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1화 (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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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구역의 성덕

“상혁아, 너 인혁이한테 한 턱 쏴야겠는데?”

차 안에서 촬영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상혁에게 매니저 맹주찬이 말했다. 대본을 읽고 있던 상혁이 대답 없이 눈만 슬쩍 들어 무슨 뜻이냐는 듯 묻는 것을 보고 맹주찬이 이어 말했다.

“그 노래 있잖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그거 지금 차트 역주행 중이라고.”

“상혁이 노래가? 그거 원곡도 있잖아?”

차 뒤쪽에서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상혁의 의상을 점검 중이던 스타일리스트 오지혜가 끼어들었다. 차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는 오지혜를 돌아보며 맹주찬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말이지. 원곡 제쳐놓고 역주행 중이니 인혁이 덕 아니겠냐고.”

“하긴. 나도 그거 보니까 상혁이 노래 다시 듣고 싶어지긴 하더라.”

오지혜의 말에 맹주찬이 씩 웃으며 물었다.

“왜, 비교해 보고 싶어서?”

“참 나 말을 해도 어쩜 저렇게 밉상으로 하는지.”

맹주찬을 흘겨보며 투덜거린 오지혜가 말했다.

“궁금하긴 하더라고. 인혁씨가 부르는 거 보니까 어? 상혁이가 저렇게 불렀던가? 싶더라니까.”

“그래서 결론은?”

맹주찬의 채근에 오지혜가 힐끔 상혁 쪽을 바라보고 대답했다.

“당연히 우리 상혁이지. 인혁씨도 잘 불렀지만 그래 봐야 아직 데뷔도 못 한 연습생인데. 상혁이만 하려고.”

“저기, 집중 안 되는데 얘기 나누실 거면 좀 나가주시죠. 두 분.”

여전히 대본에 시선을 집중 한 채 차분한 말투로 축객령을 내리는 차상혁의 목소리에 맹주찬과 오지혜가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아이고 우리 차 배우 집중 흐트러질 뻔 했네. 미안해, 미안해. 나갈 테니까 대본 잘 보고 있어?”

“그래 그래. 아직 촬영 순서 되려면 좀 시간 남았으니까 너무 힘 빼지 말고 알지?”

두 사람은 행여 소리라도 날까 조심조심 차 문을 닫고 바깥으로 나왔다.

“푸흐흐. 하여간에 아직도 애라니까.”

“지 원하는 답은 들었다 이거지. 대본은 무슨, 지금쯤 신나게 핸드폰 들여다보고 있을걸?”

맹주찬의 말대로 상혁은 두 사람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확인하곤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브라우저를 켜고 즐겨찾기로 팬클럽 꿀단지에 들어가자 게시판은 이미 들썩이고 있었다.

- 상혁 오빠 차트인 ㅊㅋㅊㅋ!!!

- 역시 믿고 듣는 상혁 오빠

- 원곡자가 인정한 꿀 보이스 ㅎㅇ

- 동생꺼 들어 봤는데 상혁 오빠한테 비비려면 백 만 년은 멀었더라

- 댈 걸 대야지 딱 봐도 메보 수준은 절대 아니던데

- ㅇㅇ 차라리 섭보가 낫다고 봄

- 얼굴의 반 만큼만이라도 상혁오빠 능력을 닮았으면 더 잘 했을 텐데 아쉽

상혁은 빙긋 웃었다.

역시 내 꿀님들.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 여러분 투표하세요!! 지금 TVM에서 상혁 오빠 엮어서 어그로 끌고 있어요. 꿀단지의 위력을 보여줄 때입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있던 상혁은 그새 새로 올라온 글에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글의 말미에 붙은 링크를 타고 스텝 업 공홈에 접속하자 기다렸다는 듯 화려한 글자가 튀어 올랐다.

[21세기 형제의 난!!! 당신의 선택은?!]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상혁은 제작 회의 때 만났던 조민선 피디의 얼굴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뭘 해도 내가 손해 볼 건 없을 거라더니 이건 뭐냐고.

핸드폰 화면에는 상혁과 인혁의 얼굴이 박힌 버튼과 함께 실시간 투표 현황이 떠 있었다. 물론 팬 화력에서 이미 압도적인 차이가 있는 탓에 결과야 뻔하긴 했지만 그래도 차인혁에게 20% 정도나 표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턱은 무슨. 내가 얻어먹어야 겠는데.”

상혁은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건방진 동생놈이 이 결과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하곤 조금 유쾌해졌다.

***

- 나한테 밥 사야 할 듯

인혁은 방금 온 문자를 확인하고 인상을 콱 찌푸렸다.

“뭐래 미친놈이.”

“뭐야 왜 갑자기 욕이야?”

옆에 있던 재이가 덩달아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너 말고.”

“말 좀 가려서 해라. 감독님이 일일이 편집해 주시는 것도 한계가 있지.”

지금 건 편집 해 주세요. 라는 표정으로 재이가 방 한쪽에 달린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뭔데 그래?”

“경연곡. 쎄빠지게 불렀더니 엄한 놈이 차트 역주행으로 득 보고 있잖아.”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인혁에 재이가 말했다.

“너도 득 봤잖아. 인지도. 못 봤어? 아까 너 실검도 타던데?”

“그거야···”

“그거야 니가 잘해서라고? 어휴 저 커다란 자의식 덩어리를 어쩌면 좋냐. 좀 더 얻어맞아야 줄어들려나.”

재이의 말에 인혁이 인상을 구기며 반박했다.

“어쨌거나 내 덕 아니면 그 놈 곡이 갑자기 무슨 수로 차트 역주행을 했겠냐고.”

“뭐래. 상혁이형이 너보고 한 턱 내래?”

날카로운 재이의 물음에 인혁이 움찔했다.

“와 상혁이형도 너무하시네. 그거 내 아이디어였다는 거 뻔히 알면서 너만 부르고. 나도 같이 보자는 말씀은 없으시더냐?”

“나보고 내라고 했다니까.”

“설마 슈스가 연습생 골 빼 먹겠냐.”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그럼 나도 데리고 가면 되겠네. 나 있으면 차마 못 할지도 모르잖아?”

“둘이 같이 뽑혀 먹힐 듯.”

“역시 슈스다운 일관성.”

뭐라는 거냐는 표정으로 재이를 바라보던 인혁이 한숨을 크게 내 쉬었다.

잊고 있었다.

이 새끼 그 놈 팬이었지.

“하아. 까먹고 있던 내가 병신이지.”

“감독님, 앞으로 얘가 입 열면 그냥 다 삐 처리해 주세요. 차라리 그게 편하실 듯요.”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하는 재이를 힐끗 노려본 인혁이 다시 핸드폰을 쳐다보다 인상을 콱 찌푸리며 말했다.

“야 한재이 너.”

“응? 왜?”

“너 진짜 그 놈 팬이었어?”

“그 놈? 누구? 니네 형?”

재이의 말에 인혁이 보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재이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어, 너 그 놈 팬클럽까지 들어가 있었냐고.”

화면엔 스텝 업 게시판에 누군가가 쓴 게시물이 펼쳐져 있었다.

[그 재재님이 그 재재님 이었다니!?]

얘들아 내가 원래 차상혁 데뷔 때부터 팬이라 팬클럽 1기부터 줄곧 들어가 있는데 거기 네임드 중에 남팬이 하나 있거든. 팬싸며 콘서트 후기 엄청 자세하게 올리고 팬카페 활동 엄청 활발하게 해서 닉네임 보면 딱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닉이 [재재님이시다]임 ㅋㅋㅋ

그래 여기서 이미 감이 온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한재이가 자기 입으로 그랬잖아, 자기 차상혁 팬이라고. 엄청 좋아한다고.

근데 이번에 올라온 개인 영상에서 자기 입으로 재재님이라고 하는 거 보고 나 완전!!!

아이씨 팬싸때 분명 얼굴 보고 인사도 했었는데 나새끼 왜 기억1도 안나는지 모르겠다고! 그 때도 이렇게 이뻤던가? 아니지 이 미모를 한 번 보고 잊을 리가 없는데!! 대체 그동안 무슨 좋은 일이 있었던 거니 누나도 같이 좀 알자 싶고 막 ㅋㅋㅋㅋ 그 때 알아 봤으면 지금 완전 대박 인건데ㅋㅋㅋ

암튼 꿀단지에서 무럭무럭 큰 아가가 연습생으로 데뷔까지 노리고 있다니 완전 기분 좋음 ㅋㅋㅋ 재재님 흥해라!!!

글을 읽은 재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내가 이 구역의 성덕이지.”

“하아. 말을 말아야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 인혁에게 재이가 물었다.

“너는?’’

뭐가? 라는 표정으로 인혁이 돌아보자 재이가 재차 말했다.

“이 참에 너도 닉네임 까라고.”

인혁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그 표정을 본 재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아, 미안하다. 밝히고 싶지 않으면 말 안 해도···”

“아니거든! 난 팬클럽 같은 거 안 들었거든!”

“어 그래. 알았어. 진정해.”

영혼없는 재이의 대답에 인혁이 발끈해 외쳤다.

“야, 아니라고!!”

“아 시끄러. 알았다고!”

똑같이 소리 질러 대답하는 재이의 모습이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인혁은 일단 입을 닫았다.

‘새끼 부끄러워하기는. 하긴,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비밀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

인혁이 들었으면 복장 터졌을 소리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재이는 고개를 돌렸다. 벽에 붙여 놓은 차상혁의 브로마이드가 눈에 들어왔다.

참 잘 생겼다.

제 얼굴도 아닌데 뿌듯함이 밀려들었다.

“근데 넌 왜 내 방에 와 있냐.”

재이가 문득 인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재이와 엠케이, 남궁찬이 함께 쓰는 방으로 인혁은 나머지 아이들과 함께 다른 방을 쓰고 있었다.

“그 놈들이 왔다갔다 부산스럽잖아. 요리를 하는 건지 패션쇼를 하는 건지.”

그랬다.

오늘은 엉클박 프로그램의 촬영일이었다.

지난번 방송에서 어그로가 잘 먹힌 모양인지 대표참가자에 뽑힌 두 사람을 위해 방송국에서 따로 촬영팀을 보내 주겠다고 연락이 온 덕에 아침부터 숙소는 온통 난리였다.

이환과 심은규 뿐만 아니라 병풍 대신 서 있을 예정인 엠케이와 남궁찬까지 자기들이 가진 옷이란 옷은 모두 꺼내놓고 이게 좋냐 저게 낫다 하며 오전 내내 패션쇼를 해 댔다.

그 북새통을 피해 재이와 인혁은 방 한쪽 구석으로 피난을 와 있는 상태였다.

밖에선 촬영이 이미 한창이었다.

- 야아악!! 심은규!!!

- 으아아악 미안 이환아 미안!!

- 뭐야 환심이네 무슨 일이야!

“누가 보면 전쟁 난 줄.”

“그러게.”

태평스러운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야 한재이! 이리 좀 나와 봐!”

엠케이였다.

“왜. 아직 촬영 중 인거 아니야?”

“어. 엉클박이 너 좀 와 보라셔.”

“나 왜. 요린이 아니면 나올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

“몰라 나와 봐. 얼른.”

팔을 잡아 당기며 재촉하는 엠케이에 재이가 끌려가며 말했다.

“나 쌩얼 인데? 츄리닝 인데?! 너희들은 반나절 내내 단장하고서, 난 이렇게 대뜸 끌고 가기냐 어?!”

“니가 언제 그런 거 따졌다고. 얼른 나와 좀.”

씨알도 안 먹히는 엠케이의 단호한 말에 재이가 투덜거렸다.

“아무리 경쟁이라지만 이런 데서까지 진짜 치사하게.”

“한재이 거기서 더 하면 추하다. 얼른 나가.”

남궁찬의 침대에 드러누워 그 꼴을 보고 있던 차인혁이 한마디 보탰다.

“너 내 브로마이드에 손대지 마. 티끌 하나라도 묻어있으면 진짜 가만 안 둬! 카메라 돌아가고 있다는 걸 명심해라!”

엠케이에게 질질 끌려가면서도 경고를 잊지 않는 재이의 말에 차인혁이 대답대신 베개를 집어던졌다.

- 한재이씨 아직 안 왔어요?

“지금 와요. 지금 데리고 왔어요!”

화면 너머의 엉클박이 재촉하는 목소리에 엠케이가 소리높여 대답하며 카메라 시야각 안으로 재이를 밀어 넣었다.

“안녕하세요. 한재이입니다.”

몸에 밴 폴더인사로 인사하자 화면 너머 엉클박이 웃으며 말했다.

- 한재이씨 미안한데 하나만 물어보려고. 저거 진짜 한재이씨가 그러라고 가르쳐 준 거 맞아요?

엉클박의 물음에 재이는 고개를 돌려 조리대 위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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