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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선택
“와 씨 손에 땀 나!!!!”
타이밍 좋게 들어간 중간광고에 엠케이가 비명을 질렀다.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의 시선이 소파 쪽으로 쏠렸다.
“궁금하면···”
“그래 볼게! 보면 될 거 아니냐고!”
재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환이 버럭 대답했다.
“내가 서러워서라도 출세한다. 완전 끝내주는 추리극에 나와서 딱 저것들 만큼만 위세 부려 주겠어.”
“무리수가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갈궈야 할지.”
이환의 말에 남궁찬이 고개를 저었다.
“남궁찬 이 새끼가 내 인생 최대 안티 인 듯”
“그걸 이제서야 알다니 이환 너 생각보다 둔하구나?”
이환의 푸념 섞인 말에 엠케이가 웃으며 받아쳤다.
“아이씨 진짜 너네 다 떨어뜨리고 나 혼자 데뷔한다 진짜!”
“그것보다 그냥 니가 탈락 해 주는 게 빠를 듯.”
이환이 말 대신 남궁찬에게 쿠션을 집어 던지는 사이 광고가 끝나고 방송이 이어졌다.
- 아우우우우!!!!!!
- 야아아아아아!!!!!!!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소리에 이근우가 나이프를 고쳐 쥐며 소리가 난 쪽으로 뛰었다.
- 오! 이근우!!! 이 목소리 근우 씨 맞지!?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른 순간, 뜻밖에도 들려온 것은 귀에 익숙한 김봉만의 목소리였다.
- 보···봉만 형님??
얼빠진 이근우의 목소리와 함께 저쪽에서 수풀을 가르며 한 무리의 인영이 나타났다.
- 이야 진짜 이근우잖아! 한재이 귀신 같네!!!!
- 혀 형님? 한재이? 사, 상혁 선배까지? 어···어떻게···
이근우가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했다.
- 근우 씨 괜찮아? 그러게 거기 그냥 있지 왜 돌아다녔어?
다가온 김봉만이 이근우를 부축하며 말했다.
- 아 맞다! 그··· 여기 아무래도 느 늑대가 있는 것 같아서···
이근우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그 소리에 봉만이 웃으며 대답했다.
- 아 그거? 이거야.
- 아우우우우!!!!!
봉만이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재이가, 이 근처까진 어떻게 흔적을 찾아 왔는데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야생동물 소리라도 들으면 구조탄 이라도 쏘지 않겠냐고 해서.
이근우의 시선이 그제서야 한재이 에게로 옮겨갔다.
- 형 괜찮으세요?
한껏 걱정을 담은 눈망울. 선한 그 얼굴에선 어떤 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재이 너 설마.”
화면을 보고 있던 엠케이가 돌아보며 묻는 말에 재이가 힐끗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뭐.”
“너 설마 일부러··· 는 아니지 그치?”
“이야 엠케이가 사람 잡네. 내가 저 상황에서 일부러 저랬으면 그게 인간이냐.”
“어···으응··· 그렇지···”
어딘지 떨떠름한 엠케이의 대답에 재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왜.”
“아니. 아니야. 그냥 앞으로 니 말 잘 들을라구.”
엠케이의 뜬금없는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엠케이에게 와 박혔다.
“왜 갑자기 충성맹세?”
“이 와중에 점수따기야? 한재이가 너만 따로 반찬 해 준대?”
“와 그럼 나도 할래, 충성맹세.”
“심은규 넌 안돼, 이미 독립선언 한 놈이 무슨 염치로.”
아이들의 투닥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한재이는 TV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는 무사히 일행과 합류한 이근우가 본대와 합류해 함께 목적지였던 호숫가에 도달하는 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재이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 내가 진짜 잘못했으니까. 우리 서로 없었던 일로 하자 응?
촬영이 끝난 후 공항에서 헤어지기 전 자신을 따로 불러낸 이근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 형이 뭘 잘못하셨다고.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 어 아니 그러게. 그러게. 그래. 그런 거지. 응. 그래. 잘 가고 다신 보지 말자 응?
- 에이 형 왜요. 이것도 인연인데. 연락처 교환하면 안 돼요? 저도 친구들한테 자랑 좀 하게요.
- 야이 ㅆ.. 아니, 어 그래. 좋지, 좋아. 자랑? 그래 뭐 사진도 찍을까? 아 그건 아니고? 그렇지, 응. 언제든지 연락해. 그럼 그럼.
‘딱히 그렇게까지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말이지.’
재이는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늑대 울음소리를 생각해 낸 건 우연이었다.
본격적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초조해진 김봉만이 중얼거렸던 것이다.
이러다가 늑대라도 튀어나오면 장르 바뀌는 거 순식간이겠다고.
이대로 발자국을 쫓아 가서 찾아내는 것도 가능은 했지만, 사실 제일 빠른 것은 신호탄을 쫓는 것이었다.
봉만에게 의견을 물으니 차 피디에게 확인해 보자는 답이 돌아왔다.
무전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묻자 곧바로 OK싸인이 떨어졌다.
중간에 돌발상황이 일어난 이상 속전속결로 결론을 내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래도, 저건 의외였어. 아무리 멋모르고 한 거라지만.’
엔딩 롤과 함께 생존의 법칙 특별편 -미지의 섬 카히타마하키의 최고의 순간들이 하나하나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하나로 맥가이버 나이프를 들고 카메라 감독에게 제 뒤로 서라고 하고있는 이근우의 모습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재이는 생각했다.
***
다음 날
개인 인터뷰 촬영 및 4차 경연 미션 발표일
TVM 스튜디오
“4차 경연은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진행됩니다. 일주일간 멘토와 함께 4차 경연에 올릴 무대를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스튜디오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그 말에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멘토는 어떻게 정하나요?”
성질 급한 이환의 질문에 스태프가 웃으며 대답했다.
“심사위원단 중 멘토로 참여하실 분들이 이미 자신이 원하는 멘티를 뽑아 두신 상태입니다. 오늘은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고요.”
“아 심사위원단이 뽑는 거구나···”
실망한 듯 중얼거리는 이환의 옆에서 심은규가 소심하게 물었다.
“혹시··· 아무에게도 지명받지 못한 사람도 있나요?”
그 말에 아이들의 얼굴이 제각기 불안으로 물들었다.
“야이 소심은규! 그런 걸 왜 물어! 불안하게시리!!”
“엠케이 말이 맞아. 물어볼 거면 ‘제일 많은 지명을 받은 사람은 몇 명 한테서 받았나요?’라고 물어봐야지!”
엠케이와 남궁찬이 차례로 소리쳤다. 핀잔을 들은 심은규가 목을 움츠렸다.
“다행히 모두 한 분 이상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가장 많은 지명을 받은 분은 멘토 전원에게서 지명이 들어왔었네요.”
“와 대박. 우리 중에 그런 능력자가 있었다니.”
“개부럽···”
“왠지 나일 듯.”
“넌 어그로 공부 다시 하고 와라.”
아이들이 웅성이는 사이 스태프가 준비해 놓았던 영상을 재생했다.
- 스텝 업 멘토로 참여하실 분은 차상혁, 비제이, 그리고 에이미 씨 입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라인업을 호명하는 스태프의 외침에 비즈니스 스마일을 장착한 세 명의 멘토가 스튜디오 중앙에 마련된 둥근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한재이, 차인혁, 이환, 심은규, 엠케이 그리고 남궁찬의 사진과 그간의 지표를 기록한 자료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 자 그럼 먼저 각자 골라 볼까?
비제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차상혁이 누군가의 사진을 짚으며 말했다.
- 이 친구는 제가 좀 맡아 보고 싶네요.
- 와 상혁씨 기다렸다는 듯이. 근데 이거 선착순 아니잖아요? 저도 이 친구 찜해 뒀었는데?
상혁이 짚고 있는 사진 다른 쪽 끝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에이미가 말했다.
- 뭐야? 얘 왜 이렇게 인기 많아? 나도 좀 흥미 있었는데?
비제이의 말에 상혁이 눈을 흘기며 맞받아쳤다.
- 장르 안 겹치잖아요?
- 그러게. 선배는 좀 빠지죠?
에이미가 뒤따라 톡 쏘듯 내뱉는 말에 비제이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 와 다양성을 존중 안 해 주네 이 사람들이.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난 얘로 할래.
비제이가 짚은 사진을 힐끗 돌아본 차상혁과 에이미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같은 사진을 짚은 채였다.
- 이 사람들 집요한 것 좀 보게. 피디님, 이럴 땐 어떻게 정합니까?
비제이가 카메라 너머를 바라보며 물었다.
- ··· 가위바위보요? 진심?
비제이의 물음에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는지 멘토 세 명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 들었지? 신경전 그만하고 얼른 해. 가위, 바위, 보!
비제이의 선창에 차상혁과 에이미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가위바위보를 했다.
- 예쓰!
차상혁의 작은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스튜디오에 울렸다.
에이미가 눈을 치켜떴다.
- 삼 세 판!
- 그런 건 하기 전에 말했어야죠.
에이미의 외침을 단칼에 끊은 차상혁이 억지로 사진을 잡아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차상혁을 노려본 에이미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다른 사진을 짚었다.
- 그럼 난 이 친구 할래요. 사실 메인 보컬로서의 스킬은 이 친구가 지금 남은 친구들 중에선 단독 탑이라고 생각하거든.
에이미가 고른 사진을 쳐다본 차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나쁘지 않아. 조금만 더 다듬으면 분명 괜찮을 듯. 트렌디 하잖아.
- 딱 지금 유행하는 보이스긴 해. 귀에 잘 꽂혀.
비제이가 거들었다.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을 돌아보았다.
- 난 이 친구 하나여도 괜찮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은?
- 아 나 그럼 이렇게 조합 한 번 가져가 보고 싶은데.
비제이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몇 장의 사진을 나열했다.
- 흠···나쁘진 않은데. 크게 참신하지도 않은 듯.
차상혁의 건조한 평에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비제이가 에이미에게 물었다.
- 진짜 하나로 갈 거면 내가 얘네 셋 한다?
- 상혁씨도 동의해요?
- 괜찮아요. 난 이쪽이 좀 궁금하긴 했어.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사진 한 장을 끌어당기자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 맞아요. 그 친구 프로필이 좀 의외더라고. 그 부분은 확실히 상혁씨가 눈독 들일만 하겠더라.
- 그러게.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남았는지 경연 때는 솔직히 좀 의외였는데 프로필 다시 보니 그럴 만도 하겠더라. 의외로 근성 있는 타입인 듯
비제이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 그러면 이렇게 결정된걸로 할까요?
에이미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은 그걸로 끝이었다.
“··· 누가 누군지 안 가르쳐 주나요?”
엠케이의 질문에 스태프가 대답했다.
“네. 여러분은 지금부터 각자 지정받은 루트를 통해 멘토를 만나러 가게 됩니다. 누가 자신의 멘토인지는 목적지에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스텝 업 제작진은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지문을 모두 읽은 스태프가 화이팅 포즈를 만들어 보이며 싱긋 웃었다.
그와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스태프들이 아이들에게 지령이 들어있는 봉투를 한 통씩 건네주었다.
“지금부터 그 안에 적힌 루트를 따라 목적지까지 이동하시면 됩니다. 자, 그럼 출발하세요!”
아이들이 주섬주섬 각자 받은 봉투를 열고 안에 든 종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탄성 혹은 안도의 한숨이 들려오는 가운데, 자신의 봉투를 열고 내용을 확인하던 재이가 멈칫했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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