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34화 (3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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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파티라면

[남궁찬 이대로 탈락하는가!?]

남궁찬의 얼굴을 시작으로 카메라가 무대 위에 선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었다. 여섯 명 체제를 한동안 유지했던 탓인지 각자 조금씩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생겨나고 있던 차였다. 그중 한 명이 탈락의 위기를 맞았다는 사실은 이미 예고되어 있던 일이라고 해도 좋은 기분일 수가 없었다.

- 잠시 심사위원 회의가 있겠습니다.

스태프의 목소리와 함께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평가단 석에 스포트라이트가 들어왔다.

“저 때 진짜 쫄리더라.”

“그러게 그냥 무대연출이라는 거 알면서도 어찌나 떨리던지.”

엠케이와 심은규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중얼거렸다.

“마이크나 좀 끄고 하지 음성은 또 들어와 있어서.”

“그러니까. 노림수인 거 알면서도 완전 말려들었다니까.”

심은규의 말처럼 어둑한 무대 위에 석고상처럼 선 채 숨죽이고 심사위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녀석들의 얼굴이 누구랄 것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자타공인 강심장인 재이조차 정면을 응시한 채 미동도 없이 조용히 서 있었다.

[지금 남은 멤버 중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탈락하게 된다면?]

화면이 바뀌며 인터뷰 자막이 올라왔다.

- 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아요. 매일같이 티격태격하기는 해도 그동안 정도 많이 들어서.

시무룩하게 쳐진 팔자 눈썹으로 심은규가 말했다.

- 안타깝지만 솔직히 그게 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안도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되게 나쁜 놈 같이 들리는데. 음. 사실이 그런걸요. 결국, 경쟁이잖아요.

얄미울 만큼 솔직한 말을 내뱉는 이환.

-아이씨. 눈물 날 것 같으니까 이런 거 안 하면 안 돼요?

상상만으로도 울컥했는지 엠케이가 빨개진 눈가를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 아쉽겠죠.

[···이걸로 끝?] 이라는 제작진의 자막이 달릴 정도로 간결한 코멘트만 내뱉고 차인혁은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 음··· 패자부활전 같은 건 없나요? 가위바위보도 삼 세 판이 국룰인 나라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되묻는 한재이가 있었다.

“와 한재이 혼자 좋은 사람인 척.”

“이환 너는 덕분에 인성 다 까인 듯.”

“내가 뭘. 사실 솔직히 말해서 너희들도 다 똑같은 생각이잖아.”

서로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한 느낌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녀석들이 다시 투닥대기 시작했다. 소파 한쪽 제 자리에서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던 재이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을 힐끗 쳐다본 인혁이 말했다.

“의외야 한재이. 이환이랑 비슷한 코멘트일 줄 알았더니.”

매일같이 자업자득이니 각자도생이니 하는 말들을 내뱉는 한재이의 입에서 패자부활전을 해서라도 한 번 더 살려 보는 건 어떠냐는 말이 나온 것이 꽤 의외였던 듯했다.

“왜? 감동했냐?”

“설마. 또 무슨 생각인 건가 싶어서.”

“딱히.”

“딱히 뭐?”

재촉하듯 묻는 인혁의 말에 재이가 귀찮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딱히 별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그냥 내가 회사 입장이면 이대로 버리긴 아까울 것 같아서.”

어느샌가 투닥대던 녀석들까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재이가 이어 말했다.

“그렇잖아. 아무리 우리가 아직 데뷔도 확정되지 않은 연습생 신분이라고는 해도 회사 입장에서 보면 아깝지 않겠냐는 말이야.

백번 양보해서 그냥 연습생 노릇 하다가 데뷔가 밀렸다면야 다음 기회를 노릴 수도 있다지만 이렇게 전면적으로 얼굴 다 팔리고 프로그램 막바지에 밀려나 버리면 솔직히 회사에 붙어 있고 싶겠냐고.”

“하긴. 여기서 떨어지면 화제 몰이용으로 써먹기 위해서건 어쨌건 다른 회사에서도 컨택 정도는 올 수도 있으니까.”

은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 그러니 회사 입장에서도 여기까지 키워 놓은 걸 남한테 빼앗기는 상황이 오는 건 별로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거네?”

눈치 빠른 엠케이가 받아쳤다.

다음 순간 이환을 포함한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재이에게로 쏠렸다.

“소오름.”

“역시 흑막 보스 한재이”

“쟤 사실 대표님 AI 아님?”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쑥덕대는 녀석들을 한 눈으로 흘기며 재이는 생각에 잠겼다.

게다가.

‘혼자 하고 싶었으면 벌써 다른 길 알아봤겠지.’

프로그램 때문이라고는 해도 저쪽 동네에서 갑자기 튕겨져 온 이후 처음으로 줄곧 같이 살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입이 찢어져도 밖으로 내뱉진 않을 말이었지만 솔직히 웬만해선 같이 가고 싶었다.

‘원래 용사란 동료를 저버리지 않는 법이거든.’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제 팔뚝을 벅벅 긁었다.

리온이었던 시절, 그는 기본적으로 혈혈단신이었다. 아니 딱히 행동을 같이하겠다던 사람들을 처음부터 제 쪽에서 피해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역사서나 전설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자신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파티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냉혹한 법.

그대의 당당한 오른팔이 되겠노라고 처음 얼굴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선언하던 왕국 기사단 출신의 기사는 지금 멀쩡한 사람을 팔 병신 만들겠다는 소리냐는 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걷어차 주었다. 허언증은 딱 질색이었다.

너와 내가 힘을 합치면 세계 정복도 가능하다고 자신과 손을 잡자고 시끄럽게 굴며 쫓아다니던 대마법사에겐 세계를 정복하곤 그 뒤로 뭘 할 건지 물었다.

순간 머뭇거리는 눈빛 너머로 세계 정복의 깃발을 꽂자마자 등 뒤로 파이어 볼을 얻어맞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꺼지라고 발길질을 해 주었다. 뒤통수는 치라고 있는 것이지 맞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웅의 서사를 노래하고 싶다던 음유시인도, 종자로 부려달라던 견습기사도, 위기에 처한 왕국을 구해달라던 왕실 사람들도. 틈만 나면 빨대 꽂을 생각에 무임승차할 기회만 엿보는 것들 천지였다.

용사의 다른 이름은 호구라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자신이 남다른 능력을 타고난 것은 원했던 바도 아니었거니와 그것을 빌미로 일생을 남에게 호구 잡히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멋 모르는 시절 비슷한 일을 몇 번 당하고 나니 파티에 대한 환상 따위 개나 줘라는 심정이었다. 대가 없는 헌신만큼이나 병신 짓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야.’

저쪽 동네에서 겪었던 일들을 잠시 떠올리던 재이가 소파 앞 마룻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투닥대고 있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무해하지.’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이곳에서의 자신은 괴물 같은 능력으로 파티 같은 것 없어도 몰아치는 적들을 씹어먹어 버리는 일기당천의 용사가 아니었다. 가진 거라곤 좀 잘난 피지컬에 덜 다듬어진 능력밖에 없는, 집 나온 미성년자에 불과했다.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라고 해 봐야 이번엔 저 자식이 내 밑 좀 깔아줬으면 좋겠다. 정도에 불과한 녀석들과의 거리감은 사실 꽤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번엔.’

재이는 이제껏 환상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해 짧게 웃었다.

- 심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진행을 맡은 장 이사의 목소리에 재이는 상념에서 깨어나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스튜디오 안.

장 이사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 남궁찬 씨

- 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생각이 많았는지 깊게 잠긴 목소리로 남궁찬이 대답했다. 그런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장 이사가 입을 열었다.

- 여기서 탈락하면 어떻게 할 건가요?

- ···어.

카메라가 집요하게 남궁찬을 클로즈업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한 답이 쉽게 나올 리 없는 질문에 남궁찬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저건 아니지.”

“진짜 저건 아무리 대본에 있었다고 해도 정말.”

“진심 골이 다 띵 하더라고.”

“어후 난 지금도 속이 막 울렁거려.”

아이들이 차례차례 투덜거렸다.

- 지. 집에 가야죠.

남궁찬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장 이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 이거 떨어진다고 인생 끝나는 거 아니잖아요?

“저것도 진짜. 이사님 아니라 내 친구였으면 어휴···”

포지션이 겹치는 만큼 다른 녀석들보다 남궁찬과 친하기도 한 엠케이가 중얼거렸다.

“자체 편집 기특하다 엠케이”

“진짜 근데 저런 장면 꼭 필요한 거야?”

“원래 고구마가 있어야 사이다가 시원한 법이잖아.”

“근데 우린 왜 맨날 고구마만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지?”

은규의 말에 엠케이가 천장에 고정된 카메라를 돌아보며 소리 질렀다.

“대표님 이사님 피디님 제발 사이다 좀 주세요. 데뷔 사이다. 데뷔 사이다로 샤워하고 싶어요.”

“얘 피곤한가보다 누가 좀 재워라.”

“뒤통수 좀 세게 쳐봐. 죽지 않을 만큼만.”

엠케이의 주접을 더 이상 못 들어 주겠다는 듯 이환과 은규가 고개를 저으며 차례로 중얼거렸다.

- 그렇게 죽을상 짓지 말란 얘기예요. 무대에 오른 이상 어떤 순간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프로다운 겁니다.

장 이사의 말에 남궁찬이 자세를 바로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이제 진짜로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이 스튜디오를 채웠다.

- ···심사위원단 회의 결과 남궁찬 씨를 조건부 잔류시키기로 했습니다.

- 이얏호!!!

- 아하하아아···.

제 일처럼 기뻐하며 어깨를 퍽퍽 쳐 대는 엠케이의 손길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남궁찬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빠진 소리를 냈다.

- 잠깐. 아직 좋아하긴 이릅니다.

장 이사가 다시 긴장의 끈을 조였다. 남궁찬을 둘러싸고 어깨를 툭툭 치며 제 일처럼 좋아하고 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다시금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 앞서 말했듯 남궁찬 씨의 잔류는 어디까지나 조건부입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단이 정한 조건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타사 데뷔 조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라!]

화면에 굵은 자막이 날아와 박혔다.

- ···타사 데뷔 조라고 하시면···

조심스럽게 묻는 차인혁의 말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문선일 대표가 장 이사 대신 마이크를 집어 들고 입을 열었다.

- 파이널 경연은 태영기획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진행됩니다. 태영기획 차기 데뷔 조와의 경연을 통해 방청객의 득표수로 남궁찬 씨의 잔류를 판단할 예정입니다. 물론 스텝 업 팀의 득표수가 높으면 잔류, 낮으면 방출입니다.

- 여러분이 한 팀으로서 얼만큼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기대하겠습니다.

문 대표의 말에 무대 위에 선 아이들의 얼굴이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태영기획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로 시작해서 실력파 가수들을 거쳐 몇 년 전부턴 아이돌 분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업계에선 잘 알려진 저력 있는 회사였다. 담당 연예인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덕에 연습생에게도 꽤 여러 가지 레슨이나 여타 기회가 돌아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연습생들 사이에서도 탑티어로 분류되는 기획사이기도 했다.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던 파이널 경연의 내용을 처음으로 들은 아이들의 놀란 얼굴이 차례차례 클로즈업되면서 경연의 자세한 개요를 설명하는 화면이 오버랩됐다.

[파이널 경연: 남궁찬을 살려라!]

아이돌 데뷔를 위한 황금티켓이라 불리는 태영기획의 데뷔 조와의 정면 승부! 방청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팀은?

차기 가요계를 뒤흔들 진정한 데뷔 조를 가릴 승부가 여기서 시작된다!

“···아 나 왠지 위가 아픈 것 같아.”

“딱히 저걸 저렇게 거창하게 때려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어떡해 나 벌써 손에 땀 나···”

TV를 보고 있던 녀석들이 차례차례 중얼거렸다.

프로그램은 차인혁, 엠케이, 이환, 한재이, 심은규 그리고 남궁찬의 얼굴 아래로 태영기획 데뷔 조의 얼굴이 공개되며 끝이 났다.

“우리 괜찮을까.”

심은규의 중얼거림이 조용한 실내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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