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88화 (88/224)

#88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첫 방송 모니터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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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콘서트라니, 본인에게만 너무 유리한 공약 아니냐고. 입대하면서 화제성까지 싸그리 다 챙겨 갈 생각인가. 사람이 참 양심도 없지.”

“미리 얘기 맞춰 두신 것 아니었어요? 선배님이 바로 멘트 치시길래 사전 조율 끝난 얘긴 줄 알았는데.”

차가운 새벽 공기에 스태프가 건넨 따뜻한 차를 손에 쥔 채 투덜거리는 홍리세에게 재이가 물었다.

“조율은 무슨. 그렇다고 기자들 다 보는 앞에서 어 그건 좀, 할 수도 없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네 말대로 미리 얘기 좀 맞춰 놓을걸.”

믿었던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혔지 뭐야.

홍리세의 투덜거림을 들은 재이가 웃었다.

“너무하시네. 팬 미팅 때마다 노래 부르면 드디어 가수 데뷔 초읽기냐고 다음 날 연예 기사란 도배하시는 분이.”

차상혁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그건 내 팬들 앞이고.”

“이것도 소장님 팬분들 앞에서 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차상혁의 말에 홍리세가 이번엔 재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하여간에 한마디도 안 져. 재이야, 케이엠에서 오디션 볼 땐 말발도 보냐. 너희 소속사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저렇게 뻔뻔해?”

“왠지 지금 저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넘어간 것 같은 느낌인데…….”

“이걸 그냥 안 넘기는 거 보니 너도 케이엠이 맞긴 하구나.”

“하, 하하…….”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재이의 손에 들린 대본이 너덜너덜한 것을 힐끔 쳐다본 홍리세가 재이에게 물었다.

“오늘 씬, 준비 잘해 왔어?”

“최선을 다했죠.”

“항상 당당해서 좋다니까.”

“칭찬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는 재이에게 홍리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직 감사하지 말고. 당당해도 될 만큼 잘해 왔는지 구경할 거니까. 상혁아, 조심해라, 얘 눈 보니까 오늘 잘못했다간 너 잡아먹히겠다.”

“아직 백 년은 이르죠.”

“아유 얄미워. 재이야, 최선을 다해라. 저 인간 당황하는 꼴 좀 보자.”

“누나 차별이 너무 심하신데요? 재이한테는 당당한 게 좋다더니.”

“넌 좀 과하고.”

하, 하하…….

또다시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사이에 낀 재이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이 촬영 준비를 끝낸 스태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스태프의 목소리에 차상혁과 재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 볼까?”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너…….”

“가까이 오지 마.”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여선욱을 바라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주태온이 말했다. 그의 붉은 머리카락이 건물 그림자에 가려 짙은 어둠에 물들었다.

“네가.”

“맞아. 내가 거기서 살아남았어.”

나직하게 울리는 담담한 목소리.

그렇게 백방으로 찾아다녔는데 사실 바로 옆에 있었다고?

여선욱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낮게 물었다.

“어째서 지금껏 잠자코 있었던 거지? 우리가, 아니 R이 찾고 있다는 거 알고 있었잖아?”

“괴물이니까.”

주태온이 조용히 중얼거린 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그를 바라보던 여선욱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넌 피해자일 뿐이야.”

“아니. 당신은 몰라.”

중얼거린 주태온이 여선욱의 손에 들린 마이크로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돌렸다.

“그거, 확인해 봐. 그리고.”

잠시 망설이던 그가 툭, 내뱉었다.

“누나를 부탁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난 주태온은 이제 완전히 어둠과 동화되어 있었다.

무거운 정적이 내리 깔렸다.

“컷.”

최 피디의 사인이 떨어지자 뒤늦게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와, 몰입 장난 아니네.”

“신인 맞아? 저 존재감 어디서 나온 거래? 천잰가?”

“쟤 대본 너덜거리는 것 좀 봐라, 그런 소리가 나오나.”

“아니 근데 연습한다고 다 저 정도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무서운 거지. 재능도 있는데 노력까지 한단 거잖아. 잘 봐 둬라, 저런 애들이 뜬다.”

차상혁의 촬영을 구경하러 주변에 모여 있던 배우와 스태프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이는 그제야 주태온에 몰입하고 있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오는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좋아. 그 정도면 당당하게 굴어도 되겠어.”

홍리세가 재이에게 말했다.

“와 저 칭찬 받은 거예요?”

재이가 웃으며 묻는 말에 홍리세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너무 우쭐대지 마. 어디까지나 신인치고 잘했다는 얘기니까.”

“그래, 나한테 비비려면 백 년은 멀었지.”

“차상혁 너는 긴장 좀 하고.”

불쑥 끼어드는 차상혁을 구박하는 홍리세의 말에 재이가 웃었다.

“선욱 씨, 태온아, 한 번만 더 가자. 카메라가 선욱 씨 뒤쪽으로 돌려서 거기서부터 태온이 잡는 거로. 태온아, 이번엔 처음에 들어갈 때 약간 더 겁에 질린 것 같은 느낌을 살려서 가 보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방금 찍은 영상을 확인한 최 피디가 상혁과 재이를 불러 지시를 쏟아 내곤 곧바로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 누나를 부탁해.

언제나의 그 심드렁한 목소리가 아닌, 여러가지 감정으로 꽉 찬 목소리. 세상만사에 관심 없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기 힘든 표정의 주태온이 모니터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이야, 제대로네. 느낌 좋은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최 피디 뒤에서 카메라 감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 피디는 시선을 모니터에 집중한 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 만들어 올 줄은 몰랐는데.’

최 피디가 보기에 한재이는 꽤 괜찮은 녀석이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매 신 고민해서 제 방식대로 풀어 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 최 피디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게 또 기발하기도 했다. 차상혁에게 무턱대고 맞서지 않고 그냥 그가 만들어 낸 흐름에 넙죽 올라타고 있는 조금 전의 신처럼 말이다.

대개 신인의 경우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이 맞붙는 장면에서는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힘겨루기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경험이 부족한 쪽이 다른 한쪽에게 먹히는 것으로 끝이 나 버렸다. 역량 차이가 있는 이상 아무리 리테이크를 한다 해도 결국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다.

그러니 저 홍리세도 맞붙으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평의 차상혁을 상대로 화면 안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대신, 그가 만들어낸 호흡에 편승하는 쪽을 택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건 그만큼 저 녀석이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호랑이랑 싸우는 대신 등에 올라타 버릴 생각을 하다니.’

혹시 배우로 전향할 생각 없으려나.

나중에 한 번 찔러나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최 피디는 모니터 속 영상을 다시 한번 훑었다.

* * *

드디어 [불망동 탐정 사무소]의 첫 방영일.

재이는 지금이라도 석관이 형한테 부탁해서 촬영장에 좀 데려다 달라고 할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거실의 제 자리들을 찾아 앉은 다섯 멤버가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야, 드디어 한다. 오오오. 인트로 느낌 있네.”

거실 바닥에 반쯤 드러누운 남궁찬이 한마디 하자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나머지 멤버들이 와르르 한마디씩 내뱉기 시작했다.

“오오, 우리 태온이 오프닝에 당당하게 한구석 차지했어.”

“철가방 깔고 앉은 거 너무 찰떡인데. 설마 저 안에 음식은 안 들었겠지 그치.”

“흑흑 한재이 기특하기도 하지. 언제 이렇게 떠서 드라마를 다 찍었냐. 이 형은 기쁘기 그지없다.”

“누가 이환 쟤 입술에 침은 묻히고 하는 말인지 확인 좀 해라.”

이럴 줄 알았으면 현장에서 촬영팀하고 같이 보겠다고 할걸. 편한 숙소에서 편하게 앉아 편하게 모니터링할 생각만 했지 저 화상들 생각을 못 했구나.

재이는 짧은 한숨과 함께 멤버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 배달이요.

“오오오오-!!!”

“드디어!!!”

주태온이 화면에 비치자 그의 등장을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에게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축구 경기도 아니고. 대체 왜들 저러냐고.’

재이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녀석들이 흥분한 듯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오오오, 주태온 간지 작살.”

“와 TV로 보니까 진짜 성격 더럽게 생겼다.”

“저 말투 저거. 저런 아르바이트생을 계속 쓰다니 사장님이 보살이신가?”

“저거저거 배우 본인 성질 나오는 거 아니냐.”

“와 몇 마디 안 한 것 같은데 내가 다 성질이 나는데? 중국집에 항의할까?”

신나서 떠드는 녀석들을 보고 있던 재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모니터링해 준다더니. 그냥 몰이잖아, 몰이.”

재이의 투덜거림에 인혁이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 말했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내 말이. ‘배달이요-’로 뭘 더 바라냐.”

“우리가 아무리 전문가여도 ‘외상값 먼저 주세요’만으론 얘기할 수 있는 거에 한계가 있는 법이야.”

“모니터링을 원하면 분량을 좀 더 따 와 봐.”

이때다 싶어 또다시 분위기를 몰아가는 멤버들의 수다를 듣다 못한 재이가 쿠션을 하나둘 집어 던지며 외쳤다.

“어휴, 됐으니까 그냥 좀 조용히나 해라들. 제발 좀!”

“오, 땡큐. 안 그래도 허리 아팠는데.”

“아이고 난 좀 누워야겠다.”

자신이 던진 쿠션을 피할 생각도 없이 오히려 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받아 든 멤버들이 제각각 더 편한 포즈를 찾아 눕는 것을 어이없이 쳐다보던 재이가 투덜거렸다.

“후반으로 갈수록 비중 늘어난다고.”

그 소리에 엠케이가 생각났다는 듯 재이를 돌아보며 맞장구쳤다.

“맞다. 나 작가님 인터뷰 봤어, 주태온이 히든카드라고.”

“와, 한재이 밖에서도 흑막 캐릭터야? 일관성 죽이네.”

“어쩐지 주태온 역할이 너무 잘 맞는다 싶더라니. 작가님이 한재이 보고 쓰셨대, 혹시?”

“아이돌이 드라마 데뷔를 최종 보스 역할로 하다니. 우리 그룹 이미지 괜찮을까.”

멤버들의 감탄 섞인 막말에 재이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태온 최종 보스 아니거든?”

“아 미안. 이거 스포일러였어?”

“아 좀, 아니라고요!”

짜증 난다는 듯 확 내지른 재이의 대답에 잠시 조용해졌던 멤버들 중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중간 보스인가 보다.”

“쉿. 스포하면 안 된다잖아.”

“와, 근데 저 포스로 중간 보스밖에 못 먹으면 최종 보스 얼마나 센 거야?”

“제작진이 너무 무리수 둔 거 아님?”

‘하아. 무간지옥.’

재이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본 인혁이 물었다.

“촬영장 밥 맛있냐?”

“어, 먹을 만해.”

“마실 건?”

“물.”

“부족한 건?”

“잠. …뭐야 지금 이거 스무고개야?”

재이의 물음에 인혁이 고개를 홱 돌리며 짧게 대답했다.

“아냐. 됐다.”

그런 인혁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재이가 중얼거렸다.

“뭐야. 신경 쓰이게.”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TV 화면에 집중한 멤버들이 서로 이러니저러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드라마에 빠져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딱히 더 물어볼 구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재이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이거였냐.”

재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앞에는 [배달이요- 음료수 드시고 하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와 함께 각종 음료와 간단한 스낵을 갖춘 커피차가 서 있었다. 한껏 오만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찍은 주태온의 등신대 포스터에는 ‘외상값은 PART.Y한테 받을게요.’라는 말풍선도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짜잔! 놀랐지! 그치!”

엠케이와 차인혁이 눈앞에 서 있었다. 재이가 어이없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 바쁜 거 아니었어?”

“나 [위아리] 끝나서 한가함.”

차인혁의 대답에 엠케이가 이어 말했다.

“환심이네도 4강부턴 팀당 패널 한 명이라고 해서 남궁찬이 갔잖아. 나도 딱히 할 일 없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재이가 뭐라 말하려는데 뒤에서 불쑥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진짜 닮긴 닮았네. 네가 차상혁이 동생이구나?”

최 피디였다. 재이는 엠케이와 시선을 교환하곤 인혁을 쳐다보았다.

‘어, 지금 그거…….’

아니나 다를까 인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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