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아메리카 레이드 파티 [6/6] (1)
“미국이요?”
“저희끼리요?”
“뭐 하러 가는데요?”
“근데 저 영어 못하는데요.”
장 이사가 대뜸 꺼낸 말에 아이들의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심 팀장이 흥분과 궁금함으로 눈을 빛내고 있는 여섯 명의 멤버들을 진정시키며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음반 작업 들어가면 아무래도 노출도도 떨어질 테니 이참에 바짝 찍어다가 너희 작업하는 동안 온에어 하면서 관심 유지시키는 전략으로 가겠다는 말이야.”
심 팀장의 말을 이어받은 장 이사가 덧붙였다.
“마침 M&NET 쪽에 파일럿으로 들어가려던 프로그램이 투자자 쪽에 문제가 생겨서 뻐그러질 것 같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그 얘기 돌자마자 박 이사가 득달같이 쳐들어가서 따낸 거야.”
“와, 우리 운이 되게 좋았던 거네요?”
설명을 듣던 이환이 감탄하며 내뱉은 말에 장 이사가 말했다.
“그걸 그냥 운이라는 한 마디로 퉁치면 그렇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우리 쪽만큼이나 M&NET 쪽도 너희랑 진행하는 게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보는 게 맞지. 막말로 그 시간대에 기존 작품 재방 삼방 틀어 대는 것보다는 제작비 조금 보태더라도 너희 이용한 신규 프로그램 론칭하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이 섰다는 뜻이니까. 사실 이런 일이 있을 때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가 단순히 ‘운이 좋았다’라고 판단하고 넘어가는 건 좋은 습관은 아니야. 이 바닥에서 운도 실력의 일부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니까.”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던 장 이사가 드물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자신감 가지라고 한 말이니까 나한테 죄송할 건 없고.”
장 이사의 말에 어깨를 움츠리던 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말씀은 곧 이 기회 놓치면 앞으로 쉽지 않을 거란 뜻이네요?”
“한재이 날카롭네. 그렇지, 단독예능이니만큼 재미없으면 가차 없이 욕먹고 묻힐 각오는 해야 될 거고, 이번 기회 잘 못 살리면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M&NET이 다시 너희라는 선택지를 뽑을 가능성은 꽤 낮아지겠지. 이번에 너희 때문에 물먹은 다른 팀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테니 이때다 싶어 물어뜯을걸. 생각해봐라, 걔들 입장에서는 데뷔부터 지금까지 순탄하게 크느라 통통하게 살 오른 너희들이 얼마나 먹음직스럽겠냐.”
“으 살벌해…….”
장 이사의 마지막 말에 심약한 은규가 작게 한숨을 흘렸다.
“그래도 뭐, 따지고 보면 저희는 데뷔도 단독예능으로 했는데, 이거 하나 못하겠습니까.”
“차인혁 패기 좋네. 마음에 들어, 그렇지. 그 정도 마음가짐은 있어야지.”
장 이사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애초에 너희가 잘 못 할 것 같았으면 나나 대표님도 너희한테 배팅 안 했을 테니까. 당당하게 해. 당당하게.”
옆에서 듣고 있던 심 팀장이 덧붙였다.
“그래. 내가 데이터 말고 유일하게 믿는 게 이사님 감이거든. 다들 이사님 별명이 뭔지 알지?”
“개코…….”
“야야.”
심 팀장의 유도 신문에 넘어간 남궁찬이 눈치 없이 무심코 흘린 말에 옆에 앉아 있던 엠케이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찌르며 타박했다.
“아무튼, 자세한 사항은 M&NET하고 사전 미팅 잡히면 그때 다시 설명하게 되겠지만, 일단 지금 나온 타임라인하고 컨셉 먼저 공유할 테니까 궁금하거나 걸리는 부분 있으면 피드백 줘. 사전 미팅 들어가기 전에 그쪽하고도 몇 번 더 만날 거니까 그때 조율해 놓을 테니.”
심 팀장이 그 말과 함께 본격적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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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보내는 주겠는데 알아서 다녀라, 이건가요?”
“아앗, 한재이, 입, 입.”
브리핑이 끝나고 소감을 말해 보라는 심 팀장의 말에 대뜸 순도 100% 날것의 코멘트를 던지는 재이를 옆에 앉아 있던 인혁이 화들짝 놀라 제지했다.
“하하하, 하여간에 이 녀석 진짜 마음에 든다니까. 한재이 너 나중에 은퇴하고 할 일 없으면 회사에 취직해라, 내가 책임지고 키워 주마.”
재이의 말에 화를 내기는커녕 재밌다는 듯 웃으며 때아닌 스카우트 제의를 해 오는 장 이사에게 재이가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기왕 키워 주실 거면 은퇴한 다음이 아니라 그냥 지금 키워 주시면 안 될까요.”
“하여간에 한마디도 그냥 안 넘어가지. 그래그래, 그래서 이렇게 키워 주려고 하고 있지 않냐.”
장 이사의 말에 재이가 조금 전 끝난 심 팀장의 브리핑 내용을 떠올렸다.
‘미션으로 번 돈으로 미 서부 일주라니.’
“서바이벌이니, 경쟁이니 하는 자극적인 아이디어가 안 나온 건 아닌데. 이번 프로그램의 포커스는 어디까지나 너희들이라, 포맷에 너무 힘을 주면 그거야말로 그냥 자주 보는 흔한 예능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거든.”
“그런 것치고는 미션 수행으로 경비를 모은다든가, 거점마다 숨은 서포터를 찾는다든가 하는 건 충분히 흔하게 자극적인 느낌이 나는데요?”
“요새 그 정도 MSG도 안 치는 예능이 어딨다고. 그 정도도 없으면 시청자들이 밍밍해서 안 먹어.”
인혁의 지적에 심 팀장이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꾸했다.
“와 근데 미국이면 엠케이네 집에도 들르는 건가요?”
“너는 무슨 해외여행 안 가 본 티를 그렇게 팍팍 내냐. 미국 땅덩이가 얼마나 넓은데 어디서 어딜 들러서 와?”
“그래도 거기까지 가는데 아쉽잖아.”
순진한 얼굴로 묻는 은규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본 엠케이는 자신의 타박에도 드물게 은규의 편을 드는 이환에게 어처구니없다는 듯 대꾸했다.
“이번에 가는 데는 서부, 우리 집은 동부에 있다고.”
“그럼 촬영 끝나고 가면 되겠네? 그쵸, 장 이사님?”
재이가 자연스럽게 공을 장 이사에게로 넘겼다. 장 이사가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나 참. 프로그램 넣어 줬더니 노잣돈도 내놓으라네.”
“베푸실 땐 제대로 베푸시는 게 나중에 생색내시기 좋습니다.”
“허. 아니 심 팀장은 대체 언제 구워삶았길래 저 딱딱한 인간이 편을 다 드나?”
사무적인 어조로 슬쩍 재이와 멤버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심 팀장의 말에 장 이사가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반짝이는 녀석들의 눈빛에 못 이긴 척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촬영 무사히 마치고 나면 간 김에 뉴욕 한 번 찍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예스!!!”
“좋아!!!”
장 이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엠케이를 핑계로 촬영 후 공식적인 휴가를 허락받은 멤버들이 환호했다.
“잠깐 근데 엠케이 너 뉴요커였어??”
“와 막 맨햇뜬 한복판 같은 데 사는 거야?”
“차인혁만 금수저인 줄 알았더니 엠케이 플래티넘 수저였냐고.”
“아니거든. 아니거드은.”
흥분해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진땀을 빼는 엠케이를 쳐다보던 심 팀장이 말했다.
“장 이사님 말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촬영이 먼저라는 거 잊지 마라, 부디.”
그러자 재이를 비롯한 멤버들이 당연한 소리를 다 하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당연하죠.”
“맡겨 주세요. 저희가 또 할 땐 하잖아요?”
“시청률로 보답하겠습니다.”
“남궁찬 그건 너무 나갔다. 사람이 자고로 책임지지 못할 말은 하는 게 아니야.”
“엠케이야, 아까 장 이사님 말씀 못 들었냐. 사람이 패기가 있어야지, 패기가!”
와글와글하는 멤버들을 둘러본 심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래, 일단 의욕과 패기는 넘쳐 나는 거 확인했으니 이쯤 하고. 그럼 그 의욕과 패기를 모아서 앞으로 출국할 때까지 바짝 영어 트레이닝 좀 받자.”
그 말에 몇몇 멤버들의 얼굴에 와락 그늘이 드리웠다.
* * *
[데일리 엔터] M&NET과 파티가 만났다? 새 단독예능 [아메리카 레이드 파티 [6/6]]로 유쾌한 열아홉의 여행을 전한다.
[올컷연예] 파티 여섯이 아메리카 공략에 나섰다! M&NET 단독예능 [아메리카 레이드 파티 [6/6]]
[시사 엔터] 열아홉 청춘들이 떠나는 우당탕탕 좌충우돌 여행기 M&NET [아메리카 레이드 파티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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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아임 백!!”
내리쬐는 태양 빛 아래 양팔을 벌리고 소리치는 남궁찬과 엠케이를 다른 멤버들이 힐끗 쳐다보곤 모르는 척 자리를 옮겼다.
“야, 같이 가! 너희 말도 안 통하잖아!”
엠케이가 외친 말에 재이가 인혁을 향해 말했다.
“누군가가 시작부터 시비 거는 것 같은데 어쩔까.”
“저급 어그로는 무시가 답이지.”
“역시.”
픽업 전용 주차장을 찾아 이동하자 멤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담당 피디가 멤버들이 모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향후 일정에 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오늘은 낯선 곳에 갑자기 떨어진 여러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홈스테이 가정에서 직접 픽업을 나올 겁니다. 도착하시면 그대로 쉬시고 다음 날부터 일일 미션을 클리어해서 획득한 자금으로 움직이면 됩니다. 미션 수행에 실패하거나 정해진 시간 내에 클리어를 못 한 경우 페널티가 생길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질문 있습니다.”
재이가 손을 들었다.
“말씀하세요.”
“그러면 반대로 미션을 예상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클리어하거나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한 경우에는 추가 보상도 있나요?”
“오오 한재이 역시 입으로 게임을 배운 자답다.”
“손은 발컨 입은 신컨, 한재이의 위엄!”
멤버들이 재이를 향해 내려치기를 위한 올려치기를 시전하는 가운데 담당 피디가 대답했다.
“적극적이시네요. 매우 좋은 자세입니다. 네, 추가보상도 물론 있을 예정입니다. 그럼 파티 여러분께서 아메리카 레이드 공략에 성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담당 피디의 멘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함께 커다란 밴이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크래쉬캣 선배님들 데뷔곡이잖아.”
“헐.”
볼륨을 최대한으로 틀어 놓은 것인지 꽉 닫힌 차창 너머로도 시끄럽게 들리는 소속사 선배들의 히트곡에 멤버들이 다들 당황하고 있는 사이, 제작진과 멤버들이 서 있는 곳까지 다가온 차가 멈춰 서고 한 인물이 차에서 내렸다.
“*와, 너희들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멤버 중 최장신인 남궁찬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덩치의 청년이 건넨 첫마디에 심각한 영어 울렁증 환자인 이환과 은규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는 것이 보였다. 분위기가 미묘한 것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청년은 반가움의 인사를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이야, 너희가 크래쉬캣하고 같은 소속사인 거야? PART.Y part of you, 맞지? 진짜 반갑다. 으어어, 정말로 내가 이 일을 따낼 수 있을 줄 몰랐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가 따낸 거긴 하지만. 난 항상 우리 부모님이 자랑스러웠지만 진짜 오늘만큼 부모님이 홈스테이를 하신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다. 아 물론 혹시 크래쉬캣이 우리 집에 묵는 날이 온다면 이 기록도 갱신되겠지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하하. 근데 어때? 크래쉬캣 멤버들 실제로 본 적 있어? 에이미는 어때? 나 너희가 나온 [스텝 업]도 봤다고. 물론 에이미 나오는 부분만. 하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며 흥분한 듯 빠르게 내뱉는 청년의 말에 이환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처음의 그룹명 말고는 크래쉬캣이랑 에이미라는 말 빼고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에이미 ‘선배님’ 쿨하시지. 그리고 엄청 무서워.”
‘선배님’이라는 말을 한국어로 붙인 것 빼고는 첫마디부터 끝마디까지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대답하는 목소리에 이환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한 얼굴의 한재이가 덩치 큰 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분명 그냥 단어의 나열인 것 같은데, 뭐지 왜 저렇게 귀에 쏙쏙 들어와?’
이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행스럽게도 당황한 것은 이환뿐만이 아닌 듯했다. 멤버들을 대표해서 인사를 나누고 여행 내내 통역도 담당할 작정이던 엠케이도, 형의 커리어를 지켜보며 나름 예전부터 꾸준히 개인 지도를 받아 온 덕에 영어로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인혁도, 이환과 고만고만한 수준의 울렁증 환자인 나머지 녀석들도 다들 같은 표정으로 재이를 어이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오오오! 그래? 더 얘기해 봐. 더 듣고 싶어!”
“*일 먼저. 너희 집에 가자.”
한국어를 할 때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재이의 마이웨이 화법에 덩치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제 이마를 가볍게 치며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맞네, 일이 먼저지. 난 크리스. 너희들이 하룻밤 묵어가게 될 홈스테이에서 마중 나왔어. LA에 온 것을 환영해, 친구들.”
“*반가워. 난 재이야.”
“*재이, 발음하기 쉽네. 진짜 이름이야? 아니면 예명?”
“*진짜 이름. 재이.”
재이와 크리스가 통성명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멤버들이 하나둘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틈에 이환이 재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야, 너 뭐야. 영어 왜 그렇게 잘해?”
부러움과 놀라움이 뒤섞인 이환의 눈빛을 마주한 재이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너나 나나잖아. 새삼스럽게 그게 무슨 말이야?”
재이의 대꾸에 이환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까 보니까 완전 잘하길래. 혹시 너 우리 몰래 개인 레슨이라도 받은 거 아니야?”
“내 말이. 어떻게 처음 보는 외국인하고 그렇게 말을 잘할 수가 있어? 그것도 영어로.”
어느새 다가온 남궁찬이 불쑥 끼어들며 묻는 말에 재이가 별걸 다 묻는다는 듯한 투로 대답했다.
“영어고 한국어고 다 거기서 거기 아니야? 상대가 무슨 얘기 하는지만 파악하면 되는 거잖아.”
재이의 말에 이환이 남궁찬을 돌아보며 물었다.
“야, 너 지금 얘가 무슨 말 했는지 이해가 가냐? 나 뇌에 과부하가 온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나도 그래. 쟤 지금 우리나라 말 하고 있는 거 맞지?”
남궁찬이 머리를 쥐어 싸매며 대답했다.
“듣는 거야 들리는 단어로 눈치껏 때려 맞히는 거고, 말하는 건 떠오르는 대로 대충 내뱉으면 듣는 쪽에서 알아서 주워듣겠지. 내가 네이티브 아닌 건 서로 다 아는 사실인데.”
당연한 듯 내뱉는 재이의 말에 잠시 굳어있던 이환이 중얼거렸다.
“…헛소리가 분명한데 왜 저 인간 입에서 나오니까 그럴듯하게 들리는 거지?”
“그러게. 아, 안 돼. 설득당해선 안 돼. 저건 헛소리라고.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거였으면 세상에 영어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 한 명도 없게?”
이환에 이어 남궁찬까지 중얼거리는 것을 본 재이가 내심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대화야 통하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다국가 다민족에 더해 다종족까지 섞여 있는 동네에서 살던 리온의 기억 덕분인지 재이로서는 언어의 장벽 정도는 솔직히 심드렁했다. 재이가 보기에 대화야 서로 통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온갖 언어와 풍습을 가진 생명체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저쪽 동네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읽어 가며 적당한 어휘력으로 소통하는 것은 배운 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이나 다름없었다. 하물며 교단과 각국 정계를 오가며 먹은 눈칫밥이 몇 년인데. 문법이나 발음까지 단기간에 완벽하게 통달할 수야 없었지만 연기나 노래도 아니고, 이런 단순 회화쯤 어려울 게 없었다.
정 안 되면 통역 셔틀도 있는데 뭐.
엠케이와 차인혁을 힐끔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린 재이는 멤버들을 따라 크리스의 차에 올라탔다.
* * *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크래쉬캣의 히트곡 퍼레이드를 듣고, 따라 부르고, 혹은 듣다 지쳐 졸면서 공항을 벗어나 달리기를 한참.
“와, 우리 여행 안 가고 그냥 여기에 있으면 안 돼요?”
크리스의 차가 서서히 멈춰 서며 눈앞에 드러난 광경을 본 남궁찬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