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퇴출 1호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다-96화 (96/224)

#96

아메리카 레이드 파티 [6/6] (4)

“휘유, 속이 다 시원하네.”

제작진 중 한 명이 건넨 생수를 벌컥벌컥 마신 은규가 말했다. 재이의 뜬금없는 제안으로 시작된 기습 버스킹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재미있었다. 어딘지 못 미더워 보이던 크리스였지만 그의 기타 솜씨는 예상 밖이었다. 덕분에 한 곡만 하고 끝내려던 계획이 세 곡이나 불러 버렸다. 마지막엔 눈 뭉치처럼 불어난 구경꾼들 덕에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세 사람과 촬영팀은 이 지역 토박이라는 크리스의 안내에 따라 인파에서 벗어나 공원 한쪽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잠시 쉬고 있었다. 은규와 마찬가지로 생수 한 병을 그 자리에서 비워 버린 재이가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크리스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 봤어?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 네 ‘예전’ 팀 빨간 머리도 있더라.”

“*벤? 걔 말고 다른 팀원들도 다 있더라고. 어찌나 통쾌하던지! 진짜, 속에 얹혀 있던 게 뻥 뚫린 기분이었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꾹 쥔 주먹을 흔들어 보이며 크리스가 유쾌하게 웃었다.

“*거만 떨던 녀석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다들 넋 놓고 구경하는 모습이라니. 꿈만 같았어. 너무 짜릿했다고!”

크리스의 옛 동료들은 기껏 모은 관객들이 자신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작된 버스킹으로 옮겨 가는 것에 결국 예정보다 일찍 공연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강력한 경쟁자의 정체를 확인하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던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멍멍이 뼈다귀인지 모를 듣보잡 촬영팀’과 공연 중인 크리스의 모습이었다.

달랑 기타 하나에 의지해 심지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생소한 언어로 부르는 노래였건만, 두 동양인 소년들의 귀신같이 들어맞는 호흡에 크리스의 반주가 어우러지자 꽤 재미있는 하모니가 탄생했다. 익숙한 언어와 생소한 언어의 즉흥적인 컬래버레이션에 두 동양인의 노련함이 묻어나는 댄스까지 더해지자, 구경꾼의 수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중에는 핸드폰으로 촬영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나가던 중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들을 배경으로 사진이나 찍던 구경꾼들과는 달리 세 사람의 공연에 완전히 빠져든 모습들이었다.

‘역시. 프로는 프로였어.’

크리스는 재이와 은규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공연이었던 만큼 세세한 부분에선 실수도 많고 어긋남도 있었다. 급하게 공수해 온 낡은 앰프와 마이크는 삐걱댔고 재이와 은규의 타이밍에 따라가지 못한 자신의 연주가 혼자 헛바퀴를 돌 때도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때마다 눈치껏 관객들의 주의를 돌리며 공연을 진행해 나가는 재이와 은규의 리액션이었다. 실수할 때마다 비난 섞인 팀원들의 눈빛 속에 움츠러들던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일체감이었다고, 크리스는 생각했다.

“*진짜 재밌었고 덕분에 많은 걸 배웠어. 정말 고마워.”

“*우리도. 네 기타, 멋졌어.”

재이와 은규를 바라보며 진지한 얼굴로 고마움을 전하는 크리스에게 은규가 엄지를 치켜들어 보이며 말했다. 은규의 칭찬이 기분 좋았던 듯 크리스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 호흡 정말 잘 맞더라. 여섯 명이 부를 걸 둘이 부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지? 역시 연습의 힘인 거야?”

“*천천히. 짧게 말해.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아, 미안 미안. 하하.”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재이가 끼어들었다.

“*근데 크리스, 너 여기 잘 안다고 했지?”

재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어. 여기서 나고 자랐으니까. 상점가 쪽에 우리 집이 하는 가게도 있어. 아주 작지만.”

“*그럼, 이번엔 네가 우리 좀 도와줄래?”

“*응?”

재이의 말에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재이는 미션이 적힌 종이를 꺼내 펼쳐 보이면서 말했다.

“*이게 뭔지 알겠어? 뭔가 장소랑 관련 있는 것 같은데. 여기로 가서 키워드를 물어봐야 하거든.”

[베니스 비치 310437XXXX]

재이가 내민 종이를 쳐다보던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이거…….”

“*오, 뭔지 알 것 같아?”

재이와 은규가 눈을 빛내며 크리스를 쳐다보았다. 예정에 없던 버스킹에 시간을 쏟은 탓에 발품 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현지인 크리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다. 두 사람의 기대에 찬 눈빛을 번갈아 쳐다본 크리스가 대답했다.

“*우리 가게 전화번호인데?”

“…….”

“나이스으으!!!!!”

짤막한 침묵 끝에 재이와 은규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미션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 PD가 예상 밖의 상황에 입을 반쯤 벌린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 * *

“그래서?”

“그래서는 뭘. 저기 있는 크리스 덕에 5분 만에 미션 클리어 했지.”

어딘지 못마땅해 보이는 인혁에게 재이가 턱을 치켜들며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옆에서 은규가 거들었다.

“진짜.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고. 베니스 비치 맛집 탐방을 포기한 보람이 있었다니까.”

“누구는 키워드 얻으려고 식당에서 설거지에 서빙까지 했는데 누구는 VIP 대우받으면서 5분 만에 키워드를 얻었다고.”

“남궁찬, 그게 아니라니까. 우리는 대신 기습 버스킹으로 그 땡볕에서 세 곡이나 불렀다고.”

크리스의 부모님이 하신다는 작은 빵집에 도착한 재이와 은규는 남궁찬의 말대로 멀리서 온 아들 친구 대접을 톡톡히 받고 별 어려움 없이 키워드를 얻어 나올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사정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인지 은규의 반박에도 이환이 어딘지 골이 난 말투로 투덜거렸다.

“그치. 화제성도 분량도 키워드도 다 가져갔지.”

“이환 얘는 왜 또 이렇게 비뚤어졌는데?”

재이의 물음에 테이블에 턱을 괴고 있던 엠케이가 말했다.

“디즈니랜드에서 키워드 얻으려고 퍼레이드 분장을 했는데 의상이 마음에 안 들었대.”

하긴 그 인파에 의상까지 챙겨 입고 퍼레이드에 참여했다면.

재이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딱하다는 눈빛으로 엠케이와 이환을 둘러보았다. 하루 종일 낯선 곳에서 키워드를 찾아 동분서주해서인지 피곤해 보이는 멤버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핀 인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모아 온 키워드를 맞춰 볼까.”

인혁의 말에 잠시 늘어졌던 분위기에 활기가 돌아왔다.

“자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펼치는 거야?”

일부러 펼쳐 보지 않고 모두가 모일 때까지 고이 모셔 온 키워드 쪽지를 들고 엠케이가 말했다.

“하나, 둘, 셋!”

“[케이팝에]”

“[열성적인]”

“…[CM]?”

“…CM이 뭐야?”

“미션이 가이드 찾기니까 아마 사람 이름이겠지?”

“케이팝에 열성적인 CM?”

멤버들이 잠시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인혁과 재이가 동시에 외쳤다.

“크리스 마이어!”

“크리스 맥그레이!”

일순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크리스 마이어가 누구야?”

재이가 물었다.

“크리스 맥그레이는 누군데?”

인혁 또한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상황을 보고 있던 PD가 끼어들었다.

“크리스 마이어는 어제 여러분을 공항에서 픽업해 준 홈스테이 집 아들이고, 크리스 맥그레이는 오늘 재이네 팀에서 함께 버스킹을 한 청년.”

“아아아…….”

PD의 교통정리에 멤버들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아침에 미션 봉투 건네는데 크리스가 자꾸 의미심장하게 웃더라니.”

엠케이가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재이가 손을 들고 PD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요 PD님, 크리스, 음 그러니까 오늘 만난 버스킹 크리스도 키워드에 맞는 인물이잖아요. 케이팝에 열성적인 Chris McGray. 이 경우엔 어떡합니까?”

재이의 질문에 PD가 고민된다는 듯 생각에 잠겼다. 그런 PD의 반응을 잠시 살핀 재이가 한쪽 구석에서 촬영을 구경하고 있던 크리스를 향해 물었다.

“*크리스, 운전할 줄 알아?”

“*어? 어.”

갑자기 자신을 향한 재이의 질문에 얼결에 대답하며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를 가리키며 재이가 PD에게 말했다.

“피디님, 쟤도 운전할 줄 안다는데요.”

재이의 의도를 눈치챈 듯 은규가 끼어들었다.

“이대로 놔주긴 아깝지 않아요? 잘생겼는데.”

은규의 말에 PD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을 본 재이가 구슬렀다.

“물어나 보는 건 어때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일정이 안 맞을 수도 있고 본인이 하기 싫다고 할 수도 있고. 어차피 크리스, 음 홈스테이 크리스는 이미 하겠다고 했을 테니까 쟤가 수락을 하건 말건 우리로선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어차피 저희 탈 밴은 8인승이고 장거리 운전인데.

운전사 하나보단 둘이 든든하잖아요.

재이가 부추겼다.

“…흠, 그럼 물어나 볼까.”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PD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낚였구나.

재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레이드 파티 서포터가 둘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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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갔다가 얘네 때문에 신랑이랑 싸웠어요]

저희 부부 돌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신혼여행도 패키지 말고 자유 여행으로 숙소부터 루트까지 하나하나 다 머리 맞대고 짰거든요. 여행 내내 한 번도 안 싸우고 재미있게 잘 다니고 마지막 날이었는데 해변에서 거리 공연 보다가 싸웠다는 ㅜㅜ 사람들 막 몰려 있고 음악 소리 나길래 별생각 없이 가 봤는데 우리나라 아이돌이 버스킹 하고 있잖아요! 다들 찍길래 저도 찍었습니다 ㅋㅋ 문제 되면 내릴게요 ㅜㅜ

너네가_왜_거기서_나와.avi

처음엔 그냥 뭐지 한국어 되게 잘하네! 우리나라 애들인가 반갑네 싶었는데 옆에서 막 팬같이 보이는 분들이 누구야 누구야 하는 거에 다시 보니까 주태온이잖아요 ㅋㅋ 제가 불탐정 엄청 재밌게 봤거든요. 옆에 멤버도 그 노래하는 경연 프로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고.

TV에서나 보던 얼굴들을 가까이에서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둘이 호흡 척척 맞아서 진짜 콘서트 보는 것처럼 신나서 한참 보고 있는데 신랑이 삐지더라고요 ㅋㅋㅜㅜ 아니 저희 연애 오래 해서 서로 그렇게 막 끈적이고 그런 사이 아닌데;

사람도 많은데 그만 보고 이제 가자고 자꾸 잡아끌길래 너 먼저 가라고 했더니 삐져서 진짜 가 버린 ㅋㅋㅋ ㅜㅜ 근데 솔직히 버스킹 끝날 때까지 너 없어진 줄도 몰랐다. 미안하다, 신랑아.

추신) 걱정하시는 분들 계셔서 덧붙이자면 신랑하고는 금방 화해했어요 ㅋㅋ 진짜 삐져서 가 버린 줄 알았더니 더운데 사람도 많다고 아아메 사러 다녀왔더라고요. ㅋㅋ

(베플) 주태온 배달 간 듯ㅋ 어디든지 달려간다 1588 - 때옹때옹

(베플) 걱정돼서 들어왔다가 염장만 질렸네요. 파티 버스킹도 보고 신랑 아아메도 마시고 다 가지신 분 부럽습니다 ㅋㅋ

(배플) 파티가 파티했네 ㅋㅋ 나머지 멤버들도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제보 바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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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라왔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재이는 옆자리에서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힐끔 쳐다보고 묻는 인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 버스킹 보고 있던 분들 중에 우리나라 분들도 계셨나 봐. 너희 봤다는 제보도 돌던데?”

“빠르네.”

“그러게. 요샌 어디든 다들 이어져 있으니까.”

“그러게.”

짧은 대화를 끝으로 차 안은 다시 정적이 흘렀다. 빡빡한 일정은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마찬가지였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출발해 밤새 차를 달려 아침에는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 탓에 멤버들은 차 안에서 익숙하게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보다 좋은 점이라면 길 막혀서 스케줄에 늦을 걱정은 없다는 점이었고 나쁜 점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달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재이는 잠시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야경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잠이 오든 안 오든 잘 수 있을 때 자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 * *

“이야……. 이런 데가 다 있네.”

“그러게. 와 인간 남궁찬 출세했다, 이런 곳도 다 와 보고.”

“아이고 죽겠다, 헉헉. 나 이제 정말 못 가.”

“아직 본 촬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죽겠으면 어떡해?”

밤새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그랜드 캐니언의 명물 하바수 폭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량으로 접근 가능한 곳은 입구까지였고 멤버를 비롯한 촬영팀은 협곡 아래에 있는 수파이 마을까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하이킹이라는 이름의 행군을 해야 했다.

“*여기 원래 촬영 허가 안 내주기로 유명한 곳인데 제작팀이 능력 있네.”

“*그러게. 이곳 원주민들 까다롭게 굴기로 악명 높잖아.”

큰 크리스와 작은 크리스가 두런거리며 걷고 있었다. 원래 제작진과 이미 계약이 되어있던 홈스테이 크리스가 큰 크리스, 재이의 낚시로 뒤늦게 합류하기로 한 버스킹 크리스가 작은 크리스였다. 큰 크리스는 자신과 말이 통하는 크래쉬캣 팬 동지를 만났다는 기쁨에 환영했고, 작은 크리스는 프로들의 촬영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건성으로 들으며 재이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수파이 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붉은 협곡 아래 자리한 인디언 원주민의 터전이었다. 어지간한 자본의 힘이 아니고서야 촬영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크리스들의 악평과 달리 마을 아이들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천진하게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랜드 캐니언 전설의 폭포라 불리는 하바수 폭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럼 이곳에서 수행하실 미션을 발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촬영 준비를 마치자마자 PD가 진행을 시작했다.

“미션은 매우 간단합니다. 세 팀으로 나뉘어 제한시간 내에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세 폭포인 하바수 폭포, 무니 폭포, 비버 폭포에서 인증샷을 찍어 오시면 됩니다. 미션에 성공하신 팀은 돌아가는 길에 헬리콥터를 제공하겠습니다.”

PD가 멘트와 함께 하늘 위를 손으로 가리켰다. 마침 투어객을 실어 나르기 위한 소형 헬리콥터가 일행의 머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만약 실패하면…….”

남궁찬이 듣기는 싫지만 일단 묻기는 하겠다는 듯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말을 흐렸다. PD가 그런 그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만일 제한시간 내에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하셨을 땐,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시게 되겠죠.”

물론, 본인 짐도 함께요.

PD가 덧붙인 말에 남궁찬을 비롯한 멤버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될 정도의 강행군이었는데 설마 이 길을 다시 돌아 올라가야 한다니. 내려오는 길에 드문드문 마주쳤던 투어객들이 하나같이 숨넘어가기 직전의 몰골을 하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 멤버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PD의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인혁이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다리 타자. 시간 없다.”

인혁의 말에 멤버들이 하나둘 중얼거렸다.

“한재이만 안 걸리면 돼.”

“왜, 한재이랑 가면 아마 분량 걱정은 안 해도 될걸.”

“그리고 배로 고생하겠지.”

“음 그럴 가능성은 크지.”

또다시 슬슬 몰이가 시작되는 낌새에 재이가 인상을 콱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심은규가 나 때문에 고생했냐?”

“고생했지. 예정에도 없는 버스킹을 했는데.”

“그리고 VIP 대우받으며 5분 만에 미션 클리어 했지.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의상 입고 춤춘 누구랑 다르게 말이야.”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 온 이환의 아픈 곳을 찔러 주자 이환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 쟤 한 대만 쳐도 될까, 응?”

그러자 사다리 그리기에 여념이 없던 인혁과 엠케이가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꾸했다.

“카메라 없는 데서 해라.”

“뒷일은 장담 못 해. 알지?”

“쳇. 저 매정한 것들”

이환이 투덜거렸다.

“자 그럼 헬리콥터 메이트를 찾기 위한 사다리를 타 봅시다!”

완성된 사다리를 들어 보이며 엠케이가 외쳤다.

몇 분 후.

“이번엔 딴 길로 새지 말자, 제발.”

“아니 진짜 내가 뭘 어쨌다고. 아까 장 이사님 전화 온 거 못 들었어? 알아서 잘하고 있어서 기특하다고 칭찬받았는데.”

나란히 트레킹 코스를 걷던 인혁이 내뱉은 말에 재이가 입술을 삐죽이며 반박했다. 관광객이 우연히 촬영해 올린 버스킹 영상이 인터넷에서 꽤 화제 몰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협곡으로 내려오기 전 핸드폰 전파가 제대로 잡히는 마지막 지점에서 잠시 통화한 장 이사는 이런 식으로 나오면 홍보팀이 할 일이 없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어 가며 멤버들을 - 정확히는 기습 버스킹을 성공시킨 재이와 은규를 칭찬했다.

턱 끝을 치켜들고 특유의 오만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재이를 힐끔 쳐다본 인혁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휴. 그래, 잘나셨고요.”

“그렇지.”

“설마 여기서도 버스킹을 할 작정은 아닐 테고, 얼른 가서 해치우고 오자고.”

“그래, 그래.”

완전 사고뭉치 취급이네.

재이는 투덜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헐.”

양쪽으로 갈라진 갈림길 앞에 멈춰 선 인혁이 중얼거렸다.

“왜?”

“그게, 지도에서는 왼쪽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표지판엔 오른쪽이라고 쓰여 있잖아.”

인혁이 중얼거린 말에 재이가 인혁이 내민 지도와 눈앞에 세워져 있는 표지판을 번갈아 살폈다. 인혁의 말대로 지도와 표지판의 표시가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 아무것도 안 했다?”

왠지 이상한 느낌에 재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급하게 내뱉었다.

인혁은 눈을 찌푸렸다. 남궁찬이 동물 자석이라면 한재이 이 녀석은 아무래도 사건 자석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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