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35화 (3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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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 기획 데뷔조와의 대면

“우리 괜찮을까?”

“안 괜찮을 건 뭐 있어? 어차피 그쪽이나 우리나 아직 데뷔도 못 한 연습생들이긴 마찬가지인데.”

은규의 자신 없는 중얼거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엠케이가 받아쳤다.

“태영기획이 괜히 갓영기획이냐···”

“하긴 그건 그래.”

연습생들 사이에서 흔히 탑티어로 분류되는 대형 기획사의 갑작스러운 참전 소식에 녀석들이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소파 한쪽에 앉아 그런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던 인혁이 입을 열었다.

“니들은 데뷔만 하면 그걸로 끝인가보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렇잖아. 아직 데뷔도 안 한 다른 회사 연습생이랑 붙는 게 뭐 대수라고. 데뷔하면 선배고 후배고 다 씹어먹을 각오를 해도 모자랄 판에.”

“웬일로 차인혁이 맞말하네.”

인혁의 말에 드물게 재이가 맞장구쳤다.

그 말에 엠케이가 축 처졌던 어깨에 힘을 빡 주며 외쳤다.

“하긴. 여기서 그쪽 녀석들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 데뷔하고도 편하게 가지! 안 그래 이환?”

“그 그렇긴 하지. 잘 풀리면 어차피 이 바닥에서 마주칠 텐데.”

이환이 얼결에 대답했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차인혁 말대로 싸그리 씹어먹어 주는 거야!”

“그쪽 팬까지 싹 다 끌어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야 남궁찬! 이리 나와봐! 너 지금 그렇게 궁상떨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우다다 뛰어간 엠케이가 방문을 벌컥 열고 안에 있던 남궁찬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고 나왔다.

“이번만 잘 넘기면 데뷔가 코앞이라고!”

“이쯤 되면 남궁찬 니가 떨어지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다 된 내 밥에 코 빠뜨릴 순 없다!”

녀석들의 눈이 번뜩였다.

방 안에만 있다가 얼결에 끌려 나온 남궁찬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다 소파에 앉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재이와 인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얘네 왜 이래?”

남궁찬의 말에 재이와 인혁이 거의 동시에 내뱉었다.

“저 녀석들 지금 바짝 쫄았거든.”

“부릴 수 있는 최대한의 객기인 거지.”

그 말에 세 쌍의 눈이 화륵 불타올랐다.

“저 자식들은 진짜 적인지 아군인지!”

“죽여 일단 죽이고 시작하자!”

“그래 내가 이날만을 기다렸다!”

와르르 덤벼드는 녀석들을 발로 밀쳐내던 재이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아 씨 그만 안 해? 나한테 붙는 놈들 내일 밥 없다!”

“와 한재이 개치사해!”

짜기라도 한 듯 타겟을 바꿔 우르르 자신에게로 몰려드는 아이들을 밀치며 차인혁이 비명을 질렀다.

***

“···씹어먹으려다 이빨 다 털릴 것 같은데.”

나직이 중얼거린 엠케이의 말에 옆에 앉은 은규가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TVM 사내 스튜디오

상견례 겸 제작 회의를 위해 출연진과 스태프들의 합동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스텝 업 멤버 여섯과 이번 경연에 참여하게 된 태영기획 데뷔 조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 저 사람 알 것 같아. 그거잖아. [이리 와요 천사들]에 나온 재민이.”

몇 년 전 메가 히트 친 드라마의 아역으로 인기몰이했던 인물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본 이환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옆에도 낯익은데? 어디서 봤지?”

“C-side 크루 사픽 아니야? 헐. 대박.”

남궁찬과 엠케이가 유명 크루 소속 비보이를 알아보고 수군거렸다.

"데뷔만 안 했지 인지도는 저 쪽이 더 낫겠는데?"

"아냐. 우리도 지지 않을거야. ...아마도?"

“분명 우리가 호스트고 저쪽이 게스트인데 왜 이렇게 작아지는 기분인 거지?”

“씹어먹어야 하는데. 씹어먹어야···”

재이는 불안한 듯 연신 자기들끼리 쑥덕대는 녀석들의 시선 너머에 앉은 태영기획 데뷔 조를 바라보았다.

여섯 명.

자신들과 같은 숫자의 인원이 호기심 반, 긴장 반의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서로 인사부터 하고 시작합시다.”

조민선 PD의 말에 양측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와 벌써부터 분위기 장난 아닌데?”

서로를 탐색하듯 훑어보는 아이들의 얼굴에 서린 긴장감을 읽은 조PD가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가볍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서로 얼굴도 익힐 겸 해서 마련한 자리니까 그렇게 어색해할 필요 없어요. 이거 끝나면 경연 플롯 설명하는 장면 따고 바로 개별 인터뷰 진행할 거니까 촬영 없는 인원은 편하게 있어도 좋습니다.”

물론 카메라는 줄곧 따라붙겠지만.

짧게 덧붙이며 조PD가 빙긋 웃었다. 온종일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 두 팀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기대된다는 표정이었다.

왠지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 같은 그 눈빛에 불편해진 재이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침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맞은 편 사람들 중 하나와 눈이 맞았다.

“안녕하세요. 그쪽이 한재이씨 맞죠?”

기다렸다는 듯 스스럼없이 웃으며 인사를 건네 오는 상대방에 재이가 대답했다.

“네. 안녕하세요. 성함이?”

“아. 화빈이라고 합니다. 이화빈.”

‘나 일반인 아님’이라고 자기주장 강하게 하고 있는 핑크색 머리통이 이어 말했다.

“와. 근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더 안 믿기는데요?”

“네?”

“퇴출 1호. 맞죠? 대체 그 별명 누가 지은 거죠? 누군지 몰라도 진짜 어그로만렙 인듯요.”

악의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이화빈이 말했다.

재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옆에 서서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던 다른 녀석이 끼어들었다.

“진짜. 방송 보면서는 긴가민가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확실한 것 같은데?”

짜고 쳤네.

제작진을 등으로 진 채 핑크 머리 옆에서 입 모양만으로 뻐끔대며 이쪽의 반응을 살피는 노란 머리를 바라보며 재이는 생각했다.

‘와... 뭐야, 이 녀석들.’

어쩜 이렇게 타격감 1도 없는 공격을···

물개쇼 보는 것 같아.

대답 없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재이의 태도에 이화빈의 옆에 서 있던 녀석이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뭐. 왜 그렇게 봐요?”

그런 녀석을 조금 더 빤히 쳐다보던 재이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그냥.”

“그냥?”

재이의 무심한 대답에 핑크 머리, 이화빈이 되물었다.

“귀엽네 싶어서?”

눈앞의 두 사람을 위아래로 짧게 훑은 재이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자 노랑머리가 발끈했다.

“이···”

“최열. 그만해.”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늘한 목소리에 되지도 않는 시비를 털려다 거꾸로 털리고 있던 녀석이 목을 움츠렸다.

“미안합니다. 얘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얘넨 총천연색 머리통이 팀컨셉인가봐.’

염색약 CF를 노린 빅픽쳐인가.

이번엔 하얗게 탈색한 머리통이 자신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것을 보며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와 재민이. [이.천사]의 짱재민이 맞죠?”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던 이환이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저 초딩때 그거 완전 재밌게 봤거든요. 아, 이환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하고 손을 내밀다가 아차 싶었는지 제 옷에 손바닥을 쓱쓱 문질러 닦고 다시 악수를 청하는 이환에게 재민이라고 불린 녀석이 꾸벅하며 대답했다.

“쑥스럽네요. 황재민입니다.”

“이야 진짜 신기하다. 태영기획 소속이었어요? 그 드라마 뒤에 찍은 것도 저 다 봤는데. 아 맞다. 인증샷 하나만 찍으면 안 될까요? 우리 할머니가 짱재민이 완전 좋아하셨거든요. 만났다고 하면 진짜 좋아하실 텐데.”

누군가에게 저렇게 호의적인 이환이라니.

케이엠 쪽 녀석들이 신기한 것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이환과 그의 등쌀에 못 이겨 초면에 어색하게 같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황재민을 쳐다보았다.

“C-side 크루 사픽 맞죠?”

“아, 예.”

“와 대박. 저 Mad bull BC One 영상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백만 번 돌려봤는데.”

“팬입니다.”

엠케이와 남궁찬이 사픽이라 불린 오렌지색 머리통을 둘러싸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대체다 대체.”

조금 전의 긴장감은 어디로 간 건지 각자 제 쪽에서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있는 녀석들을 둘러보던 재이가 혀를 찼다.

“케이엠 분들은 다들 되게 여유롭네요?”

‘얘 아직도 있었냐.’

갑자기 들려온 이화빈의 목소리에 재이가 속으로 움찔했다.

“뭐. 그렇죠. 다들 생각 없이 사는 녀석들이라.”

재이가 내뱉은 말에 이화빈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저 같으면 긴장돼서 잠도 잘 안 올 것 같은데.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데뷔 푸쉬해주는 거, 요새 드물잖아요?”

“그래서 저희 대표님 별명이 자선사업가예요.”

재이의 쿨한 대답에 이화빈이 이번엔 진짜 웃겼다는 듯 소리내어 하하 웃었다.

“한재이씨 재밌는 분이네요.”

“제가 좀.”

“부럽네요. 저희 팀엔 개그 담당이 없어서.”

‘안물안궁인데.’

애초에 내가 왜 개그 담당이냐고.

“방송 보니까 멘탈 장난 아니시던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요?”

“평소에 욕을 많이 먹으면 돼요.”

“아하하. 재이씨 진짜 웃기다. 개그코드가 저랑 좀 맞으시는 듯.”

귀찮아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데도 끈질기게 다른 말로 엉겨 붙는 이화빈에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려는 찰나, 촬영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리는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생각보다 괜찮았어, 안 그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약간 들뜬 목소리의 엠케이가 말했다.

“사픽이랑 연락처 교환한 게 그렇게 좋냐.”

“이 상황에 사심 충만 덕질이라니. 여유롭구나 엠케이.”

“그러는 이환 너야말로 재민씨랑 어깨동무하고 사진까지 찍었잖아. 누가 보면 그쪽 팀인 줄 알겠다고.”

“아, 아니 그건 우리 할머니가 팬이라.”

엠케이의 역공에 움찔한 이환이 말을 더듬었다.

“와 어떻게 여기서 할머니를 팔아먹냐. 배은망덕한 놈.”

“내 손자였으면 등짝 스매싱 날아갔다.”

“받고 호적에서 파버림.”

“얹고 집에서 쫓아냄.”

“일단 밥 없음.”

“에이 이것들은 진짜 맨날 나만 갖고 그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몰이에 이환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규가 말했다.

“근데 진짜 생각보다 덜 무섭던데?”

“그럼 걔들이 거기서 이빨 세우고 너 물어뜯기라도 할 줄 알았냐?”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이환의 말에 은규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냥 간 본 거 아님? 진짜 경연에선 어떨지 모르지.”

차인혁이 무심하게 내뱉었다.

“근데 걔들 은근 한재이 의식하더라?”

엠케이의 말에 이환이 끄덕이며 말했다.

“걔 누구야? 이화빈인가? 걔가 아예 밀착 마크하던데?”

“대체 지금 밀착 마크가 무슨 소용이라고.”

재이의 한숨 섞인 말에 은규가 대답했다.

“우리 쪽 어그로 담당은 한재이니까. 딜 어디까지 들어가나 궁금했나 보지.”

“아니 그러니까 애초에 딜 확인을 왜 하냐고. 그것도 애먼 사람 붙잡고.”

게다가 그 딜이란 게 말이지.

핑크 머리와 노란 머리의 물개쇼를 떠올리며 재이가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힐끔 쳐다본 엠케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무모하기도 해라. 무슨 꼴을 당하려고.”

“그러게. 걔들이 아직 풋풋해 보이긴 했어.”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람 보는 눈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미리 애도를 표한다.”

녀석들이 제각각 중얼거리는 것에 재이가 물었다.

“너희들은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폭군”

“독재자”

“흑막”

“보스몹”

“욕쟁이 맛집”

“··· 그래.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재이가 뒤통수를 시트 등받이에 묻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우리도 전략 좀 짜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차인혁의 말에 느슨하던 분위기가 순간 팽팽하게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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