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0화 (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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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이 뭐냐고요?

"말이 돼? 너무 한 거 아냐?"

"좀 심하지 않냐 한재이. 아무리 니가 요리를 잘 한다고 해도 그렇지.”

얼굴이 벌개진 이환과 눈썹을 찌푸린 인혁이 화면에 잡혔다.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별로 안 심한데? 말했잖아. 싫으면 이제부턴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내가 니들 엄마도 아니고 여기 봉사활동 하러 온 것도 아닌데. 심한 게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는거냐?"

재이의 말에 이환과 인혁이 입을 다물었다.

눈썹을 찡그리며 고민하던 인혁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그렇지. 엠케이는 주방보조, 심은규는 설거지면서 난 왜 디저트 배달이냐고. 내가 무슨 심부름꾼도 아니고.”

그의 말에 재이가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인혁을 바라봤다.

"차인혁. 니가 양심이 있어봐라."

"내, 내가 뭐.”

재이의 서늘한 말투에 인혁이 드물게도 말을 더듬었다.

"니가 지금껏 깨 먹은 접시가 몇개냐?"

그 말과 함께 낭패스런 표정의 인혁의 모습이 화면가득 클로즈업 됐다. 그리고 그 위로 쨍그랑, 쨍그랑 하는 소리와 접시를 깨는 차인혁의 모습이 빠른 화면으로 지나가며 카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1, 2, 3, 4 ....... 9.

식사를 하던 인혁의 팔 뒤꿈치에 걸린 접시가 식탁 아래로 추락하는 것이 화면에 잡히며 카운트가 9로 올라갔다. 그와 함께 멤버들의 경악 혹은 체념섞인 표정이 지나갔다. 또다시 게시판이 들썩였다.

- ㅋㅋㅋㅋㅋㅋㅋ 주방의 파괴자 차인혁ㅋㅋㅋㅋㅋ

- 저건 좀 심하다 ㅋㅋㅋㅋㅋㅋㅋ

- 돈으로 때우라는 소리 나올만도 함 ㅋㅋㅋㅋ

- 차인혁의 집나간 카리스마 찾습니닼ㅋㅋㅋㅋㅋㅋ

잠시간의 적막 끝에 인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그래도 왜 내가 다른 놈들 아이스크림까지 갖다 바쳐야 되는데."

"은규는 네 몫의 그릇까지 닦고 엠케이는 네 몫의 채소를 다듬고 남궁찬과 이환은 네 몫의 장까지 봐 올 거거든. 맞지?"

재이의 눈이 다른 녀석들을 훑었다. 단호한 그 말투에 엠케이와 은규가 빛의 속도로 고개를 끄덕인 것과 달리 남궁찬과 이환은 마지막 희망의 불빛을 찾듯 매니저 석관을 바라보았다.

“석관이형 볼 것 없어. 그쪽하곤 이미 얘기 끝났으니까.”

“마트 다녀오는 그림도 딸 수 있으니 제작진도 환영이라더라고.”

딱하다는 듯 웃으며 덧붙이는 매니저의 말이 들려왔다.

[☺☺☺고마워 재이야 - 제작진 일동☺☺☺]

스마일마크 가득한 자막이 지나가며 인혁이 졌다는 듯 머리를 싸매며 뒤로 기대 앉았다.

"독재자.”

이환이 낮게 중얼거리는 말에 재이가 그를 돌아보았다.

"오는 놈 안 막고 가는 놈 안 붙잡는다니까. 꼬우면 나가.”

씨익 입꼬리만 말아올리며 웃는 재이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위로 매일 아침 재이에게 리스트를 받아 장을 보러 다니는 이환과 남궁찬, 아이스크림을 사 나르는 차인혁, 제법 능숙한 솜씨로 야채를 다듬는 엠케이와 뺨에 거품을 묻힌 채 설거지와 씨름하는 심은규, 그리고 끼니 때마다 흑돼지 앞치마를 두르고 서늘한 표정과 단호한 말투로 그들을 아우르는 독재자 한재이의 모습이 지나갔다.

- ㅋㅋㅋㅋㅋ 저 표정들봐 완전 핍박받는 노예들의 표정

- 한재이 사람 부리는 게 한 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 왜 아이돌 오디션 프로 보면서 위꼴사를 걱정해야 하는거냐고 ㅋㅋ

- 쟤들 표정봐 완전 행복해보여

- 저게 바로 채찍과 당근 ㅋㅋㅋㅋ 밥먹으면 다들 그간의 고생을 잊는구나 ㅠㅠ 아 뭔가 길들여지고 있는 듯해 다들 ㅋㅋㅋㅋ

- 한재이 애들을 사육하고 있어 ㅋㅋㅋㅋ어떡해 ㅋㅋㅋㅋㅋ

잠시 들썩이던 게시판은 2차경연 당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TVM스튜디오에 모인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비치는 화면에 점점 진정되어 갔다. 1차경연과 같은 구성의 심사위원들의 면면을 훑던 카메라가 차상혁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동생 차인혁의 퍼포먼스에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자막으로 뜬 질문에 인터뷰룸에 앉은 차상혁이 대답했다.

" ... 딱히 제 동생이라고 해서 별로 기대가 되는 점 같은 건 없고요. 차인혁 본인이 가진 매력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볼 겁니다."

친동생에 대한 코멘트 치고는 무미건조한 대답의 차상혁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는 카메라가 페이드아웃하며 오프닝에 나왔던 차인혁의 랩이 오버랩되었다.

어두워진 무대 위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곡의 서두를 여는 차인혁의 중저음 보이스는 강하면서 꽉 찬 울림으로 보는 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휘리릭.

손에 든 스틱을 능숙하게 돌리던 인혁이 상혁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차인혁 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인혁의 낮고 탄탄한 랩 위로 재이의 보컬이 섞여들었다. 지난 번 경연에서 듣는 이의 심장을 쥐어짜는 듯 절절하던 음색과는 180도 다른 강렬하고 전투적인 울림이었다. 원곡의 진행과도 전혀 달랐다. 원곡의 셀링포인트였던 자신감 넘치는 섹시함 대신 거칠 것 없는 도발적인 카리스마가 무대를 꽉 채웠다.

감탄 혹은 의심

제각각의 감상을 담은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교차편집되며 모아졌다 흩어졌다.

인터넷의 반응도 갈렸다.

- 원곡 어디갔???

- 이건 무조건 흥한다 데뷔조 주식 삽니다

- 일주일 컷 치곤 수준급ㅇㅈ

- 이쯤되면 한재이 퇴출 1호는 케이엠에서 ㅈㄴ 바이럴 깐 거라고 봐야함

- 이 무대 나만 불편함?? 원곡 파괴도 정도껏이지

- 왜 참신한데

- 각자 따로 노는 느낌은 ㅇㅇ

- 어차피 개인평가라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듯

"곡 해석은 누가 제안 한 거죠?"

무대가 끝나고 격렬한 움직임에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고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던 심사위원 중 원곡을 부른 걸그룹 크래쉬캣의 에이미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멤버가 모두 참여했습니다."

차인혁의 대답에 에이미가 눈썹을 찌푸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원곡을 제대로 들어는 봤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엉망이던데. 원곡이 가진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구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대 많이 했는데 실망이 크네요."

바짝 날이 선 코멘트에 심은규가 몸을 움찔 떨었다.

"저는 좀 다르게 봤는데요."

불편한 적막을 가르고 입을 연 것은 네버로스의 리더 비제이였다.

"차인혁씨 랩 좋던데. 연습 많이 했나봐요?"

이름이 언급된 인혁이 대답 대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워낙 타고난 스탯이 좋아서 딱히 더 뭘 할 필요도 없겠다 생각했었는데. 인트로 인상깊게 봤습니다. 패기가 좋네요.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제이가 옆자리에 앉은 차상혁을 힐끔 쳐다보며 건넨 칭찬에 차인혁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꾸했다.

“한재이씨는 지난 경연때랑 또 다른 느낌이던데. 어느 쪽이 더 본인에게 맞는 것 같아요? 발라드? 댄스?”

최보민 기자가 물었다.

“둘 다 마음에 드셨습니까?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이는 대답과 함께 90도로 허리를 굽혀 폴더인사를 하곤 씩 웃었다. 최보민 기자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 한재이 어그로 재능있네 ㅋㅋㅋㅋ

- 저걸 저렇게 살리나 셀프 올려치기 ㅋㅋㅋ

- 최보민 의문의 1패ㅋㅋ

- 재이야 사랑한다 데뷔까지 꽃길만 걷즈아

- 아직 경연 끝나지도 않았는데 김칫국 오지네

- 근데 진짜 한재이가 데뷔까지 하면 케이엠 트레이너들 몸값 좀 뛸 듯

- 퇴출1호는 제작진 바이럴이었다니까 아직도 이걸 믿냐 순진하기는ㅉㅉ

1차경연이 끝난 후 퇴출 1호라는 수식어를 두고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물 간 포맷을 띄우려고 제작진이 둔 눈물겨운 무리수라는 평과 내가 아는 사람의 학교 후배의 지인의 친척이 관계자인데 그거 진짜라더라는 카더라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당연히 결론은 나지 않았고 프로그램 공홈에 진실을 묻는 질문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물론 제작진으로서는 아직 프로그램이 초반인 이상 어떻게든 화제가 이어지는 편이 좋다는 판단이었으므로 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피했다.

"한재이씨 본인의 별명이 뭔지 혹시 알고 있나요?"

시종일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던 문선일 대표가 입을 열었다.

나름 화기애애했던 스튜디오 안 분위기가 일순 적막에 휩싸였다. 연습생들은 물론, 평가단석의 인원들, 그리고 스탭들의 이목이 질문을 받은 당사자, 한재이에게로 쏠렸다.

카메라가 그런 그의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했다.

"....어...."

어떤 질문에도 자신만만하던 모습과는 달리 곤란한 듯 머뭇대는 표정이 카메라에 생생하게 잡혔다. 침묵이 길어지자 보다 못한 최보민 기자가 입을 열려는지 마이크를 들었다.

"독재자?"

"....."

스튜디오의 공기가 변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의 침묵이 깔린 가운데 적막을 오답으로 이해한 재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악마의 자식? 아니 악마?

....아, 밥재이??"

문선일 대표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것을 본 한재이가 다급하게 덧붙였다.

"아니 그게 저도 석관.. 아니 매니저형한테 여쭤봤는데. 사장님이 어차피 데뷔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냥 먹게 두라고 하셨다고.."

"하하하하하하"

자신 없는지 마지막 말꼬리를 흐리는 한재이의 대답을 듣고 있던 문선일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스튜디오 여기저기서 바람 새는 듯한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차마 같이 웃을 수 없어 표정관리 하고 있는 무대 위 다른 멤버들이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찐이네 찐이얔ㅋㅋㅋㅋ

- 한재이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멘탈갑이네 ㅋㅋㅋ 부럽다 ㅋㅋㅋ

- 케이엠 의외네 관리 빡셀줄 알았더니

- 데뷔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애들 일일히 관리까지 하겠냐

- 그래도 저기 들어갈 정도 애들이면 나름 연습생 탑 티어 아님??

- 무슨소리야 쟤 별명이 퇴출1호인데

- 무슨소리야 쟤 별명 밥재이라잖아 본인 입으로 ㅋㅋㅋㅋ

그 와중에 단 한 명, 한재이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박장대소 하고 있는 기획사 사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장님 개그코드가 특이하시네. 주변에서 맞추느라 고생 좀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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