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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조인지 망조인지
연습실 문을 열고 장신의 잘생긴 녀석이 안으로 들어온다. 그가 들여다보고 있던 핸드폰 화면 속에선 한창 게임 방송이 진행 중이었다. 한동안 그걸 들여다보던 녀석이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구석에 놓여 있던 대걸레 자루를 발견한 녀석이 핸드폰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잡아 들곤 한 바퀴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후웅-
조용한 실내에 울리는 파공음이 마음에 든 듯 녀석이 입꼬리를 말아 올려 씩 웃는다. 그리고는 그대로 대담하게 스텝을 밟으며 조금 전 영상에서 본 것과 같은 동작으로 걸레 자루를 휘둘러갔다. 거침없이 전진하며 걸레 자루를 휘두르던 녀석이 일순 상체를 훅 낮추고 아래쪽을 횡으로 깊게 베었다. 조금 전 게임에서 본 검사의 동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만족스럽게 씩 웃는 그 미소에 팽팽하게 당겨졌던 실내의 공기가 살짝 누그러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대걸레 자루를 고쳐 쥐곤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돌려보며 장난스럽게 웃는 녀석의 모습 위로 자막이 날아와 박혔다.
WARRIOR / INHYUK
그 녀석이 걸레 자루를 내려놓고 잠시 그대로 주저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만큼이나 키가 큰 소년 한 명과 작은 체구에 올망졸망한 눈이 인상적인 녀석 한 명이 나란히 연습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게임 방송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곤 재미있겠다는 듯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 그리고는 멀찍이 상대편과 거리를 벌려 마주 섰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덩치 큰 녀석이 권격을 번갈아 쓰며 성큼 거리를 좁혀오는 사이 반대편에 서 있던 작은 체구의 녀석이 무섭지도 않은지 단번에 공격권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순식간에 키 큰 녀석이 찌른 정권을 손으로 짚고 그대로 공중회전한 후 등 뒤로 돌아 착지했다. 시작점과 반대의 위치에서 서로를 돌아본 두 녀석이 피식 웃으며 자막이 등장했다.
THIEF / MK
STRIKER / CHAN
세 명은 안무 대형으로 펼쳐 선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춤 대신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그중 약간 신경질적으로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얄상한 얼굴의 녀석이 주변을 둘러보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러자 조금 어둑한 듯하던 실내조명이 순식간에 확 밝아졌다.
WARLOCK / IHWAN
음악이 시작되고 여섯 명의 녀석들이 대형을 갖추고 비트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묵직한 비트사운드가 실내를 메우고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칼군무를 위한 연습이 계속되었다. 멤버들의 얼굴에 피로가 스치자 그 모습을 본 한 녀석이 슬쩍 뒤로 빠져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던 중화 요릿집 마크가 선명한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고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휘둘렀다.
이내 파란 번개 이펙트가 번쩍이며 카페인 음료로 유명한 레드황소 마크가 각 멤버들 머리 위로 반짝이곤 사라졌다. 만족스러운 듯 씩 웃는 팔자 눈썹의 순한 얼굴 위로 소개 자막이 떴다.
HEALER / EUNKYU
다시 시작된 연습은 그러나 뭔가가 잘 안 맞는 듯 하나둘 삐걱대기 시작했다. 동작을 멈춘 멤버들이 서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중 한 녀석이 생각났다는 듯 뒤로 뛰어가 무언가를 들고 돌아왔다.
챱 챱챱 챱 챱챱 챠르르르
연습실을 울리는 강렬하고 묵직한 비트사운드 사이로 한없이 가벼운 탬버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박자의 강약에 멤버들이 웃음을 깨물어 참으며 다시 안무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녀석은 제 담당 파트의 안무를 소화해 내면서도 요령 좋게 박자에 맞춰 태연한 얼굴로 탬버린을 흔들며 끊임없이 추임새를 넣었다.
차르르르
곡이 끝남과 동시에 탬버린의 여운이 조용해진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잠시 멈춰 서 있던 녀석들이 하나둘 탬버린을 든 녀석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조금 전까지 신들린 탬버린 묘기를 보여주던 녀석이 멀끔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 무심한 듯 시크한 표정 아래 소개 자막이 떠올랐다.
BARD / J
국내 최대 게임 포털 사이트 내 게시판
[요새 아이돌계 상황.gif]
이제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게임컨셉까지 들고나오는 듯ㅋㅋ 근데 나도 처음에는 기획사가 패기 쩌네 어그로 끌리는 거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싶었는데 이 퀄리티 무엇?? 분명 병맛나는데 고퀄이라 분하다고!!!
검사_연속베기_검대신_대걸레.gif
도둑_척후_공중돌기_실화냐.gif
음유_독려_아무래도_탱인듯.gif
이밖에도 격투가, 흑마법사, 힐러 있는데 다 같이 살짝 제정신 아닌 듯ㅋㅋㅋ 얘네 진짜 아이돌로 데뷔하는 거 맞음? 돌잘알 누구 있으면 얘기 좀 ㅋㅋㅋ (http://
└뭐야 판 잘못 찾아왔다고 댓글 달러 왔더니 ㅋㅋㅋ
└소속사 어디냐 뭔데 이렇게 대놓고 어그로 ㅋㅋㅋ
└얘네 아이돌로 데뷔하는 거 마즘? 게임사가 바이럴 마케팅 하는 거 아니냐고
└이게 되네 ㅋㅋㅋ 얘네 피지컬 무엇??
└법사랑 힐러 봤냐 힐러 이펙트 병맛 무엇? ㅋㅋ
└음유 독려가 탬버린이라니 어쩔ㅋㅋ 신명나버렼ㅋㅋ
└ㄹㅇ 얘 엄마 뱃속에서 탬버린 치면서 태어난 듯
└어글 ㅈㄴ튀던데ㅋㅋ 내가 몹이면 음유부터 조지고 싶을 듯 ㅋㅋ
└ㅇㄱㄹㅇ 탬버린 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ㅋㅋ
└중간에 힐 받고 일어나서 다들 다시 연습 시작하는 거 나만 짠함?ㅋㅋ
└힐빨로 버티다니 ㄹㅇ극한직업 아이돌ㅋㅋㅋ
2분 남짓한 영상은 최대한 이펙트를 줄이고 동작에 치중한 편집으로 차인혁의 검사, 남궁찬의 격투가, 엠케이의 도둑이라는 포지션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세 명의 소개는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몸놀림에 집중함으로써 게임 스킬의 실사화에서 오는 거부감을 줄였다.
그 뒤로 이환의 흑마법사, 심은규의 힐러, 한재이의 음유시인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직업군의 재현에서는 거꾸로 이펙트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았다. 마지막 재이의 현란한 탬버린 실력은 하고많은 악기 중 그것을 들려준 윤효민 실장조차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것이었다.
멤버 모두가 메이크업조차 안 한 평범한 티셔츠에 트레이닝복 차림인 것도 노림수였다. 연습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대걸레 자루나 중화요릿집 마크가 박혀 있는 나무젓가락, 혹은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탬버린을 대충 집어 들고 이 정도쯤 누워서 떡 먹기라는 표정으로 각자의 스킬을 선보이는 멤버들의 모습은 평범한 일상 속에 비현실적 요소를 자연스럽게 끼워 넣고 있었다.
영상은 조금씩 입소문을 타며 번지기 시작했다. 아이돌 관련 게시판에서 케이엠이 이번 데뷔조 컨셉을 괴랄하게도 잡았다며 마니악한 세계관으로 망테크 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산 것과 달리 게임판, 유머판 이슈판을 중심으로 한 소위 ‘머글’판의 분위기는 꽤 호의적이었다.
“길조인지 망조인지.”
런칭 프로젝트 정례회의에서 기획팀의 분석 보고를 듣고 있던 장 이사가 중얼거렸다.
“분위기 나쁘지 않으니까 이대로 기세 확 끌어 올라가야죠. 여기서 장세은 팀장님이랑 AR팀이 곡만 기깔나게 뽑으면 사실 게임 끝나는 거 아닙니까.”
윤효민이 웃으며 말했다. 윤효민의 말을 듣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장세은이 입을 열었다.
“와 윤 실장님 은근슬쩍 이쪽으로 화살 돌리는 것 좀 봐. 하여간에 무섭다니까.”
윤효민을 힐끗 흘겨본 장세은이 이어 말했다.
“후보곡들 들어보시기 전에. 앨범에 들어갈 4곡 이외에 한 곡 더 넣을까 하는데요.”
“한 곡 더?”
장 이사의 물음에 장세은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네. 이참에 아예 자작곡을 한 곡 앨범에 넣는 건 어떤가 해서요. 은규야 어때?”
“네? 저요?”
갑작스러운 지목에 회의실 한쪽에서 참관 중이던 은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세은 팀장을 바라보았다.
“그래 은규. 저번 경연곡 때 작업하는 거 인상 깊었어. 이번에 프로듀싱 제대로 해 보지 않을래? 지난번이 약식이었다면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장세은의 말에 은규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손을 뻗어 옆에 있는 이환의 팔을 더듬었다.
“아악! 심은규 무슨 짓이야!”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닌 것 같은데···”
“이씨 너 꼬집으려면 니 팔을 꼬집어야지, 왜 애먼 사람 팔을···”
“내 팔은 소중하니까.”
“빌어먹을 이기주의자.”
“이환 너 카메라 없으면 성격 나오는 거 좀 고쳐라. 그러다 큰코다친다.”
“알았어 알았어 조심하면 되잖아.”
“불쌍한 이환. 팔뚝 꼬집힌 것도 서러운데 인성까지 꼬집히고.”
“가만 보면 이환이 은규한테 안 됨.”
모여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수군댔다.
장 이사가 말했다.
“자작곡 한 곡 더 넣는 거야 어렵지 않다고 쳐도. 시간에 맞춰서 퀄리티 뽑아낼 수 있겠어? 요새 듣는 귀 높아져서 자작곡이라고 어설프게 끼워 넣었다간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 나올 수도 있다고.”
장 이사의 말에 장세은이 웃으며 말했다.
“곡 퀄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지난번 경연 때 보니까 은규 기본이 꽤 탄탄하더라고요. 물론 저희 팀에서 지원 들어갈 거니까 어느 정도 백업도 될 테고요. 괜찮을 거라고 보는데, 은규 네 생각은 어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 보이는 듯한 표정의 은규가 장세은의 물음에 퍼뜩 자세를 바로 하곤 대답했다.
“저야 감사하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단 오늘 가져온 후보곡들 검토해서 통과하는 곡들부터 차례로 사장단 컨펌 올릴 거야. 자작곡을 우리 팀에서 올린 곡들하고 분위기를 맞출지 아예 다른 노선으로 갈지는 좀 더 의논해 봐야 할 것 같고. 아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본 곡 컨셉 같은 거 있나, 혹시?”
장세은의 물음에 은규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효민이 재이를 지목해 물었다.
“한재이. 너 뭐 생각해 본 거 없냐?”
“윤 실장님. 재이 카드 너무 남용하시는 거 아니에요?”
장세은이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본인들 그룹인데 본인들이 생각하는 색깔 많이 들어가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딨다고요. 들어봐서 괜찮으면 쓰고 안 괜찮으면 안 쓰면 되는데요, 뭘.”
윤효민도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는 어서 말해 보라는 듯 재이 쪽을 돌아보며 재촉했다.
“말해봐, 이번엔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나 좀 보자.”
그 소리에 고개를 모로 꺾고 생각에 잠긴 듯하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아예 히든트랙으로 가는 건 어떤가요?”
“히든트랙?”
“네. 앨범에 실릴 곡은 어느 정도 대중적인 노선으로 갈 거잖아요. 그럼 한 곡 정도는 대놓고 스토리텔링에 써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대놓고 스토리텔링이라면?”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내며 되묻는 장세은을 돌아보며 재이가 대답했다.
“어··· 예를 들면. 파티원의 불만 상담이라던가.”
그 말에 재이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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