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47화 (47/224)

#   47 - 3726535

#

공정한 리더 선출

“불만 상담?”

“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라는 듯 의자를 당겨 앉는 장 이사의 모습을 힐끔 쳐다본 재이가 이어 말했다.

“어차피 저희 폭망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쭉 이 컨셉으로 밀고 갈 거잖아요? 그러면 앨범에서 한 곡 정도는 꾸준하게 스토리텔링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근데 그게 또 정규 수록곡으로 들어가면 부담도 되고 컨셉이나 세계관 같은 거 모르시는 분들껜 그야말로 진입장벽이 될 테니까.”

“히든트랙을 써서 멤버들끼리의 디스를 스토리텔링으로 승화시켜 보자고?”

엠케이가 받고.

“그냥 쌩으로 내뱉었다가는 불화설 터질 만한 걸 미리 컨셉인 척 히든트랙에서 돌려 까잔 얘기지?”

이환이 얹고.

“그럼 [음유가 탱딜힐 다 해 먹는 파티란 건전한가] 뭐 이런 거로 가사 쓰면 되는 거야?”

“[파티원 중에 막보가 섞여 있는 것 같은데요] 뭐 이런 거?”

남궁찬과 인혁이 섞었다.

“그런 거면 앨범당 한 곡 아니라 멤버 당 한 곡도 나오겠다···. 가 아니고. 흠. 아무튼, 그거 괜찮은데?”

신나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엠케이가 힐끔 재이의 눈치를 살피곤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가사 그럼 너희들이 붙여 볼래? 이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재밌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장세은이 힐끔 장 이사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은데? 수록곡하고 아예 분리해서 간다는 발상이 마음에 드네. 그러면 팀컬러에 일관성을 내면서도 설사 앨범 분위기랑 좀 맞지 않는다고 해도 덜 거슬릴 테니 오히려 움직이기도 쉬울 것 같고. 가사는 AR팀에서도 좀 봐 주도록 해.”

장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장세은이 덧붙였다.

“가사를 너희들에게 직접 맡겨 보겠다고는 했지만, 이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난 번 재이가 쓴 가사처럼 너무 의식의 흐름이면 안 돼. 이번엔 AR팀에서 정식으로 검토하고 필요하면 수정 작업 거친 후에 최종 컨펌 할 거야.”

“의식의 흐름이라면···”

“계란 후라이와 토스트···”

“아악 제발. 어떻게 봉인한 기억인데. 다시 열지 마라, 부탁이다.”

“진짜 내가 그 이후로 계란 후라이랑 토스트 안 먹잖아.”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저, 근데 저희 그룹명은 언제 정하나요?"

"그거? 너희 컨셉 보고받으시더니 대표님이 직접 정하고 싶으시다던데."

"예에?"

아이들의 얼굴이 살짝 불안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 장세은이 두 손을 짝 마주치며 주위를 환기했다.

'사회생활이 다 그런 법이란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 수 있니.'

“그럼 이제 대충 쉰 것 같으니 본격적으로 후보곡들 검토 들어가겠습니다.”

장세은의 말에 잠시 느슨하게 풀어졌던 회의실에 다시 적당한 긴장감이 돌아왔다. 런칭 준비의 메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곡 선정의 시간이었다.

데뷔 앨범에 들어갈 곡은 네 곡 모두 인하우스로 제작될 예정이었다. 장세은 팀장과 함께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AR팀 인원들이 준비해 온 곡을 차례대로 공개하며 각 곡의 어떤 포인트가 대중 혹은 코어팬덤에게 소구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이건 너무 무겁지 않나? 데뷔곡부터 장송곡을 틀 셈은 아니지 설마?"

"이건 인트로가 너무 요새 유행하는 전개 그대로 아닌가요? 이래서야 누구 곡인지 기억에도 안 남겠어."

장 이사를 비롯한 기획팀, VD실 그리고 AR팀은 그 곡들이 참관중인 멤버들의 이미지나 역량과 매치하는가를 면밀히 검토해 나갔다. 쟁점이 된 주요 포인트는 역시 대중성과 코어력의 밸런스였다.

데뷔 곡은 코어 팬덤을 구축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인 만큼 코어력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과 그렇잖아도 진입장벽이 높은 컨셉에 노래까지 모두 그 쪽에 치중하면 대중성이 지나치게 낮아져 그들만의 세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맡붙었다.

결국 그룹명과 함께 앨범 수록곡 또한 최종 판단은 사장단에게 맡기기로 한 채 회의는 끝이 났다.

'쉬운 일이 없네.'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돌 그룹 이름으로 네버로스가 마음에 든다며 금일봉까지 내렸던 문 대표의 센스에 자신들의 앞날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묘했다.

***

며칠 뒤.

케이엠 사옥 내 연습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연습실 여기저기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엠케이와 남궁찬, 차인혁은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안무팀이 제안한 안무를 꼼꼼히 다시 살피며 보강할 부분을 찾고 있었고 은규는 구석에 앉아 이어폰을 낀 채 종이에 악보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환과 재이는 새로 최종 컨펌을 받고 곧 녹음이 시작될 앨범 수록곡의 화음 부분을 서로 맞춰보고 있었다.

“아아 족발 먹고 싶다!!”

핸드폰으로 찍어 둔 안무 영상을 돌려보며 동작을 체크하던 남궁찬이 문득 커다랗게 소리쳤다.

“남궁찬 한참 집중하다 말고 갑자기 뭐라는 거야?”

“난 된장찌개에 쌀밥. 김치 얹어서.”

엠케이의 말을 가로채듯 차인혁이 말했다.

“난 만두전골.”

“난 자바 칩 모카 프라푸치노.”

“으아 난 지금 말한 거 다 먹고 싶다.”

이환과 은규가 합세하자 엠케이도 덩달아 중얼거렸다.

“그러나 현실은 닭가슴살과 삶은 달걀이겠지.”

“우우우 한재이 꺼져!”

“진심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 놈!!”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겠지.”

“꿈도 희망도 없어···.”

재이의 무심한 한 마디에 다른 아이들의 원성이 빗발쳤다. 아이들에게 집밥 한재이 선생이라 추앙받던 시절도 다 지나간 옛말이 되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회사 근처 새로 배정받은 숙소로 들어온 재이와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철저한 식단관리와 트레이닝 스케줄이었다.

스텝 업 촬영 기간 제작비로 장 봐가며 온갖 음식을 먹어댔던 시절이 마치 꿈만 같았다. 식사를 스스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편했으나 그뿐이었다. 냉장고 안에 꽉 들어찬 닭가슴살과 삶은 달걀을 볼 때마다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들도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데뷔 준비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습실과 녹음실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곡 작업과 병행하여 쇼케이스를 비롯해 데뷔 후 펼칠 무대의 안무 연습까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스케줄이 빡빡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잠깐이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AR팀이나 VD 실에서 귀신같이 알고 추가 작업을 위해 멤버들 가운데 한둘을 따로 불러내곤 했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여섯이 한자리에 모여 다 같이 쉬는 것은 꽤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아 참. 맞다, 우리도 슬슬 그거 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응? 뭐?”

재이가 생각났다는 듯 대뜸 꺼낸 말에 엠케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리더.”

아이들 사이에 일순 침묵이 돌았다.

“설마 한재이 너 리더 자리 노리는 거야?”

엠케이의 질문에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재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안 되겠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빨리 입후보해. 이대로 있다간 한재이가 리더 되겠어.”

아이들의 눈빛에 절박함이 감돌았다.

“나 할래.”

“나도.”

“나···도?”

차인혁과 엠케이, 그리고 이환이 손을 들었다. 남궁찬이 심은규를 돌아보며 속닥였다.

“저것들은 자기들이 한재이의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손 든 건가?”

“차인혁 정도면 뭐. 엠케이도 뭐···. 근데 이환은 솔까 에바지.”

“심은규 다 들리거든!”

“어 그래. 들렸으면 손 내리고 너도 이리 와.”

“진짜 심은규 언제부턴가 나만 패는 듯.”

이환의 투덜거림에 남궁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은규가 한재이랑 듀엣 한 번 하고 많이 물들긴 했어.”

“정신 차려 심은규. 네가 밀어야 할 이미지는 그게 아니라고.”

“야 근데 진짜 우리 리더 어떻게 정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건 당연히 다수결 아니냐?”

“꼴랑 여섯 있는 중에 넷이나 입후보했는데 다수결로 정하라고?”

“어··· 좀 그런가?”

아이들이 두런거리는 것을 듣고 있던 은규가 물었다.

“근데 리더 하면 뭐가 좋은데?”

그 질문에 인혁과 엠케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동시에 내뱉었다.

“한재이에게 명령할 수 있음”

“한재이가 리더 하는 걸 막을 수 있음”

“안 되겠다, 이유가 다 너무 매력적이야.”

“갑자기 나도 막 하고 싶어진다.”

두 사람의 즉각적인 대답에 은규와 남궁찬이 납득했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만 빼고 저희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녀석들을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재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희들 진짜 내가 리더 하는 게 그렇게나 싫은 거야?”

평소의 재이와는 달리 조금 의외라는 듯 상처받았다는 듯 의기소침한 그 말투에 실내에 순간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곤 곧 여기저기서 단답형 대답들이 튀어나왔다.

“어.”

“끔찍하지.”

“Yes.”

“물론.”

“말이라고.”

조금 전까지 충격적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던 재이가 표정을 싹 바꾸며 무심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쳇. 인정머리 없는 것들.”

“한재이 너 아직 연기는 안 되겠다.”

“그래 수련이 부족해.”

“난 말만 듣고 깜박 속아 넘어갈 뻔했잖아.”

“나도. 근데 그 말 하는 한재이 눈 희번덕대는 거 보고 정신이 번쩍 듦”

“난 나도 모르게 아니라는 대답 나오려는 거 혀 깨물고 참았다니까.”

“이것들이 근데···. 됐다. 그럼 난 포기할 테니까 너희들끼리 정해봐.”

재이가 던진 말에 나머지 녀석들이 환호하며 쑥덕거렸다.

“와 한재이가 웬일이래. 권력을 마다하고.”

“그거 아님? 리더가 있어도 어차피 자기한텐 못 개긴다는···”

“이거인 듯. 결국, 다 제 손바닥 안이라 이거지.”

“하여간에 자신감 쩔어. 나한테도 좀 나눠줬으면.”

“함부로 먹지 마라, 옮을라. 저 성격은 팀에 하나로 족해.”

“아니 근데 이것들은 사람이 양보한다는데도 왜···”

재이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나머지 녀석들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리더를 정할 것인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던 재이는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뭐. 잘들 정해 보라고.’

사실 처음부터 진짜로 리더를 하려는 생각 따위 없었다.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어 보이니 슬슬 운이라도 띄워볼까 싶어서 해 본 말이었다. 자신은 감투 같은 거 딱 질색이기도 했거니와 리더를 맡을 만한 깜냥도 없었다. 이 성격에 리더를 맡았다간 내부 분열은 물론 쓸데없이 외부의 적을 키울 게 뻔했다. 다사다난은 리온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다. 한재이의 삶은 평화롭고 싶었다.

게다가 음유시인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원거리 서포트. 딜 보탤 때 빼곤 한발 물러서서 잘한다 잘한다는 응원이나 열심히 해 주는 것이 미덕이었다. 제가 운을 띄웠으니 이대로 다른 녀석들을 잘 아우를 수 있는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나서 준다면 자신으로선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잠깐 근데 그럴 만한 녀석이 이 안에 있던가?’

“가위바위보!”

“으아악! 어떡해!! 이겨버렸어어어!”

다섯 중 유일하게 가위를 내 보자기를 낸 나머지 녀석들을 단번에 이겨버린 은규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런 은규를 바라보며 엠케이가 고개를 갸웃하다 물었다.

“심은규 뭔데? 이겼는데 왜 안 좋아해? 겉으론 안 하겠다더니 속으론 사실 하고 싶었던 거야?”

“응? 이긴 사람이 리더 하는 거 아니었어?”

“뭐? 진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은규와 엠케이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하자 보다 못한 이환이 끼어들었다.

“리더가 벌칙이냐, 진 사람이 하게?”

“중간 관리직이 벌칙이지, 그럼 상이냐고.”

“어···. 그건 일리 있네.”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할까?”

“어허 아니지. 낙장불입이지! 난 빠질 테니 나 빼고 하던 거마저 하셈. 어서.”

은규가 안도했다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더니 뒤로 빠지면서 외쳤다.

리더를 가위바위보로 정하다니. 공평하긴 공평하네.

재이가 팔짱을 낀 채 점점 열기를 더해 가는 리더 선출의 현장을 구경하고 있는데 연습실 문이 열리며 석관이 들어왔다.

“얘들아, 너희 쇼케 일정하고 이름 정해졌···.”

“으아앗!!!”

“오오오오!!!”

모여있던 녀석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비명에 석관이 움찔했다. 재이가 그런 석관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지금 리더 뽑는 중이었거든요.”

“난 또. 그래서 정해진 거야? 누가 됐는데?”

석관이 다가오며 묻는 말에 차인혁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아하하. 차인혁 가위바위보 더럽게 못 해.”

“어떻게 내리 네 판을 다 지냐고.”

“저것도 재주다 재주.”

“차인혁 넌 나중에 예능 나가더라도 가위바위보는 하지 마라. 진심.”

멤버들의 칭찬과 격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인혁이 석관에게 물었다.

“저희 그룹명 뭔데요?”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석관에게 쏠렸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