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7화 (27/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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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전화

010-XXXX-△△△△

재이는 손안에서 부르르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누구지?’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본 재이가 눈을 찌푸렸다.

원래 개인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이었다. 회사에서 준 이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는 것은 같이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는 연습생 아이들과 매니저 김석관 정도밖에 없었다.

받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야?”

어느새 다가온 은규가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며 물었다.

“글쎄?”

“글쎄라니?”

“모르는 번호였음.”

“혹시 네 팬 아님?”

“심은규 행복회로 아침부터 열일하네. 차라리 보이스피싱 쪽이 확률이 높을걸.”

“하긴 그건 그래.”

으아 빨리 유명해지고 싶다.

중얼거리며 식탁으로 돌아가는 은규를 따라 몸을 돌리며 재이는 생각했다.

‘뭔가 찜찜한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에 재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이 곡으로 가 볼까 하는데 어때?”

스튜디오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차상혁이 말했다.

그와 함께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직 초안 단계인 듯 주선율을 엮어 나가는 피아노 반주 위로 가이드 보컬의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경쾌한 도입부와 클라이맥스의 스타카토 구간이 인상적인 업템포의 곡이었다.

“오 심은규. 이거 네가 쓴 거야?”

가이드 보컬이 누군지 눈치챈 재이가 은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생짜 초보를 데리고 프로듀싱까지 하겠다고? 시간이 되겠어?”

미심쩍은 눈초리로 이우연이 차상혁에게 물었다.

“어차피 경연용 곡이니 그리 길지 않아도 되고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요. 작업은 AR팀에 지원 부탁해 뒀고요. 장세은 팀장님이 좀 이따 합류 하실겁니다. 형도 아시죠? 장 팀장님. 심은규, 어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짜고짜 감사하다며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은규에게 이우연이 말했다.

“둘이 얼마나 사전에 조율하고 꺼낸 얘긴지 모르겠지만 너도 그렇게 그냥 덥석 물지 말고 잘 생각해. 지금 작업하면 저 약삭빠른 녀석이 네 곡에 어떻게든 숟가락 얹고 들어갈 텐데 나중에 혼자 부딪치고 뒹굴면서 제대로 된 곡으로 만들어 내는 것보다 진짜 나은 선택인지 고민하라고.”

이우연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베이스를 피아노로 잡은 걸 보면 이 쪽으로 아예 모르는 녀석은 아닌 듯 싶었다. 다만 이런 식으로 써버리면 이 곡은 일회용이 될 가능성이 컸다. 아마추어 녀석의 곡이라곤 해도 엄연히 창작자의 노력과 시간이 담긴 결과물이었다. 아무리 지금 당장 눈에 띄는 것이 급한 연습생 신분이라고는 해도 이우연은 이런 식으로 젊은 녀석의 노력이 소모되는 것은 반대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이우연에게 은규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대답했다.

“선배님, 진심어린 충고 정말 감사합니다. 어젯밤 상혁 선배님과 충분히 상의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 꼭 잘 살려 보고 싶습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존재감이 희미하다고 여겼던 녀석의 흔들림 없는 대답에 그를 잠시 바라보던 이우연이 혀를 찼다.

“거 참. 차상혁, 애를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저렇게 홀랑 눈이 돌아가 있어?”

“제가 뭘요. 선택은 본인이 한 건데.”

“쯧. 능구렁이 같으니. 그래서, 곡은 그렇다고 치고 가사는? 녹음 언제 할 건데? 파트배분은 생각해 둔 거 있고? 무대연출 직접 할 거야? 그러려면 사람 더 필요할 텐데?”

이우연의 말에 차상혁이 웃었다.

“형, 언제는 한재이만 보고 갈 거라면서요?”

“얘만 보고 갈 거 맞아. 근데 무대 올리는 건 보고 가야될 것 아니야. 누구 말마따나 허접스럽게 했다가 폭망하는거 방송 타면 누가 욕먹겠냐고.”

“그럼요, 예, 예.”

이우연이 건성으로 받아치는 차상혁을 바라보며 한껏 인상을 구기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한재이였다.

“가사, 제가 입혀 보면 안 될까요?”

“니가?”

“네. 혹시 이미 짜 두신 게 아니라면.”

“너 작사도 할 줄 아니?”

이우연의 눈에 욕심이 일렁이는 것에 내적 백스텝을 밟으며 재이가 대답했다.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곡 들어보니까 떠오르는 게 있어서요.”

“이따 가져와 봐. 다른 팀들 합류하면 같이 검토해 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차상혁에 이우연이 두 손을 짝 하고 마주쳤다.

“그럼 시작해 볼까?”

“어째 형이 제일 신난 듯.”

“어허 시끄럽다, 차상혁!”

“그건 아니죠. 선배님.”

“왜 아니야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아뇨, 여기선 이렇게 가는 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장 팀장님 생각은 어때요?”

“흠··· 일단 은규 말대로 한 번 가 볼까요?”

‘완전 딴사람이네.’

컨트롤 데스크에 앉아 차상혁과 그에게 불려 나온 AR 1팀 장세은 팀장을 상대로 굽힘 없이 제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 심은규를 바라보며 한재이는 생각했다.

“완전 딴사람이네.”

그 옆에 나란히 앉아 홍삼 팩을 빨고 있던 이우연이 중얼거렸다.

“근데 쟨 저렇게 열일하고 있는데 넌 여기서 이렇게 빈둥대도 되겠냐?”

“빈둥대다니요. 선배님. 싸인 기다리고 있는데.”

재이는 녹음 부스 옆 의자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조금 전 작전 회의를 통해 컨펌이 난 가사가 적힌 종이를 손에 든 채였다.

“근데 대체 그런 가사는 어떻게 생각해 낸 거야?”

“어 그냥. 의식의 흐름이랄까요?”

“··· 하여간에 차상혁 저놈 주변엔 제대로 된 놈이 한 명도 없어.”

“선배님 포함이요?”

기어오르지 아주?

중얼거림과 함께 한재이의 정강이를 걷어차려던 이우연은 잽싸게 피한 한재이 덕에 헛발질만 하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 저었다.

부르르르르

‘또 오네.’

녹음 부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재이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핸드폰이 울리는 느낌에 꺼내 들었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아침에 받은 번호로 또다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망설이던 재이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어? 진짜 한재이잖아?

···이 목소리는···

“한재이!”

재이가 대답하기도 전에 저쪽에 앉아있던 심은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간다!”

핸드폰 너머로 상대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재이는 가차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

“뭐야, 한재이 주제에 지금 내 전화 씹은 거야?”

어이없다는 듯 내뱉으며 핸드폰 액정을 내려다보는 곱슬머리.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몸으로 헤쳐나가고 있는 듯한 외모의 청년이 이미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부서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는 듯 몇 마디 욕설을 중얼거린 그가 다시 핸드폰을 쥐고 열심히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한준! 얼른 안 나오고 뭐 해? ···어?”

곱슬머리의 이름을 부르며 안으로 들어서던 덩치 좋은 남자가 방 안에 켜져 있던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갸웃했다.

“준아 저거···”

준이라 불린 곱슬머리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맞아 한재이. 저 새끼 집 뛰쳐나가 뒤진 줄 알았더니 별···”

“진짜? 저거 진짜 재이 맞아? 아닌 것 같은데?”

“눈이 삐었냐. 밑에 자막 나오잖아.”

“이 새끼 근데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덩치 좋은 남자가 한준의 뒤통수를 쥐어박으며 말했다.

“저렇게 보니까 연예인 같네.”

“연예인은 무슨. 좆밥새끼가.”

“너 진짜 그 말버릇!”

그가 또다시 뒤통수를 쥐어박자 한준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만 좀 때려! 씹 내가 동네북이냐고!”

“너 이 새끼 그 입에 문 걸레부터 뱉고 좀 말해라 어?”

“형도 만만치 않거든? 누가 누구보고 뭐래, 지금?”

“이게 아주 형한테 한 마디도 안 지지, 어?”

“나이 먹은 게 뭐 그렇게 자랑스럽다고 말끝마다 형이래. 씨발 형 대접받고 싶으면 형 노릇이나 좀 하던가 어!?”

“그래 원하는 대로 형 노릇 좀 해야겠다. 건방진 새끼 네놈 그 성질머리 오늘 내가 고쳐주마.”

“퍽이나, 니 성질머리나 먼저 고치지?”

“너 지금 나한테 너라고 한 거야 어!?”

“그렇다면 어쩔건데!? 어? 어쩔건데!”

두 형제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한태이. 준이 좀 불러오라니까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서로 사이좋게 상대방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형제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 멈췄다.

“어···어머니.”

“엄마, 형이 막 소리 지르고 때렸어. 이것 봐, 여기 빨개진 거.”

조금 전까지 바짝 독이 올라 아득바득 대들던 녀석이 맞나 싶도록 살가운 목소리로 한준이 말했다.

“한태이 넌 형이 돼가지고 동생한테 이게 무슨 짓이야?”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훌쩍 더 큰 막내아들의 얼굴을 당겨 이리저리 살펴보곤 자신의 등 뒤로 세우며 어머니 최금희 여사가 말했다.

“어머니, 쟤 저거 좀 맞아야 돼요. 저렇게 커선 진짜 싹수가 노랗다고요.”

“동생 보고 그게 무슨 말이니. 혼낼 일이 있으면 말로 해도 되잖아 말로.”

“저게 말로 들을 성질머리였으면 재이가.”

최금희의 등 뒤에 서서 빙글빙글 웃으며 약을 올리고 있는 한준의 모습에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 내뱉던 한태이가 멈칫했다.

“재이가 뭐.”

“아뇨. 아닙니다.”

“한재이가 집 나간 게 내 탓이라는 거지 뭐.”

툭 내뱉은 한준의 말에 최금희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 모습을 본 한태이가 서둘러 말했다.

“내가 언제. 니 성질머리가 드러워서 주변 사람들이 다 고생한다 이거지.”

“그 말이 그 말이네. 엄마 내가 진짜 형들한테 이런 취급 받고 산다고 정말 서러워서 진짜.”

어휴 저 새끼 입을 꿰매버릴 수도 없고 진짜.

어머니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서럽다는 듯 웅얼거리는 한준의 머리통을 노려보며 한태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태이 넌 이따 나 좀 보자. 한준 너도 얼른 준비하고 나와. 아버지 밖에서 기다리신다.”

최금희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아이씨 난 왜. 난 싫어 춥다고. 여기 있으면 안 돼? 응? 엄마.”

자신에게 엉겨 붙으며 웅얼거리는 한준의 머리를 쓸어주며 최금희가 말했다.

“넷이 하면 금방 끝나니까 얼른 하고 와서 밥 먹자. 너 좋아하는 돼지고기 수육 해 줄게.”

“그냥 여기 있다가 밥만 먹으면 안 될까?”

“한준 제발 좀 그냥 나가자. 아버지 기다리신다잖아.”

안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한준을 더 보고 있기 힘들었던지 한태이가 끼어들었다.

“형은 가만히 있지? 나 지금 나가면 형한테 맞은거 아버지가 바로 알아채실 텐데?”

“와 저 인성 진짜. 폐급도 저런 폐급이 없···”

“한태이.”

최금희의 말에 태이가 하던 말을 삼키며 입을 꾹 다물었다.

“후. 저 먼저 나갑니다. 저 새끼는 어머니가 데리고 나오세요.”

제 할 말만 내뱉고는 한태이가 먼저 방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최금희는 그제서야 TV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건···”

“응 엄마. 저 새끼 혼자 살겠다고 집 뛰쳐나가더니 완전 살판난 것 같아. 엄마 속을 그렇게 썩여 놓고 양심도 없지.”

한준의 말에 최금희는 마침 TV에 비친 인물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마침 무대를 마치고 살짝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싱긋 웃고 있는 한재이가 화면 한가득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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