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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28화 (28/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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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에 개차반 한 스푼

- 야 새끼야, 좀 눈치가 있어 봐라. 이 나이 될 때까지 우리 엄빠가 먹여 살려 줬으면 너도 이제 좀 알아서 꺼져줘야 하는 거 아니냐?

- ···

- 어쭈? 눈깔 안 깔아? 니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한 대 치려고? 쳐 봐, 쳐 보라고? 왜, 막상 자리 깔아 주니까 겁나냐? 내가 너한테 얻어맞으면 이번엔 진짜로 엄빠가 너 쫓아낼까 봐?

- 그런···. 그런 거 아니야.

- 아니긴 뭘 아니야, 새끼야. 들이받을 용기도 없고 제 발로 뛰쳐나갈 염치도 없고. 대체 너한테 있는 게 뭐냐? 응?

- ···

- 어휴 답답한 새끼.

.

.

.

‘거지 같은 꿈이었어.’

재이는 차가운 물로 세수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준 그 새끼가 왜 꿈에까지 기어 나와. 오늘 대체 얼마나 운수가 더러우려고.’

한준.

자신과 동갑이지만 생일로 따지면 자신보다 동생이 되는 길막리 과수원집 오 형제 중 막내였다. 큰 형과 자신들이 거의 띠동갑이니 부모님이 애지중지하는 것도 이해되는 막둥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랑만으로 보듬고 키우면 인간의 인성이 얼마나 파탄 날 수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폐급 인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 새끼 피해서 도망 나왔더니 왜 남의 꿈까지 쫓아와서는.’

한준과는 앙숙이었다.

아니, 재이에게 한준은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애초에 거두어 기른 자식과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출발선이 같을래야 같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위로 이미 형이 셋이나 있는 집안이었다. 엄동설한에 집 앞에 버려진 아이를 보호기관에 보내지 않고 보듬어 키운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인격자라고, 재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 보살 같은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것이 저런 폐급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제 발로 뛰쳐 나왔다고는 해도 심약한 한재이 녀석이 그 고생을 하면서도 본가와는 일절 연락하지 않았던 걸 보면 싫긴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라고, 지금의 재이는 생각했다.

‘굳이 만날 필요 없지.’

재이는 지금이 딱 좋았다.

원래의 한재이를 아는 사람이 많아봤자 달라진 성격 탓에 의심만 받을 게 뻔했다. 그간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야 나중에 성공해서 따로 갚으면 될 일이었다.

재이는 작업하느라 그 후로 계속 꺼 뒀던 핸드폰의 전원을 켜며 생각을 정리했다.

“···헐.”

핸드폰을 켠 재이는 그러나, 조금 전 자신의 생각이 결국 일방적인 바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폭탄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 한재이 출세했네ㅋ

- 야 주제에 TV에 얼굴 좀 나왔다고 씹냐?

- 미친 그래 봐야 듣보주제에

- 너 내가 인터넷 등판하면 바로 나가리야 ㅇㅋ?

- 좋은 말로 할 때 전화 받아라?

- 얼굴 좀 안 봤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냐?

- 죽고 싶냐 빨리 전화 받아라?

- 야 한재이 이 씹새끼

-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새끼

- 전화 받아 씹새야

- 야

.

.

.

“와, 할 일 더럽게 없었나 보네.”

한준에게서 온 문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본 재이가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왜 뭔데?”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마친 심은규가 계단을 내려오던 재이에게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얼버무리자 은규가 고개를 갸웃하곤 이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아아, 진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그러게 너 눈 밑에 다크써클 그거 커버 안 될 것 같은데 어쩌냐.”

“으악 진짜? 아 씨 안 되는데!?”

은규가 후다닥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이리저리 들여다보다가 재이의 얼굴을 훑고는 투덜댔다.

“아니 고생은 같이했는데 넌 멀쩡하고 왜 나만 다크써클이냐고.”

“좋잖아. 고생한 티도 나고.”

“아니거든. 이러고 카메라에 잡히면 분명 굴욕짤로 박제될 거야.”

“자신감 충만하네. 누가 니 얼굴을 박제한다고.”

“왜 이래 이래 봬도 내 지분도 좀 있거든?”

“어 그래. 안심해라. 너 지금 얼굴 보니 그 지분 오늘로 다 떨어져 나갈 듯.”

“하아. 왠지 너 때문에 다크써클 더 커지는 느낌이야.”

은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문 앞에 대기 중이던 석관의 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4차 경연의 녹화일이었다. 숙소에서 출퇴근하던 다른 녀석들과 달리 차상혁의 개인 별장에 내려와 있던 재이와 은규는 새벽부터 픽업하러 온 매니저 석관의 차를 타고 스튜디오로 향하기로 되어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석관이 룸미러로 뒤를 흘끗 바라보며 두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형 안녕하세요. 일찍 내려오시느라 힘드셨겠어요.”

“진짜, 극한직업 끝판왕.”

“우리가 출세해야 석관이 형도 팔자 좀 펼 텐데.”

“일단 우리 팔자부터 고치고 생각해 보자.”

두 녀석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며 석관이 웃었다. 담당 연예인을 실어 나르는 것은 매니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업무 중 하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감사의 말이 듣기 싫을 리 없었다. 두 사람이 차에 타고 안전벨트까지 맨 것을 꼼꼼하게 확인한 석관이 부드럽게 핸들을 돌려 차를 출발시키며 물었다.

“상혁이한테 인사는 하고 나왔니?”

“인사하러 갔는데 자야 된다고 건들지 말라고.”

“말 대신 쿠션으로 인사하심요.”

석관이 알 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럽다. 촬영일 아침에 늦잠 자는 여유.”

“애초에 오늘 무대 뛸 필요가 없는 갑 님의 여유인 거지.”

“우리도 얼른 출세해서 평가단 석에 앉아서 입맛대로 골라보자고.”

“일단 우리가 오늘 상혁이 형 입맛에 맞아야 할 텐데.”

“아 왠지 자신 없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탈탈 털어대실 줄이야.”

머리를 쥐어 싸매며 중얼거리는 은규의 말에 두 녀석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석관이 말했다.

“왜, 제대로 안 됐어?”

숙소에서 출퇴근하는 녀석들을 관리하느라 별장팀과는 오늘 처음 얼굴을 맞대는 석관의 물음에 재이가 웃으며 말했다.

“소심은규가 어디 갑니까. 저건 그냥 디폴트예요. 놔두세요, 형.”

“아 씨, 진짜 아니라니까. 상혁 선배님 표정이 진짜 완전 썩었었다고. 아까 쿠션도 나한테만 세게 던지셨던 것 같···”

은규의 주절거림에 재이가 석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세요, 저건 병이라니까요. 못 고쳐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재이의 말에 석관이 푸흐흐 웃으며 핸들을 돌렸다.

차창을 스쳐 지나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재이는 실내가 조용하다는 생각에 힐끗 옆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머리를 쥐어 싸매며 망했다느니 시간이 부족했다느니 중얼거리고 있던 은규가 어느샌가 고개를 모로 꺾고 잠들어 있었다. 입까지 반쯤 벌리고 곯아떨어진 것이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좌석 앞에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에 시선을 맞추며 쟤 좀 보라는 듯 손짓을 하던 재이는 문득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하는 느낌에 얼굴을 찌푸렸다. 석관이 운전하고 있는 차에 타고 있는 이상, 걸려 온 전화의 주인공이 누구일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무시할까.’

귀찮았다.

예전의 재이였다면 무서워서 못 받을 전화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재이는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가뜩이나 요 며칠 녹음이다 연습이다 빡셌던 탓에 피곤한데 그 새끼의 땍땍거림을 듣고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잠시 끊겼던 전화가 또 울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받을 때까지 계속 걸 모양이었다.

‘아 진짜 더럽게 귀찮게 구네.’

속으로 중얼거리며 재이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재이 니가 언제까지 안 받나 어디 보자.”

한준은 통화연결음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TV에서 한재이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본격적으로 추워지기 전 비닐하우스를 정비하느라 분주한 부모님과 셋째 형이 집을 비운 사이, 거실에 드러누워 심드렁하게 리모컨으로 채널을 뒤적이던 한준은 몇 년 전 연예인이 되겠다며 집을 뛰쳐나간 자신의 동갑내기 형 한재이를 발견했다. 평생 자신의 똘마니나 다름없던 찐따 새끼가 세련된 옷을 입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TV로 보는 건, 정말이지.

좆같았다.

한재이가 진짜 연예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곤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야 얼굴은 반반한 편이었지만 그 새끼는 그게 다였다. 그 소심하고 찌질한 성격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될 리가 없었다. 꼴에 고집은 또 쇠심줄이라 제 발로 다시 기어들어 오지는 않을 테니 돈 떨어지면 길거리나 전전하다가 뒈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랬는데.

화면에 비친 녀석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 앞에서도 주눅 드는 법 없이 당당하게 제 할 말 다 하면서 자신 있게 웃는 모습은 한준이 기억하는 한재이가 아니었다. 저 곰 같이 둔한 한태이가 긴가민가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화가 났다.

누군 흙먼지 속에서 뒹굴면서 과수원에 비료나 퍼 나르고 있는데 누구는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유명한 사람들에게 우쭈쭈 받으면서 태평하게 살고 있다니.

그 길로 소속사라고 하는 곳에 전화를 걸어 가족인데 연락처 좀 알려달라고 사정을 했다. 뭐 그 덕분에 구구절절 어렸을 적 스토리 있는 거 없는 거 다 쥐어짜 내서 진짜 가족임을 증명해야 했지만. 결과적으론 번호 따 내는 데 성공했으니 그깟 거 수고로울 것도 없었다. 직접 목소리도 들었겠다, 이건 한재이 그 새끼 번호가 맞았다.

“새끼, 넌 죽었어.”

한준은 몇 번째일지 모를 통화 버튼을 누르며 중얼거렸다.

Trrrr···

- 왜.

당연히 이번에도 타임아웃으로 강제 종료될 줄 알았던 통화 연결음이 끊기며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이씨발 한재이!”

- 시끄러워. 조용히 말해.

기세 좋게 소리친 한준과 달리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끼 TV에 몇 번 나왔다고 어깨에 힘 들어갔냐? 목소리 봐라? 건방지게.”

- 짧게. 용건만.

허.

뭐야 이 새끼. 진짜 한재이 맞아?

한준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이를 갈 듯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좀 안 보고 살았다고 살판났지 아주? 건방지게 어디서 기어올라? 죽고 싶냐?”

- 할 말이 그것뿐이면 끊고.

예전의 한재이 같으면 이쯤이면 이미 울상이 되어 미안하다고 벌벌 떨었을 터였다. 이 멍청한 자식이 나가서 살더니 같이 살 때 어땠는지 다 까먹은 게 분명했다. 이래서 머리 나쁜 새끼들은 안 되는 거였다. 한준은 잠시 숨을 고르곤 재차 입을 열었다.

“이 대가리에 똥만 찬 새끼가 꼴랑 2년 안 봤다고 건방이 하늘을 찌···”

뚝.

······하?

그동안 벼르고 별러 왔던 욕 퍼레이드를 들려주려고 슬슬 시동을 걸고 있던 한준이 순간 멈칫했다.

“이···이 새끼가 지금 내 전화를 말도 없이 끊었어?”

머리끝까지 열이 뻗쳐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신경질적으로 통화 버튼을 연타하자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

“으아악 한재이 이 개새끼!!!”

와장창

냅다 집어 던진 핸드폰이 벽에 부딪치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악!!! 내 폰!!!!”

뒤늦게 후다닥 뛰어가 주워들고 살펴보니 액정에 시원하게 금이 가 있었다.

아아···. 이거 아직 할부 끝나려면 한참 멀었는데.

“이··· 씨발··· 한재이!! 개새끼 가만 안 둬!!!!”

한준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집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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