들 많이 먹으라고."

여상한 말투에 나머지 넷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치사하게!!!"

"먹을 거 가지고 치사하게 굴기 있냐!.”

이환과 엠케이의 비명같은 비난을 귓등으로 흘리며 입 안에 퍼지는 달달한 아이스크림의 맛을 음미하고 있던 재이에게 인혁이 말했다.

"축하한다 한재이.”

뜬금없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인혁에게로 쏠렸다.

재이에게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인혁이 말했다.

"한재이 지금 실검에 떴어."

그 말을 신호탄으로 모두가 잊고 있었다는 듯 각자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인혁은 그 와중에도 미동도 없이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재이의 시선을 마주하곤 흠흠 헛기침을 했다.

"뭐야. 넌 확인 안 해?"

그 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난 재이가 인혁의 옆에 붙어 앉으며 손 안에 든 그의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다.

"와- 진짜네."

"야 니꺼 봐 니꺼. "

핸드폰을 들여다 보느라 구부린 재이의 드러난 목덜미가 코끝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오자 당황한 인혁이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인혁을 돌아본 재이에게서 충격적인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나 핸드폰 없는데?"

그 말에 인혁은 저도 모르게 할 말을 잃고 입만 뻐끔거렸다.

이게 지금 현역 고등학생에게서 나온 소리 맞냐.

인혁은 이미 자신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제 손 안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신종 천연기념물을 새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

"흐흐....흐흐흫"

조민선PD는 사무실 한 쪽 데스크에서 시청률표를 들여다보며 실실 웃다가 아침 일찍 국장실에 불려들어갔던 일을 떠올렸다.

"야아 조피디. 간만에 대박 칠 기세던데? 이대로 잘 해봐!"

깐깐하기로 소문난 TVM 예능국 국장은 오랫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탈환한 것에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케이엠과의 관계상 편성을 허락하기는 했지만 식상하다는 이유로 세 번이나 기획안을 퇴짜놓으며 까탈을 부린 게 자신이었다는 건 이미 기억에도 없는 듯 했다. 그는 자신에게 불려온 조피디와 그녀의 직속상관인 안 부장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 하라며 어깨를 두드렸다. 국장에게 연신 꾸벅거리고 나온 조피디는 기분이 한껏 고조 된 안 부장에게서 법인카드를 건네받은 참이었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배 대박. 기자들이 미공개 영상 돌릴 거 없냐고 난리예요"

그녀보다 한참 어린 연차에도 갖은 고생탓인지 이미 흰머리가 희끗한 조연출이 흥분해 말했다.

흐흐흐

조피디는 네이버 연예뉴스 최상단에 자리한 헤드라인을 바라보며 또다시 실실 웃었다.

'TVM 서바이벌 스텝업, 차기 아이돌의 옥석을 가리다'

- 퇴출 1호에서 강력한 다크호스로. 한재이는 누구인가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최보민 기자의 기사였다.

파일럿 방송에 맞춰 기사를 내 주기로는 했었지만 이정도로 푸쉬 해 줄 줄이야.

여전히 실검순위를 오르락 내리락 거리고 있는 프로그램명을 한동안 바라보던 조피디는 또다시 실실 웃음을 흘렸다.

케이엠 사옥 내 스튜디오

팽팽하게 날 선 실내 분위기 속 인혁과 엠케이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절대 양보 못 해!"

엠케이의 날 선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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