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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진짜구나 싶은
“이야 잘생겼다!”
“누구네 팀 리더인지 혼자 얼굴에서 빛이 나네, 빛이 나.”
“초장부터 제대로 찢었네. 찢었어.”
“저렇게 보니까 차인혁이 키가 크긴 크구나.”
“우리 차 리더가 어디 가서 비주얼로 안 꿇리지 그럼 그럼.”
숙소 거실 여기저기 자신의 고정석에 편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 TV 화면을 바라보던 멤버들이 제각각 한마디씩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스케줄이 아무리 바빠도 되도록 멤버들이 나온 프로그램은 다 같이 모여 모니터링 하는 것은 스텝 업 초반부터 이어져 온 암묵적인 룰이었다. 각자 진행하고 있는 개인 컨텐츠도 짬이 날 때마다 모여서 돌려보고 의견을 주고받곤 했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잡담이나 서로에 대해 갈굼이었지만 그래도 다 같이 모여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어딘지 속 시원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쌓아두지 않는 것. 그것이 그동안 함께 생활해 오면서 멤버들이 자신들과 가장 잘 맞는다고 느낀 소통의 방법이었다.
TV 화면에선 [We are Leaders], 리더십을 주제로 아이돌 그룹의 리더들을 모아 편성한 TVM의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었다. 참가자는 차인혁을 포함한 여섯. 이미 데뷔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아 올린 중견 그룹부터 이제 갓 데뷔한 따끈따끈한 신생 그룹까지 적게는 둘, 많게는 열 한 명의 멤버를 통솔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서로 방송국을 오가며 그럭저럭 안면은 익힌 사이이지만 이렇게 단독 프로그램에서 공연하는 것은 처음인 상황.
덕분에 모두가 모인 스튜디오에는 지울 수 없는 어색함이 짙게 깔렸다. 그룹의 색깔도 각자가 처한 상황도 제각각이지만 결국 대중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공통의 먹잇감을 놓고 경쟁하는 사이. 겉으로는 모두 여유로운 척 웃고 있지만, 스튜디오 안은 경계와 긴장으로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첫 모임의 분위기를 예상한 듯 제작진은 출연진의 짤막한 인사와 자기소개 타임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이동을 제의했다.
장면이 바뀌고 화면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농구 코트였다.
“오 마이··· 설마 농구 시킨 건 아니지?”
엠케이가 물었다. 건강한 몸뚱이 하나가 밑천인 아이돌에게 격렬한 상호접촉이 필요한 스포츠는 시키지 않는 것은 상식에 가까웠다. 자칫 부상이라도 당하면 당장 계획되어 있는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팬덤간 불필요한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가볍게 몸부터 풀고 시작하죠.
제작진이 제안한 것은 [3점 슛 내기]. 3x3이라도 시작될 줄 알고 긴장한 채 TV를 지켜보고 있던 멤버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 뭐야 차인혁의 현란한 드리블을 보는 줄 알았더니.”
“받고 환상적인 블로킹도.”
“거기에 덩크슛으로 마무리하면 게임 끝이지.”
“안타깝네. 제작진이 차인혁 쓰는 법을 몰라.”
“그러게 저건 워낙 단단해서 막 굴려도 되는데 사실.”
멤버들이 속내와는 다른 아무 말을 쏟아내는 사이 게임이 진행되었다. 세 명이 한 팀을 이룬 팀 대항 형식이었다. 차인혁이 속한 팀의 멤버는 멤버가 열 두 명에 달하는 대형그룹 더블헥사곤의 선겸과 스텝 업에서 이미 한 번 공연한 적이 있는 태영기획 소속 신인 그룹 RS6의 황재민이었다.
- 잘 부탁해.
게임에 들어가기에 앞서 팀원들 간의 짧은 작전타임에 선겸이 인혁과 황재민에게 먼저 인사했다.
“와 선겸선배님 진짜 엔젤미소”
“그러게. 음방때 오며 가며 인사만 했었는데. 저렇게 보니 진짜 이미지 좋으시네.”
더블헥사곤의 리더 선겸에게 멤버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우리 팀에도 저런 치유 계가 한 명 필요한데.”
“우리도 있잖아. 힐러.”
남궁찬이 하는 말에 이환이 은규를 힐끔 쳐다보곤 말했다.
“심은규가 1렙이면 선겸 선배님 이미 만렙이신 듯.”
“와. 역시 이환, 배신의 아이콘. 다른 팀 리더 칭찬하자고 같은 팀 멤버 후려치는 거 봐.”
“여기서 인성 보이는 거지. 근데 후려치는 거 아니고 이건 그냥 팩폭아님?”
“야 그만해라, 팩폭도 엄연한 폭력이야.”
“엠케이 네가 제일 나빠.”
은규가 안고 있던 쿠션을 엠케이에게 집어던졌다.
“···헐.”
“와.”
은규와 엠케이가 투닥거리는 사이 TV를 보고 있던 나머지 멤버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저거 누구?”
“글쎄 내가 아는 누구랑 되게 닮았는데.”
“쩐다. 근데 신기하네. 우리 리더랑 얼굴이 존똑이네.”
던지는 족족 손끝을 떠나 포물선을 그리며 네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슛, 그리고 그 연속골의 주인공이 차례로 화면에 클로즈업되었다. 태연한 얼굴로 농구공을 집어 들어 완벽한 포즈로 슈팅을 반복하고 있는 차인혁의 모습이 화면 가득 잡혔다.
“야 이거 뭐 닮은꼴 찾기 그런 거야?”
“야야, 차인혁, 저 사람 너랑 되게 닮았다. 조 PD님은 어디서 저런 분을 찾아 섭외했대?”
재이와 남궁찬이 태연한 얼굴로 자신을 돌아보며 묻는 말에 차인혁이 내뱉었다.
“시끄럽거든. 헛소리할 거면 들어가 잠이나 자던지.”
“와 저 막말 보소. 차인혁 너는 이참에 선겸선배님 좀 보고 배우고 와ㄹ···.”
이때다 싶어 잔소리를 내뱉으려던 재이는 화면에서 들려오는 고함에 그대로 굳어 TV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는 조금 전에 세상 선한 얼굴로 자신보다 어린 후배들에게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네던 선겸이 인혁에게 던져 줄 공을 주우러 다니며 소리 지르고 있었다.
“인혁아! 집중! 집중해! 야 재민아! 빨리 움직여! 인혁이 더 쏠 수 있을 것 같다고!!
으아악! 차인혁 좋아! 조금만 더!!! 잘한다, 잘하고 있어!!!”
이마에 푸른 핏줄이 돋을 정도로 열심히 소리치고 있는 선겸의 얼굴이 화면에 크게 클로즈업되자 재이가 중얼거렸다.
“···선겸 선배님 열혈 캐릭터셨던 거야?”
“와 저 목청 무엇? 체육관 지붕 뚫릴 듯.”
“그 와중에 차인혁 계속 득점 중인 거 실화냐.”
“차 리더 평정심 대박···”
“리얼 옆에서 폭탄 터져도 슛 넣고 있을 듯.”
화면에는 흥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선겸과 그런 선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공을 연계해 주지 못해 선겸에게 혼나고 있는 황재민, 그리고 그 둘의 부산스러움에도 아랑곳없이 슛을 연달아 성공시키고 있는 차인혁의 모습이 차례차례 비쳤다.
멤버들이 화면에 집중한 사이 시간이 다 됐음을 알리는 버저가 울리고 결과가 발표되었다. 물론 결과는 차인혁과 그가 속한 팀의 압승. 승리를 알리는 제작진의 말에 차인혁이 씩 웃는 것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되었다.
“와 분위기.”
“조 PD님 초반부터 차인혁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님?”
“그러게, 편집에서 숨길 수 없는 사심이 느껴진다.”
녀석들의 사심 가득한 투덜거림과 함께 화면이 바뀌며 다음 장면으로 이어졌다.
- 멤버들에 대해 소개해 달라고요?
되묻는 목소리들과 함께 의자에 홀로 걸터앉은 여섯 리더의 모습이 화면에 교차 편집되며 다음 코너를 소개하는 자막이 떠올랐다.
[리더가 소개하는 나의 팀]
“어? 쟤네 벌써 한 명 나간 거야?”
“소문엔 데뷔하기 직전에 들이받고 나갔다던데?”
“그래서 6인데 다섯밖에 없구나.”
RS6의 리더 황재민이 멤버들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자신을 제외한 멤버 네 명의 소개를 하다 말고 울컥해서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보고 있던 멤버들이 수군거렸다.
“좀 그렇다. 나쁜 애들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한재이 니가 그런 말 하니까 왜 기만 같지?”
“아 왜 시비야. 나 진짜 좀 착잡해서 한 말인데.”
“한재이가 착잡이라니. 내가 오늘 피곤하긴 한가보다. 환청이 들리네.”
자신의 말에 이죽대는 이환의 얼굴에 쿠션을 던져주며 재이가 말했다.
“그렇잖아. 어쨌거나 다들 데뷔 하나 보고 달려왔을 텐데. 나간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남은 사람들은 무슨 죄야.”
“하필 팀명도 rising stars 6일 건 뭐야. 풀네임 듣는 순간 빼박 나머지 한 명은 어디 있느냐고 찾을 것 같잖아.”
“마지막 하나는 팬분들 아니었어?”
“야 요새 그런 거 안 먹혀.”
투닥거리는 와중에 화면 속에서 기어코 눈물을 떨구고 있는 황재민을 바라보던 은규가 중얼거렸다.
“내가 나가면 우리 팀에도 저렇게 울어 주는 사람 있을까.”
“있겠니.”
“말이 되는 소리를.”
재이와 인혁이 즉각적으로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녀석들이 뒤늦게 한마디씩 보탰다.
“저 봐라, 차인혁이랑 한재이가 지구 끝까지 잡으러 갈걸.”
“아, 나 울 것 같긴 해. 잡혀 온 심은규의 나머지 인생이 불쌍해서.”
“심은규 그런 감성으론 여기서 못 버틴다, 알지?”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궁금해하는 것도 죄냐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야유에 은규가 버럭하자 주변에서 일제히 그렇다는 대답과 함께 쿠션과 옷가지가 날아들었다.
- 저희 멤버들이요?
화면이 바뀌며 차인혁의 잘생긴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심은규를 응징한다며 복작대던 녀석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화면 너머에서 들려오는 인혁의 목소리만이 조용해진 실내에 울려 퍼졌다.
- 웃긴 녀석들이죠. 시끄럽고 산만하고. 아마 다들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걸요. 조용하다가도 누가 한마디 하면 기다렸다는 듯 와글와글.
[PART.Y에서 리더의 역할은?]
- 딱히 제가 할 일이 없어요. 다들 알아서 잘하거든요. 같은 나이라 그런지 누가 끌어주고 밀어주고 그러는 것보단 그냥 서로 알아서 하는 편이죠. 아, 아침에 깨우는 것만 빼고요.
몇몇이 정말 드럽게 안 일어나거든요.
이가 갈린다는 듯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TV에 시선을 고정한 이환과 엠케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멤버들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 크게 랩댄스 라인에 저 포함해서 셋, 보컬 라인에 셋으로 갈라지는데요. 랩댄스 라인에서 중심이 되는 게 엠케이라는 친굽니다. 얼굴은 나름 귀염상인데 한 성격 하죠. 고집도 세고. 밀어붙이는 힘도 좋고요. 저희 팀 안무 아이디어는 이 친구 머릿속에서 나온 게 대부분이에요.
- 저희 데뷔곡 도입부 아이디어도 이 친구 머리에서 나온 거예요. 기발하죠? 가끔 그 머리통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궁금해진다니까요.
왠지 서늘하게 들리는 인혁의 마지막 말에 엠케이가 목을 움츠렸다.
- 그리고 남궁찬. 팀 내 최장신이에요. 저보다도 클걸요. 근데 성격은 딱 동네 아주머니 스타일이라 촬영 같은 데 가도 얘 혼자 온갖 주변 사람들하고 어느샌가 말 트고 수다 떨고 있어요. 친화력 하나는 타고났죠.
- 보컬 라인엔 세 명 있는데요. 우선 심은규. 이 친구가 작곡 담당이에요. 평범하게 보여도 작곡센스가 되게 좋거든요. 굉장한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될 텐데 멤버들이 하도 드세서 애가 항상 좀 기를 못 펴고 사는 느낌이죠.
- 그리고 이환.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성격 되게 까칠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샌 뭐 그만저만해요. 아무래도 애들하고 이리저리 부대끼면서 모났던 곳이 아주 둥글어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런 걸 어려운 말로 교화라고들 하지.”
화면을 보고 있던 재이가 툭 내뱉자 기다렸다는 듯 엠케이와 남궁찬, 은규가 거들었다.
“모난 돌 정 때리느라 우리가 고생 좀 했지 그럼.”
“솔까 이환 저 성질머리로 우리 아니었으면 데뷔 못 했을 것 같지 않냐.”
“인정. 우리가 딴 건 몰라도 이환 하나 사람 만들어 놓긴 했지.”
“야 누가 들으면 내가 천하의 망나니였는 줄 알겠다!”
이환이 버럭하자 그걸 이제 알았냐고 너 우리 아니었으면 그냥 노래 잘하는 동네 망나니였다며 놀려대는 멤버들 틈에서 은규가 소리쳤다.
“야 조용히 좀 해 봐봐. 차인혁이 한재이에 대해 말하잖아.”
그러자 다른 녀석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한 마디씩 보탰다.
“오오오. 차인혁, 한재이에 대해 뭐라고 할 것인가?”
“설마 권력에 굴복하진 않겠지? 잊지마, 우리나라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그래도 저 차인혁도 목숨은 하나인걸.”
“원래 저런 놈들이 더 해. 잊지 마라. 한재이랑 단독 스케줄 제일 먼저 한 게 누구였는지.”
- 마지막으로 한재이. 얘는 음.
화면 속 차인혁이 뜸을 들였다.
- 두 번째예요. 누굴 뛰어넘고 싶다고 생각한 게요. 같은 팀 멤버가 목표라니 솔직히 좀 많이 자존심 상하긴 하는데요.
- 있잖아요. 그런 녀석들. 아 이건 진짜구나, 싶은.
눈썹을 모으며 이야기 하던 인혁이 피식 웃었다.
- 그래도 두고 보세요. 둘 다 뛰어 넘어 보일 테니까.
잘생긴 얼굴이 그림같이 씩 웃었다.
“와 뭐야 혼자 잘난 척 오져요.”
“좀 감동할 뻔하다가 마지막에 느끼해서 죽는 줄.”
“기승전 내가 제일 잘났어.”
“멤버 소개하랬더니 대놓고 선전포고하는 패기 보소.”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녀석들의 틈바구니에서 재이가 인혁에게 말을 걸었다.
“무리하지 말고 그냥 쭉 존경해도 돼. 알지?”
“좀 닥쳐 줄래?”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는 재이에게 인혁이 니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아 왜. 사람이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데. 괜히 찐한테 덤볐다가 뼈도 못 추리면 어쩌려고. 푸흐흑.”
“내가 미쳤지 저런 말은 왜 해서.”
인혁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저런 걸 뭐라고 하더라?”
옆에서 지켜보던 녀석들이 숙덕댔다.
“자업자득?”
“자승자박?”
“입이 방정?”
“아 다들 시끄러워 다 봤으면 좀 꺼지던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인혁이 버럭 소리쳤다. 멤버들은 권력과 인성의 상관관계를 논하며 차인혁의 발차기를 피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
“솔직히 말해서 이건 진짜 무리수 같은데.”
재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언제나처럼 가차 없는 그 말투에 이환과 은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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