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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보컬리스트
“형, 성공하고 싶습니다.”
“서, 선배님 저도.”
재이와 은규의 의욕충만한 눈빛을 마주한 상혁이 결국 큭큭 웃었다.
“그럼 일단 자가진단부터.”
상혁의 눈이 진지해졌다.
“두 사람 다 현재 스코어가 평균 이하라는 거 알고 있지? 이대로 가면 잔류심사대상이라는 것도.”
상혁의 말에 재이와 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너희는 멘토링 기간 안에 나한테서 뭘 얻어가고 싶지?”
“밥그릇 챙기는 법이요.”
상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온 재이의 대답에 나머지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밥그릇?”
“네. 밥그릇이요.”
“자세히 말 해 봐.”
상혁이 팔짱을 낀 채 얼굴을 찌푸리며 나직하게 내뱉었다.
조금 전까지 짓고 있던 미소가 거짓말처럼 어느새 차가운 무표정이 조각같은 얼굴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 온도차에 옆에 앉아 있던 은규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런 차상혁의 반응에도 흔들림없이 태평한 표정의 재이가 입을 열었다.
“메보 포지션 다지는 법 가르쳐 주세요.”
“한재이 꿈이 야무지네.”
“칭찬 감사합니다.”
씩 웃으며 대답하는 재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본 상혁이 은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심은규는 뭘 원하는데?”
“곡 만드는 법이요.”
은규의 말에 차상혁이 의외라는 듯 한 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작곡에 관심 있어?”
“예. 혼자 끄적여 본 적은 있는데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아직 없어서.”
“재미있네.”
차상혁이 빙긋 웃었다.
그 반응을 본 재이가 투덜거렸다.
“와 온도차 너무 심하신 듯.”
“능력의 차이라고는 생각 안 하고?”
“한 사람이 다 잘 하면 솔로 데뷔 하게요?”
재이의 대답에 차상혁이 미간을 좁혔다.
“이거 끝이 솔로 데뷔라는 결론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럼요.”
그래도 밀리지 않을 자신 있다는 듯 살짝 턱을 치켜든 채 자신을 빤히 마주보는 재이의 태도에 차상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능력이 그 자신감 만큼이나 탄탄하길 기대하지.”
***
“보컬 트레이닝에서 지적받은게 뭐라고?”
개별레슨시간.
보컬 실력을 확인하고자 두 사람과 함께 2층에 마련된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긴 차상혁이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 노매력이요?”
“농담 빼고.”
농담 아닌데··· 라고 중얼거리는 자신을 노려보는 차상혁의 눈빛에 재이가 억울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총체적 난국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걸 종합해서 한 마디로 표현하면 노매력이라고들 하시던데요.”
“허.”
차상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잠깐 기다려봐. 전화 좀 쓰자.”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형. 저 상혁인데요.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지금 잠깐 시간 되십니까. 네. 형이 직접 좀 듣고 확인해 주셨으면 하는 게 있어서요.”
수화기 너머 상대와 몇 마디 더 나눈 상혁이 몸을 틀어 재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그거 다시 불러 봐.”
상혁의 주문에 재이가 자세를 가다듬고 목을 풀었다.
곧이어 매끄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헤어진 지 벌써 한 달···”
퇴근길
늦은 밤 텅 빈 버스에 앉아 생각없이 흔들리다 보면 의식은 또다시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으로 흘러간다. 잊어 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목소리에 묻어나는 것은 덜어내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
자칫 잘못하면 단조로운 독백으로 끝날 수 있는 까다로운 곡을 자신만의 호흡으로 끌어나가고 있었다. 원곡의 감성적인 터치를 따라가면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시원하게 뻗어 올라가는 고음은 이별에 대한 미련보다 그것을 뒤로하고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기대감에 방점을 찍었다.
‘이게 노매력이면···’
차상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노래를 끝낸 재이가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 야! 차상혁! 야! 임마!! 지금 이거 누구야! 어?!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았던 핸드폰에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소리치고 있었다.
“아, 형. 죄송해요. 어떻게 들으셨··· 아, 네. 네.”
핸드폰을 들고 상대방과 통화를 나누려 잠시 자리를 뜨는 차상혁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재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그래서 잘 했다는거야, 못 했다는거야.’
일단 불러보라고 하더니 결국 핸드폰만 붙들고 있는 차상혁의 행동에 재이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한재이 너 정말 힘숨찐···”
“얜 또 뭐래.”
자신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심은규를 힐끗 흘겨보며 재이가 투덜거렸다.
그 사이 통화를 마친 차상혁이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계획을 조금 수정하자. 내가 직접 보려고 했는데 끼어들고 싶다는 분이 계시다네.”
“어··· 그래도 되는 건가요?”
차상혁의 뜬금없는 말에 재이와 은규가 스튜디오 한 쪽에 따라와 있던 피디와 VJ를 돌아보며 물었다.
“문제 없죠, 피디님? 비제이 선배 쪽도 결국 트레이너 한 명 더 붙이기로 했잖아요. 우리도 둘인데 그 정도는 봐 주셔야지.”
“잠깐 조피디님하고 상의 좀 할게요.”
피디가 확인을 위해 통화하는 사이 상혁이 재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체 지금까지 보컬 트레이닝에서 니가 무슨 깽판을 쳐 왔길래 들었다는 평이 다 그 따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아니 깽판 친 적 없는데요···’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차상혁이 이어 말했다.
“일단 내 판단으론 괜찮아 보이는데. 이쪽으로 전문가이신 분이 마침 시간 좀 되신다고 하니까 그쪽에 부탁해 보자.”
“감사합니다.”
그 전문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 천하의 차상혁이 자신을 위해 부탁까지 해 준단 말에 재이는 일단 꾸벅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은규의 눈에 부러움이 그득그득 차다 못해 흘러 넘치고 있었다.
“심은규도 일단 준비한 거 불러 봐.”
차상혁의 말에 은규가 쭈뼛쭈뼛 마이크 앞에 섰다.
“표정이 왜 그래? 설마 한재이한테 주눅 든 거야?”
“아. 아닙니다.”
“저런 놈한테 주눅 들면 나중에 관객들 앞에서 라이브는 어떻게 하려고?”
“···저런 놈이라니. 선배님···”
옆에서 한재이가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심은규. 멘탈이 약한 거랑 무대에서 프로답지 못한 거랑은 전혀 다른 얘기인 거 알고 있나?”
차상혁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네? 네···”
“지금 이순간에도 너에 대한 평가는 계속되고 있는 거야. 카메라 돌아가고 있는 거 안 보여? 아직도 네가 소속사에서 월말평가나 보고 있는 아마추어 연습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설마? 아니지, 월말평가 때도 이런 식이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을텐데. 운이 더럽게 좋았던 게 아니라면.”
차상혁의 가차 없는 말에 은규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이런 얘기까지 해 줘야 하나? 나는 멘토지 베이비시터가 아니라고.”
“죄송합니다.”
은규가 꾸벅 허리를 굽혔다.
“이번 한 번뿐이야. 다음은 없어.”
“네 선배님.”
은규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차상혁의 냉정한 한 마디에 멘탈이 갈리는 대신 정신이 바짝 든 모양이었다.
‘심은규 의외네··· 한재이 과 일줄 알았는데, 맷집 좋잖아?’
재이는 조금 전과는 달리 잡생각을 비워낸 듯 개운한 표정의 은규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잠깐. 지금 부분 다시. 한재이 내가 지금 왜 끊었는지 알겠어?”
“반 박자 빠르게 들어갔습니다.”
“심은규, 본인도 부르면서 느꼈나?”
“···네.”
“느꼈으면 고쳐. 이대로 버릇되면 고치고 싶어도 못 고치게 된다.”
가차없는 차상혁의 지적에 은규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였다.
딩동-딩동-
별장 입구의 챠임벨이 울리는 소리에 차상혁이 시계를 돌아보았다.
시계는 밤 11시를 지나고 있었다.
“진짜 전화 끊자마자 달려오신 모양이네.”
모니터를 확인한 차상혁이 중얼거리며 도어 버튼을 누르고 손님을 맞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재이와 은규 또한 차상혁을 따라 자리를 옮겼다.
“형. 내일 오셔도 되는 것을요.”
“뭐야 차상혁. 불 피워놓고 시치미 떼는거야 지금?”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차상혁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을 본 재이와 은규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이우연
성공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무적의 보컬리스트로 불리며 가요 경연 프로그램을 싹쓸이한 실력파 가수가 눈앞에 서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두 녀석의 입에서 차례로 인사가 터져 나왔다.
“와 패기 좋네. 얘네들이야?”
이우연이 차상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네. 형 카메라 괜찮죠?”
“이제와서 새삼 뭘. 그래서 어느쪽이야?”
어깨를 으쓱한 이우연이 눈을 빛내며 묻는 말에 차상혁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성질도 급하셔라. 숨 돌릴 틈도 안 주시네.”
“이 밤에 차 몰고 여기까지 온 건 난데 숨은 왜 니가 돌리냐. 그래서 누구냐고, 아까 노래 한 녀석.”
이우연의 물음에 차상혁이 대답했다.
“어째, 오늘 제시간에 자긴 그른 것 같네. 한재이, 올라가서 한 곡 뽑을 준비 해. 심은규는 어쩔래? 너도 갈래? 아니면 그만 쉴래?”
차상혁의 물음에 은규가 곧장 대답했다.
“견학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조용히 경청하겠습니다!”
“좋은 자세야. 그럼 가자.”
은규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차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니가 아까 노래 부른 녀석이야? 너 노래 누구한테 배웠냐? 어?”
계단을 오르며 재이에게 어깨동무를 한 이우연이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차상혁이 그런 이우연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깐. 지금 그 부분 다시 한 번 불러 봐.”
“왜요. 내가 보기엔 괜찮았는데.”
“차상혁 조용히 안 할거면 나가.”
“죄송합니다.”
이우연의 날카로운 말투에 차상혁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와 저 차상혁이 말 한마디에 깨갱이네. 레전드의 위엄인가.’
마침 눈이 마주친 심은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재이. 거기 다시 좀 불러보라고. 안 들려? 졸리냐?”
“아 죄송합니다. 다시 가겠습니다.”
재이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이우연이 주문한 구간을 다시 한번 불렀다.
이우연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
“형, 같이 좀 알죠? 나 답답한데.”
아마 이거 나가면 보시는 분들도 같이 답답 해 하실 듯.
하고 중얼거리는 차상혁의 말에 그제서야 이우연이 입을 열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그러니까 뭐가요.”
“이게 이 진행이면 분명 거슬려야 하는데. 왜 오히려 듣기가 좋냐 이거야.”
“대체 무슨 말인지. 일반인도 알기 쉽게 얘기 좀 해 주면 안 됩니까?”
차상혁의 말에 이우연이 그를 흘겨보곤 대답했다.
“그게, 곡 흐름상 이 부분에서 힘을 주면 분명 거슬리는 구조인데 얘가 지금 이렇게 내지르는데도 딱히 거슬리지가 않는게 이상하다, 이 말이야.”
이우연이 조금 전 재이가 부른 부분을 리플레이 하면서 말했다.
“···좋은 거 아닌가요?”
옆에서 듣고 있던 심은규가 소심하게 물었다.
“좋은데, 왜 좋은질 모르겠으니 이상하단 거다. 꼬맹아.”
이우연이 말을 이었다.
“안되겠다. 한재이 넌 나랑 일대일로 좀 더 하자.”
재이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뭐지 이거. 나 지금 엄청나게 안 좋은 패를 뽑은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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