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16화 (1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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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뭔데

“해방의 기쁨이라....”

재이가 나직하게 중얼거린 한 마디에 간만에 식탁에 모두 함께 모여 있던 밥멤버들의 손이 뚝 멈췄다.

“... 어 재이야 그게 아니라.”

침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은규가 입을 열었다.

“야 컨셉 몰라? 컨셉? 참가 신청 한다고 다 받아 주는게 아니니까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하잖아. 그래서 그런 거였다고. 그래서...”

기세 좋게 입을 연 이환조차 점점 말꼬리를 줄이며 재이의 눈치를 살폈다.

“컨셉. 좋지. 컨셉.”

재이의 말에 식탁엔 완전히 정적이 깔렸다.

“애 애초에 아이디어를 낸 건 엠케이였다고!”

“이런ㅆ 난 말만 했지! 근데 그걸 상의도 없이 가로채서 냅다 참가 신청을 낸 게 누군데!”

“난 하겠다고 한 적 없어. 이환이가 상의도 없이 내 이름까지 써서 냈다고!”

“심은규 이 비겁자!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던가! 좋다고 앞치마까지 구해 와 놓고 이제와서 발을 빼?”

“그 앞치마는 남궁찬이 준 거라고! 자기랑 엠케이는 뒤에 응원부대로 서 있을 테니까 제발 자기들도 좀 끼워달라고 했단 말이야!!”

“제발 이라곤 안 했어!”

엉망진창이었다.

혼자 죽을 순 없다는 절박함이 넘쳐나는 내부고발을 듣고 있던 차인혁이 태연하게 부추전의 마지막 조각을 집어 들며 말했다.

“결국 다 공범이라는 거네.”

“차인혁 먹을 땐 닥치고 먹기나 해.”

“누가 저 새끼 입에 뭐 좀 더 쳐넣어 봐.”

“음식 낭비야. 차인혁 다 먹었으면 헛소리 말고 꺼져.”

“난 아직 하나도 못 먹었는데 내 부추전 내 놔..”

냉정한 한 마디에 주변에서 아우성이 쏟아졌다. 재이는 그런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어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 봐.”

“어엉 재이야, 난 정말 그러려던 게... 어?”

거의 울기 직전이던 심은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아까 보니까 그쪽 반응도 나쁘지 않은 것 같던데. 잘 살려 보라고.”

“와 갓재이 이해심 태평양...”

“못 살리면 그냥 일찍 독립하면 되지. 다음 촬영 때까지 대표참가자 타이틀 못 따면 앞으로 밥은 따로 챙겨 먹기로 ㅇㅋ?”

재이의 말에 이환과 은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넘 급작스러...”

“응원부대도 포함 ㅇㅈ?”

재이가 덧붙인 말에 엠케이와 남궁찬이 다급하게 외쳤다.

“왜 우리들까지!”

“억울하면 잘 띄워 보던가. 오늘 보니까 잘 하더만.”

두 녀석의 입이 약속이라도 한 듯 꾹 다물렸다. 재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다 말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녀석들의 얼굴을 둘러보곤 말했다.

"왜 뭐 왜? 아니 근데 잘되라고 등 떠밀어 줘도 불만 인건데 왜?"

"한재이... 재이야. 그.. 아무리 그래도."

"말 끌지말고. 짧게 요점만."

망설이는 은규 대신 이환이 말했다.

"야 인간적으로 입이 여섯인데 부추전이 하나인 건 말이 안 되지 않냐? 하나만 더 해 줘라."

"....뭐?"

예상 밖의 대답에 얼빠진 소리를 내자 이내 재이를 뺀 다섯이 자기들끼리 투닥이기 시작했다.

"재료 엄청 많이 남았단 말이야. 세 장은 더 만들 수 있을걸?"

"아까 남궁찬 저 새끼 입으로만 세 조각 넘게 들어갔다고. 남궁찬 너 양심이 있으면 다음 건 먹지 마."

"음식에 이름 새겨 놨냐. 먼저 젓가락 대는 놈이 임자지. 그리고 못 먹은 게 심은규지 이환이 너냐? 견제 쩌네요."

"근데 인간적으로 다음 거 안 먹어야 되는건 차인혁 아니냐. 촬영 가서도 한재이가 챙겨 먹였을 거 아니냐고."

"야 바깥에서 먹는 밥이랑 집밥이랑 같냐? 방금 전까지 카메라 앞에서 뻔뻔하게 독립이니 뭐니 읊어대던 놈들이 양심이 있어봐라."

완전히 대화의 축 바깥으로 밀려난 재이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저 새끼들은 나한테 뭐 맡겨놨나.'

생각과는 달리 벗어놨던 앞치마를 찾아 다시 두르며 재이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

스텝 업 3회차 방송일

지난주 방송에서 차인혁이 이끄는 팀이 선보인 걸그룹 크래쉬캣의 커버곡은 인터넷 상 에서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커버곡인 만큼 원곡의 틀을 존중해야 한다는 쪽은 타이틀만 같을 뿐 전혀 다른 곡이 되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카피가 아닌 커버가 목적인 만큼 자신들만의 팀 색깔에 맞춘 신선한 해석이었다며 옹호했다.

- 서바이벌이라더니 그냥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님? 1화부터 특정 인물만 대놓고 밀어주잖음

- 그거 나만 불편한 줄 알았더니 너도 그랬냐 ㅋㅋ

- 듣보처럼 꾸민 것도 ㅈㄴ 어이없음 분량 밀어주기 오지고요

- 심사위원 질문 들어가는 거 봐 다른 연습생들 완전 병풍 수준 ㅉㅉ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한 곱지 않은 시선들에 게시판을 모니터링 중이던 엠케이가 입술을 삐죽였다.

"야 한재이 오늘도 배부르겠다?"

바닥에 드러누운 채 TV로 본방을 지켜보던 재이가 눈동자만 굴려 엠케이를 쳐다봤다.

"왜 누가 또 한재이 욕해?"

차인혁이 묻는 말에 엠케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앉아 있던 이환이 투덜거렸다.

"욕이어도 좋으니 누가 내 말도 좀 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라고 사람들의 관심이 고픈 관심종자 이환이 말했습니다."

남궁찬이 영혼 없이 읊조리는 말에 이환이 그쪽을 째려보았다.

"있는데? 이환이 얘기. 이 팀 메보 저번 경연에서도 느낀건데 좀 자뻑캐인듯. 지가 되게 노래 잘하는 줄 아나 봐. 그래 봐야 연습생..."

"아 씹 그만해!!!"

이환이 안고 있던 쿠션을 냅다 집어던지며 소리 질렀다. 화면에서는 마침 이환의 팀 무대가 진행 중이었다.

"관심 고프달 땐 언제고!"

"하필 읽어도 그런 걸 읽어!"

"아니 너 언급된 게 그것 밖에 없..."

"시끄러워 엠케이! 본방 모니터링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꺼져!"

"어휴 저 성질머리..."

엠케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 나왔다 이환이 표 고음."

"시원하네."

"잘 올라가네."

"표정은 좀..."

"와 단독샷 쩌네. 부담스러워라. 왜지?"

"자뻑이라."

"다들 좀 닥쳐 제발."

다 같이 이환을 제물 삼아 본방을 보고 있으려니 금새 심사위원단의 최종 평가 시간이 돌아왔다.

"와 나 저런 표정인 줄 몰랐네."

"바짝 쫄았네. 쫄았어."

무대 위에 나란히 선 연습생들을 한 명 한 명 카메라가 훑고 지나갔다.

"그 와중에 한재이 표정 무엇?"

"저러니까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소릴 듣지."

"야 한재이 너 긴장이 뭔진 아냐?"

"대체 비결이 뭐냐? 같이 좀 알자."

긴장한 연습생들 사이에서 혼자 태연한 표정으로 심사위원석을 바라보고 있는 한재이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자 TV를 보고 있던 녀석들에게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어차피 저 타이밍에 쫄아 봐야 할 수 있는게 1도 없는데 쫄아서 뭐 하게. 피곤하기만 하지."

"누가 그걸 모르냐고. 아 뭐야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도 아니고. 짜증나 한재이."

조금 전 이환에게서 날아왔던 쿠션을 재이에게 집어던지며 엠케이가 투덜거렸다. 그러는 사이 탈락이 결정된 연습생 두 명이 고개를 떨구는 것이 화면에 잡혔다. 시끄럽던 실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렇게 화면으로 보니까 실감이 안 나네."

"설마 여기서 더 자르진 않겠지?"

남은 인원은 이제 여섯. 요새 남자 아이돌 그룹의 트렌드를 고려하면 이미 꽤 적은 수였다.

"루즈해졌다가 망하면 아예 다 밀릴 수도 있어. 석관이형 말하는 거 보니까 프로그램 성적 안 좋으면 여자애들 먼저 데뷔시킨다는 얘기도 있다더라."

"다 떨어뜨리고 한 명만 솔로 데뷔 시킨다는 얘기도 있던데?"

"솔로로 투자회수가 된다고?"

"가능성 없는 것들 데뷔시켜서 더 손해 보는 것보다야 낫겠지."

"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

"와 자뻑이 심하십니다, 환자분. 욕 드실 시간이에요."

이환이 남아있던 다른 쿠션을 집어 던졌다.

"그나저나 진짜 무슨 생각 인걸까, 대표님은."

"그걸 알면 우리가 연습생 하겠냐 대표하지."

"일단은 까이지 않게 달려야지 별 수 있냐."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2차 경연까지 마친 시점의 스코어가 공개되었다. 스코어는 본방으로 처음 공개되는 정보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순위를 어림짐작 하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화면에 집중되었다.

[스텝 업 중간 스코어 공개]

1위 차인혁 13,000점

2위 엠케이 11,350점

3위 이환 10,500점

4위 한재이 9,500점

5위 남궁찬 9,350점

6위 심은규 9,250점

차인혁이 부동의 1위인 것은 예상대로였으나 프로그램의 화제성을 담당하고 있는 한재이의 순위가 생각보다 저조한 것이 의외였다. 게시판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 점수는 거짓말을 안 하지.

- 처음부터 점수제로 가지 그랬니.

- 아니야 저것도 약 치는 건지 누가 알아. 저래놓고 다음 집계 때 한재이 떡상한다 분명.

- 탈락자들 점수도 공개해야 공정한 거 아니냐?

- 어차피 자체집계인데 떨어뜨릴 놈들은 뭘 해도 떨어뜨림 ㅇㅇ

3, 4차 경연에서 획득한 점수와 화제성 조사 결과를 집계해 합산 점수가 평균점 이하인 멤버에 대해서는 탈락 or 잔류를 가리는 심사위원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설명과 함께 현재 스코어의 평균점이 공개되었다.

"와 이환이가 딱 평균 컷이네."

화면에선 이환의 스코어 밑 세 사람의 이름이 빨갛게 점멸하고 있었다.

"나 먼저 들어간다."

심란해졌는지 심은규가 먼저 자리를 떴다.

"난 좀 뛰고 오련다."

남궁찬도 일어섰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한 사람만이 소파에 태연하게 드러누운 채 엔딩 크레딧이 지나가고 있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재이 넌 괜찮냐?"

"응? 뭐가?"

"아 아니 뭐. 괜찮으면 됐고."

얼버무리는 엠케이에게 재이가 말했다.

"스코어? 저거 벌써 일주일도 더 전의 일이잖아."

"와 패기 쩌네. 자신 있나봐?"

이환의 말에 재이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걸 말이라고."

티끌 하나 없이 당당함 그 자체인 재이의 미소에 이환이 움찔 몸을 떨었다.

***

3차 경연 녹화일

- 조용한 바닷가를 홀로 거닐며

하나씩 지워 나가는 중 이야

인혁의 입에서 감미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랩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울림이었다.

-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파도와 함께 휩쓸려 사라지는

- 우리의 시간 너와의 기억

그 목소리에 덧칠하듯 올라앉는 또 다른 목소리

중저음의 보이스와는 달리 귀에 확 꽂히는 미성이 곡의 진행에 강조점을 찍어 나갔다.

- 이젠 뒤 돌아봐도 아무것도--

"쿨럭"

갑자기 터져 나온 기침 소리에 인혁은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아 미안. 잠깐 목이 좀. 크흠 흠."

재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인혁은 저도 모르게 핸드폰 액정을 힐끔 쳐다보았다.

13:05

곧 있으면 3차 경연의 본 녹화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크흠. 흠."

이제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인혁이 지금껏 봐 온 한재이란 녀석은 얄미울 정도로 방송이 체질인 인간이었다. 긴장 따위 하는 걸 본 적도 없거니와 컨디션 조절도 어찌나 잘하는지 인생 2회차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리허설이 끝난 후 본 녹화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춰 보자고 따로 자리를 옮겨 와 연습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별 이상 없어 보였는데. 지금은 인혁이 보기에도 뭔가 좀 이상해 보였다.

"어디 안 좋아? 석관이 형 부를까?"

"음. 아니. 목이 좀.”

재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목 안쪽이 뜨겁게 부어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건.

“아. 이런 썩을.”

조금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마시고 있던 음료수 팩을 확인한 재이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왜 뭐 왜 그러는데?”

“야 너 석관이 형한테 내 가방 좀... 쿨럭쿨럭.”

“야 한재이, 한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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