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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탈락인가
- 으아아아 그게 아니라니까!!!
엠케이의 목소리였다.
뒤이어 흘러나온 영상에선 한참 춤 연습을 하던 엠케이가 차인혁을 휙 돌아보며 뭐라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그 뒤로는 남궁찬과 옥신각신하더니 혼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는 장면이 차례차례 흘러나왔다.
“쟤 또 터졌냐.”
“가만 보면 엠케이 성질이 이환보다 더 더러운 듯.”
“아니 엄한 나는 왜 거기 갖다 붙여?!”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이와 은규의 말에 이환이 버럭댔다.
“저렇게 다시 보니까 엠케이가 진짜 유리멘탈인 듯.”
“받고 엠케이의 M은 마운팅의 M이 분명함.”
같은 팀으로 엠케이의 신경질을 받아줘야 했던 남궁찬과 차인혁이 수군거렸다.
“아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다 잘하려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거지. 내가 뭐.”
기가 죽은 엠케이의 어깨가 축 처졌다.
[엠케이가 꽤 날이 서 있던데.]
인터뷰 자막과 함께 차인혁과 남궁찬이 화면의 좌우에 등장했다.
- 걔가 좀 완벽주의자라 그래요.
- 걔가 좀 완벽주의자라.
TV 화면을 통해 두 사람이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내뱉는 말이 들려오자 물먹은 솜처럼 축 쳐져 있던 엠케이의 등이 움찔했다.
[완벽주의자랑 같이 작업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 걔도 저랑 하기 힘들었을걸요
- 걔도 저 받아주기 힘들었을 거예요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 개별 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뭐야 저건. 신종 개인기냐.”
“개인기치곤 좀 하찮은데?”
“텔레파시라니. 올드하네.”
재이와 이환, 은규가 주거니 받거니 했다.
“왜 나는 좋은데. 역시 호흡하면 우리 A팀이지.”
금세 살아난 엠케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하자 곧바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와 갈라치기 오지네.”
“저분 이미 데뷔하신 듯.”
“나도 A팀인데? 아까부터 왜 나만 쏙 빼냐고.”
세 사람의 야유에 엠케이가 머쓱하게 웃었다.
화면에선 개인 인터뷰가 진행 중이었다.
[엠케이와 차인혁 고집 센 두 사람 사이에서 고생스럽지 않았나요?]
참고 영상으로 엠케이와 차인혁이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 일촉즉발의 분위기로 서로를 매섭게 노려보는 모습들이 지나갔다.
남궁찬이 말했다.
- 그닥요? 둘 다 자기주장이 강해서 그렇지 사실 다루기 어려운 녀석들은 아니거든요.
[의외인데요?]
이어진 자막에 남궁찬이 웃으며 말했다.
- 당장에라도 싸울 듯 으르렁대다가도 밥 먹을 시간 되면 다 까먹는 단순 종자들이거든요. 저러니까 맨날 한재이한테 휘둘리지 싶고요.
[본인은 아닌 듯 말하네요?]
- 아 저는 그냥 재이가 해 준 밥이 진짜 맛있어서···
참가자 중 최장신에 속하는 덩치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얼버무렸다.
“후려치기 대박.”
“곰궁찬이 정치질에 소질이 있었다니.”
차인혁과 엠케이에게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근데 저 와중에도 한재이에게 아부를 잊지 않는 거 좀 대단하지 않냐?”
이환이 끼어들었다.
“다른 놈 인심 다 잃어도 밥을 잃을 순 없다는 거지.”
“보기보다 머리 좋네, 남궁찬.”
은규와 이환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어느새 무대는 종반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세 사람과 작업 해 본 소감은?]
교차편집으로 이어진 개인 인터뷰에 멘토를 맡았던 비제이가 입을 열었다.
- 재밌었어요. 셋 다 제각각 개성이 뚜렷해서. 다들 춤과 랩 모두 기본기가 탄탄해서 무대 구상할 때 부담도 없었고요.
[너무 무난한 코멘트 같은데요?]
예리한 질문에 비제이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 사실 셋 다 완성형에 가까워서. 여기서 뭘 더 가르치기보단 데뷔해서 직접 부딪치면서 익혀나가야 하는 것 밖에 남질 않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남은 것은 데뷔뿐!]
강력한 자막에 은규와 이환이 감탄을 터뜨렸다.
“오오. 비제이 선배님이 데뷔 인정!!”
“완성형이래. 와 코멘트 개부럽.”
그러나 정작 당사자 셋은 어딘지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분명 우리한텐 이런 식으로 해서 데뷔하겠냐고 하시지 않았냐?”
“나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니네들이 진짜 A팀 맞냐고 하향평준 쩐다고도 하셨는데.”
“능력도 없으면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재주라고 하시는 거 듣고 나 그날 좀 울었잖아.”
수군대는 녀석들의 심정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연습에 한창인 세 사람을 다그치는 비제이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말씀하고 실제가 왠지 좀 다른 것 같은데···]
- 아하하··· 제가 좀. 칭찬만 해 주면 아무래도 루즈해 지기 쉬우니까.
말하자면 사랑의 매? 뭐 그런 거죠.
인터뷰 자막과 함께 제공된 참고 영상을 본 비제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렇게 깊은 뜻이.”
“사랑의 매 맞다가 기권할 뻔.”
“그래도 다행이야. 진심이 아니라 시니.”
“진심이 아니란 말씀은 안 하신 것 같은데.”
“시끄럽다 한재이. 남의 행복회로에 재 뿌리는 거 아니야.”
티격태격하는 사이 마지막 이환의 차례가 되었다.
중간 광고가 시작되자 긴장이 풀어진 것인지 아이들이 하나둘 드러눕거나 어수선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프로그램 안 끝났거든?”
이환의 말에 마침 일어서려던 남궁찬이 돌아보며 말했다.
“난 다 봤으니 이제 들어가서 쉬려고.”
“야 이 치사한.”
“놔둬라 끝까지 봐서 뭐 좋다고.”
엠케이의 말에 이환이 뭐라 받아치려다 멈칫했다.
“이환이야 걱정하지 마라. 네 것도 다 같이 봐 줄게. 어휴 우리 이환이 친구들이 네 것만 안 봐 줄까 봐 불안 해쩌여? 그래쪄여?”
우쭈쭈 하면서 얼굴을 들이대며 묻는 엠케이에 이환이 버럭 소리 질렀다.
“악 저리 꺼져. 누가 그래? 그런 거 아니거든?”
“어휴 시끄러워. 정신 사나우니까 좀 앉던지.”
“아 뭐야 지금 나 경계하냐 한재이?”
자신을 돌아보며 묻는 이환을 힐끗 올려다보며 재이가 말했다.
“뭐래. 너도 뚱보 자의식이냐? 넌 차인혁 옆에 가서 앉으면 될 듯.”
“왜 가만히 있는 나한테 시비야?”
차인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시비 아닌데? 그냥 분리중인데.”
“저게 진짜.”
“지금 누굴 보고 쓰레기 취급이야.”
차인혁과 이환이 차례차례 주변에 있던 쿠션을 재이에게 던졌다. 얄밉게도 소파에 앉은 채 요리조리 몸을 틀어 그것들을 다 피한 재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어? 너 무대 시작하는데 안 보냐?”
“어휴 저것 때문에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이게 딱히 죽고 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이쯤에서 기권하쉴?”
“야이ㅆ···누가 쟤 입 좀 막아 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TV를 향해 고쳐앉는 이환을 바라보던 재이는 그 사이에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버린 누군가의 빈자리를 보며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이환의 무대는 에이미와의 듀엣이었다.
무대 한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홀로 서 있던 이환이 노래를 시작하자 무대 뒤쪽에서 청량한 목소리와 함께 에이미가 등장했다.
- 와 저건 반칙 아닌가.
평가단 석에 앉아있던 비제이가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 앉은 다른 심사위원들도 흥미롭다는 듯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무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반칙은 저게 진짜 반칙이지.”
엠케이의 말에 이환이 움찔했다.
“그러게. 이우연 선배님이 그거 좀 도와주셨다고 반칙 운운하던 분 어디 가셨지? 저건 아예 대놓고 선 넘었는데.”
“아니 너희는 다들 둘 아니면 셋인데 나만 혼자잖아. 오히려 이게 공평한 거 아님?”
“와 저거 뻔뻔한 거 보소. 인간이 말을 어떻게 저렇게 얄밉게 하지?”
“저것도 진짜 능력이야.”
“프로그램 간판 밉상 이환.”
“이상한 캐치 프레이즈 만들지 마!”
아이들의 원성에 이환이 버럭거리며 반박하는 사이 개인 인터뷰 영상이 오버랩됐다.
[반칙이라는 소리 나올 것 같은데요.]
- 발상의 차이죠. 딱히 멘토는 무대에 직접 참여할 수 없다는 룰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에이미가 턱을 치켜들며 웃곤 이어 말했다.
- 그리고 사실. 보고만 있는 거 성격에 안 맞아서요.
도도하면서도 얄밉지 않은 미소였다. 그 웃음 위로 무대 위에서 이환과 주거니 받거니 파트를 바꿔가며 여유롭게 노래하는 에이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듀엣을 제안받았을 때의 심정은?]
- 기쁨 반 불안함 반이었죠. 선배님이 먼저 제안 해 주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요. 그만큼 잘해 낼 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했죠.
선배님한테 묻혀버릴까 봐.
이환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그러나 무대는 이환의 염려와는 달리 순조롭게 흘러갔다. 에이미가 등장하면서 일순 그녀에게 쏠렸던 시선은 곡이 진행되면서 점차 다시 메인 보컬인 이환에게 돌아왔다. 에이미의 노련한 백업 덕분이기도 했지만 의외로 이환 또한 그녀의 풍부한 보이스에 묻히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성량부자 에이미 앞에서도 꿋꿋한 이환]
“저 자막도 반칙.”
“왠지 이번 경연 이환 몰아주기가 좀 심한 듯.”
심은규의 투덜거림에 엠케이가 맞장구쳤다.
“원조 A팀 자막 버프 받으신 분이 할 말은 아닌 듯.”
“꼬우면 너도 A팀에 들지 그랬니.”
“난 퇴출 1호였던지라.”
“야잇, 그게 더 임팩트는 세잖아!”
“부러우면 바꿀래?”
“어 아니 그건 좀.”
재이의 냉소적인 대꾸에 엠케이가 목을 움츠렸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무대가 모두 끝나고 드디어 결과 발표의 순간이 다가왔다.
이미 알고 있는 결과였지만 온에어로 이렇게 다시 보니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팀별로 이루어진 4차 경연은 팀 등수에 따라 점수가 차등 지급되었다. 거기에 개인 영상을 업로드해서 얻은 조회 수와 좋아요. 회수로 획득한 추가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누적 점수가 계산되었다.
[스텝 업 스코어 집계 결과]
1위 한재이 22,000 점
2위 차인혁 19,400 점
3위 이환 18,850 점
4위 엠케이 18,800 점
5위 심은규 18,750 점
6위 남궁찬 14,350 점
평균 18,692점
“와 리얼 한재이 때문에 폭망함.”
“재재님의 카리스마를 따라갈 수가 있어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용이나 좀 잡을걸.”
아이들이 투덜거렸다.
“사실 경연 스코어만으로 따지면 저 정도는 아닌데.”
이번 4차 경연결과만 보면 재이와 은규의 팀이 1위, 이환이 2위, 나머지가 3위였으니 지난번 집계에서 재이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던 은규로서는 억울할 노릇이긴 했다.
“아이디어 승부에서 밀린 걸 누구 탓을 하겠어.”
“차인혁 여유 보소.”
“어쨌거나 자기는 안정권이라 이거지.”
“밀린 게 분하지도 않은가봐.”
“어차피 저거 이제 다 의미도 없는데 뭐.”
차인혁의 말에 아이들이 일제히 입을 닫았다. 소파 한쪽 제 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재이도 굳게 닫힌 방문을 힐끔 쳐다보곤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궁찬 이대로 탈락하는가!?]
붉은색의 불길한 자막이 지나가며 무대 위에 선 남궁찬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항상 사람 좋게 웃고 있던 녀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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