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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방문의 날
“헉헉. 아이고 죽겠다. 헉헉.”
박대호가 허리를 굽히며 숨을 몰아쉬었다. 힐끔 뒤를 돌아보자 떼어내는 데 성공한 것 같던 무리가 부쩍 가까이 따라붙어 있었다.
“으어어 저 끈질긴 것들.”
“대호쌤! 그냥 포기해요! 포기하면 편해~!”
운동장 바깥쪽에서 두툼한 파카로 몸을 감싼 채 구경 중이던 송채은이 한가로운 목소리로 박대호에게 외쳤다.
“아니거든! 그래도 내가 왕년에 필드의 무법자로 불리던 몸인데. 저런 조무래기들···으헙”
툭 퍽 파팍
박대호가 송채은에게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조무래기들’이 일제히 들고 있던 눈뭉치를 박대호에게 날렸다.
“앗 차가워. 아악!!”
“선배님 뛰세요, 얼른요!!!”
그래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지 다시 열심히 뛰기 시작하는 박대호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를 재촉하는 이화빈의 모습을 딱하다는 듯 쳐다보던 송채은이 그들을 바짝 추격 중인 무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선생님들을 해치우자!”
“와아아아”
“야아아!!”
“···저건 진짜 타고났다니까.”
아이들의 선두에 서서 신나게 외치며 박대호를 쫓고 있는 한재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채은이 중얼거렸다. 처음 계획은 아이들과 선생님을 섞어서 짠 팀으로 하는 팀 대항 눈싸움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가 재재님과 한 팀을 하겠다고 우기는 통에 결국 선생님즈 vs 재재원정대의 대항전으로 컨셉이 바뀌었다. 그리고 대항전은 어느샌가 한쪽의 일방적인 토벌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송채은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눈밭에서 저렇게 강아지들처럼 뒹구는 것은 예능인인 박대호나 한창 인기가 고플 아이돌들에게 돌아가야 할 역할이었다. 자신은 이렇게 일찌감치 옆으로 빠져 여유롭게 관전하는 쪽이 제작진이 원하는 그림일 터. 그리고 그런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지 한창 박대호와 재재원정대의 추격전을 모니터링 중인 박 PD의 얼굴이 사뭇 만족스러워 보였다.
“가람아 너는 이쪽으로 가로질러서 뛰어가고 은오는 저쪽으로 뛰고, 하담이랑 세린이는 저기 저 뒤에 숨어있다가 우리가 선생님들 몰아오면 가지고 있던 거 다 던져 알았지? 자, 세빈이는 선생님 손 잡고 뛰자!”
재재님, 아니 한재이가 한껏 흥이 오른 목소리로 벌써 저 멀리까지 뛰어가 버린 선생님들을 보며 분한 듯 씩씩대고 있던 아이들에게 말했다.
“와아아아-”
“야아아아-”
재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뛰어간 아이들을 피해 다니던 박대호와 이화빈이 정면에서 마주친 재이와 세빈이를 피해 결국 하담이랑 세린이가 숨어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 뛰는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이 정확하게 재이가 준비한 함정을 향해 뛰어드는 것을 보고 있던 송채은이 중얼거렸다.
“아주 귀신이네, 귀신이야.”
힐끔 쳐다보니 박 PD 옆에 서서 지켜보던 최 작가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다는 건 저게 대본에서 제시한 상황예시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순전히 즉흥적인 판단이 만들어 낸 그림이라는 건데.
“이야. 재이씨가 진짜 예능을 아는구나.”
결국, 숨어있던 아이들이 던진 눈 폭탄을 정면으로 얻어맞고 얼빠진 표정으로 나란히 주저앉은 박대호와 이화빈을 바라보며 송채은이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
“가정방문이요?”
한바탕 신나게 밖에서 놀고 들어와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고 단잠에 빠진 아이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박대호가 물었다.
“네. 오늘 아이들이 하교할 때 각자 맡은 아이들의 집으로 함께 돌아가서 주무시고 다음 날 아침 아이와 함께 등교해 주시면 됩니다.”
“와, 여기 미션 빡세네. 아이들 하교하면 끝인 줄 알았더니 거기서부터 또 시작이잖아?”
박 PD의 설명을 듣고 있던 박대호가 중얼거렸다.
“원래 육아란 게 끝이 없죠.”
“아무리 리얼예능이라도 너무 그렇게 대놓고 절망 편이면 시청자들이 싫어한다고요. 요샌.”
박 PD의 말에 송채은이 투덜거렸다.
“이참에 산 좋고 물 좋은 산골라이프는 어떤지 반나절 체험한다고 생각하세요.”
“왜 저 소리가 불길하게 들리냐고 난.”
박대호가 중얼거렸다.
“촬영팀이 함께 들어가는 대신 각 가정의 동의 하에 집 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내다 오시길 바라요.”
“촬영팀이 있어도 딱히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 같은데.”
박대호의 중얼거림에 대답하는 대신 박 PD가 말을 이었다.
“자 그럼 각자 맡으실 아이들을 발표할게요. 박대호 씨는 가람이네, 송채은 씨는 하담이네, 화빈 씨는 은오네, 그리고 재이씨는 세린이 세빈이네.”
“왜 저만 두 명···.”
“재재님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하세요.”
박 PD의 말에 재이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빠빠-.”
자신들을 내려주고 멀어지는 스쿨버스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던 재이는 두 남매의 손을 하나씩 잡으며 말했다.
“그럼 들어갈까?”
세린이와 세빈이 남매가 사는 집은 읍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크고 작은 장독대가 한쪽에 모여있는 마당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직업이 도예가라고 하는 할머니의 공방이 자리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일러 시간을 맞춰 두었던 듯 따뜻한 실내 공기가 추위에 지친 몸을 감쌌다.
“아앗 세빈아 들어가기 전에 손부터 씻어야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곧장 제 장난감을 향해 뛰어가려는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세린이와 함께 손부터 씻기고 나온 재이는 그제야 새삼 집 안을 둘러보았다. 할머니와 세린이, 세빈이 세 식구가 살기엔 그리 좁지도 크지도 않은 집 안은 구석구석 할머니의 손길이 닿아 아기자기하고 정갈한 느낌이었다.
“할머니 언제 오시니?”
“찡구 끝나면 오신댔어요.”
TV를 켜며 세린이가 말했다. 두 아이의 보호자인 할머니는 오늘 아이들의 일일 선생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손님 맞을 준비를 위해 일부러 읍으로 외출을 하셨다고 했다.
“재재님 저 배고파요.”
“나도요 나도요.”
“어? 어 그래. 잠깐만. 뭐 먹을 게 있나 좀 볼까?”
재이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뭐 좀 간단히 먹일 게 없을까 고민하며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다.
‘와··· 할머니 주부력 만렙.’
재이는 냉장고 안을 훑어보며 내심 감탄했다. 각종 밑반찬과 여러 가지 채소, 신선한 우유와 과일까지. 그야말로 재이가 꿈꾸는 이상적인 냉장고의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애들 먹이는 데 진심이시라더니 진짠가 보네. 재이는 출발하기 전 제작진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일단 뭐라도 좀 해서 먹을까?”
“와 재재님 요리도 할 줄 알아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묻는 세린이의 말에 재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선생님 요리 되게 잘해.”
“세린이도 잘해요.”
“뭐? 세린이도 요리할 줄 알아?”
고작해야 아직 여섯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무슨 요리를 할 줄 안다고. 싶은 생각에 놀라서 돌아보자 세린이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힘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기다려봐요. 재재님한테 요리 해 줄게요. 뭐 먹고 싶어요?”
“어?”
“뭐 먹고 싶으냐고요. 얼른 말해요, 할머니 오기 전에 만들어 줄게요.”
“티본 스테이크···”
“티봉.. ”
“아니고, 피자. 근데 세린아 너 진짜 요리···. 아.”
설마 진짜 주방에서 요리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싶어서 물으려던 재이는 제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뛰어간 세린이가 장난감 상자에서 점토 놀이 세트를 끄집어내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달칵
“얘들아 할미 왔다!”
재이가 잠깐 세린이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현관문이 열리며 두 남매의 할머니가 안으로 들어왔다.
“꺄아아- 할머니!”
“하무이이!!”
“안녕하세요. 한재이라고 합니다.”
돌고래 소리를 내며 한달음에 뛰어가 할머니의 팔다리를 제각각 끌어안는 남매를 보고 있던 재이가 한 박자 늦게 허리 굽혀 꾸벅 인사했다.
“어째 애들 선생님이 오신다더니 아가가 왔어. 그래, 우리 재이 학생은 지금 몇 살이야?”
“여···열여덟입니다.”
“열여덟. 아이고 고것 참 똘망똘망하게도 생겼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배고프지? 어여 들어가서 밥 먹자. 할미가 오늘 맛있는 거 해 주려고 이것저것 많이 사 왔어.”
그제야 재이는 할머니가 잠깐 내려놓았던 장바구니를 발견했다.
“이리 주세요. 제가 들게요.”
“아따 우리 재이 힘이 아주 장사네. 그래, 그거는 거기 그냥 두면 돼. 자자, 너는 이제 저기 가서 앉아있어. 할미가 후딱 밥 해 줄 테니까. 잠깐 저기서 놀고 있어.”
“아 저도 도울···”
“어허, 돕기는.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재이 너는 쩌어그 가서 애들하고 놀아.”
재이는 자신을 주방 밖까지 밀어내는 할머니의 손길에 속수무책 뒤로 밀려나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겨우 자신의 어깨까지밖에 안 오는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시는 거지 싶어 잠시 멈춰 서 있으려니 그새 냉장고를 뒤적인 할머니가 턱 하고 양손 가득 무언가를 안겨 주시며 말했다.
“감말랭이 좋아하니? 여기 김부각도 좀 있다. 이건 뻥튀기. 장에 갔더니 마침 팔더라고. 내 장담하는데 뻥튀기는 여기 것이 으뜸이야. 저녁 준비하는 동안 배고플 테니 일단 이거라도 좀 먹고 있어.”
이것저것 한 아름 안겨주시곤 바쁜 걸음으로 주방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재이가 양손 가득 먹거리를 들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거실 한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세린아 세빈아 이거 먹을래?”
“와 나 뻥튀기.”
“나는 말랭이 주세요.”
아이들이 앞다퉈 자기들이 좋아하는 주전부리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주방 쪽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방 밥 먹을 거니까 너무 많이들 먹지 마.”
재이는 그 잔소리를 들으며 감말랭이를 하나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달콤하고 쫀득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자 왠지 가슴 한켠도 함께 말랑하게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재재님 여기요.”
시선을 돌려보니 세린이가 그 새 한 상 차려놓고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와, 대단한데? 이게 다 뭐야?”
“피자랑 우유랑. 뻥튀기랑 말랭이랑. 사과랑 밥이요.”
어딜 어떻게 봐도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 컬렉션인 세린이의 한상차림에 재이가 웃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음 뭐부터 먹을까.”
“피자랑 우유요. 우유 많이 마시면 키 커요.”
“그래? 그럼 우유부터 마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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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밥 먹자!”
주방에서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재이는 후닥닥 뛰어가 할머니 대신 상을 들어 거실로 옮겼다. 자신이 없을 땐 세 식구가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을 동그란 상에 한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급하게 하느라 뭐가 없네. 그래도 많이 먹어. 모자라면 더 줄 테니까 말하고.”
“아아.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 뭐가 없다뇨··· 제가 이렇게 잘 얻어먹은 거 멤버들이 알면 다들 자기들이 여기 오겠다고 아우성 칠걸요.
재이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밥그릇 한가득 소복하게 쌓인 흰 쌀밥을 한 숟갈 크게 떠먹었다.
이게 얼마 만에 제대로 먹어보는 밥인가.
게다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해 주는 집밥이라니.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지금껏 그 험난한 스케줄을 헤쳐 온 것이었구나.
감동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재이의 젓가락질이 빨라졌다.
‘제철 나물에 된장찌개에 불고기와 생선구이까지. 할머니 뭐가 없다니 대체 뭐가 없는 거죠. 아 닭가슴살과 삶은 달걀이 없네요. 안타깝지만 어쩌겠습니까. 어른이 주셨는데 감히 반찬투정을 할 순 없잖아요? 주시는 대로 감사히 먹어야죠. 석관이 형 그렇죠? 윤 실장님 괜찮죠?’
멤버들의 식단조절을 책임지고 있는 석관과 활동 기간 중 체중이 늘기라도 하면 각오하라고 으름장을 놓던 VD실 윤효민 실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재이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녀석아 밥만 그렇게 먹으면 쓰니. 여기 이거 좀 먹어봐라. 이게 맛있는거야. 아 이것도. 아 그리고 이것도. 아이고 체할라. 물도 좀 마시면서 먹어. 여기 숭늉 있다.”
할머니가 잔소리와 함께 반찬 그릇을 이것저것 재이 앞에 끌어다 놓아 주셨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상에 재이 앞쪽으로만 접시가 빽빽했다. 제게도 진짜 할머니가 계셨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재이로서도 리온으로서도 난생처음 느껴보는 생경한 기분에 재이는 멀거니 눈만 깜박였다.
“에엥? 하무이 내 껀데. 그거 내 꺼.”
“재재님 요만큼만 주고 세빈이랑 세린이도 요만큼씩 먹고. 재재님이랑 똑같이 먹다니 우리 세빈이 대단한데?”
할머니의 관심이 재이에게 쏠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투정하는 둘째를 능숙하게 달래며 할머니가 재이에게 말했다.
“많이 먹어라. 아휴 그렇게 말라서 쓰겠니. 얼른 먹고 한 그릇 더 먹어. 밥 많이 해 뒀다.”
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이미 양 볼이 터져라 음식을 쓸어 담고 우물거리던 재이는 대답 대신 눈썹을 내려뜨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밥공기 두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남김없이 모두 먹고서야 할머니의 ‘더 먹어 공격’은 조금 잦아들었다.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고 배를 두드리자 이번엔 체하면 안 된다고 매실차를 내어주시며 한 사발 다 마시라고 옆에서 지켜보며 재촉하시는 할머니에게는 어지간한 재이도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손님이 그런 거 하는 거 아니라는 할머니와 한참 옥신각신한 끝에 아이들을 씻기기로 한 재이가 아이들을 씻겨 내보내고, 자신도 씻고 나오자 바깥은 이미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재재님 나 자장자장.”
피곤한지 눈을 비비며 자신의 옷깃을 잡아끄는 세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방으로 들어가자 아이들 방에는 어느 틈에 하신 것인지 이미 이부자리가 깨끗하게 깔려 있었다.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왔어?”
“네. 누나 잔다고 너희도 빨리 자래요.”
“그래 그럼 우리도 자자.”
세빈이 옆에 비스듬히 누운 재이가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노래 불러줄까?”
“음. 아무거나. 재재님이 좋아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노래···.’
재이는 잠시 생각했다.
이윽고 조용한 실내에 재이의 목소리가 잔잔히 울려 퍼졌다.
푸른 나뭇잎을 간질이듯 스치며
하얀 햇살에 나부끼는 웃음처럼
산들 한 바람이 귓가에 속삭이네
아가야 잘 자렴
아가야 잘 자렴
.
.
리온이 기억하는 자장가였다.
기억하는 언어도 기억하는 풍경도 아니었지만 잠든 아이의 조용한 숨소리만이 울리는 따뜻하고 포근한 잠자리가 주는 느낌만은 비슷했다. 세빈이 잠들고도 한동안 그렇게 재이의 노랫소리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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