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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경연의 결과
“내 말이 맞았지?”
“후훗. 그래. 정확히 예상했던 대로야.”
“좋아.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
“···”
무대 뒤편.
모니터를 통해 먼저 시작된 태영기획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던 아이들이 차례로 중얼거렸다. 마지막 스테이지는 리허설도 비공개로 진행한 덕에 그들도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상대방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
태영기획은 엠케이의 예상대로 사픽의 화려한 개인기를 중심으로 한 퍼포먼스로 승부를 걸어왔다. 제각각의 머리 색깔처럼 개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살린 포인트 안무를 중간중간 끼워넣음으로서 2분 남짓의 곡 안에서 멤버의 각자 다른 매력을 최대한 어필하고 있었다.
“이거 그거네. 뭐가 마음에 드는지 몰라 다 준비해 봤어.”
“이 중에 니 픽 있다?”
“와 저기서 저 스텝은 진짜 사기인 듯.”
“그래 남궁찬, 네 픽이 사픽인건 잘 알겠다.”
준비 기간만 따지면 이쪽보다 더 오래됐다는 말이 헛소문은 아닌 듯 빠른 박자 속에서도 태영기획 데뷔조 멤버들은 동선이 꼬이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아주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야. 이거···.”
은규가 말을 흐렸다.
“안 돼. 심은규 그 입 다물라. 넌 아무 말도 하지 마.”
“읍으으야아 화장 지워져어으읍”
엠케이가 은규의 입을 틀어막았다.
“뭐. 괜찮지 않아?”
불안한 표정의 녀석들 사이에서 태연한 목소리로 재이가 말했다.
“줄 서라. 한재이가 배짱 나눠 준단다.”
옆에 서 있던 차인혁이 툭 내뱉었다.
“와 난 좀 넉넉하게 주라. 얘랑 나는 곱빼기, 알지?”
은규에게 어깨동무를 한 채로 엠케이가 말했다. 재이가 그런 녀석들을 둘러보곤 입을 열었다.
“어차피 오늘 온 관객들이 보기엔 쟤네나 우리나 낯설긴 마찬가지라고. 게다가 카메라 동선 위주로 움직이잖아. 객석에선 지금 누가 왜 클로즈업 받는지까진 안 보일걸.”
“하긴. 그건 좀 미묘하겠네.”
재이의 말을 듣고 있던 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를 이어 인혁이 말했다.
“게다가 우리가 뒷순인데 뭘. 순서만 놓고 따지면 우리가 백배 유리하지. 그깟 빨주노초파남보 따위 지워버리면 그만인 거야.”
“와 차인혁 패기롭네.”
“배짱 쟤한테 몰빵된듯. 나도 좀 나눠줘 어서.”
재이와 인혁의 말에 그제야 녀석들의 낯이 조금씩 풀어졌다.
“하던 대로만 하면 돼.”
“그럼 나 또 후렴 부분에서 실수함?”
“실수 한 사람 내일 밥 없음”
“와 나왔다 한재이 협박 카드”
“난 실수 안 할 거니 상관없음”
“비겁하다 이환. 혼자 살 궁리라니.”
“억울하면 잘하던가.”
“저 말투 저거, 진짜 한재이가 애 여럿 버렸다니까.”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를 주시한 채 입으로만 투닥거리다 보니 금세 무대가 암전했다. 드디어 이쪽의 차례였다.
“자. 누구의 홈그라운드인지 제대로 보여주자고.”
아이들이 일제히 무대를 향해 뛰쳐나갔다.
***
데일리 엔터 기획 칼럼 by 최보민 기자
[사람들은 왜 아이돌 그룹에 환호하는가: 케이엠 vs 태영기획]
아이돌계 전통 맛집 케이엠과 떠오르는 황금티켓 태영 기획이 차세대 남자 아이돌의 우열을 가리기 위한 정면 승부를 벌였다. 케이엠과 TVM이 합작으로 진행한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스텝 업]에서는 데뷔 멤버 확정을 위한 파이널 경연을 위해 태영기획의 데뷔 조를 초청했다.
명목상으로는 서로의 기량을 확인하기 위한 친선경연이었지만 사실상 데뷔를 목전에 둔 신인 아이돌의 전초전이라고 보기에 충분했다.
세 번의 무대로 맞붙은 경연 중 첫 번째 무대의 승리자는 케이엠이었다. 키워드에 맞춰 노래를 한 구절씩 부르는 게임에서 케이엠은 최근 유행하는 가요뿐 아니라 뮤지컬과 동요, 씨엠송을 넘나들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관객들은 마지막 ‘별’이라는 키워드에 감성적인 발라드를 부른 태영기획 멤버들 대신 ‘O수 돌침대, 별이 다섯 개’를 화음까지 넣어 부른 케이엠 쪽 멤버들의 손을 들어줬다. 상식을 뛰어넘는 기발함과 재치의 승리였다.
두 번째는 아이돌의 필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랩댄스배틀이었다. 유명 비보이 크루 C-side 출신 사픽을 중심으로 한 태영기획의 퍼포먼스는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을 듣기 충분했다. 압도적인 승리를 예상하는 듯했던 태영기획은 그러나 그 후 이어진 프리스타일 랩에서 보여준 케이엠의 분전으로 아쉽게도 동점이라는 결과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팀 대 팀으로 이루어진 세 번째 경연.
선공에 나선 태영기획은 여섯 멤버가 가진 각자의 독특한 매력을 가감 없이 발산했다. 멤버들에게 골고루 돌아간 파트 배분에서 데뷔 전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이 절호의 찬스를 살리기 위한 처절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에 맞선 케이엠의 선택은?
그들이 택한 것은 팀이었다.
태영 기획이 여섯이었다면 케이엠은 하나였다. 쉴 새 없는 연습으로 갈고 닦았을 각 잡힌 칼군무의 유기적인 연계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 된 팀이 여섯의 개인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줬다.
.
.
.
“한재이 고기 다 탄다. 얼른 먹어.”
“어? 어. 그래.”
재이는 들여다보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끄고 눈앞에서 지글대고 있는 불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궁찬이 팔을 걷어붙이고 갈비를 뒤집고 있었다.
“뭐 보는데?”
“최 기자님 칼럼.”
“아 그거 올라왔어?”
재이의 대답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던 녀석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던졌다.
“잘 써 주셨겠지?”
“믿고 보는 최 기자님.”
“나도 이따 봐야겠다. 일단 이거 먼저 좀 먹고.”
엠케이가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쌈에 싸며 중얼거렸다.
“이야. 남궁찬 운다 울어!"
“아잇!! 엄마! 저것 좀 끄자고요!!!”
“아 왜. 끄긴 왜 꺼! 명장면인데!”
"어머니 괜찮습니다. 저희도 보고싶어요, 맨날맨날 보고싶어요!"
"이야 울어도 잘생겼네 남궁찬!"
"카메라빨 제대로 받았네! 남자의 눈물, 크으 머싯써!"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남궁찬을 만류하며 TV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텅 빈 가게 한쪽을 차지한 커다란 평면TV에서는 스텝 업 파이널 경연이 끝난 뒤 결과 발표를 듣고 오열하고 있는 남궁찬의 모습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아 진짜 이제 그만 좀 틀라고오...”
“아니 왜. 나 같아도 1년 365일 켜겠다. 감동적이잖아. 신사동이 낳은 자랑스러운 아들 남궁찬!”
엠케이가 가게 입구에 걸린 현수막 문구를 소리내어 읽으며 이죽거렸다.
“아 제발. 좀...”
터질듯이 새빨개진 얼굴로 남궁찬이 중얼거렸다.
파이널 경연이 방송된 지 며칠이 지난 후.
멤버들은 남궁찬의 부모님이 경영하는 갈빗집에 모여앉아 조금 늦은 뒤풀이를 하고 있었다.
스텝 업 멤버들은 태영기획과 맞붙은 세 번의 스테이지를 통해 아슬아슬한 득표차로 태영기획을 누르고 남궁찬의 잔류를 결정지었다. 경연 내내 무덤덤한 듯하던 남궁찬은 결과 발표를 듣고 결국 왈칵 눈물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둘러싸고 다독이는 나머지 멤버들의 모습은 프로그램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소소한 반향을 자아냈다.
엔딩롤에서는 데뷔 그룹의 이름을 발표하거나 향후의 스케쥴을 알리는 대신, 데뷔조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자로 시작한 아이들이 서로 격려하고 받쳐주며 하나의 팀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다시 비췄다. 스텝 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조금씩 성장해 가는 그 모습의 기록은 아이돌 서바이벌이 이미 한물간 포맷이라는 비아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대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회자했다.
자칫 그들만의 리그로 끝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재평가를 끌어냈다는 논평은 케이엠으로서도 TVM으로서도 만족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근데 그래서 우리 데뷔하는 거 맞긴 하지?”
“그럴걸? 아마도?”
“아직도 실감이 안 나.”
“그건 아직 아무것도 시작한 게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남궁찬이 구워주는 고기를 쉴새없이 주워 담으며 아이들이 두런거렸다. 그 동안 촬영이다 경연이다 해서 제대로 쉬지 못했던 것을 고려해 회사는 본격적인 데뷔 준비를 시작하기 전 얼마간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배려했다.
“할 일 없으니까 오히려 불안한데.”
“그러게. 나 오늘도 하루종일 자다가 나왔잖아.”
“알 만 하다. 니 얼굴 완전 부었음. 아주 찐빵이 따로없네.”
“차라리 쉬지 말고 그냥 후딱 데뷔 준비 하면 안 되나?”
은규의 말에 따뜻한 쌀밥에 잘 익은 고기 한 점 얹어 맛있게 우물거리던 재이가 말했다.
“데뷔 준비 시작하면 이제 마음껏 먹을 수도 없을텐데?”
“아 맞네. 그럼 일단 먼저 좀 먹고.”
은규의 말에 다른 녀석들의 젓가락질도 덩달아 빨라졌다.
“근데 그래서 다들 쉬는 동안은 뭐 할 건데?”
엠케이의 물음에 이환이 대답했다.
“난 그냥 집에 있을 예정.”
“나도 집콕.”
“나도.”
“음. 나도.”
하나둘 대답한 녀석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아직 우물거리느라 대답을 못 한 재이에게로 쏠렸다.
“나도 집에 갈까 하는데.”
한 박자 늦게 재이가 대답했다.
“집? 어디? 부모님 댁?”
은규의 물음에 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랜만에 좀 다녀오려고. 어차피 계약하려면 나 혼자선 못하니까.”
다른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간 김에 네 그 동생분 좀 제대로 조져놓고 와.”
차인혁이 말했다.
“맞네. 걔는 좀 교육이 필요하겠더라. 뭐하면 같이 가 줄까?”
엠케이가 거들었다.
“그래. 우리가 다 같이 가면 아무리 네 동생이라도 좀 쫄지 않을까?”
은규가 소심하게 덧붙였다.
“됐거든요.”
한재이의 대답에 미심쩍은 듯한 녀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아 왜?”
“너 맞고 다녔다며.”
“돈도 뜯겼다며.”
“맨날 울었다던데.”
“오죽했으면 도망쳤겠냐고.”
“우리한텐 안 숨겨도 돼. 알지? 우리 사이에.”
이때다 싶어 한마디씩 내뱉는 녀석들의 얼굴을 둘러본 재이가 버럭 소리쳤다.
“아 진짜 됐거든? 필요 없어. 꺼져.”
“까칠하게 나오는 거 보니까 불안한데.”
“그래, 마음이 안 놓이네. 따라가 봐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인혁과 은규가 차례차례 말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엠케이와 남궁찬, 이환이 말을 보탰다.
“그러게. 저러고 그냥 보냈다가 눈탱이 밤탱이 돼서 올라오면 데뷔에 차질 생기잖아.”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법이라고. 한재이도 인간인데 다 이길 순 없지.”
“그럼. 좋건 싫건 쟤랑 이제 운명공동체인데 저게 어디서 얻어맞고 다니게 둘 순 없잖아.”
“닥치고 고기나 드시지들?”
재이의 말에 녀석들이 일제히 아우성쳤다.
“와 한재이 인성 터지는 소리 들린다.”
“사람이 걱정을 해 주는데 고마워는 못할망정.”
“저게 다 사랑이 부족해서 그래. 우리가 보듬어 줘야지 어쩌겠냐.”
“그래 이참에 내려가서 재이 부모님도 좀 뵙고.”
“어떻게 크면 저렇게 싸가지가 될 수 있나도 좀 여쭙고.”
“아니 그건 부모님 아니고 동생분께 따로 좀 묻자.”
“살살하자. 우리 이제 일반인 아니잖아?”
“이야, 연예인 병 실제로 보니 진짜 개 구리다. 나 토할 뻔.”
어느새 자신은 뒷전이고 그냥 자기들끼리 신나서 쑥덕대는 녀석들을 빤히 쳐다보던 재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하··· 인생.’
***
다음 날.
“···하, 인생.”
재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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