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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4화 (1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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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주둥이

사실 말을 다루는 것 쯤이야 숨 쉬는 것 만큼이나 간단했다.

오히려 너무 능숙하게 다루면 사람들이 의심할까봐 완급을 조절하는 쪽이 어려웠다.

"아 잠깐만 야 뛰지마 뛰지마 워 워"

얌전히 가는 듯 하던 이근우의 말이 급발진이라도 걸린 듯 뛰쳐나가려는 움직임에 이근우가 다급하게 외치며 고삐를 조였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패턴에 질린 듯 차상혁이 재이에게 말했다.

"저건 말에 문제가 있다고 보냐 위에 앉은 인간에 문제가 있다고 보냐?"

"뭐 서로 상성이 안 맞나보죠. 근우 형이 고생하네요."

한숨과 함께 헬맷을 고쳐쓰며 재이가 다시 한 번 이근우 쪽으로 다가갔다. VJ가 따라갈 수 없으니 세 사람 모두 소형캠이 달린 헬맷을 쓰고 있는 상태였다.

'뭐. 덕분에 만에 하나 낙마한다고 해도 머리뼈 부러질 일은 없겠네.'

목뼈가 부러질 순 있겠지만.

속으로 중얼거리며 재이는 친절한 시골 출신 연습생의 목소리로 말했다.

"형, 그렇게 조이기만 하면 더 안 좋다니까요. 아직 고삐같은 거 매 본 적 없는 녀석이라 자꾸 조이면 더 벗어나고 싶어할거예요."

재이가 능숙하게 간격을 바짝 붙여 말잔등을 몇 번 다독이자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는 듯 들썩이던 녀석이 금새 얌전해졌다. 고삐를 풀면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고 들썩이고 조이면 답답하다고 몸을 뒤틀어 대니 이근우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같은 야생마임이 분명한데도 저 애새끼나 차상혁이 탄 놈들은 왜 저렇게 얌전한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봐도 안 바꿔 줄거야. 아까도 소용 없었잖아."

이근우의 눈길을 눈치 챈 차상혁이 냉정하게 말했다.

'제길. 같은 소속사라고 싸고 돌기는.'

이근우는 후회했다. 애초에 따라 나서는 게 아니었다.

저 애새끼랑 엮이면서 계속 일이 꼬이고 있었다.

설마 진짜로 야생마를 포획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도 미리 공수해 뒀던 고삐와 안장을 내어 준 차 피디 덕에 세 사람은 그나마 수월하게 말을 타고 호수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수월한 건 재이와 차상혁 뿐, 이근우는 좀처럼 통제가 안되는 말 때문에 도착도 하기 전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셋은 역할을 나눴다. 차상혁은 말 안장에 매고 온 식수통으로 물을 옮겨 담고 재이는 이근우와 함께 물고기 사냥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혼자 물을 떠 나르고 있던 차상혁은 스스로의 판단 미스에 혀를 찼다.

화타가 와도 이건 못 살렸다.

이건 빼박 통편집 감이었다.

‘귀찮아도 같이 사냥하겠다고 할 걸 그랬나.’

뒤늦게 든 후회에 한재이와 이근우가 있는 쪽을 바라본 차상혁은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 근우형 그게 아니라니까요! 세상에 그물을 그렇게 쓰는 사람이 어딨어요! 형 전에 해보셨다면서요!"

한재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거기서 미끄러지는게 말이 돼요? 형 충무로 액션스타 블루칩이라며? 아 혹시 지금 헐리우드 액션 한 거예요? 아니 무슨 충무로도 못 잡은 사람이 헐리우드를 넘봐?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이근우가 뭐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재이의 호통이 이어졌다.

"아악! 잡아 둔 걸 그렇게 다 놔 주면 어떻게 해요! 형 그물에 혹시 구멍이라도 났어요? 왜 형 쪽으로만 다 빠져나가? 잡는 족족 다 놔 주고. 방생이 취미야? 형 불교신자였어요? 친구 중에 붕어로 환생한 사람이라도 있어요? 아님 뭐 채식주의자야? 채식을 할 거면 혼자 하지 왜 다른 사람 고기 먹을 권리까지 뺐냐고요. 그렇게 안 봤는데 형 심보 참 고약하시네."

차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통편집을 당하고 말지.

저 잔소리를 듣다간 분량 챙기기 전에 먼저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버티고 있는 이근우가 장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근우가 꼬맹이한테 제대로 잡히네.'

헬맷에 달린 소형캠이 줄곧 돌아가고 있으니 허튼 짓을 할래야 할 수도 없을 터였다. 그렇지만 그거 하나 믿고 연예계 선배를 저렇게까지 대놓고 닦아세우다니 역시 한재이 저게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얼른 하고 가자, 이러다 해 지겠다."

어딘지 신나보이는 재이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치자 두 사람이 이 쪽을 바라봤다.

"근우형, 이제 진짜 시간 없으니까 장난 그만하고 진지하게 좀 잡죠 우리?"

"장난.. 야 너 지금 이게 장난이었...."

"그럼 설마 장난 아니고 진짜였어요? 에이 농담도. 근우형이 운동신경 좋은거 우리나라에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분량 뽑으려고 저랑 놀아주신거잖아요. 덕분에 차 피디님 편집할 맛 좀 나실 것 같은데요?"

저새끼 턱주가리를 날려서 더 이상 나불대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정신도 체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 이근우의 불운이자 행운이었다.

세 사람이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것은 해가 지평선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을 무렵이었다. 김봉만의 지휘 하에 그럭저럭 사람이 머물 만 한 움막을 짓고 있던 출연진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와, 무슨...."

김봉만이 뛰쳐나갔다.

"이야. 너네 무슨 쌍끌이 어선이라도 타고 온 거야 혹시?"

뒤따라 뛰어나가 일행을 맞으며 최고탁이 물었다. 저녁 식사에 쓸 생선 몇 마리만 잡아 와도 다행이겠다 하고 있었는데 근우의 말 안장에 묶여 있는 주머니 안에는 사람 팔뚝만한 민물생선이 가득 들어있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말에서 내리며 재이가 대답했다.

"근우형이 엄청 많이 잡았어요. 저는 옆에서 돕기만 했고요."

"캬~ 역시 충무로의 차세대 액션스타 답다야. 그림 좋았겠는데? 온에어 기대해도 되는거야?"

"하하하...."

최고탁이 웃으며 어깨를 툭 치자 이근우가 대답대신 웃었다. 어딘지 넋이 나간 듯 해탈한 그 웃음소리에 최고탁이 옆에 선 차상혁을 돌아보았다.

"하하하...."

차상혁 또한 그저 웃을 뿐 말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표정으로 시선을 옮긴 최고탁에게 한재이가 말했다.

"형들이 완전 지쳤나봐요. 두 분이서 일을 다 하셨거든요. 덕분에 전 재밌게 놀다 왔죠. 헤헤."

진심으로 재미있었다는 듯 개구지게 웃는 모습이 딱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처럼 해맑았다. 최고탁과 김봉만이 양 쪽에서 어깨를 걸며 이 녀석 일 하라고 보냈더니 꿀 빨고 왔냐고 힘 남았으면 움막 치는 거나 도우라며 재이를 끌고 갔다.

이근우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시건방진 애송이에게 버릇을 가르쳐야겠다는 연예계 선배로서의 사명감따위 잊은 지 오래였다. 어차피 앞으로 이틀만 더 버티면 저 새끼랑은 안녕이었다. 은퇴하는 날까지 다시 안 보고 살면 그만인걸 무슨 오지랖으로 버릇을 고치겠다고 설쳤는지 모를 일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만나면 정신 차리라고 대갈통을 후려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 이리 주세요. 제가 들게요."

넋이 나가 있는 자신의 손에서 생선이 든 주머니를 빼앗아 든 것은 차상혁.. 이 아니라 그 동생이었다.

"어.. 어.. 그래."

"고생하셨습니다."

그냥 예의상 건넨 짧은 인삿말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듣는 순간 왠지 속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에 이근우는 필사적으로 눈을 깜박였다.

"수고했어."

곧이어 어깨를 툭 치고 앞서 걷는 차상혁의 말에 이근우는 이를 악물었다.

아 안돼. 여기서 울면 완전 찌질해 지잖아. 그것만은 안 돼...

"근데 근우씨. 냄새 너무 심하다. 좀 씻고 오지 그랬어..."

한미연의 말에 이근우는 화들짝 놀라 제 옷 소매를 끌어올려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윽, 비린내..."

아. 저 악마같은 새끼.

어쩐지. 형이 제일 고생 많이 하셨으니 형이 가져가시는게 맞다며 선심 쓰듯 생선이 가득 든 주머니를 자신이 탄 말에 묶어 줄 때 알아 봤어야 했는데.

이근우는 어서 촬영이 끝나고 저 새끼 없는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촬영이 끝나고 모두가 하나 둘 잠들기 시작한 시각.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모닥불 앞에 앉아 무언가를 들여다 보고 있는 재이 옆에 인혁이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뭐 보고 있어?”

“참고 영상.”

재이가 들고 있는 회사 휴대폰 속 영상을 확인한 인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3차 경연은 듀엣곡이었다. 이미 선곡은 끝났고 둘이 파트를 나눠 직접 불러 봐야 하는데 문제는 지금 한재이가 보고 있는 영상이었다.

“왜 하필 그걸 봐. 원곡을 보지.”

“잘하잖아.”

“어디가.”

“..... 진짜 몰라서 묻는거야?”

빤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재이의 까만 눈동자에 울컥 짜증이 치민 인혁이 목소리를 높혔다.

“어. 몰라. 대체 왜 저 자식이 그렇게 인기가 좋은 지 모르겠다고. 그냥 겉멋만 잔뜩 든 멍청인데.”

“차인혁.”

한재이의 서늘한 목소리에 인혁은 그제서야 자신의 말이 심했음을 깨닫고 움찔했다. 조금 전 그 말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VJ에게 재이가 눈꼬리를 접어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 조금 전 차인혁이 한 그 멘트.”

지금 천하의 한재이가 나 감싸주려는거야? 아 뭐야 나 좀 감동...

“꼭 살려 주세요. 얘 사람 구실 하려면 혼 좀 나야 돼요.”

상혁이형 팬분들 보셨죠? 이게 차인혁 인성 수준입니다. 같은 핏줄이라고 쉽게 줍지 마세요. 뭅니다. 더럽게 꼬였거든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정성스럽게 팀킬을 시전하고 있는 재이의 모습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VJ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죄송합니다. 흥분해서 말이 헛나갔습니다.”

형은 안 무서워도 형의 팬들은 무서웠다.

차인혁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했다. 편집이 되건 안 되건 여기선 일단 제대로 짚고 넘어가는 것이 맞았다.

“상혁이형 팬 분들 얼굴 좀 비슷하게 생겼다고 마음 놓으시면 안됩니다. 얘는 그냥 노답 악개1 이예요. 제가 방에 붙여둔 상혁이형 브로마이드도 언제 뜯어버릴까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는 안티라고요. 여러분 다 함께 분개하시고 성토하십시... 읍읍”

저놈의 주둥이!!

차인혁은 다급한 마음에 손을 뻗어 재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여간에 틈만 보이면 물어 뜯는 게 성질 더러운 사냥개가 따로없었다. 심지어 이건 아군 적군도 가리지 않았다. 아 자기 자신 아니면 다 적군인가. 그렇다면 납득.

차인혁은 좀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곤 손을 내렸다.

"쓸데 없는 얘기 좀 하지 마 좀. 수습하려는 거 안 보이냐? 도와주진 못할 망정."

"애초에 원인 제공을 누가 했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인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맞다, 그래 그거.

"진짜 원곡 아니고 그걸로 가자고?"

"귀 먹었냐. 아까 대답 했잖아."

“대체 왜?"

아이씨 이 도돌이표같은 새끼.

한재이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울컥했지만 일단 참았다.

"니가 메인 부르라고. 내가 서브 칠 테니까."

곧이어 들려온 의외의 제안에 인혁은 두 눈을 크게 치켜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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